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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추천하며
책머리에 이 책의 구성 김정한 사하촌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현덕 나비를 잡는 아버지 채만식 논 이야기 미스터 방 민족의 죄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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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하촌
타작마당 돌가루 바닥같이 딱딱하게 말라붙은 뜰 한가운데, 어디서 기어들었는지 난데없는 지렁이가 한 마리 만신에 흙고물 칠을 해 가지고 바동바동 굴고 있다. 새까만 개미 떼가 물어 뗄 때마다 지렁이는 한층 더 모질게 발버둥질을 한다. 또 어디선지 죽다 남은 듯한 쥐 한 마리가 튀어나오더니 종종걸음으로 마당 복판을 질러서 돌담 구멍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군데군데 좀구멍이 나서 썩어 가는 기둥이 비뚤어지고, 중풍 든 사람의 입처럼 문조차 돌아가서 - 북쪽으로 사정없이 넘어가는 오막살이 앞에는, 다행히 키는 낮아도 해묵은 감나무가 한 주, 모를 낸 후 비 같은 비 한 방울 구경 못한 무서운 가뭄에 시달려 그렇지 않아도 쪼그라졌던 고목 잎이 볼 모양 없이 배배 틀려서 잘못하면 돌배나무로 알려질 판이다. 그래도 그것이 구십 도가 넘게 쪄 내리는 팔월의 태양을 가리어, 누더기 같으나마 밑둥치에는 제법 넓은 그늘을 지웠다. 그걸 다행으로 깔아 둔 낡은 삿자리 위에는 발가벗은 어린애가 파리똥 앉은 얼굴에 땟물을 조르르 흘리며 울어댄다. 언제부터 울었는지 벌써 기진맥진해서 울음소리조차 잘 아니 나왔다. 그 곁에 퍼뜨리고 앉은 치삼노인은, 신경통으로 퉁퉁 부어오른 두 정강이 사이에 깨어진 뚝배기를 끼우고 중얼거려 댄다. --- pp.28-29 자비를 잃은 시대에 타오른 농민의 횃불 1930년대 식민지 현실과 모순적 공간 ‘사하촌’ 김정한의 「사하촌」(1936)은 1930년대 일제 강점기, 극심한 가뭄과 일제의 수탈로 붕괴 직전인 농촌을 배경으로 한다. 제목 ‘사하촌’은 ‘절 아래 마을’이라는 평화로운 의미를 담고 있으나, 실상은 가장 고통스러운 생지옥이다. 작품에서 보광사는 자비를 내세우는 종교 공간이면서도, 실제로는 물길과 소작지를 틀어쥔 지배의 중심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절 아래 마을’이라는 이름과 농민들의 참혹한 현실이 대비되면서, 작품은 성스러워야 할 공간이 어떻게 민중을 옥죄는 억압의 장소로 변했는지를 드러낸다. 타락한 종교와 제도적 수탈의 고발 보광사의 승려들은 가뭄에 허덕이는 농민들의 생존을 외면한 채, 물길을 독점하고 소작지를 통제하며 실질적인 지주 노릇을 한다. 특히 치삼 노인이 과거에 승려들의 꾐에 속아 바쳤던 논이 다시 소작지로 돌아와 자신을 옥죄는 장면은, 종교적 권위가 어떻게 민중을 기만하고 제도적 착취로 변질되는지를 극적으로 보여 준다. 이러한 설정은 1911년 ‘사찰령’ 이후 총독부 권력에 예속된 불교계의 현실을 반영한다. 즉, 작품은 단순히 몇몇 승려의 도덕적 타락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와 식민 권력이 결탁하여 민중을 구조적으로 억압하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사회 구조 자체를 고발한다. --- pp.24-25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어머니는 아들이 제 방에서 나와, 마루 끝에 놓인 구두를 신고, 기둥 못에 걸린 단장을 꺼내 들고 그리고 문간으로 향하여 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어디 가니."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중문 앞까지 나간 아들은, 혹은 자기의 한 말을 듣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또는 아들의 대답 소리가 자기의 귀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는지도 모른다. 그 둘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 어머니는 이번에는 중문 밖에까지 들릴 목소리를 내었다. "일즉어니 들어오너라." 역시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중문이 소리를 내어 열려지고, 또 소리를 내어 닫혀졌다. 어머니는 얇은 실망을 느끼려는 자기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려 한다. 중문 소리만 크게 나지 않았으면, 아들의 '네' 소리를, 혹은 들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 pp.108-109 도시의 하루에서 발견한 생활과 창작 사건 없는 하루에 담긴 근대 도시의 초상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직업도 아내도 없는 스물여섯 살 소설가 구보가 어머니가 기다리는 집을 나서 경성 거리를 배회하다가 새벽 두 시 무렵 집을 향하는 하루를 그린다. 극적인 사건 대신 걷기와 전차 타기, 관찰과 회상, 망설임이 서사를 이룬다. 화신상회·종로·경성역·다방·카페로 이어지는 공간은 식민지 경성의 소비와 교통, 군중의 풍경을 펼쳐 보인다. 구보는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정작 갈 곳은 없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갈수록 고독을 선명하게 느낀다. 이 목적 없는 이동은 근대 도시가 넓힌 활동 반경과 그 속에서 방향을 잃은 지식인의 불안을 동시에 드러낸다. 노선은 있으나 목적지는 없는 산책 구보의 행로는 계획보다 우연에 좌우된다. 집을 나선 뒤 오른발이 왼편으로 기울었다는 이유로 종로네거리 쪽을 택하고, 안전지대에 홀로 남아 외로움을 느끼자 움직이는 동대문행 전차에 올라탄다. 전차에는 선로와 방향이 있지만 구보에게는 목적지가 없다. 화신상회에서 본 젊은 부부와 아이, 전차에서 다시 만난 지난해 한 번 만난 여자, 갈 곳을 향하는 승객들은 그에게 가정과 사랑, 생활을 가진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는 전차에서 만난 여자에게 말을 걸거나 뒤따라 내리지 못한 채 행복의 가능성을 머릿속에서만 그린다. --- pp.104-105 나비를 잡는 아버지 황혼의 종로로 방향을 돌려서 뻐스는 떠난다. 경쾌스럽게. 건드러진 노랫소리가 푸른 언덕을 넘어온다. 바우는 송아지를 뜯기며 밤나무 그늘에 앉아 그림 그리는 책을 펴 들었다. 송아지가 움직이는 대로 자리를 옮아앉으며 옆으로 풀을 뜯는 송아지 모양을 그리느라 열심히 들여다보고 연필을 놀리고 하더니 잠시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그리고 “흥!” 하고 빈정거리는 웃음을 한 번 웃고는 그 소리가 듣기 싫다는 듯 그편에 등을 대고 돌아앉는다. ‘겨우 서울 가서 공부한다고 배워 가지고 온 것이 유행가 나부랭이냐. 그리고 나비 잡는 것하구.’ 지난해 봄에 바우와 경환이는 한날에 그곳 소학교를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경환이는 서울로 상급 학교를 가고 바우 자기는 집에서 꾸벅꾸벅 땅이나 파며 있지 않으면 아니 될 때 바우는 무척 슬퍼하고 억울해하고 따라서 경환이를 부러워도 하였다. 바우 자기가 값없이 보내는 그 하루하루에 경환이는 좋은 학교, 훌륭한 선생 아래서 날마다 새로워 가고 높아 갈 것을 생각할 때 바우는 가만히 있지 못했다. 그 상급 학교에 가지 못하는 벌충을 여기다 하려는 듯이 틈 있는 대로 그림을 그리었고 또 그것으로 즐거움이 되었다. --- pp.218-219 순수한 동심에 투영된 식민지 농촌의 비극과 부성애 아이들의 시선으로 포착한 계급 사회의 모순 현덕의 「나비를 잡는 아버지」는 1930년대 일제 강점기 농촌을 배경으로, 소작농의 아들 ‘바우’와 마름의 아들 ‘경환’ 사이의 갈등을 다룬 수작이다. 현덕은 어른들의 직접적인 대립 대신 아이들의 미묘한 심리전과 다툼을 전면에 내세워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겉으로는 철없는 아이들의 자존심 싸움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식민지 농촌에 깊이 뿌리박힌 계급적 위계와 생존의 문제가 날카롭게 투영되어 있다. 갈등의 씨앗에서 화해의 열쇠로, 나비의 상징성 ‘나비’는 작품 전반에서 갈등과 화해를 동시에 매개하는 이중적 상징성을 지닌다. 경환에게 나비는 학교 숙제인 동물 표본을 만드는 데 필요한 대상이면서도, 자신의 우월함을 은근히 드러내는 매개물이다. 반면 바우에게 나비는 경환에 대한 반감을 자극하는 계기인 동시에, 자신이 그림 그리는 데 필요한 소중한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경환이 나비를 쫓으며 생계의 터전인 참외밭을 짓밟는 장면은 바우의 분노에 정당성을 부여하며 계층적·심리적 대립을 첨예화한다. 그러나 서사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나비의 상징성은 극적으로 전환된다. 아버지가 메밀밭에서 붙잡으려는 나비는 더 이상 단순한 과시의 대상이 아니라, 금이 간 부자 관계를 이어 주고 아들의 상처 입은 자존심을 대신 짊어지려는 화해와 사랑의 매개체로 작용한다. --- pp.214-215 논 이야기 1 일인들이 토지와 그 밖에 온갖 재산을 죄다 그대로 내어놓고, 보따리 하나에 몸만 쫓기어 가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 한생원은 어깨가 우쭐하였다. “거 보슈 송생원, 인전 들, 내 생각 나시지?” 한생원은 허연 탑삭부리에 묻힌 쪼글쪼글한 얼굴이 위아래 다섯 대밖에 안 남은 누 - 런 이빨과 함께 흐물흐물 웃는다. “그러면 그렇지, 글쎄 놈들이 제아무리 영악하기로소니 논에다 네 귀탱이 말뚝 박구섬 인도깨비처럼, 어여차 어여차, 땅을 떠가지구 갈 재주야 있을 이치가 있나요?” 한생원은 참으로 일본이 항복을 하였고, 조선은 독립이 되었다는 그날 - 팔월 십오일 적보다도 신이 나는 소식이었다. 자기가 한 말(豫言)이 꿈결같이도 이렇게 와 들어맞다니…. 그리고 자기가 한 말대로, 자기가 일인에게 팔아넘긴 땅이 꿈결같이도 도로 자기의 것이 되게 되었다니…. 이런 세상에 신기하고 희한할 도리라고는 없었다. ‘국가’라는 이름의 또 다른 수탈, 그 서늘한 풍자 해방의 환희를 배반한 차가운 현실 채만식의 「논 이야기」(1946)는 광복 직후 한국 사회가 당면했던 토지 문제와 민중의 허탈감을 정면으로 다룬 문제작이다. 당시 농민들은 일제가 물러가면 빼앗겼던 땅이 당연히 원주인에게 돌아올 것이라 기대했으나, 해방 후 일본인 소유 재산이 국가의 관리 대상이 되고, 다시 매각될 수 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뿐이었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을 포착하여, 해방이 민중에게는 실질적인 삶의 변화를 가져다주지 못하고, 단지 ‘무늬만 바뀐 세상’이었음을 고발한다. 즉, 이 작품은 해방 공간의 낭만적인 환희를 걷어내고, 그 기저에 존재하는 농민들의 절망적인 생존 현실을 냉정하게 응시한 리얼리즘의 걸작이다. --- pp.254-255 미스터 방 주인과 나그네가 한가지로 술이 거나하니 취하였다. 주인 미스터 방은 술이 거나하여 감을 따라, 그러지 않아도 이즈음 의기 자못 양양한 참인데 거기다 술까지 들어간 판이고 보니, 가뜩이나 기운이 불끈불끈 솟고 하늘이 바로 돈짝만한 것 같은 모양이었다. “내 참, 뭐, 흰말이 아니라 참, 거칠 것 없어, 거칠 것. 흥, 어느 눔이 아, 어느 눔이 날 뭐라구 허며, 날 괄시헐 눔이 어딨어, 지끔 이 천지에. 흥 참, 어림없지, 어림없어.” 누가 옆에서 저를 무어라고를 하며 괄시를 한단 말인지, 공연히 연방 그 툭 나온 눈방울을 부리부리, 왼편으로 삼십도는 넉넉 삐뚤어진 코를 벌씸벌씸 해가면서 그래 쌓는 것이었었다. --- pp.311-312 해방 공간의 허위와 외세 의존성을 꼬집은 풍자의 정수 해방의 감격을 배반하는 혼탁한 과도기 채만식의 「미스터 방」(1946)은 8·15 광복 직후의 ‘해방 공간’을 배경으로, 사회적 혼란과 가치관의 전도를 섬세하게 포착한 풍자 소설이다. 한반도는 일제가 물러난 뒤에도 곧바로 자주독립을 이루지 못한 채 미군정(美軍政)의 통치를 받으며 또 다른 외세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작가는 이러한 권력 공백기의 틈을 타 기회주의가 득세하고, 기존의 원칙과 질서가 흔들리는 과정을 예리하게 관찰하여 그 혼탁한 현실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이처럼 해방은 새로운 시작인 동시에 또 다른 혼란의 출발점이 되었다. 따라서 이 소설은 해방의 낭만적 환희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면에서 작동하던 외세 의존과 출세 지향의 기회주의를 차분하면서도 날카롭게 드러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pp.308-309 민족의 죄인 1 그동안까지는 단순히 나는 하여간에 죄인이거니 하여 면목 없는 마음 반성하는 마음이 골똘할 뿐이더니 그날 김군의 P사에서 비로소 그 일을 당하고 나서부터는 일종의 자포적 자포적인 울분과 그리고 이 구차스런 내 몸뚱이를 도무지 어떻게 주체할 바를 모르겠는 불쾌감이 전면적으로 생각을 덮었다. 그러면서 보름 동안을 싸고 누워 병 아닌 병을 앓았다. 참회로 쓴 핏빛 기록, 변절한 지식인의 슬픈 자화상 해방 공간, 침묵을 깬 보기 드문 고백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1948)은 해방 직후 친일 문제와 민족적 심판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자전적 성격의 소설이다. 당시 다수의 지식인들이 자신의 부역 행위를 은폐하거나 어쩔 수 없었다는 논리로 합리화하기 급급했던 것과 달리, 작가는 스스로를 ‘죄인’이라 명명하며 역사의 심판대 위에 세우는 길을 택했다. 따라서 이 작품은 해방 공간이라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한 문인이 보여 준 참회와 자기변호가 복잡하게 얽힌 자기반성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 p.3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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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청소년들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말을 듣는 순간 내 귀가 번쩍 뜨였다.
한창 자라는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설을 읽어주겠다니 참 아름다운 인간교육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소설은 그 시대가 창출한 가장 강렬한 정신적 유산이자, 미래를 지향하는 상상적 공간일 텐데, 커가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걸 성장의 발판으로 삼게 하겠다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대학에서 소설을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직접 창작을 해온 사람으로서, 문학이 인성개발에 미치는 영향을 높게 평가함은 당연하며, 한바탕 성장과 발육을 향해서만 치닫는 청소년기야말로 좋은 소설을 많이 읽을 때라는 생각을 늘 해온 사람이다. 강소천 선생의 「꿈을 찍는 사진관」을 읽으면서 자랐다. 중학생이 되어 처음 도시로 나간 시골소년 앞에 갑자기 나타난 이 동화집은 나로서는 세상에는 없던 신대륙이나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이토록 아름답고도 신비한 글 세상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모르고 살았던 책들을 찾아 읽기를 계속하였다. 그리고 훨씬 훗날 미국에 가서 한국문학을 소개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을 가르칠까 고심하다가 나는 결국 나의 성장기에 읽은 「꿈을 찍는 사진관」을 갖고 가서 읽어주기로 하였다. 그때 그들은 대학생이었지만 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정도는 아직 중학생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 학기 수업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나는 내가 미국에 다녀왔다는 생각보다 그들의 세상이 태평양을 건너 우리 대한민국까지 뻗친 것을 보는 것 같아 마음 뿌듯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서연비람〉이 엮어낸 『해설과 함께 읽는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이 오늘의 청소년들에게도 같은 즐거움과 보람을 안겨줄 것으로 기대한다. 읽어라! 모르겠거든 알 때까지 읽어라! 이것이 내가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하고 또 소설을 쓰면서 얻은 올바른 소설독법 가운데 하나다. 여기에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였으니 서연비람의 독자들이야말로 천군에 만마를 얻은 셈이다. 이 『한국 대표 단편문학 선집』은 아름다운 단편소설 모음집이 될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발굴한다는 등의 이유를 걸어 괜히 낯설거나 정체가 불명한 책을 만들기보다는, 좀 해묵어 보이더라도 우리 조부모 때부터, 부모 때부터 대를 이어 읽히고 검증을 받아온 모범적인 작품들을 선별하고자 노력한 책이다. 편편이 ‘작가 소개 - 작품 해설 - 작품 -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의 순서를 밟아 읽는 이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완벽을 기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생님이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는 이 책이 고안한 아주 특별한 코너로서, 그동안 그 어떤 책에서도 보지 못한 선생과 학생의 실체를 여기서 만나게 될 것이다. 학습은 꼭 배워서만 안다기보다 그것을 가르치던 선생님의 회초리와 함께 기억된다는 말이 있다.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서 그만큼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말일 것이다. 여기 실린 단편들도 그렇게 선생님이 들려주신 그 시절 이야기와 함께 오래 기억될 것을 바라는 마음이다. - 송하춘 (고려대학교 명예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