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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5
제1장 로마 제국과 헬레니즘의 만남과 그 영향 17 1) 헬레니즘과 로마 제국의 등장 19 2) 그리스 문화와 로마의 문명화 22 3) 헬레니즘의 애매성 29 4) 제국의 헬레니즘 34 제2장 로마의 기원 트로이 43 1) 아이네이아스 전설의 형성 46 2) 전설의 수용과 활용 57 제3장 기원전 2세기 그리스 문화의 매력과 수용 양상 69 1) 그리스 문화 수용의 전통 72 2) 그리스 문화의 애호가들 81 3) 반(反)헬레니즘의 사례 94 4) 그리스 예술과 전리품의 유입 104 제4장 반(反)그리스주의자 노카토 127 1) 카토와 그리스 학문 130 2) 연설, 철학, 의술에 대하여 134 3) 그리스인의 관습과 사치에 대하여 143 제5장 문화적 충돌, 아우구스투스의 문화정책 151 1) 공화정 말기 이미지에서 문화적 충돌 152 2) 빌라와 사적 공간의 창조 160 3) 문화적 갱생을 위한 아우구스투스의 시도 164 4) 과거와 현재 속의 신화 169 5) 아우구스투스 시대 로마 문화의 확산 179 제6장 기원전 2~1세기 로마와 이탈리아의 문화와 정체성 189 1) 문화와 정체성, 권력 190 2) 의복과 언어, 그리고 정체성 200 3) 로마-이탈리아의 문화와 정체성 211 제7장 헬레니즘과 아우구스투스 225 1) 아우구스투스의 도덕혁명 226 2) 그리스에 대한 인상 231 3) 아우구스투스의 고전주의 239 4) 아우구스투스와 그리스 세계 245 5) 그리스 세계 속주의 엘리트들 253 맺음말 267 참고문헌 270 찾아보기 2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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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들에게서 ‘헬레니즘 애호’(philhellenism)의 이중성과 그 의미
제1장에서는 두 문화가 언제, 어떻게 만났으며, 그것이 끼친 문화적 충돌과 문화 수용의 전반적인 양상을 개괄적으로 요약해 이 책의 논의 구조 전체를 묘사하고 있다. 제2장부터는 로마 문화의 기원을 밝히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그리스 저술가들은 로마가 그리스 이주자들이 트로이 난민들에서 시작되었다는 다양한 전설을 만들어냈는데, 로마인은 그 가운데 로마가 트로이인들에게서 비롯되었다는 전설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특히 기원전 338년에 라틴 연맹이 해체한 후, 로마인은 로마와 라티움 지역의 도시들 모두에게 유리하게 활용될 수 있는 아이네이아스 전설을 확립했는데, 이는 곧 그리스인과의 밀접한 유대를 강조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아우구스투스의 권위 역시 아이네이아스로 소급되는 율리우스 씨족의 신성에 바탕을 둔 것이기도 했다). 제3장에서는 그리스 문화가 로마 귀족에게 지닌 매력과 그에 대한 로마인의 태도를 고찰하고 있다. 기원전 3세기 말부터 로마와 헬레니즘 세계 사이에는 다방면에 걸쳐 활발한 교류가 이루어지는데, 로마인들은 각별히 그리스 문화의 의미와 타당성을 놓고 씨름했다. 로마 세계가 자신의 영역을 확장해나감에 따라 자연스레 자신들의 문화 역시 우위한 지점에서 확대되기를 바랐는데, 그런 과정에서 그리스 문화에 대한 로마인들의 태도는 복잡한 태도, 즉 모호함과 이중성이 나타났던 것이다. 그럼에도 로마의 많은 공적 인물들은 그리스 문화와의 친밀성과 흠모, 긴밀한 관계를 드러냈다. 즉 로마 귀족들은 국내외에서 그리스 사상가들과 교류했으며, 그리스어를 능숙하게 구사했고 그리스 학문의 발달을 촉진시켰다. 기원전 2세기경, 로마의 교양계층에서는 ‘헬레니즘 애호’(philhellenism)가 만연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로마 당국에 의해 바쿠스 숭배가 억압된다든지, 피타고라스학파의 책들이 소각된다든지 하는 일들이 벌어져 그리스 문화에 대한 적대와 반감 또한 적잖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했다. 제4장에서는 이러한 그리스 문화에 대한 복잡한 양상, 즉 호감과 적대의 이중성 및 복잡성을 노카토(Marcus Porcius Cato)의 사례를 통해 좀 더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특히 이 장에서는 통상적으로 그가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인을 무조건 반대한 인물로 쉽게 일반화되는 경향에 대해 결코 그러하지 않았음을, 즉 공적인 차원에서 로마 국가와 사회에 유익하리라 생각한 것은 그리스인으로부터 배우고자 했음을 드러내고 있다. 비록 그리스-헬레니즘 세계로부터 유입된 사치스런 생활풍조와 그로 인한 도덕적 타락에 대해서는 많은 문제점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것들은 불식 ― 그는 그리스 철학이나 문학에 몰두하는 것도 반대했다 ― 시키고자 했지만, 공적 영역(즉 국가와 사회 차원)에서만큼은 그리스 문화의 우수한 점을 받아들이고자 했다는 것이다. 제5장에서는 그리스 문화와 로마 문화의 갈등과 그 갈등을 지양하려는 아우구스투스의 문화정책이란 관점에서 파울 짱커(Paul Zanker)의 논지를 검토하며 서술하고 있다. 여기서 저자는 짱커의 저술 ― 『아우구스투스 시대 이미지의 힘』(독일어 원서는 1988년 출간, 영어 번역본은 1988년 출간) ― 이 공화정 말기에 대한 분석을 배경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지배신화 출현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주목한다. 제6장에서는 로마와 이탈리아에서의 삶이 헬레니즘과 로마 문화의 영향 아래 어떤 변화를 겪었는가라는 관점에서 앤드류 월러스-하드릴(Andrew Wallace-Hadril)의 저술 ― 『로마 문화혁명』(Rome’s Cultural Revolution, 2008)으로 이 책은 로마 제국과 헬레니즘의 관계를 로마와 이탈리아의 ‘헬레니즘화’와 ‘로마화’라는 관점에서 최초로 본격적으로 다른 저술로 주목받은 바 있다 ― 을 검토하고 있다. 월러스-하드릴에 따르면, 정복된 그리스가 훨씬 우세한 문화로 로마인을 정복한 것이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는 헬레니즘화와 로마화가 보조를 같이하는 역동적인 문화체계였던 것이다. ‘헬레니즘화’와 ‘로마화’는 별도의 실체가 아닌 상호 작용하는 역동적 문화체계!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들은 ‘로마화’와 ‘헬레니즘화’를 별도의 실체로 보지 않는다. 로마의 기념물들을 비롯한 물질문화를 분석해보면, 공화정 말기는 문화적 충돌과 부조화의 시기였다. 즉 이 시기 조각상들은 그리스적 요소와 로마적 요소가 결합된 모순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비록 로마가 그리스적 요소를 흡수하고 배운 바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결코 일방적인 문화 전파나 문화 흡수가 아닌, 상호 간의 문화 충돌에서 빚어지는 새로운 융합의 모습으로 역사적으로 전승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