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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키투스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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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역사가 타키투스의 생애와 저작 | 김경현
타키투스의 『역사』에 대하여 | 차전환
제1권
제2권
제3권
제4권
제5권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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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3

타키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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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us Cornelius Tacitus

고대 로마의 역사가?웅변가?정치가다. 뛰어난 저술가로 유명하지만 그 자신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타키투스라는 가족성(家族姓)이 갈리아의 트란스파다나(Transpadana)와 나르보넨시스(Narbonensis)에만 확인된다는 점과 그가 나르보넨시스의 저명인사였던 올리우스 아그리콜라와 결혼했던 점, 순탄한 공직 생활을 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타키투스도 나르보넨시스 출신이며 상당한 상류층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재위 69~79) 때부터 공직을 시작하여 88년에는 법무관을 지냈고 97년에는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 뒤에는 아시아 속주의 총독을 지내
고대 로마의 역사가?웅변가?정치가다. 뛰어난 저술가로 유명하지만 그 자신에 대한 기록은 많지 않다. 타키투스라는 가족성(家族姓)이 갈리아의 트란스파다나(Transpadana)와 나르보넨시스(Narbonensis)에만 확인된다는 점과 그가 나르보넨시스의 저명인사였던 올리우스 아그리콜라와 결혼했던 점, 순탄한 공직 생활을 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볼 때 타키투스도 나르보넨시스 출신이며 상당한 상류층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다.

베스파시아누스 황제(재위 69~79) 때부터 공직을 시작하여 88년에는 법무관을 지냈고 97년에는 집정관에 선임되었다. 그 뒤에는 아시아 속주의 총독을 지내고 117년경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타키투스는 역사에 대한 예리한 정치적 분석을 제공할 수 있는 심오한 사상을 지녔다는 점에서 당대의 위대한 역사가로 평가된다. 그는 역사를 사건 그 자체보다는 인물에 초점을 두며 서술한다. 특히 역사를 서술할 때 문헌이나 공문서와 같은 사료를 대체로 비판적인 자세로 다루며 사건 전달에 나름의 객관성과 진실성을 추구한다. 당대에 문필가로 더 유명했던 타키투스는 진지하고 장엄한 문체로 역사의 비극을 드러낸다. 또한 그의 탁월한 문학성은 그의 저작이 인류의 고전이 되는 밑바탕이 되었다.

저작으로는 『아그리콜라』 『게르마니아』 『연설가들에 관한 대화』 등이 있다. 타키투스의 가장 주요한 저작은 그의 문필활동 후반기에 쓴 두 권의 역사서, 『역사』와 『연대기』다. 『역사』는 100년에서 110년 사이에 저술된 것으로 네로 황제의 사망부터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사망(69~96)을 다루고 있다. 『연대기』는 110년경부터 죽기 전까지 집필한 것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사망부터 네로 황제가 사망할 때까지(14~69)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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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 학위,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사단법인 역사학회 회장, 한국 서양고전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고려대학교 사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역서 및 저서로는『고대 그리스사』『헬레니즘 세계』『타키투스의 역사』(원전번역)『서양사상의』(공저)『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기독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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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충남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역사교육과와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충남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로마 제국과 크리스트교』(2006), 『(인물로 보는) 서양고대사: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 제정 시대까지』(공저, 2006), 『서양고대사강의(개정판)』(공저, 2011)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로마제국의 노예와 주인: 사회적 통제에 대한 연구』(2001), 『타키투스의 역사』(공역, 201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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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2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60쪽 | 836g | 158*230*27mm
ISBN13
9788935679058

책 속으로

내가 여기서 다루려는 것은 재난이 많았고, 전란으로 참혹했으며, 내전으로 반목하고, 평화 속에서도 공포가 만연했던 시절의 역사다. 네 명의 원수가 칼로 목숨을 잃었으며, 세 번의 내전을 치렀고, 외적과 싸운 것은 더 여러 차례였다.
--- p.62

“전우들이여, 제가 어떤 자격으로 여러분 앞에 나서는지는 말할 수 없군요. 여러분이 저를 황제로 지명했으니 민간인 신분이라 할 수도 없고, 한편 다른 사람이 황제로 군림하고 있으니 황제라 할 수도 없습니다. 군영에 있는 제가 로마 인민의 황제인지 아니면 인민의 적인지가 분명치 않은 한, 여러분의 처지도 불확실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저들은 나와 여러분을 함께 처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지요?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아야 합니다.”
--- p.96

갈바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그를 증오한 사람, 찬양한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로 전해진다. 어떤 설에 따르면, 갈바는 목숨을 구걸하면서 “대체 내가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이러는가?”라 묻고, “살려주면 며칠 후 사례를 하겠다며 애원했다”고 한다. 한편 대다수의 주장에 따르면, 그는 스스로 자객에 목을 들이대며 이렇게 말했다 한다.
“자, 내리쳐라. 그것이 국가를 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 p.100

오토파 전선의 중앙이 돌파되었고, 병사들은 뿔뿔이 도주해 베드리아쿰으로 향했다. 베드리아쿰까지의 거리는 멀었고, 길들은 살해된 시신들로 막혀 있어서 더욱 많은 학살이 이루어졌다. 내전에서는 포로들이 전리품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 p.183

히스파니아 출신의 율리우스 만수에투스는 라팍스 군단에 소집될 때 집에 미성년의 아들을 남겼다. 그 아들은 성인이 되어서, 갈바에 의해 제7군단에 등록되었고, 우연히도 아버지를 만나 상처를 입혀 쓰러뜨렸으며, 쓰러져 죽어가는 자를 꼼꼼히 살펴보는 순간 아버지와 아들은 서로 알아보았고, 아들은 죽어가는 아버지를 감싸 안고 비통한 목소리로 아버지의 영혼이 달래지도록, 자신이 부친 살해자로 혐오되지 않도록 간청했다.
--- p.259

군중은 싸우는 병사들 옆에 구경꾼으로 서 있었고, 경기장에서 게임이 벌어질 때처럼 함성과 갈채로 이편저편을 격려하곤 했다. 어느 한편이 무너져 병사들이 가게들로 숨거나, 어떤 집으로 도주할 경우 군중은 그들을 끌어내 살해할 것을 요구했다.
--- p.314

“옛날 옛적에 갈리아인이 로마시를 점령했지만, 유피테르의 거처는 무사했고 제국은 존속했다. 하지만 이 숙명적인 화재는 하늘이 분노한 증표요, 인간 세계의 통치를 알프스산맥 너머의 주민에게 넘겨준다는 표시다.”
드루이다이는 그렇게 공허한 미신에 의거해 예언했던 것이다.
--- p.379

모세는 다른 민족과 정반대의 새로운 종교 의식을 제정했다. 유다이아인은 우리가 성스럽게 생각하는 모든 것을 불경하다고 여기는 반면, 우리가 혐오하는 모든 것을 용인한다. 그들은 방랑과 갈증을 끝낼 수 있도록 안내해준 저 짐승의 상을 지성소 안에 모시고, 마치 암몬을 능멸하려는 듯 숫양을 제물로 바친다. 이집트인들이 성스러운 소 아피스를 숭배하므로 그들 역시 소를 제물로 쓴다. 돼지고기는 금기시하는데, 그것은 한때 그들이 돼지의 부스럼 병에 걸렸던 재앙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 p.417

출판사 리뷰

세 번의 내전, 그 이상의 외환이 일어난 ‘네 황제의 해’

자결한 네로의 뒤를 이어 갈바가 권좌에 올랐다. 히스파니아 총독인 갈바는 원로원과 군대 모두의 지지를 등에 업고 집권했지만 지나친 인색함으로 민심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각지의 군단은 충성 맹세를 거부했다. 결국 권력을 갈구하던 오토의 반란으로 갈바는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갈바를 제거한 오토는 민심을 수습해 황제로 등극했으나, 그의 군대는 비텔리우스가 이끄는 게르마니아 군단에게 패한다. 오토는 더 이상의 내전을 막겠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타키투스는 오토가 ‘가장 수치스러운 행동과 또 다른 영예로운 행동으로 불명예만큼이나 큰 명성을 얻었다’고 서술했다.

뒤이어 로마에 입성한 비텔리우스는 네로를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비텔리우스는 오토의 편에 선 이들을 잔혹하게 숙청하고, 네로보다 더한 향락에 빠져 국정을 파탄시켰다. 그러나 동방 속주에서 유다이아 전쟁에 몰두하던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로 행군하면서 비텔리우스의 시대는 끝났다. 로마가 점령되고 병사들은 궁전에 홀로 숨어 있던 비텔리우스를 끌어내 로마 거리에서 조리돌리고 처형했다.

마지막으로 베스파시아누스가 권력을 잡고 왕조를 세웠다. 『역사』는 그의 군대가 비텔리우스군과 충돌한 베드리아쿰 전투를 상세하게 묘사한다. 전투에서 패배한 비텔리우스군은 북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대도시 크레모나로 피신해 농성했으며, 성을 함락한 베스파시아누스파 군대는 이 도시를 불태우고 주민을 학살했다. 내전의 참혹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변방으로 번진 제국의 균열

“옛날 옛적에 갈리아인이 로마시를 점령했지만, 유피테르의 거처는 무사했고 제국은 존속했다. 하지만 이 숙명적인 화재는 하늘이 분노한 증표요, 인간 세계의 통치를 알프스산맥 너머의 주민에게 넘겨준다는 표시다.”
_제4권, 379쪽

로마의 내전에 용기를 얻은 바타비족 군대가 로마 군단을 이탈해 반란을 꾀했다. 바타비족은 게르마니아계 부족으로, 오랫동안 로마제국 군대에서 복무하며 신뢰를 쌓아 왔다. 바타비족의 지도자인 키빌리스는 로마군의 군사적 약점을 간파했고, 주변 게르마니아인과 갈리아인을 충동해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다. 바타비족 반란은 단순한 소요가 아니었다. 로마군을 여러 차례 무너뜨리고 제국 서방 국경선을 사실상 붕괴시킨 사건이었다. 로마군 내부에서도 변절과 배반이 속출했으며, 로마는 내전에 몰두하느라 즉각 대응하지 못했다.

66년부터 이어진 유다이아 전쟁은 동방 속주에서 가장 치열한 반란이었다. 유다이아인은 로마 총독의 억압을 불씨로 봉기를 일으켰고, 로마는 이를 토벌하기 위해 베스파시아누스를 파견했다. 그가 황제로 추대되어 로마로 향한 뒤에는 그의 아들 티투스가 전쟁을 이어갔다. 타키투스는 『역사』에서 유다이아인의 역사와 독특한 종교적 전례, 예루살렘 성곽의 방비까지 세밀하게 묘사했다.

정치와 권력, 역사의 본질을 묻는 정치 드라마

“군중은 싸우는 병사들 옆에 구경꾼으로 서 있었고, 경기장에서 게임이 벌어질 때처럼 함성과 갈채로 이편저편을 격려하곤 했다. 어느 한편이 무너져 병사들이 가게들로 숨거나 어떤 집으로 도주할 경우 군중은 그들을 끌어내 살해할 것을 요구했다.”
_제3권, 314쪽

타키투스는 역사가라면 권력에 대한 아첨이나 반항심을 버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이 베스파시아누스의 은혜로 공직에 진출했다고 고백하면서도, 내전의 승리자조차 예리한 비판의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권력자의 오만함과 민중의 천박함, 권력투쟁의 민낯이 날카로운 문체 속에 숨김없이 드러난다.

『역사』는 단순한 전쟁 기록이 아니라 권력의 부침과 인간 군상의 어두운 단면, 제국의 중심과 변방이 얽혀 빚어낸 정치적 드라마를 담았다. 타키투스는 네르바와 트라야누스 치세를 “드물게 복된 시절”이라고 부르면서도 인간과 권력에 대한 비관을 숨기지 않았다.

『역사』는 고대 로마의 한 시기를 넘어 권력과 군중, 제국의 운명을 동시에 생각하게 한다. 속주 군단들이 황제를 만드는 새로운 정치 지형, 변방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반란, 로마 내부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은 오늘날 세계사의 다양한 정치적 혼란과 겹쳐 읽힌다. 제국의 내부와 외부가 동시에 약화되는 모습은 세계의 변방이 그저 조용한 주변부가 아님을 드러낸다. 강대국의 번영은 내부의 분열 혹은 외부의 도전으로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타키투스는 시대의 증인이자 불편부당한 역사가로서 정치와 권력, 역사의 본질을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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