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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인의 근대적 민족 정체성과 타라스 셰브첸코 | 한정숙 · 21
마술 걸린 아가씨 · 147 노래 · 160 카테리나 · 163 타라스의 밤 · 199 이반 피드코바 · 211 생각들이여, 내 생각들이여 · 217 하이다마키 · 225 하말리야 · 362 파헤쳐진 무덤 · 375 꿈(희극) · 380 이단자 · 411 포로(눈먼 남자) · 434 거대한 무덤 · 467 하녀 · 511 카프카스 · 538 죽은 이, 살아 있는 이, 나지 않은 이들에게, 우크라이나에 사는, 우크라이나를 떠나 사는 동포들에게 보내는 우정의 서한 · 552 홀로드니 야르 · 567 나 죽거든 그대들(유언) · 573 나는 그때 열세 살을 갓 넘겼지 · 577 수도승 · 583 마리아 · 592 부록 | 타라스 셰브첸코 자서전 · 630 찾아보기 · 637 |
Tapac Шевченк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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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국민시인 셰브첸코의 대표 시선집!
역사학자 한정숙 교수의 의미 있는 번역으로 우크라이나의 문학을 국내에 소개하다 시인, 그는 얼마나 약하고도 강한 존재인가 시인, 그는 얼마나 약하고도 또한 강한 존재인가. 섬세한 감수성으로 자연을 노래할 때는 차라리 여린 갈대와 같은 이름일 것이고, 부조리한 현실 앞에서 진실과 정의를 부르짖을 때는 칼을 든 전사라고 해야할 것이다. 그의 무기란 그저 도공의 손끝에서 빚어진 청자의 푸른빛과도 같은, 그가 창조해낸 직관의 말과 언어이다. 그것은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 영원하다. 여기 19세기 러시아 제국의 지배 아래 놓여 있던 약소국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비로소 자신들의 ‘민족됨’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 시인이 있다. 다름 아닌 우크라이나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타라스 셰브첸코(Taras Hryhorovych Shevchenko, 1814~61)이다. 비천한 농노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민족의 불운한 현실을 묵과하지 않았고, 특히 차르 전제정과 농노제에 반대하는 혁명적인 정치사상을 담은 많은 시를 쓴 그는 누구보다도 전사이자 혁명가이기에 충분하다.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역사를 겪었던 우리에게 이육사와 윤동주 시인이 있었듯이 우크라이나 민족에게는 셰브첸코가 있었다.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시정을 탁월하게 묘사한 혁명시인 셰브첸코의 삶! 단지 어떤 지역에 인접한 땅, 변경지대라는 뜻의 ‘오크라이나’(Okraina)에서 유래한 별 볼일 없는 나라 우크라이나. 셰브첸코는 폴란드의 지배와 러시아 제국의 지배를 거치면서 스스로 독자적 민족으로서 확신을 가지지 못했던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자신의 시를 통해 그 확신을 불어 넣어준 존재, 우크라이나인을 정신적 심리적 의미에서 처음으로 온전한 우크라인으로 만들어 준 인물이다. 근대 우크라이나인들의 민족적 정체성, 역사의식은 그에 의해 큰 틀이 지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 『유랑시인』은 바로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시정(詩情)을 탁월하게 묘사해 우크라이나의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 타라스 셰브첸코의 대표 장시(長詩) 21편을 엄선해 묶은 것이다. 대단히 맑고 순수한 개인적 정서를 노래한 서정시나 환상적 담시뿐만 아니라 뛰어난 작품성을 인정받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현실을 소재로 삼거나 억압적 정치체제와 농노제에 반대하는 혁명적 정치사상을 담고 있는 주요 시들을 싣고 있다. 책의 제목은 1840년 처녀시집인 『콥자르』(Kobzar, 유랑시인)의 이름을 차용했다. ‘콥자르’란 우크라이나의 민속악기인 ‘콥자’(kobza)라는 현악기를 타는 가객을 뜻하는데, 우크라이나의 민속에서는 대개 떠돌아다니며 구전 서사시나 민요를 노래하는 눈먼 늙은 유랑가수로 그려진다. 아울러 이 책은 열정적 혁명문학가로서의 셰브첸코의 삶을 조명한 훌륭한 평전으로도 부족함이 없다. 러시아사 연구에 남다른 열정을 가진 옮긴이 한정숙 교수(서울대, 서양사학)에 의해 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해 꽤 많은 분량의 충실한 해제를 싣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 시들에 대해 전체 내용과 의미, 역사적 상황을 설명하는 해설을 붙였고 옮긴이주도 세심하고 꼼꼼하게 달았다. 복잡하고 생소한 우크라이나 역사를 다루고 있는 시들이므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주석이 그만큼 중요했다. 또한 화가 셰브첸코로서의 면모를 보여줄 수 있는 시인의 그림을 함께 실어 보는 즐거움을 더했다. 오역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어, 영어 번역본을 가능한 한 여러 종 참고했다. 국내 출판에 볼 수 없었던 우크라이나와 셰브첸코라는 생소함을 조금이나마 쉽게 알리고자 한 옮긴이의 이런 노력과 정성이 셰브첸코의 시선집인 이 책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있다. 편역인 이유가 여기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 한정숙 교수의 의미 있는 번역으로 우크라이나의 문화를 국내에 소개하다 옮긴이 한정숙 교수는 『노동의 역사』『봉건사회』『비잔티움 제국사』 등의 굵직한 역사 고전들을 번역한 바 있고, 러시아사와 우크라이나사에 관한 연구자로 국내 손꼽히는 학자이다. 『유랑시인』 번역 역시 연구자로서의 그의 깊은 안목을 보여준다. 옮긴이는 19세기 전반에 결성된 우크라이나 최초의 근대적 민족주의, 민주주의 지식인 결사 ‘키릴루스-메토디우스 형제단’의 역사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이 결사와 밀접한 관련을 가진 것으로 여겨져온 셰브첸코의 작품들을 검토하면서 번역을 염두에 두었다. 즉 ‘불온한 사상’을 입증하는 결정적인 증거자료 역할을 하였던 셰브첸코의 시집 『삼 년』에 수록된 시들을 몇 편 연구의 부록으로 소개하고자 했으나 셰브첸코의 시가 가진 엄청난 힘에 매료되었다. 더구나 러시아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우크라이나의 역사나 문화는 한국에 생소했던 터라 출간은 균형잡힌 동유럽사 이해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민족시인 셰브첸코의 시들을 통해 ‘민족’과 ‘민족주의’의 문제 일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기회도 가졌다고 한다. 민족국가들이 독립을 얻어 새롭게 형성되는 과정이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는 동유럽과, 민족 담론이 어느새 구닥다리 이야기로 치부되고 있는 한국의 민족 문제를 비교해볼 수 있는 접점을 찾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비감한 정서 위에 흐르는 엄연한 우크라이나 민족의 역사성! 시인은 우크라이나 남부 초원지대 황량한 들판에 솟아 있는 코사크 전사들의 버려진 무덤과 그 위에 비치는 처연한 달빛, 고향 떠나 이름 모를 잡초 밭에서 죽어간 전사의 주검 위를 배회하는 검은 독수리와 저녁녘 초원을 휩쓸고 가는 쓸쓸한 바람, 이 모든 것 위에 호곡하는 시인의 비감한 정서 등에 대한 시적 묘사는, 셰브첸코의 시들을 어느 모로 보나 낭만적 비가(悲歌)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손꼽게 하기에 손색이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유라시아 초원과 수로를 말과 배로써 거침없이 질주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뛰어넘어 온 몸으로 세계를 끌어안았던 전사 집단 코사크들의 행적에 대한 셰브첸코의 정열적이고 호방하기 짝이 없는 송가(頌歌)가 남루하고 구차스러운 현실의 벽 안에 옹색하게 갇혀 있는 한 책상물림의 가슴을, 마치 당신도 우리에게 와보시오, 하고 말하는 듯 격렬하게 두드렸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엄연한 역사성을 가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민족의 소생에서 대단히 큰 현실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대개의 외국인들에게는 러시아인들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 존재였던 우크라이나인들이 스스로 우크라이나 민족임을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 그것이 바로 그의 시였다. 억압받고 버림받은 여성들의 삶에 아파한 시인의 고귀한 인간성 특히 이 책에는 우크라이나의 역사와 관련된 시와 마찬가지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비혼모(非婚母)의 모티프를 다룬 시들이다. 셰브첸코는 그 자신이 피지배 민족의 최하층 출신인 인물로서, 부당하게 억압받고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절절한 연민과 동정의 정을 품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사회적으로 가장 비참한 처지에 놓여 있던 하층 계급 비혼모들, 특히 농노 주인을 비롯한 상층 계급 남자들에게 겁탈당하거나 유혹에 빠져 농락당한 후 출산한 아이와 함께 버림받은 여성들의 고통에 각별하다. 「카테리나」「하녀」와 같은 장시는 이를 직접 주제로 한 것이다. 성모 마리아를 주인공으로 한 시 「마리아」는 종교시라기보다는 비혼모 모티프와 혁명적 메시아 사상이 순수하고 고귀한 인간성에 대한 그의 탐구 속에 절묘하게 녹아든 작품이다. 그 외 「마술 걸린 아가씨」는 코사크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정치나 역사와는 무관한 환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노래」는 순수 서정시에 가깝지만 코사크의 정서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나는 그때 열세 살을 갓 넘겼지」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시인의 소년시절 삶의 체험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