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
양장
한길사 2022.02.04.
베스트
서양철학 top100 1주
가격
48,000
10 43,200
YES포인트?
480원 (1%)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최저가 보상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상세 이미지

책소개

목차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의 궤적을 조명하다│홍원표
한 유대인의 삶, 1906~75년_머리말│제롬 콘
원전의 몇 가지 특이 사항
간행 목록
파리아로서 한나 아렌트_서론│론 펠드만

제1장 1930년대: 동화의 좌절과 정치적 자각

계몽주의와 유대인 문제
사교육 기관을 반대하며
최초의 동화: 라헬 파른하겐 서거 100주년 후기
젊은이들의 직업 재분류
젊은이들을 위한 지도자: 마르틴 부버
귀향하는 젊은이들
구스트로프 재판
유대인 문제
반유대주의

제2장 1940년대: 유대인의 자유와 명예

소수민족 문제
발생하지 않은 유대인 전쟁
침묵과 아연실색 사이에서
유대 민족의 정치조직
유대인 정치
크레미외법은 왜 폐지됐는가
유럽에 등장하는 새로운 지도부
여러 민족의 화해를 향한 길
난민인 우리들
파리아로서 유대인: 숨겨진 전통
새로운 문화 분위기의 형성
『유대 신비주의의 주요 추세』 개정판 서평
역사의 교훈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 세계의 유대인
시온주의의 위기
헤르츨과 라자르
시온주의를 재고하자!
유대국가: 50년 이후, 헤르츨의 정치는 어디로
유대인 조국을 구원하자
개성의 자산: 『하임 바이츠만: 정치가, 과학자, 유대인 공동체 설립자』 서평
시온에만 몰두한 삶: 『시행착오: 하임 바이츠만 자서전』 서평
이성의 좌절: 베르나도테의 임무
‘부역’(附逆)에 관하여
신생 팔레스타인당: 메나헴의 방문과 정치 운동의 목적 논의

제3장 1950년대: 민족과 국민 사이에서

근동에서의 평화 또는 정전
마그네스, 유대 민족의 양심
대죄(大罪)의 역사: 레온 폴리아코프, 『혐오의 성무일과서: 제3제국과 유대인』 서평

제4장 1960년대: 자의적인 파리아의 고뇌

아이히만 논쟁: 게르숌 숄렘에게 보낸 편지
그래프턴의 질문에 대한 답변
아이히만 재판과 독일인: 틸로 코흐와의 대화
600만 명의 절멸: 유대인 세계 심포지엄
‘만만찮은 로빈슨 박사’: 한나 아렌트의 반론
나의 고모 ‘거목 한나’_후기│에드나 브로케
어둡고 힘든 시대에 빛을 밝힌 사람들_감사드리며│제롬 콘
미래를 위한 영감의 근원이 되길 희망하며_감사의 글│론 펠드만
아렌트의 ‘정치적 전환’을 이해하다_옮긴이의 말│홍원표
찾아보기

저자 소개2

한나 아렌트

관심작가 알림신청
 

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1929)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9년 스테른(Gunter Stern, 1936년 이혼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1929)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9년 스테른(Gunter Stern, 1936년 이혼)과 결혼하여 베를린에 정착한다. 이후 아렌트는 정치적 억압과 유대인 박해가 첨차 심해지던 독일에서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뒤, 1933년 모든 것을 뒤로하고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망명 후 발터 벤야민 등 많은 지식인을 만나 유대인 운동을 하던 아렌트는 다시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0년에, 아렌트는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1941년에는 아렌트를 포함하여 2500명 정도 되는 유대계 망명자들에게 불법으로 비자를 발행해 준 미국 외교관 하이램 빙엄 4세의 도움으로 남편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아렌트는 1951년에 이르러서야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되는데, 1959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완전한 교수직에 지명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경험한 18년간의 무국적자 경험을 바탕으로 첫 번째 주저인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을 출간하고, 더불어 정치이론가로서 정치현상의 근본적 의미를 밝히는 데 전념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사상가의 길을 걷는다.

이후 『라헬 바른하겐 : 유대인 여성의 삶』(Rahel Varnhagen : The Life of a Jewish Woman, 1958),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 196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 『혁명론』(On Revolution, 1963),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Men in Dark Times, 1968), 『공화국의 위기』(Crises of the Republic: Lying in Politics, 1969), 『시민적 불복종』(Civil Disobedience, 1969), 『폭력의 세기』(On Violence, 1969) 등 중요 저작들을 연이어 출간한다. 이 가운데 『혁명론』에는 아렌트의 최종적인 '정치' 사상이 담겨 있는데, 그가 1956년 헝가리 혁명을 계기로 혁명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프린스턴 대학 세미나에서 「미국과 혁명정신」이란 주제로 강연한 것을 정리해서 완결지은 것이다. 『혁명론』은 '새로운 시작' 과 자유를 기리는 혁명송이자, 정치학도들에게 다양한 정치적 통찰력을 제공하는 귀중한 교과서로서 의미 있는 저작이다.

아렌트는 1973년 에버딘 대학에서 '정신의 삶―사유'라는 주제로 기퍼드 강의를 요청받은 후 사유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듬해 '정신의 삶―의지'라는 주제로 다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 연구를 진행했다. '정신의 삶―판단'이라는 주제로 정신의 삶 3부작의 마지막 연구를 진행하던 중 1975년 12월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쳤으며, 남편이 오랫동안 강의한 뉴욕주 허드슨 강 유역 애넌데일(Annandale-on-Hudson, New York)에 있는 바드 대학에 묻혔다. 그녀의 사후 『정신의 삶―사유』와 『정신의 삶―의지』가 1978년 출간되었으며, 완성되지 않은 3부에 해당하는 「판단」 부분은 유고집으로 『칸트 정치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1982년 출간되었다. 그후 이미 발표된 글들 및 미발표 원고 등을 주제별로 편집하여 『이해에 대한 에세이』(1994), 『책임과 판단』(2003), 『정치의 약속』(2005), 『유대적 저술』(2007), 『문학과 문화에 대한 성찰』(2007) 등이 출간되었다.

한나 아렌트의 다른 상품

洪元杓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고전적 합리주의의 현대적 해석: 스트라우스, 보에글린, 아렌트」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언어외교(LD)학부 재직 중 교무처장과 미네르바교양대학 학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정치학회 편집이사·총무이사·부회장을 역임했고, 한나아렌트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는 『현대 정치철학의 지형』(2002), 『아렌트: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다』(2011),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행위, 전통, 인물』(2013), 『비극의 서사』(20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고 동 대학원에서 「고전적 합리주의의 현대적 해석: 스트라우스, 보에글린, 아렌트」라는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언어외교(LD)학부 재직 중 교무처장과 미네르바교양대학 학장을 맡았으며, 현재는 명예교수로 있다. 한국정치학회 편집이사·총무이사·부회장을 역임했고, 한나아렌트학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저서로는 『현대 정치철학의 지형』(2002), 『아렌트: 정치의 존재이유는 자유다』(2011), 『한나 아렌트 정치철학: 행위, 전통, 인물』(2013), 『비극의 서사』(2018) 이외 다수의 공저가 있다. 역서로는 『혁명론』(2004), 『한나 아렌트 전기: 세계사랑을 위하여』(2007), 『이해의 에세이』(공역, 2012), 『정신의 삶: 사유와 의지』(2019),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2019) 등이 있다.

홍원표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2월 0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1004쪽 | 1538g | 152*225*60mm
ISBN13
9788935665624

출판사 리뷰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의 궤적을 조명하다

아렌트가 말하는 ‘유대인 문제’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아렌트가 자신을 어떻게 정의하고 어떤 방식으로 이를 정치적 문제로 삼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유대인성을 자각한 어린 시절

아렌트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유대인성을 자각했다. 아렌트는 학교에서 누군가가 반유대적인 발언을 하면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 문을 열고 나와 귀가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정확히 말하라고 부모님에게 교육받았다. 그는 스스로 유대인성을 주장하면서 비방과 차별에 대응했다. 유대인으로 태어났다는 것은 여성으로 태어난 것과 같이 선천적으로 그의 존재를 이루는 요소였다. 그는 14세에 집 안 서재에 꽂혀 있는 칸트의 저작들을 읽고 ‘발생한 모든 것을 이해하려는’ 욕구에 이끌려 유대인성에 대한 자신의 사유를 정립해나갔다.

아렌트는 정체성을 ‘변경하거나 부정하기’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유대인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길 바랐다. 반유대주의의 한 형태를 통해 자신이 유대인임을 발견한 순간 자신의 유대인성을 옹호하도록 요구받은 것이다. 독일 태생의 유대계 철학자 숄렘(Gershom Scholem, 1897~1982)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유대인성을 이렇게 밝혔다. “유대인인 것은 제 경우 삶의 필수불가결한 사실에 속하지요. 저는 그와 관련한 어떤 것도 결코 변경하거나 부인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1933년 2월 아렌트가 27세 되던 해 제국의회가 불타고 히틀러와 나치당이 독일을 집권하자 그는 어머니와 함께 체코 국경을 넘어 프랑스 파리로 망명했다. 나치당이 프랑스까지 진군하자 그는 이 책에 실린 에세이 「구스트로프 재판」(1936)과 「반유대주의」(1937 또는 1938), 몇 편의 박사학위 논문과 라헬 파른하겐 전기 초안 등의 원고를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행위자로서 시온주의 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이처럼 그에게 유대인성이란 선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며 매 순간 정치적 사유에 복무하는 것이었다.

민족 문제: 반유대주의 대 동화와 시온주의

유대인 문제는 개별 유대인, 유대 민족 및 국가의 정체성, 그리고 유대인 역사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유대인 문제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료한 답을 찾기는 쉽지 않다. 아렌트는 유대인 문제를 간명하게 규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유대인 문제는 곧 민족 문제임을 시사한다. 그는 유대 민족의 근대 역사를 기술하면서 ‘국가 안의 국가’ 또는 ‘땅 없는 민족’이라는 용어로 설명하며 존재론적인 문제를 고민한다.

유럽의 재앙은 유럽 민족의 입장에서 보면 전체주의에 의한 유럽 국민의 정복 또는 유럽 문명과 전통의 붕괴이고, 유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600만 명의 학살이다. 이렇듯 유럽 역사에서 항상 주변적 위치를 차지했던 유대인 문제는 유럽의 문제가 되었다. 아렌트의 말대로 “반유대주의는 결국 전 유럽 세계의 파괴적인 소동의 동인이었기 때문이다.” 반유대주의의 역사적 과정은 유대 민족과 비유대인, 특히 유럽 민족 사이의 갈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아렌트는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 전반에 걸쳐 반유대주의에 관한 논의를 전개한다.

서유럽 유대인들은 대부분 동화를 통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유대인성을 제거하려는 목적이 있음에도 항상 유대인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모순은 유대인 난민의 역설이었다. 유대인은 ‘어느 곳에나 있고 아무 데도 없는’ 민족으로 묘사되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유대인이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난민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다.”

아렌트 이전의 유대인 문제와 시온주의

아렌트는 시온주의의 등장 이후 1960년대까지 시온주의 역사, 특히 시온주의자들의 활동을 비판적으로 성찰했다. 헤르츨(Theodor Herzl, 1860~1904)과 라자르(Bernard Lazare, 1865~1903)는 시온주의 운동의 제1세대이고,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 아하드 하암(Ahad Haam, 1856~1927) 등은 제2세대를 대변한다. 개척자 운동은 제3세대에 속한다.

시온주의 보급 운동에 앞장선 헝가리 태생의 작가 헤르츨은 그의 작품 『유대국가』에서 “우리는 ‘꺼져야’ 하는가? 그렇다면 어디로? 아니면 우리는 어디에 머무를 수 있는가”라고 이야기하며 유대인 문제를 포괄적으로 드러냈다. 이전까지 유대인 문제는 ‘동화 문제’와 연계되며 개별 유대인이 직면한 ‘사회적 인정’ 문제로 인식되었지만 헤르츨 이후 유대인들은 유대인 문제를 사회적 인정 문제가 아닌 ‘정치 문제’로 이해했다.

아렌트는 1930년대 초반 시온주의 운동에 참여하면서 유대인 문제가 정치 문제라는 점을 인식했고 그 정치적 해답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아렌트는 헤르츨의 정치적 시온주의와는 거리를 두고 라자르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헤르츨은 “반유대주의의 이미지로 시온주의를 고려하면서 반유대주의자들을 유대인들의 가장 신뢰할 만한 친구로 간주”한 반면 라자르는 “유대인 문제를 정치 영역으로 공개적으로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행위자와 정치행위 문제: 배제와 공존 사이에서

유대인 문제는 행위자와 정치행위 문제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정치’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폴리스’에서 파생되었다. 폴리스가 정치와 연계되듯이 민족의 생존, 즉 자유와 평등을 보장하는 공동체는 정치행위와 연계된다. 누가 폴리스를 구성하고 정치에 참여하며 그 폴리스의 형태는 어떠한지 알기 위해서는 유대인 정치 역사에 대한 아렌트의 기본 입장을 살펴봐야 한다.

아렌트는 ‘정치 없는 민족’이란 우울한 비극에 대응해 “유대 민족은 디아스포라 2000년 동안 직접적인 정치행위를 통해 자신들의 조건을 변경하려는 시도를 두 차례 가졌다”고 밝혔다. 첫 번째 시도는 1600년대 샤베타이 체비 운동이었다. 이 운동의 파국은 이후 수세기 동안 유대인 정치에 대한 ‘환멸’로 이어졌다. 두 번째 시도는 시온주의 운동이었다. 아렌트는 이를 통해 유대 민족의 정치에 대한 희망을 부각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아렌트는 20세기 시온주의 운동을 주목하면서 두 차례 환멸을 경험했다. 첫 번째 환멸은 시온주의 운동이 아랍 문제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을 때 나타났고, 두 번째 환멸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출간 당시 시온주의자들이 이 책을 격렬히 비판했을 때 나타났다. 아렌트는 이러한 환멸 경험으로 1964년 이후 유대인 정치를 핵심 연구주제로 삼지 않았다.

아렌트는 이들의 ‘정치적’ 한계를 지적하면서 정치만이 유대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전통의 붕괴로 과거와 현재 사이에 놓인 심연을 극복하고자 했으며 역사적 사건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난간 없는 사유’를 강조했다. 비유하자면, 아렌트는 민족이 생존에 의존할 지지대가 없는 상황에서 난간을 마련하려는 새로운 모험과 도전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파리아로서 재앙을 목격한 한나 아렌트의 삶

아렌트는 ‘역사 없는 민족’이나 ‘정치 없는 민족’이 겪어야 했던 재앙을 목격했다. 그는 인간다운 삶을 구성하는 한 요소로서 정치행위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 모음집에서는 ‘정치 없는 민족’을 성찰하면서 유대인 문제의 해결책으로서 정치 문제를 제기한다.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에는 문제의 난관에서 벗어나는 돌파구를 찾는 아렌트의 정치적 사유가 깃들어 있다. 유대인 문제를 경험하고 이에 맞서 해답을 찾고자 했던 아렌트의 삶은 정치적 삶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전통적 범주의 정치에 대한 이해에서 벗어나 자의식적인 파리아의 정신으로 해답을 찾고자 했다.

아렌트의 정신세계를 거대한 숲으로 비유하면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는 아렌트의 숲 초입에 서 있는 특별한 나무다. 나무에 너무 집중하다 보면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숲 전체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각 나무의 성격을 분석해야 한다. 『유대인 문제와 정치적 사유』를 토대로 유대인 문제와 정치 문제를 다루는 아렌트의 다른 저작과 연계하는 작업을 통해 숲 전체를 관통하는 정치적 사유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다.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43,200
1 43,2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