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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터 벤야민 : 1892-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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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옮긴이 서문

1. 꼽추
2. 어두운 시대
3. 진주 잠수부

후주

저자 소개2

한나 아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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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nah Arendt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1929)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9년 스테른(Gunter Stern, 1936년 이혼
1906년 10월 14일 독일 하노버 근교에서 무남독녀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쾨니히스베르크에서 보냈는데, 이때 어머니를 통해 유대인의 삶을 이해하게 된다. 조숙하고 명석했던 그녀는 고등학교에서 교사에게 반항하다 퇴학당했지만, 가정교육과 베를린 대학교 청강을 거쳐 1924년 마부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 그곳에서 하이데거에게 수학하지만 현상학의 창시자인 후설을 거쳐, 최종적으로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실존철학자 야스퍼스의 지도 아래 「사랑 개념과 성 아우구스티누스」(1929)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9년 스테른(Gunter Stern, 1936년 이혼)과 결혼하여 베를린에 정착한다. 이후 아렌트는 정치적 억압과 유대인 박해가 첨차 심해지던 독일에서 시온주의자들을 위해 활동하다 체포되어 심문을 받은 뒤, 1933년 모든 것을 뒤로하고 어머니와 함께 프랑스로 망명했다. 망명 후 발터 벤야민 등 많은 지식인을 만나 유대인 운동을 하던 아렌트는 다시 수용소에 갇혔다가 1940년에, 아렌트는 독일 시인이자 철학자인 하인리히 블뤼허와 결혼했다. 1941년에는 아렌트를 포함하여 2500명 정도 되는 유대계 망명자들에게 불법으로 비자를 발행해 준 미국 외교관 하이램 빙엄 4세의 도움으로 남편과 어머니와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다. 아렌트는 1951년에 이르러서야 미국 시민권을 얻게 되는데, 1959년에는 프린스턴 대학에서 완전한 교수직에 지명받은 최초의 여성이 되었다. 프랑스와 미국에서 경험한 18년간의 무국적자 경험을 바탕으로 첫 번째 주저인 『전체주의의 기원』(The Origins of Totalitarianism, 1951)을 출간하고, 더불어 정치이론가로서 정치현상의 근본적 의미를 밝히는 데 전념하면서 본격적인 정치사상가의 길을 걷는다.

이후 『라헬 바른하겐 : 유대인 여성의 삶』(Rahel Varnhagen : The Life of a Jewish Woman, 1958),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 1958), 『과거와 미래 사이』(Between Past and Future, 1961),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의 진부성에 대한 보고』(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 of Evil, 1963), 『혁명론』(On Revolution, 1963), 『어두운 시대의 사람들』 (Men in Dark Times, 1968), 『공화국의 위기』(Crises of the Republic: Lying in Politics, 1969), 『시민적 불복종』(Civil Disobedience, 1969), 『폭력의 세기』(On Violence, 1969) 등 중요 저작들을 연이어 출간한다. 이 가운데 『혁명론』에는 아렌트의 최종적인 '정치' 사상이 담겨 있는데, 그가 1956년 헝가리 혁명을 계기로 혁명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프린스턴 대학 세미나에서 「미국과 혁명정신」이란 주제로 강연한 것을 정리해서 완결지은 것이다. 『혁명론』은 '새로운 시작' 과 자유를 기리는 혁명송이자, 정치학도들에게 다양한 정치적 통찰력을 제공하는 귀중한 교과서로서 의미 있는 저작이다.

아렌트는 1973년 에버딘 대학에서 '정신의 삶―사유'라는 주제로 기퍼드 강의를 요청받은 후 사유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으며, 이듬해 '정신의 삶―의지'라는 주제로 다시 강의를 시작하면서 이 연구를 진행했다. '정신의 삶―판단'이라는 주제로 정신의 삶 3부작의 마지막 연구를 진행하던 중 1975년 12월 심근경색으로 생을 마쳤으며, 남편이 오랫동안 강의한 뉴욕주 허드슨 강 유역 애넌데일(Annandale-on-Hudson, New York)에 있는 바드 대학에 묻혔다. 그녀의 사후 『정신의 삶―사유』와 『정신의 삶―의지』가 1978년 출간되었으며, 완성되지 않은 3부에 해당하는 「판단」 부분은 유고집으로 『칸트 정치철학 강의』라는 제목으로 1982년 출간되었다. 그후 이미 발표된 글들 및 미발표 원고 등을 주제별로 편집하여 『이해에 대한 에세이』(1994), 『책임과 판단』(2003), 『정치의 약속』(2005), 『유대적 저술』(2007), 『문학과 문화에 대한 성찰』(2007) 등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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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서울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으며, 서울시립대에서 철학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중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교직을 접고 오랫동안 철학, 미학, 심리학, 인류학 등을 공부했으며, 관심 분야의 집필과 번역 작업을 해 왔다. 저서로는 『사랑과 연합』, 『일상적인 것들의 철학』, 『철학하는 날들』 등이 있으며, 번역서로는 『동기간: 성과 폭력』, 『까다로운 주체』, 『여자들의 무질서』, 『아름다움과 정의로움에 대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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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0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48쪽 | 112*180*20mm
ISBN13
9791157831920

책 속으로

1924년에 카프카를 단편소설 작가나 소설가로 추천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었을 것처럼, 오늘날 발터 벤야민을 문학비평가이자 에세이 작가로 추천한다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이다. 벤야민의 작품과 저자로서의 벤야민을 우리의 통상적 준거틀 안에서 적절하게 묘사하려면, 아주 많은 부정 진술을 해야만 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학식이 대단했지만, 결코 학자가 아니었다. 주제는 텍스트와 텍스트 해석을 아우르지만 결코 문헌학자가 아니었다. 종교가 아니라 신학에, 그리고 텍스트 자체를 신성하게 여기는 신학적 유형의 해석에 크게 이끌렸지만, 결코 신학자가 아니었고 성경에 특별히 관심이 있지도 않았다. 타고난 작가였지만, 최대 야망은 전적으로 인용들로 이루어진 작품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프루스트를 (프란츠 헤셀과 함께) 번역하고 생 존 페르스를 번역한 최초의 독일인이었고, 그 전에 보들레르의 ??파리 풍경??을 번역했지만, 결코 번역가가 아니었다. 서평을 쓰고 생존 작가와 죽은 작가에 대한 여러 에세이를 썼지만, 결코 문학비평가가 아니었다. 독일 바로크에 관한 책을 한 권 썼고, 19세기 프랑스에 대한 엄청난 미완의 연구를 남겼지만, 문학이건 다른 쪽이건 결코 역사가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시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할 것이지만 그는 시인도 철학자도 아니었다.
--- p.30~31

그렇지만 벤야민은 사정을 알지 못했다. 그는 그런 일들을 어떻게 다룰지 전혀 알지 못했으며, 그런 사람들과 전혀 어울릴 수 없었다. “때로는 늑대들처럼 사방에서 몰려오는 외부생활의 역경들”(Briefe I, 298)이 이미 그에게 세상 물정에 대한 통찰을 얼마간 제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여하간 발 디딜 어떤 확고한 기반을 얻기 위해 적응하고 협조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일은 반드시 잘못되었다.
--- p.45~46

벤야민은 분명 마르크스주의 운동이 지금까지 낳은 가장 특이한 마르크스주의자였을 것이다. 이 운동도, 누가 알겠느냐마는, 기이함이 없지는 않았다. 벤야민이 매혹될 수밖에 없었던 이론적 측면은 상부구조라는 학설이었다. 그것은 마르크스에 의해 간략하게 스케치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 이 교설은 불균형적으로 많은 수의 지식인들, 즉 오로지 상부구조에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합류하면서, 운동에서 불균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다. 벤야민은 이 교리를 발견적-방법론적 자극으로만 사용했으며, 그것의 역사적 내지 철학적 배경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 p.48

소요객은 대도시 군중의 서두르는 목적 있는 활동과 일부러 대조를 이루면서 군중 속을 목적 없이 거닌다. 바로 그 소요객에게 사물들은 은밀한 의미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 “과거의 진정한 이미지는 휙 스쳐간다”(?역사철학테제?). 그리고 한가하게 거닐며 지나가는 소요객만이 메시지를 수신한다.
--- p.51~52

벤야민은 철학자가 아니라 시인 괴테를 통해서 정신적 실존이 형성되고 고취되었으며, 또한 철학을 공부하긴 했어도 거의 전적으로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자극을 받았다. 그는 (변증법적 유형이건 형이상학적 유형이건) 이론가들보다는 시인들과 소통하는 게 더 쉬웠을 것이다. 그리고 브레히트와의 우정이 ― 살아있는 가장 위대한 독일 시인이 여기서 당대의 가장 중요한 비평가를 만났다는 점에서 유일무이한 것이었고, 이는 둘 다 충분히 알고 있는 사실이었는데― 벤야민의 삶에서 두 번째이자, 비할 데 없이 중요한 행운이었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 p.57

수집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다양한 동기로부터 온다. 수집은 ―벤야민은 아마 이를 강조한 최초의 인물이었을 텐데― 아이들의 열정이다. 아이들에게 사물은 아직 상품이 아니며, 유용성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다. 수집은 또한 부유한 자들의 취미다. 그들은 유용한 것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소유하고 있으며, 따라서 “사물의 미화”를 자신의 일로 삼을 여유가 있다.
--- p.120

소요객이라는 형상만큼이나 구식인 수집가라는 형상이 벤야민에게서 이처럼 탁월하게 근대적인 자질을 띨 수 있었던 것은 역사 그 자체가, 즉 금세기 초 발생한 전통 붕괴가 이미 그에게서 이 파괴의 과업을 덜어주었고, 그래서 그는 단지 이를테면 허리를 굽혀 잔해 더미에서 그의 귀중한 파편들을 가려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 p.127

출판사 리뷰

한나 아렌트가 발터 벤야민에게 보내는 가장 세밀한 러브레터

누군가의 전기를 쓰는 것은 그 사람에게 보내는 길디 긴 러브레터를 쓰는 것과 같다. 날카로운 관점을 유지하되 대상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다양한 감정을 헤아리려는 정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의『발터 벤야민:1892-1940』도 그렇다. 어쩌면 둘의 만남은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두 사람 다 유대인이었고, 세계 대전이라는 어두운 시대를 살았으며, 나치 독일로부터 도망쳐 고향을 떠났다. 그러나 한나 아렌트는 살아남았고, 발터 벤야민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한나 아렌트는 그에게서 자신을 보았기에 이러한 전기를 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발터 벤야민: 1892-1940』은 세심하고 다정하다.

벤야민은 자신의 삶을 “꼽추 난쟁이”가 따라다니는 삶이라 묘사했다. 그는 독일인이지만 파리에 친근감을 느낀 이방인이었고, 그 무엇으로도 분류되지 않고, 당시 학계로부터 인정받지도 못했다. 한나 아렌트는 어디에도 닻을 내리지 못한 발터 벤야민의 불운한 삶을 “꼽추 난쟁이”를 소환해 그린다. 살아있을 때, 소수에게만 인정받은 그의 삶은 불운으로 얼룩덜룩하다. 이러한 벤야민의 불운, 운명은 그의 위치와 긴밀하게 얽힌다. 벤야민이 “발 디딜 어떤 확고한 기반을 얻기 위해 적응하고 협조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일은 반드시 잘못되었다.”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에도 그는 학계와 등진 채 교수직을 얻지 못한다. 파리로 이주했으나 곧장 가난과 나치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 안전한 곳을 찾아 파리를 떠나지만 그가 향한 곳은 “전투 없는 전쟁 기간 동안 프랑스에서 심각하게 위험”했던 몇 안 되는 장소였다.

미국으로 이주하려던 벤야민이 프랑스-스페인 국경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한 마지막 순간을 아렌트는 이렇게 말한다. “오로지 이날만 재앙이 가능했다.” 살아서 벤야민은 그 어디에도 자리를 잡지 못했지만, 사후에 “위험을 무릅쓰고 그 시대의 가장 노출된 위치로 나아갔으며 고립이라는 충분한 대가를 치른 소수의 사람들” 중 하나로 판명 난다. 아렌트는 벤야민의 위치에 “문인”이라는 역사적 명칭을 부여하여 그를 몽테뉴, 파스칼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한나 아렌트는 벤야민이 얻게 된 사후의 명성에서부터 글을 시작해 그의 삶을 세 부분(「꼽추」, 「어두운 시대」, 「진주 잠수부」)으로 나누어 그린다. 벤야민의 삶 어디에서든 “꼽추 난쟁이를 발견”하는 아렌트는 그의 삶만큼이나 그의 사유방식도 세밀하게 들여다본다. 젊은 벤야민에게 결정적 경험이었던 파리 경험을 고려해야만 벤야민 저작에서 소요객이 왜 핵심 형상이 되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아렌트는, 벤야민의 사유와 저작들을 벤야민의 삶, 경험, 관계, 당시 독일유대계 사회 분위기·관습 등과 등고선처럼 연결하면서 그려 보인다.

특히 아렌트는, 흔히들 간과하는 벤야민의 ‘은유적 사고’에 주목하며, 아렌트는 벤야민이 “철학자가 아니라 시인”을 통해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거의 전적으로 시인과 소설가들에게 자극을 받았다”고 얘기한다. 아도르노가 벤야민이 [사회연구지]에 기고한 보들레르 글을 거부한 이유였던 은유적 사고를, 아렌트는 벤야민이 남기고 간 선물로 여기며, 이 글에서 벤야민이 “시적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보여” 주려 한다. 또한 아렌트는 벤야민의 시적으로 생각하기와 인용 수집을, 진주와 산호를 캐내어 수면으로 옮기기 위해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진주 잠수부”로 명명하며 의미를 부여한다.

복잡한 문장, 시적 은유가 담긴 한나 아렌트의 문장을 한국어로 옮기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발터 벤야민』은 아렌트가 보여주려 한, 벤야민의 은유적 사고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성민 역자는『발터 벤야민』의 영어본과 독일어본을 꼼꼼히 대조하면서 한나 아렌트의 문장들을 하나하나 섬세하게 되살려낸다. 번역은 정확한 독서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역자의 번역관은 손쉽게 읽어낼 수 없는 한나 아렌트의 세밀한 생각들을 선명히 드러내준다. 단 하나의 문장, 어구, 표현도 쉽게 흘려 생각하지 않은 세심함이 담긴 번역 문장들은 독자들에게 벤야민처럼, 아렌트처럼, 시적으로 생각해보라고 권하는 듯하다.

또한 역자는 아렌트가 풍부하게 인용하고 있는 벤야민 글들의 한국어본 출처를 하나하나 밝혀 독자들을 이후의 독서로 안내하며, 본문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부분들에 상세한 주석을 달아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벤야민 서간집의 경우 주석으로 날짜와 수신인을 밝혀 더 관심 있는 독자들이 서간집의 영역본을 참조할 수 있도록 했다. 발터 벤야민을 알아가려 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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