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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도서관

책소개

목차

옮긴이 해제: 경제사가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와 미시사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의 저서와 논문 목록

1. 무법자
2. 17세기의 사기 사건
3. 18세기 사바리 부자가 본 유럽

옮긴이의 말

저자 소개2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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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o Maria Cipolla,카를로 M. 치폴라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州)의 작은 도시 파비아(Pavia)에서 태어났다. 1944년 파비아 대학교에서 프랑코 보를란디(Franco Borlandi)의 지도 아래 ‘롬바르디아 주 남부의 농업사’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이탈리아의 여러 대학교에서 경제사를 가르치다가, 1957년 버클리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가서 2년 뒤인 1959년에 정교수로 임용되어 1980년대 초까지 재직했다. 그 후 1991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이탈리아의 피에졸레에 위치한 유럽 대학교(European University Institute)와 피사 고등사범학교에서 가르쳤다. 영국 왕립사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 주(州)의 작은 도시 파비아(Pavia)에서 태어났다. 1944년 파비아 대학교에서 프랑코 보를란디(Franco Borlandi)의 지도 아래 ‘롬바르디아 주 남부의 농업사’에 관한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이탈리아의 여러 대학교에서 경제사를 가르치다가, 1957년 버클리 대학교에 교환교수로 가서 2년 뒤인 1959년에 정교수로 임용되어 1980년대 초까지 재직했다. 그 후 1991년 정년 퇴임할 때까지 이탈리아의 피에졸레에 위치한 유럽 대학교(European University Institute)와 피사 고등사범학교에서 가르쳤다.
영국 왕립사학회, 영국 학사원, 이탈리아 린체이 국립학회, 미국 과학협회, 미국 철학회, “다티니” 국제경제사학회 등 권위 있는 수많은 학회의 위원을 역임했으며, 스위스의 취리히 연방공과대학교(ETH)와 파비아 대학교 의과대의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탈리아 교육부가 주는 금메달(1972)을 비롯해 에우제니오 발잔 재단(Eugenio Balzan Foundation)에서 수여하는 발잔 상(1995)을 경제사학 분야에서 수상했다. 평생 왕성한 저술 활동을 했으나 말년에 파킨슨병으로 고생하다 2000년 9월에 세상을 떠났다. 대표적 저서로 『리라의 대모험』(Le avventure della lira, 1958), 『크리스토파노와 흑사병』(Cristofano and the Plague, 1973), 『산업혁명 이전의 유럽 경제사』(Storia economica dell'Europa pre-industriale, 1974), 『피오리노와 콰트리노: 14세기 피렌체의 통화 정책』(Il fiorino e ilquattrino: la politicamonetaria a Firenze nel 1300, 1982) ,『시계와 문명』등이 있다.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의 다른 상품

金偉善

1973년 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뒤 공부를 좀 더 해 보고 교편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서강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 들어가 석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2000년 이탈리아 정부 초청 장학금을 받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피렌체 대학교에서 저명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사가 리카르도 푸비니(Riccardo Fubini) 교수와 함께 논문을 준비해 2008년에 다시 학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페라라 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사학자이자 문헌학자인 파올로 트로바토(Paolo Trovato) 교수와 함께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중이
1973년 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한국교원대학교에서 역사교육을 전공한 뒤 공부를 좀 더 해 보고 교편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서강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에 들어가 석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이탈리아 역사에 관심이 많았기에 2000년 이탈리아 정부 초청 장학금을 받고 이탈리아로 건너갔다. 피렌체 대학교에서 저명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사가 리카르도 푸비니(Riccardo Fubini) 교수와 함께 논문을 준비해 2008년에 다시 학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페라라 대학교에서 이탈리아어사학자이자 문헌학자인 파올로 트로바토(Paolo Trovato) 교수와 함께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중이다. 박사학위 논문은 15세기 후반 피렌체 공화국의 한 서적상인이 남긴 필사본을 발굴하여 이를 문헌학적으로 고증하고 역사적, 정치적 관점에서 분석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5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152쪽 | 292g | 153*224*20mm
ISBN13
9788964450673

출판사 리뷰

사회 계층 피라미드의 가장 밑자리를 메우는 천민 ‘무법자’에서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지식인 기업가’로
중세 유럽 상인들의 신분 상승에 관한 세 개의 일화


이탈리아 경제사가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Carlo Maria Cipolla, 1922~2000)가 말년에 쓴 미시사적 저작 『중세 유럽의 상인들: 무법자에서 지식인으로』(1994)가 도서출판 길의 역사도서관·교양 시리즈의 열여덟 번째 책으로 소개된다. 이 책은 “당대 가장 뛰어난 경제사가”였고 1995년 “동료 학자들에게 혁신 정신의 귀감이 된 역사학자”로서, 매년 인문과학, 자연과학, 의학 분야의 발전에 기여한 학자를 선정하여 노벨 상에 버금갈 정도의 상금을 수여하는 발잔 상을 수상한 치폴라의 역사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저서이다.

경제사가이자 위생사 연구의 개척자, 또한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시사가
- 역사 연구의 원천인 사료 발굴에 천착했던 전방위 역사가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치폴라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치폴라는 이탈리아 경제사학계 2세대에 속하는 학자로서 화폐, 인구, 위생과 보건, 농업과 산업화의 관계, 그리고 기술과 경제 발전의 관계 등 끊임없이 새로운 연구 분야를 개척하며 말년에 이르기까지 왕성한 저술 활동을 펼쳐 당대의 역사학계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국내에 소개된 그의 저서로는 근대 초 유럽의 발전과 팽창을 기술 진보의 측면에서 설명한 『대포, 범선, 제국』과 인간의 본성을 풍자하며 분석한 『즐겁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가 있다.)
역사가 치폴라가 이렇듯 폭넓은 연구 주제를 섭렵하고 엄청난 양의 저술을 써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문서보관소가 있었다. 문서보관소에서 직접 사료를 찾는 일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소모가 많은 일이다. 많은 역사가들이 젊을 때 열심히 자료를 찾아 놓은 후 학자로서 안정적인 자리를 잡으면 문서보관소를 잘 찾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치폴라는 체력이 닿는 한 말년까지도 항상 새로운 자료를 찾아다녔다. 오랜 세월 빛을 보지 못하던 사료가 그의 손에 들어가게 되면 날카로운 문제의식에 의해 분석되고 역사적, 사회적 의미를 얻었다. 그가 화폐 전문사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것도 박사 논문을 보완하고자 문서보관소를 뒤지다가 우연히 손에 쥐게 된 14~16세기 금화 두카토와 리라의 환율 변동 통계표 덕분이었다. 또 다른 예로 1963년 그가 발굴한 사료는 위생청에서 작성한 문서라는 이유로, 역사가는 의학자가 다루어야 할 문서라고 생각했고, 의학자는 단순히 행정적인 문서라 치부하여 오랫동안 어떤 연구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그렇게 오랫동안 천덕꾸러기 대접밖에 받지 못하던 사료를 치폴라가 사회, 경제사적 맥락에서 연구했고, 이를 계기로 그는 위생사 연구의 개척자가 되었다. 발잔 상 수상 당시 받았던 “동료 학자들에게 혁신 정신의 귀감이 된 역사학자”라는 평가는 바로 이러한 열정에 관한 상찬이었을 것이다.

‘미시사’라는 말이 학계에 유행하기 전에 이미 미시사를 썼던 학자
- 사건 하나, 인물 한 명을 현미경 삼아 분석해 그려 낸 거시적 조망


“단행본 역사서의 대가”(the master of the short historical monograph)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치폴라는 단편이지만 날카로운 분석력이 돋보이는 소책자를 많이 집필했다.(책 28쪽에 ‘저서와 논문 목록’을 따로 정리하여 수록했다.) 논제 하나를 일단 정하면 그 논제에 대해서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대신 그 논제와 관련된 숨은 이야기나 한 개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례 연구(case-study)의 결과를 주로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 대부분이 200쪽 안팎밖에 되지 않으며, 그가 쓴 수많은 논문도 스무 쪽을 넘어가는 것이 드물다. 그렇다고 해서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실제로는 간단한 이론이나 개념을 글이나 말로써 간단명료하게 설명하기 힘들 때가 있다. 그런 때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면 쉽게 다가오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와 같은 맥락에서 치폴라는 실제 일어났지만 세상 사람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 주변을 감싸는 커다란 주제를 얘기하고자 했다. 이런 이유로 학계에서 그는 미시사가로 통했다. 하지만 치폴라는 ‘미시사’라는 말이 학계에 유행하기 전에 이미 미시사를 썼던 학자다. 그가 미시사가로 거론되는 이유는 한 사람 혹은 한 가문, 한 사건을 통해 당시의 전반적인 경제·정치 상황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묘사해 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종합적이고 거시적인 맥락의 논제를 얘기하고자 항상 그는 한 사건이나 한 인물 혹은 소재 하나를 선택하여 이를 현미경으로 삼고 그 주변에 묻어나는 여러 요소를 세밀하게 분석하는 ‘미시적 방법’을 택했다. 주로 연구한 지방은 토스카나 주이지만 그는 토스카나 주의 중세 경제를 얘기하면서 동시에 중세 유럽의 경제를 얘기한다.
실제로, 초기 미시사 연구로 손꼽히는 에마뉘엘 르 루와 라뒤리의 『몽타이유』(1975),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1976)보다 몇 년 더 앞서는 1973년에 치폴라는 영어판으로 『크리스토파노와 흑사병』이라는 연구서를 출간했다. 이 책 『중세 유럽의 상인들: 무법자에서 지식인으로』도 그가 말년에 저술한 미시사적 저서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이 책은 적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세 개나 되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치폴라의 다른 어떤 저서보다도 미시사적 성격을 강하게 지닌다.

중세 지중해 무역을 발달시키고 근대 국가의 초석을 놓았던 계층의 탄생사
- 14세기 피렌체 상인, 17세기 후반 제노바 상인 그리고 18세기 프랑스 상인


이 책 『중세 유럽의 상인들』은 경제사가, 특히 화폐 전문사가로서의 치폴라와 미시사가로서의 치폴라의 진면목을 동시에 목격할 수 있는 저서이다. 원제는 Tre storie extra vaganti인데, 직역하면 ‘평범하지 않게 떠도는 세 가지 이야기’이다. 하지만 한국 독자에게는 원제가 가진 느낌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것 같아 ‘중세 유럽의 상인들: 무법자에서 지식인으로’라는 제목으로 번역했다.
이 책에서 치폴라는 서문도 따로 쓰지 않고 생뚱맞게 이야기 세 개만 들려주는데, 이 이야기들의 주된 소재이자 테마는 바로 ‘상인’이다. 궁색하고 원시적인 상태였던 8, 9세기 유럽의 상인은 ‘무법자’(homines duri)였다. 그렇게 불린 이유는 당시 상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자만이 “가톨릭 교회에서 퍼붓는 온갖 비난을 감히 무시하고 살았으며, 산길에 도사리던 수많은 위험과 죽을 고비에 맞설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세월이 흘러 14세기가 되었다. 상인의 이미지는 어떻게 변했을까.
첫 번째 이야기. 14세기 전반 통화 위기로 파산 일로에 놓인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자 피렌체 출신 상인 가문인 바르디 집안 사람 몇몇이 화폐를 위조하려 한다. 화폐 위조범이라면 무조건 화형을 당하던 시절이었음에도 중죄를 지은 이들은 살아남았다. 도리어 이들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인 몇몇 ‘피라미’들이 법의 처단을 받았다. “이들은 법을 조금도 괘념치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무법자’였다.
두 번째 이야기. 17세기 후반 유럽과 터키에서 프랑스 은화 루이지노가 유행하자 제노바 상인들은 이 은화를 위조해 국제 시장에 유통시킨다. 이들은 루이지노를 화폐가 아니라 장신구로 생각했던 터키인의 순진한 욕망을 이용해 먹었다. 상인은 여전히 사기를 치고 못된 짓이나 저지르는 ‘무법자’의 이미지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세 번째 이야기. 17세기 말, 사바리 가문은 원래 대대로 상인 가문이었으나 루이 13세 이후 상인이 합법적으로 신분 상승 할 길이 열리자 이를 이용해 귀족으로 둔갑했다. 그리고 이 사바리 부자(父子)는 출간되자마자 열풍을 일으킨 세기의 대작을 저술하기에 이른다. 이제 상인은 좀 더 품위 있고 격식을 갖춘 ‘지식인이자 기업가’로서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일꾼이다.

치폴라는 왜 ‘상인’의 지위 변천사를 얘기하고자 했을까? 중세 초까지만 해도 상인은 하층 계급에 속했다. 그러나 10세기 중반 이후 유럽 대륙의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와 상업이 발달하기 시작했다. 도시 안에는 부유한 상인, 환전업자, 약사, 공증인, 변호사, 판사와 같은 사람들이 살았고, 이들이 도시의 정치, 사회, 문화를 이끌었다. 이제 상인은 더 이상 사회 계층 피라미드에서 가장 밑자리를 메우는 천민이 아니었다. 조금씩 신분 상승을 하게 되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은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자유로웠다. 이 도시민들이 바로 중세 지중해 무역을 발달시킨 주인공이 되었고, 근대 국가의 초석을 놓은 시민 계층을 형성했다. -김위선,「옮긴이 해제」중에서

카를로 마리아 치폴라가 역설한 역사가의 임무
- 역사가는 역사학에 경제학과 심리학, 사회학까지 절충해야만 한다


경제사가로서 치폴라는 경제학과 역사학을 절충할 것을 강조했다. 그 이유는 대부분의 경제사가가 경제학을 제대로 공부하지 않고 경제사에 몸담는 경우가 흔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이 평생 존경해 마지않았던 앙리 피렌과 페르낭 브로델조차 경제학에 취약했다는 점 때문에 비판했다. 경제학을 공부하지 않은 경제사학자는 말 그대로 “취급도 하지 않았다”고 치폴라의 동료 학자 루치아노 카판냐는 회고한다. 물론, 역으로 과거의 경제 현상을 경제 이론으로만 설명하는 일에도 비판적이었다. “경제사라는 학문은 철저하게 간학문적(間學問的, interdisciplinary) 성격을 지닌다. 다시 말해, 경제사학은 인간과 관련된 중요한 두 분야의 학문, 역사학과 경제학을 접목시킨 과목이다. 오늘날 역사학은 철저하게 인문학적인 성격을 지니지만 경제학은 이론 위주의 과목으로 변해 버려서 문제가 된다”라고 쓴 『경제사 입문서』의 서문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경제학과 역사학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인식했지만 이 두 학문을 절충하는 일이 바로 경제사가의 임무라고 인식했다.
또한 치폴라가 생각했던 역사가의 임무란, “거대하고 위대한 프레스코화 한 점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살아 숨 쉬던 인간의 삶을 사료에 근거해 재구축하는 것이다.” 그는 역사가를 연극 연출가나 영화 감독에 비유했으며 역사가가 써내는 책을 연극에 비유했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만 보여주는 보통 연극 연출가와는 달리 그는 무대 뒤에서 일어나는 일도 관객에게 보여 주고자 했다. 정리되고 이론화된 부분만 관객에게 보여 줄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어떻게 그리고 어떤 맥락에서 발생했는지도 보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역사를 이해하고 역사책을 쓰는 데에 인간과 관련된 모든 학문, 특히 심리학과 사회학을 접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역사에서 ‘인간’의 중요성을 알고 이해한 역사가
- 냉소적으로 빈정거리기도 하면서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다


치폴라는 역사 연구라는 과학적인 작업을 통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리 인간이 사는 세상에 통용되는 유익한 법칙을 찾아내고자 했다. 다른 어떤 자원보다 ‘인적 자원’이 바로 역사의 주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인간 사회에 살아 숨 쉬는 괴이한 법칙, 그리고 인간의 변하지 않는 천성을 치폴라는 자주 자신의 저서에서 언급한다. 그럴 때마다 치폴라는 빈정거리거나 냉소적이다. 하지만 너무 얄밉지 않게 비꼬는 어투 덕분에 그의 책은 읽는 재미가 있다. 예를 들면, 이 책 『중세 유럽의 상인들』에서도 인간의 외고집 특성을 다음과 같이 풍자적으로 지적한다. “인간은 직접 경험을 하고 나서도 바뀌는 것이 하나 없으며 다른 사람들이 겪는 것을 보고서도 전혀 배우질 못한다. 그래서 본디 타고난 고집대로 행동해 똑같은 실수와 똑같은 잘못을 계속해서 저질러 인간 사회의 발전에는 눈곱만큼도 도움이 안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대개의 역사서들과는 달리 이렇게 종종 빈정거리는 탓에 치폴라의 책은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학자의 권위적인 언어로 책을 쓰기보다는 연극 연출가처럼 관객을 의식하고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어 썼다. 그렇기 때문에 치폴라의 책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고, 그런 그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저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책이다.

추천평

치폴라는 ‘미시사’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이미 미시사적 저서를 내놓았다.
피터 버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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