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역사의 매력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위해 양장
2013.02.25.
베스트
역사학 이론/비평 top20 10주
가격
25,000
10 22,500
YES포인트?
1,2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신청가능

역사도서관

책소개

목차

옮긴이의 말

제1부 역사의 이론과 방법
근대과학으로서의 여가 발전에 관한 네 개의 장
1. 18세기 이후의 역사학의 진전
2. 역사 인식의 정신적인 과정
3. 역사의 이념
4. 역사학, 그 현대적 위상과 삶을 위한 가치

역사 개념의 정의
19세기 중엽 이후 역사의 형태 변화

제2부 문화와 문화사란 무엇이가
역사 개념의 미적 요소
르네상스의 문제
문화사의 과제

[해제] 하위징아와 문화 및 문화사의 길
출전
찾아보기

저자 소개2

요한 하위징아

관심작가 알림신청
 

Johan Huizinga

하위징아는 1872년 12월 17일 네덜란드의 북부 지방 도시인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무렵 흐로닝언에 들어온 카니발 행렬을 보고서 그 광경에 매료되어 평생을 의례, 축제, 놀이 연구에 주력하였다. 부친은 흐로닝언 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다. 흐로닝언 대학 네덜란드 어문학과에 입학한 호이징하는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히브리 어, 아랍 어, 산스크리스트 어의 연구에 심취하였고 점차 비교언어학으로 기울어 라이프치히에 유학하기도 하였다. 『호모 루덴스』에도 나타나듯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조예는 그가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그는 1897년
하위징아는 1872년 12월 17일 네덜란드의 북부 지방 도시인 흐로닝언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무렵 흐로닝언에 들어온 카니발 행렬을 보고서 그 광경에 매료되어 평생을 의례, 축제, 놀이 연구에 주력하였다. 부친은 흐로닝언 대학의 생리학 교수였다. 흐로닝언 대학 네덜란드 어문학과에 입학한 호이징하는 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여, 히브리 어, 아랍 어, 산스크리스트 어의 연구에 심취하였고 점차 비교언어학으로 기울어 라이프치히에 유학하기도 하였다. 『호모 루덴스』에도 나타나듯 문학과 예술에 대한 탁월한 안목과 조예는 그가 다양한 분야에 깊은 관심을 가졌음을 보여 준다. 그는 1897년에 학위를 받은 뒤에는 생계를 위해 하를렘 고등학교에서 역사 교사로 부임하였다. 그 뒤 흐로닝언 대학에서 고대 인도 문화사와 종교사 연구로 교수 자격을 취득하였고, 점차 연구 중심을 역사학에서 서구 중세사에 두게 되었다. 1905년에는 은사이며 역사학자인 P. J. 블로크의 도움으로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 교수가 되었다. 1915년에는 레이던 대학의 일반 역사학 교수로 자리를 옮겨 1940년 그 대학이 독일군의 점령으로 문을 닫을 때까지 그곳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는 히틀러가 정권을 잡자 나치를 비판함으로써 수용소에 감금되었다가 1942년 석방되어 가족의 면허조차 금지된 데스테흐의 작은 시골집에서 1945년 2월 1일에 72세로 세상을 떠났다. 저서로는 『하를렘의 기원들』(1905), 『흐로닝언 대학의 역사』(1914), 『중세의 가을』(1919), 『에라스뮈스와 종교 개혁의 시대』(1924), 『얀 베트의 생애와 저작』(1927), 『호모 루덴스』(1938),『에라스무스』(1924),『문화사로의 길』(1930),『역사의 매력』(1942),『에라스뮈스』, 자서전인 『역사로의 나의 길』(1947) 등이 있다.

요한 하위징아의 다른 상품

李光周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충남대, 전주대, 인제대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유럽 지성사와 대학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문화사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유럽 교양계층과 책의 문화사에 대한 에세이로 정평이 나 있다. 저서로 『역사 속에 선 인간: 독일근대사론』(문학과지성사, 1979), 『정념으로서의 역사』(문학과지성사, 1987), 『지식인과 권력: 근대 독일 지성사 연구』(문학과지성사, 1992), 『유럽사회: 풍속산책』(까치, 1992), 『대학사』(민음사, 1997),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한길사, 2001),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했으며, 충남대, 전주대, 인제대 사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유럽 지성사와 대학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문화사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저술활동을 펼쳐왔다. 특히 유럽 교양계층과 책의 문화사에 대한 에세이로 정평이 나 있다.
저서로 『역사 속에 선 인간: 독일근대사론』(문학과지성사, 1979), 『정념으로서의 역사』(문학과지성사, 1987), 『지식인과 권력: 근대 독일 지성사 연구』(문학과지성사, 1992), 『유럽사회: 풍속산책』(까치, 1992), 『대학사』(민음사, 1997),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권』(한길사, 2001),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으로 가자』(다른세상, 2001), 『동과 서의 차 이야기』(한길사, 2002), 『윌리엄 모리스, 세상의 모든 것을 디자인하다』(한길아트, 2004), 『내 젊은 날의 마에스트로: 편력』(한길사, 2005), 『유럽 카페 산책』(열대림, 2005), 『아름다운 책 이야기』(한길아트, 2007), 『교양의 탄생: 유럽을 만든 인문정신』(한길사, 2009), 『아름다움과의 만남: 나의 미술기행』(편저, 열화당, 2011), 『담론의 탄생: 유럽의 살롱과 클럽과 카페 그 자유로운 풍경』(한길사, 2015), 『나의 유럽 나의 편력: 젊은 날 내 영혼의 거장들』(한길사, 2015)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지성의 몰락: 독일 대학의 정치사회사』(H. P. 블로이엘, 한길사, 1980), 『국가권력의 이념사』(프리드리히 마이네케, 한길사, 2010), 『역사의 매력: 새로운 문화와 역사를 위해』(요한 하위징아, 도서출판 길, 2013) 등이 있다. 현재 인제대 명예교수로 있다

이광주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13년 02월 25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600g | 156*230*30mm
ISBN13
9788964450635

출판사 리뷰

문화사의 대가, 요한 하위징아 - 그는 왜 자신만의 독특한 역사론을 펼쳤을까
우리에게 『중세의 가을』과 『호모 루덴스』로 널리 알려진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는 야코프 부르크하르트와 함께 사학사상(史學史上) '문화사의 대가'로 손꼽히는 역사학자이다. 하위징아와 부르크하르트는 그들의 저작에서 드러나듯이 주제의 선택이나 서술 방법, 역사, 문화관에서도 유사점이 많다. 그런데 부르크하르트가 역사나 문화에 관한 이론적 규명이나 사학사적 논의를 거의 외면한 반면, 하위징아는 강연이나 학술지를 통해 적극적으로 역사와 문화, 역사학과 문화사를 둘러싼 자신의 견해와 입장을 밝혔다. 이번 책에서도 시사하듯이 역사와 문화를 둘러싼 이론적 규명은 다른 역사가들(이론사학의 연구자를 제외하고)의 경우와 달리, 하위징아에게 하나의 소명(召命)과도 같은 과제로 여겨졌다.
왜 그랬을까. 이 책에 실린 글들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지만, 하위징아는 특정한 용어나 개념으로 시대구분을 일삼고 인간의 삶처럼 복잡 미묘하고 불확실한 역사의 세계를 교과서적으로 정의하고 재단하는 어리석음을 경고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던 것이다.

역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직관과 상상력에 따라서 이미지를 환기하는 미적 방법이 절실히 요구된다
하위징아는 1941년에 쓴 「19세기 중엽 이후 역사의 형태 변화」(본문 117~35쪽)라는 글에서 전통적 역사학의 종말과 새로운 역사학의 도래를 예고했다. 그 배경으로 그는 정치의 이데올로기적 타락과 특히 날로 증대되는 경제의 우위를 지적했다. 그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은 그에게 역사 세계에서의 '형태의 상실'로 나타났다.
하위징아에게 역사는 무엇보다도 '형태'(form)로서, 바로 보편적 정신 창조의 표출이며 상징인 '형태'로 부각되고 인식되었다. 그가 미적 요소를 역사의 본질로 중요시하고 역사를 이미지로, 서사시적ㆍ극적 이야기로 관조한 입장도 형태로서의 역사의 본질과 깊이 관련된다. 반 에이크의 그림에 감동하여 『중세의 가을』을 묘사하게 된 사실도 그로부터 연유되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하위징아에 따르면 고대나 중세와 달리 근대 이후의 역사는 형태 상실로 특징지어진다. 그 예로서 그는 프랑스 혁명과 달리 소비에트 혁명에서의 극적인 요소의 결핍을 지적한다. 특히 형태 상실 내지 변위(變位)는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정치적 전환기에는 개별적 요소가, 즉 뛰어난 인물이 역사의 한복판에 극적으로 등장하는 데 비해 경제적 요인이 우세한 시대에는 집단적 요소가, 즉 대중이 역사의 무대에서 큰 역할을 한다. 그 결과 우리는 "극중 인물의 개개인의 형태"를 볼 수 없게 되고 "집단의식과 리얼리즘"에 파묻힌다. 하위징아에게서 아름다움과 이미지, 이야기의 상실은 바로 역사??문화의 일대 위기인 것이다. 경제적 요인이 우세한 시대, 즉 역사적 세계의 수량화는 역사를 특정한 개념, 일정한 이데올로기로써 개괄하고 재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로부터 이야기와 그림, 상상력을 빼앗는 행위라고 우려했던 것이다.

구체적 '인간'이 도외시된 정치사, 경제사 위주의 역사서술의 위험성 경고
하지만 이러한 하위징아의 역사관에 대해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사실 하위징아는 몇몇 뛰어난 인물이 주도하는 역사를 높이 평가했다(그렇다고 영웅주의 사관을 펼친 것은 아니다). 더불어 그는 "역사학은 모든 교양인이 공유하는 역사적 문화에 근거한다"라고 말한 것처럼, 문화란 바로 교양인의 문화를 뜻했다. 이때 "교양"이란 엘리트 계층이 전통적으로 누린 고대 그리스??로마풍의 후마니타스에 근거한 고전적 교양-문화였다. 즉 그에게는 프랑스 혁명 이후 '인민주권'에 눈을 뜬 '대중'의 역사적 등장을 도외시한 것일까. 아마도 이 부분에서 우리는 그의 역사관을 비판적으로 독해해야 할 것 같다. 사실 엘리트와 대중의 구별이 확연했던 시대가 한참 지난 요즈음 '교양'은 더 이상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 아님은 자명한 사실이다. 국민 대다수가 속한 중산층까지도 교양을 추구하게 된 오늘날을 보면 이런 점은 더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하위징아의 문화사론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하는 지점은 분명히 있다. 그것은 바로 하위징아가 전체의 역사로서의 문화와 문화사를 강조하면서도 역사에서 '정치사의 우위'를 결코 이론(異論)이 없음을 다짐했다는 데 있다. 즉 그가 역사 내지 역사서술에서 두려워한 것은 오늘날의 정치 이데올로기, 이데올로기로서의 정치의 범람과 횡포였다.

리뷰/한줄평1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10.0 한줄평 총점

클린봇이 부적절한 글을 감지 중입니다.

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