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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힘
조각의 범주 조각과 조소 입체와 설치 경계를 넘는 조각 조각의 조형 요소 조각의 색 조각에서의 선 문명의 기록으로서 조각 재료 인간 정신의 그릇, 뼈조각 시간의 벽을 뛰어넘은 기록자, 돌조각 외유내강의 아름다움, 나무조각 흙과 바람의 솜씨, 소조 금속조 기계적 편리함과 건축적 견고함, 시멘트제 새로운 물성의 새로운 조각, 합성수지와 고무 일상적인 물질의 즐거움, 종이와 섬유 가루가 고체로, 석고 눈앞의 모든 것, 오브제에서 분비물까지 새로운 재료로서의 자연 공간을 형태화하는 소리 조각가와 장인 선사시대와 고대의 조각가 장인과 조각가 한국 근현대사의 정치와 조각 식민지 전쟁 동원 조각 장군 동상 부록 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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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형인 자유의 여신상은 평화와 자유민주주의의 상징이 되기 쉬운 반면, 강인하고도 예리한 눈매와 특유의 수염을 지닌 레닌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닌 존재로 부각되어 모성과는 거리가 먼 남성적인 호전성으로 인지되는 면이 있다. 결국 서구―자본주의라는 세계의 상징은 쌍꺼풀진 눈으로 지혜로운 아테나의 얼굴을 하고 뉴욕을 내려다보는 자유의 여신상, 동구―사회주의의 그것은 남성적인 수염에 예리한 눈빛을 지닌 레닌의 거대한 동상이었다.
--- p.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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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은 여성적인 물건으로 인식된다. 요즘은 기성복을 사 입거나 특별한 기능을 가진 이들에게서 옷을 맞추어 입지만 천으로 만들어진 의상은 여성이 생산해야 하는 산업물 또는 가족을 위한 필연적 노동의 영역이었다. 바느질을 하지 않을지라도 대다수의 여성이 거의 매일 빨래를 해야 하는 현실은 천이라는 재료에서 여성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사회적 생산 주체로서의 노동력이 아니라 그저 일상생활 속에 있는 노동려긍로 여성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천―옷에는 있는 것이다. 재료가 가장 극명히 전달하는 조각의 내용은, 여타의 재료가 도구를 이용하여 깎거나 부수어 내는 남성적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 p.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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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적인 여인의 원형을 찾던 피그말리온은 자신의 작업실에 마련해둔 거대한 우윳빛 상아로 마음속에 그리는 처녀상을 만든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그 자태에 매혹된 피그말리온은 어느덧 사랑에 빠져들었다. 밖에 나갈 때도 처녀 조각상에 인사하고 집에 들어서면서도 부드럽게 처녀상을 안아보는 피그말리온의 행동은 우습기 짝이 없지만, 사랑의 여신은 무한한 자애심을 지니고 있었다. 비너스 여신이 조각과 사랑에 빠진 피그말리온을 가엾게 여긴 나머지 상아조각에 자신의 입김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었다. 생명을 얻은 상아조각은 처녀가 되어 피그말리온의 여인이 되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격언을 생산하기도 하고,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대상을 조정하는 심리적 상태인 피그말리온 효과의 기원이 되기도 하는 이 신화는 예술과 작품의 관계를 조명하는 데도 유용하다.
--- p.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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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어봐, 조각의 공간으로…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가면 벤치에 앉아 365일, 24시간 내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내려도, 삼복더위에 땀을 뻘뻘 흘리거나, 강추위가 옷매무새를 고쳐 매게 하더라도 꿈쩍하지 않고 읽던 페이지 읽고, 읽고, 또 읽는다. 간혹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이들이, 관광 온 외국인이 그의 옆에 살며시 앉아 함께 사진을 찍는다. 정지용 시인의 「별」을 읽고 있는 동상은 바쁘게 지나는 도시인들의 삶에 잠시 쉼의 공간을 제공한다. 우리는 동상을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서울의 중심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동상이 아니라도, 아파트 입구나 공원에 가면 여러 형태의 동상들이 묵묵히 서 있다. 이미 조각은 우리의 생활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조각은 회화나 다른 미술장르하고 다르게 공간을 점유하고 있다. 멀뚱히 바라보는 예술 차원이 아닌 감상자와 작품이 하나가 되는 차원인 것이다. 광화문에 있는 ‘시 읽는 남자’ 같은 것만 보더라도 함께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읽다보면 감상자 또한 ‘행복한 왕자’처럼 마음의 풍요로움을 느끼게 된다. 사면이 막힌 공간에 추상의 형태를 한 고급 예술이 아닌, 놀이처럼, 만지며 느끼는 행위의 예술로 조각의 형태가 변하고 있다. 이제 조각은 어렵거나, 위엄이나 위용을 떨며 권위적으로 서 있는 상징물이 아니다. 복잡한 머리를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인간의 생활 속으로 들어왔다. 복잡한 미술사학을 걷어내고,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정지용의 「별」을 음미하자. 조각을 뛰어넘는 조각 조각은 인류가 시작되면서부터 있어왔다. 그 역사는 인류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는 조각을 통해 문자 대신 기록을 해왔고, 시대의 상황이나 재앙, 기념 등을 상징물로 만들어왔다. 현대에 이르러 조각의 재료가 다양화 되면서 조각의 범주는 점점 넓어지고 있다. 버려지는 건축물에서부터 집에서 사용하지 않는 천 조각까지… 게다가 존 게이지는 소리를 조각화 했다. 음악 연주회에서 연주자는 아무것도 연주하지 않았다. 대신 연주자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의 숨소리, 미세한 움직임, 잦은 기침소리가 그 공간을 꽉 메우고 있었다. 그는 아무 음악도 연주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소리가 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조각의 범주가 넓어지면서 다양한 형태의 조각이 나오고 있다. 이처럼 조각은 인간의 삶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 한국에서의 조각 우리는 조각을 바라보면서 무의식적으로 세뇌를 당한다. 일제강점기 때에는 전쟁 동원을 위한 동상을 세웠으며, 한국전쟁 때에 처음으로 이순신 장군 동상이 건립되었다. 해방 후 정부는 국가주도의 국민국가를 형성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국가는 국민을 부양할 능력은 없었지만 나라에 대한 전통적인 충성심과 반외세에 대항하는 정신을 지니고 있을뿐더러 훈련이 된 국민이 있었다. 이순신 장군 동상은 그러한 정신의 표상이었던 것이다. 또한 1968년 광화문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은 박정희 대통령이 기금을 내서 조성한 것이다. 이는 군인의 충성심과 지도자 이미지를 간접적으로 투사하기 위함이다. 이처럼 조각은 단순한 예술의 차원을 넘어 정치, 권력의 상징으로 이어져왔다. 이 책은 조각의 가장 전통적인 의미부터 우리가 그동안 조각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확장된 의미의 조각 작품까지 광범위하게 다룸으로써 공간예술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돕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