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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번제와 종교
권력과 종교의 대립 근세 후기의 배불론 2. 발단 국체 신학의 등장 신도주의의 고양 3. 폐불 훼석의 전개 4. 신도 국교주의의 전개 제사 체계의 성립 국가신의 지방적 전개 5. 종교 생활의 개편 '분할'의 강제 민속 신앙의 억압 6. 대교원체제에서 '신앙의 자유'로 대.중교원과 신불 공동 포교 '신앙의 자유'론의 특징 참고문헌 약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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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기독교의 침투를 막는 것은 에도 시대 말기의 국체 사상의 가장 중요한 계기이기도 하였는데, 우라카미 기독교의 처치를 둘러싸고 기독교 대책이 매우 위급한 정치적 과제가 된 점이 1868~69년경 정세의 특징이 있었다.
우라카미의 숨은 기독교가 막 준공한 나가사키 오우라에 있는 천주당을 찾아가 선교사 프타장에게 자신들이 기독교 신앙을 계속 지켜 온 자임을 전한 것은 1865년 2월이었다. 이어서 우라카미, 고토 등의 기독교들이 천주당을 찾아갔고, 선교사들이 비밀리에 돌아다니며 포교하게 되었다. 나가사키 봉행은 처음에 대외 관계의 분규를 두려워하여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않았으나, 1867년 6월에 85명의 기독교도를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었다. 그들은 9월에는 신앙을 포기하여 일단 마을로 돌아갈 수 있었는데 금세 다시 그 취소를 장옥에게 신청하였다. ---pp. 123~1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