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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옛 것의 부활 속에 핀 새 생명 - 아르누보의 탄생
2. 데카당스 시대? - 벨기에, 프랑스 그리고 독일 3. 둥근 것을 각지게 - 빈과 글래스고 4. 국가들의 꿈 - 핀란드, 러시아 그리고 카탈루냐 5. 신세계의 신미술 - 아메리카 대륙 6. 불 같은 열정 - 고객과 소비자 7. 미술과 산업 - 구공예와 신기술 8. 반복되는 유혹 - 20세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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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아루누보는 특히 여성의 형태를 많이 이용했는데, 그중 두 위대한 여성상은 자주 암시되는 의지할 곳 없는 부랑자와 같은 이미지와는 매우 달랐다. 여배우 베르나르라는 이름은 체코의 그래픽 미술가인 알폰스 무하(Alphonse Mucha, 1860~1939)가 제작한 일련의 연극 포스터를 통하여 파리 아르누보의 이국적이고 무절제한 성과 동일시되었다. 「지스몽다」(Gismonda)와 같은 베르나르의 연극 포스터에서 무하는 이 여배우를 대담하게 양식화된 모습으로 묘사했다. 베르나르의 물결치는 듯한 의상은, 포스터라는 이차원적 인쇄 형태에 적합한 무하의 복잡하고 정교한 선적인 양식과 잘 어울렸다. 1890년대 중반의 파리 대중에게 무하의 이미지는 독창적이고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졌고, 그가 묘사한 베르나르의 모습은 이상화된 세기말 여성을 대중화시키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몽환적 특성에 맞추기 위해 베르나르 자신의 모습에도 약간의 미적 수정이 가해졌다. 「라 사마리텐」(La Samaritaine)을 위한 포스터에서 무하느 베르나르의 물결치는 머리타래를 중심적인 장식 모티프로 사용해서 구불구불한 선과 곡선에 몰두할 수 있었다. 만일 그가 그녀의 단단히 맨 짙은 곱슬머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면 많은 어려움에 봉착했을 것이다. 또한 무하의 많은 포스터에는 베르나르의 몸이 길게 늘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사실, 그는 세기말적 이상을 충족시키기 위해 실제 모델을 보고 그린 드로잉에 베르나르의 머리를 덧붙였다. 그러나 베르나르가 무하의 의견을 수동적으로 따른 것만은 아니었다. 그가 1894년에 그녀를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여배우였다. 무하의 첫번째 포스터 「지스몽다」를 열광적으로 마음에 들어한 것도 베르나르였다. 베르나르는 무하가 느끼는 의심이나 애매모호함을 떨쳐버릴 수 있도록 도왔고, 그들의 협력관계에서 그녀는 항상 거부권을 갖고 있었다. 베르나를는 자기 선전을 위해 무하의 재능을 이용한 성공적인 직업여성이었다. --- p.9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