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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만수산 무량사 - 술 권하는 날들 천호산 개태사 - 미륵의 꿈 상왕산 개심사 - 솔숲에 마음을 씻고 덕숭산 수덕사 - 보름달은 떠오르고 금산 보리암 - 관음의 곁에 서서 두륜산 대흥사 - 남도의 길 끝에 서서 청량산 청량사 - 사랑이 뭐길래 천등산 봉정사 - 곱게 늙어가기 삼각산 도선사 - 이 길의 끝을 잡고 금오산 향일암 - 파도에 뜬 한 송이 꽃 마니산 정수사 - 작은 것이 아름답다 정족산 전등사 - 처마 밑의 벌거벗은 여인 서운산 청룡사 - 첫사랑의 떨림으로 조계산 선암사 - 뒷간에 앉아 매화에 취하다 연암산 천장암 - 콧구멍 없는 소를 끌고 도봉산 망월사 - 도봉산정에 달은 뜨고 운악산 봉선사 - 옛사람의 그림자 능가산 내소사 - 흰나비가 춤추던 날 백암산 백양사 - 어둠 속의 길 찾기 금정산 범어사 - 산중의 법고 소리 오대산 월정사 - 사람이 있어 아름다운 길 영축산 통도사 - 학은 늙은 소나무에 둥지를 틀고 가야산 해인사 - 물은 물, 산은 산 조계산 송광사 - 바다 밑 제비집에서 사슴이 알을 품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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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한 대비다. 한쪽으로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무덤인데, 다른 쪽 끝에는 장방형 연못이 길게 누웠다. 경지(鏡池). 거울 ‘경’ 연못 ‘지’. 본래 면목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다. 산길을 오르는 동안에도 미처 씻어내지 못한 마음자락, 거울에 비춰보며 마저 씻어내라 이르는 것일까? 하기야 수십 년 찌든 때를 어찌 한 순간에 벗겨낼 수 있으랴. 연못에 걸쳐진 외나무다리를 건너노라니 마른 잎사귀를 떠나보내며 배롱나무 그림자만 못내 쓸쓸하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가 개심사를 일러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라고 했었던가. 그의 견해에 이견을 세운다 하더라도 한 가지만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속세든 산중의 집이든 몸집을 크게만 부풀리는 것으로 능사를 삼는 요즘, 이 절집은 아담하고 소박한 성품 그대로 오가는 마음을 끌어당긴다는 거다. 웅장하고 장엄하다 할 수는 없으되 못난 주춧돌 하나에도 천년 세월이 겹겹이 감겨 있고, 한껏 단아한 품새의 당우(堂宇)들 또한 소박한 맛으로 속인을 맞으니 여느 대단한 사찰이라 하여 이보다 넉넉할 것인가. --- pp.43~44, 「상왕산 개심사」 중에서 摩河大法王 마하대법왕 無短亦無長 무단역무장 本來非白 본래비조백 隨處現靑黃 수처현청황 부처님은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시네. - 법당 희미하게 빛나는 법당의 주련을 읽는다. 새벽의 푸른빛에 드러나는 힘이 실린 글씨, 홀로 깨어 새겨보는 게송은 새롭다. 부처는 대소장단의 분별 이전의 존재, 선과 악의 구별 또한 무의미한 것이라고, 주련은 일러준다. --- p.141, 「마니산 정수사」 중에서 세조의 원찰로 조선시대 교종의 총본산인 봉선사는 한글과 인연이 깊은 절집, 그 인연의 고리에 운허(雲虛) 법호를 가진 스님이 있다. 운허. 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에 큰 걸림돌이 되어왔던 한자경전의 한글화를 일생의 목표를 삼았던, 그래서 부잣집에서 다시 태어나 그 돈으로 팔만대장경을 모두 한글로 펴내겠다는 서원을 가졌던 큰스님. 대장경의 한글화에 필생의 노력을 기울였던 스님의 흔적이 친히 쓰신 ‘큰법당’이란 대웅전 편액과 한글 주련으로 남아 있음이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 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로 못하고. 일찍이 한글 주련을 본 적이 있었던가? --- p.204, 「운악산 봉선사」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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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우리 절집을 사진으로 만나다!
봄, 여름, 가을, 겨울, … 그리고 봄이라고 했던가. 끊임없는 윤회의 길을 걷는 사람이 윤회의 고리를 끊기 위해 수련하고 도량을 키우는 곳이 절집이다. 수세기 동안 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해오고, 많은 중생들이 찾아가서 속세의 고민과 어려움을 벗기 위해 절을 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깊은 산속 절집에 가면 건물로만 보는 것 이상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 어디나 똑같은 게 절이라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각 절마다 지어진 시간, 지은 사람, 겪어온 역사가 다르기에 슬쩍 지나는 행인은 볼 수 없는 것이 더 많다. 저자가 우리나라의 오래되고 아름다운 절집을 찾아다니며 시간을 두고 천천히 다가가서 찍은 사진들에는 그 절이 지내온 시간의 더께만큼 진득한 애정이 담겨 있다. 눈으로 보았으나 보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다. 절집 찾아가는 길을 알려주는 듯한 손으로 쌓은 돌담, 대웅전 전각 밑의 조각, 큰 전각 뒤편의 작은 승방으로 이어지는 오솔길, 강원도 산골의 절 추녀를 따라 길게 붙어 있는 고드름 등…. 속세에 매여 사는 우리가 잠깐씩 들렀을 때는 보여주지 않는 그 아름다움의 세계가 흑백의 사진으로 담겨 있다. 짧은 글 속에 인간사를 넘는 우주의 이치가 담겨 있다! 산사는 ‘탈속’의 공간이다. 속세의 사람들은 두 어깨에 진 세상의 시름과 욕심을 잠시라도 벗어놓고 고요 속에 묻혀 깨달음의 세계를 만나고자 산사를 찾는다. 『산사의 주련』은 그런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몸과 마음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쉼터가 되어 줄 것이다. 저자가 산사의 ‘숨겨진 미(진리)’를 찾아 발품을 판 데는 이러한 까닭이 있다. 聞鐘聲煩惱斷 문종성번뇌단 智慧長菩提生 지혜장보리생 離地獄出三界 이지옥출삼계 願成佛度衆生 원성불도중생 이 종소리 들으시고 번뇌와 망상 끊으소서. 지혜가 자라고 보리심을 발하소서. 지옥고를 여의고 삼계를 뛰쳐나와, 원컨대 성불하시고 중생 제도하옵소서. - 선암사 ‘범종각’에서 건져 올린 글 모처럼 가족과 함께 간 선암사 범종각 앞에서 아이가 묻는다. “아빠, 여기 기둥에 적힌 한자가 무슨 뜻이에요?” “…….” 유홍준은 그의 문화답사기에서 “아는 것만큼 느낀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산 넘고 물 건너 명산대찰에 가더라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오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것에도 그런데 법당 기둥에 길게 매달려 있는 한자가 쓰여 있는 낡은 현판쯤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이럴 때 ‘주련에 담긴 뜻과 유래를 알 수 있는 책 한 권’이 손에 들려 있다면 걱정 없다. 여유롭고 자신에 찬 표정으로 내 아이에게, 친구에게 주련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 『산사의 주련』은 그와 같은 책이다. 솔숲에 마음을 씻는 개심사, 추억의 전나무 길을 만날 수 있는 월정사, 예인의 슬픔을 보듬어 주는 청룡사, 선(禪)이 숨 쉬는 수덕사, 납자(衲子)들의 정진도량인 백양사, 그리고 삼보사찰(三寶寺刹)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산사 스물네 곳을 찾아가 지금껏 사찰 기행산문집에서 누구 하나 애틋하게 보듬어주지 않았던 보석을 발견해 닦아 내놓는다. 안팎으로 힘든 이때에 이 책을 보면서 주련에 담긴 뜻을 음미해도 좋을 것이고, 주말쯤 시간을 내서 직접 찾아가 보는 것도 좋겠다. 초·중·고등학생들을 둔 부모님이나 학생들과 현장 학습을 함께 해야 하는 선생님이라면 참고자료로 삼아 아이들과 함께 수박 겉핥기식의 학습에서 벗어난 살아 있는 현장 학습을 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