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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판 서문
서문 일시적 쇠퇴 희망, 한풀 꺾였지만 불씨는 살아 있다 |희망의 중심으로 떠나는 철학 여행 |쉽사리 잡히지 않는 이상야릇한 나비 |순서에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읽는 이 책의 구성 제1부 아득한 옛날부터 있었던 희망 제1장 전설에 따르면 모든 것은 판도라와 함께 시작되었다 상자 또는 항아리 |악과 선 |아름다운 악 |여성성과 모성의 양면성 |신들과 이별한 인간에게 부여된 노동의 의무 |앎과 모름의 양립 제2장 고대 그리스 시대 오만에 맞서는 희망 |비이성적 위안 |개인의 영혼불멸성 |기다림을 거부하다 |끊임없는 여정 제3장 기독교 성도들의 확신에 찬 기다림 믿음, 소망, 사랑 |그래도 소망할 대상이 남아 있는가? |순례자의 여로 |무한한 기쁨을 향한 기다림의 시간이 계속되다 |내세에서나 현세에서나 |자유주의 신학과 허무주의 제4장 유대인의 희망, 또는 끝없는 기다림 아나돗의 발 |희망과 절망의 역사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한 지평선 |불가역성을 거부하는 시간 |구세주를 기다림 |구세주 도래를 향한 희망은 왜 실현되지 않을까 |구세주, 잃어버렸다가 되찾은 물건, 전갈 |이유가 필요 없는 희망 제2부 희망과 시간 제5장 멈춰버린 시간 현재를 향해 다가오는 미래 |체험한 현장과 기다리는 지평선 |가상의 균형 |유일하게 살아남아 멈춰버린 현재 |악순환 제6장 희망과 심리적 시간 정념의 희망 |‘해체’되어 있는 심리적 시간 |잃어버린 대상을 되찾으려는 희망 |희망의 에너지원 |희망에 대한 과잉 기대 |서로 충돌하는 희망 제3부 행동하는 희망 제7장 희망과 행동은 하나다 볼 수 없는 미래 |희망과 우연성에 달린 게임 |페넬로페의 베 짜기 |희망을 지배하는 불확실성 |우연성을 제거하다 |희망의 핵 |행위적 감정 |기대 이상의 결과 제8장 미래를 탐구한 철학자들 주류에 역행하는 미래 연구 |에른스트 블로흐의 희망 혁신 |행복한 결말일까, 아닐까 |미래 보호를 위한 현재 경계 |인류를 수호하라 |계몽적 비관주의 |확신할 수 없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미래 |미완성의 의미 |희망할 자유 |허무라는 이름의 종교 제4부 철학자들의 사랑을 받지 못한 희망 제9장 논란을 부르는 정념 고대인에게 비난받은 희망 |고전주의 시대에 비난받은 희망 |희망의 명예 회복을 시도한 데카르트 |내려놓아야 할 무거운 짐 |영원성의 관점에서 |우리는 희망을 끊을 수 없다 |개인에서 역사로 제10장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빠져나온 희망 무엇을 희망해도 좋은가? |세속화된 소망 |평형 회복 |인간의 생각을 엄습한 허무 |숭고함의 가치에 새롭게 눈뜨다 |희망을 금지한 부조리 |현대인을 위한 지혜 |왜 이토록 불신이 깊을까? |삶 또는 죽음에 얽힌 문제 |인류의 미래는 활짝 열려 있다 제5부 희망하는 법 배우기 주 참고문헌 감사의 말 찾아보기 |
Roger-Pol Dro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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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공동체적 희망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해주고, 희망을 공개 토론의 장으로 다시금 불러와 희망에 관한 진지한 성찰이 다시금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였습니다. 이를테면 희망의 앞길을 가로막는 ‘철학적 장애물을 발견해 제거’하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맨 먼저 유럽의 철학 체계에서 희망과 관련된 사유를 고고학적 방식으로 고찰했고, 고대 그리스 사상, 유대교, 기독교에 내재된 희망의 기원을 탐색했습니다. 그다음으로, 서구 사회가 비약적으로 발전한 혁명기로 넘어가 희망이 종교에서 분리돼 정치의 속성을 띠고 세속화된 양상을 발견했습니다. 근대 부분에서는 희망이 진보의 확신을 주는 매개체로 쓰였음을 파악했습니다. 일련의 과정을 살펴보니 오늘날 희망이 위기에 빠진 원인을 알 수 있었습니다. 즉, 현대가 이전의 시대와 달리 ‘시간’ 및 ‘행동’과 특이한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어판 서문」중에서 판도라와 엘피스를 소재로 한 판도라 신화에는 인간의 조건에 관해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최초의 요소들이 들어 있다. ‘희망의 원형’ 엘피스는 인간의 조건이 근본적으로 불확실성 위에 형성됐음을 보여준다. 인간은 악이나 선이 언젠가 찾아오리라고 짐작하지만 그날이 언제인지는 확실히 모른다. 이처럼 미래를 불확실하게 예견할 수밖에 없기에 환상과 맹신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미래에 대한 확고한 동기 부여가 부족해 불안에 떨기도 하고,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지나친 자신감으로 자신을 안심시키기도 한다. ---「제1장 전설에 따르면 모든 것은 판도라와 함께 시작되었다」중에서 희망은 한없이 양면적이다. 그러므로 과거 또는 미래, 개인 및 공동체, 긍정적 의미 및 부정적 의미 등과의 관계 속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희망은 때로는 삶의 원동력이었다가 때로는 족쇄가 되었다가 때로는 혼란을 조장하는 억압적 기제가 되기도 한다. ---「제6장 희망과 심리적 시간」중에서 모든 희망은 행동을 전제로 한다. 아무리 미미할지라도 행동이 필수다. 행동이 구상되고 있거나 이미 시작됐거나 완료됐을 수는 있지만, 절대로 부재할 수는 없다. 희망하기와 행동하기는 불가분의 관계다. 희망과 행동은 다양한 연동 장치를 매개로 결합하며, 그 결합력이 가장 약한 것(로또와 같은 도박)부터 강한 것(역사적 사건)까지 폭넓게 나타난다. 어떤 경우에도 행동하지 않고 희망할 수 없으며, 희망하지 않고 행동할 수 없다. ---「제7장 희망과 행동은 하나다」중에서 사르트르가 생각하는 희망은 절대적 명령이 아니라 필요한 대상이며 자유가 ‘청구’하는 대상이다. 풀이하면, 명령은 인류의 보편적 이성에서 유래하여 만인에 강제로 부과되는 도덕 법칙의 요소이지만, 청구는 자유가 자유 그 자체에 부과하기로 한 자발적 강요다. 그 어떠한 도덕적·이성적·보편적 법칙도 인간에 명령을 내릴 수 없다. (……) 개개인은 세상의 의미, 도덕적 가치, 인간의 지위를 주도적으로 결정할 책임이 있으며 그러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이러한 절대적 책임은 우리가 지닌 완전한 자유와 연관되어 있으며 희망 또한 한계가 없어야 함을 전제로 한다.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 출간 기념 토론회에서 “모든 인간에게 희망은 오직 행위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확언함으로써 자신의 철학 세계를 압축적으로 표명했다. ---「제8장 미래를 탐구한 철학자들」중에서 인간의 행동, 계획, 성공 또는 실패는 자기 죽음을 초월하는 시간성에 포함되며 시간성은 죽음을 부분적으로 연기하기도 한다. 따라서 우리는 삶의 미래를 재발견하게 된다. 미래는 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죽어도 모든 일이 계속되며, 그것이 바로 희망이 예견하는 바다. 이처럼 인간의 행보가 단절되지 않고 후대로 계승되므로 삶의 연속성을 토대로 희망이 죽음을 뛰어넘어 대대손손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희망은 삶에 의지하는 만큼 삶을 지탱하고 있다. 이 움직임은 두 가지 방향을 취한다. 그래서 희망이 삶에서 비롯되는지, 삶이 희망을 불러일으키는지, 딱 꼬집어 말하기가 어려워 보인다. 둘 다 맞는 말이며 이러한 상호의존성을 부정할 수 없다. ---「제10장 역사 속으로 들어갔다 빠져나온 희망」중에서 우리는 희망에 과도하게 집착하거나 희망을 경멸함으로써 희망을 위협하고 있다. 희망을 양면적으로 대하고 있음을 깨닫고 받아들여야 그러한 태도를 확실히 뛰어넘고 꺾어버릴 수 있다. 나아가 우리 내면에 희망을 보존할 수 있다. ---「제5부 희망하는 법 배우기」중에서 우리는 희망을 절제하고, 중용을 지켜 사용해야 한다. 머나먼 지평선을 동경하지 말고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하며, 영웅 심리의 정복욕을 버리고 현실적인 목표를 세워야 하며, 막연한 이 상을 접고 명확한 표적을 겨냥해야 한다. 요컨대, 더 희망하려면 덜 희망해야 한다. 희망대로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거나 희망을 이루게 해달라고 주문을 외는 식의 행동을 지양하고, 초지일관 희망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도를 넘는 희망에 맞서 절도 있는 희망이 필요하다. ---「제5부 희망하는 법 배우기」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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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인류사
더 나은 삶에 대한 요청이 오히려 심리적 고문이 되는 시대에 우리는 차라리 희망을 포기하도록 강요받는다. 한편으로는 생존을 위한 각개전투를 펼치느라 고단한 개개인이 품는 최소한의 위안으로서 희망은 어렵사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언뜻 희망은 그저 미래를 향한 막연한 바람이자 현실을 잊게 만드는 무력한 감정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판도라의 상자 속에 홀로 남아 그 모습을 드러낸 적 없는 희망은 고정된 개념이 아니다. 희망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복잡다기하다. 호메로스 시대의 초기 고대 그리스인에게 희망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이성적 판단에 입각한 추측과 평가를 뜻했다고 한다. 희망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인 엘피스Elpis는 앞날을 예상하는 지적 능력이었던 셈이다. 소포클레스 시대 들어서 희망은 예측의 기능보다는 비이성적 위안의 기능을 담당했고, 고대 그리스 말기에는 현재를 등한시한 채 내세를 탐하는 위험한 환상이라는 개념으로 변모했다. 일신론적 종교가 득세한 이후, 희망은 언젠가는 성취되지만 그 내용은 알 수 없는 역설적인 기다림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렇듯 아직 오지 않은 미지의 세계가 희망의 고향이기 때문에, 희망은 오늘과 여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냉대를 받았다. 현재를 현혹하는 희망 vs. 미래를 변화시키는 희망 인류가 희망을 외면해온 역사는 유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희망을 ‘깨어 있는 사람의 공상’이라고 일컬으면서 환상의 힘으로 현실 감각을 훼손하는 미혹으로 정의했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 등 고대의 여러 사상 또한 희망이 현실을 왜곡함으로써 불안을 초래한다며 멀리할 것을 권고했다. 인간의 행복과 자유를 중시한 17세기의 철학자 스피노자마저 희망이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수반해 결국 두려움과 슬픔의 감정을 자아낸다면서 희망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간의 존재 조건은 ‘희망의 반대 개념’인 부조리이며, 따라서 희망이 없어야 행복을 찾을 수 있다고 강변한 것은 카뮈였다. 희망에 대한 불신이 이토록 깊은 이유를 저자는 죽음과 허무에의 집착으로 정리한다. 치열한 삶을 옹호할 때조차 죽음과 허무를 사유의 바탕으로 삼았기에 희망은 거부당해야 했다는 것이다. 진보를 약속하지 않는 역사가 주는 환멸은 삶과 희망보다는 죽음과 허무를 토대로 인간의 조건을 검토하도록 인류를 이끌었다. 하지만 저자는 희망에 무관심한 절망 속에서는 어떠한 변화와 혁신도 상상할 수 없음을 직시한다. 『희망의 원리』를 쓴 에른스트 블로흐가 소환되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블로흐를 인용해 저자는 활기찬 내일을 맞이하기 위한 희망의 기술을 끊임없이 학습하고 훈련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희망을 가로막는 현재중심주의와 불확실성 다시 희망하기 위해서는 ‘현재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현재중심주의는 미래의 자리에 재앙과 종말과 죽음을 배치하고 현재에 순응할 것을 재촉한다. 따라서 결정론적인 물리적 인과관계와는 반대로 미래에서 현재로 흐르는 희망이 통행할 길이 막혀버렸으며, 고인 물처럼 멈춰버린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공동체적 감수성이 결핍된 것은 이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즉, 시간과의 관계가 정지된 탓에 개개인을 하나의 공동체로서 역사적 시간에 배치하고 미래에 투영하는 일이 어려워진 것이다. 불확실성은 희망의 핵심적인 속성임과 동시에 희망을 난관에 봉착하게 한 원인이다. 아름다움과 윤리마저 숫자로 환산되는 21세기적 정신은 우연성과 불확실성을 제거하지 않고는 존립하기가 어렵다. 욕망의 대차대조표는 빈틈없이 작성되어야 한다. 불확실성에 기반을 둔 희망이 설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 이유다. 하지만 저자는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행동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으며, 그러한 ‘행위적 감정’인 희망은 행동과 의지를 내포하고 있기에 우리로 하여금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게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희망의 양면성, 인간의 조건 희망의 양면성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확실성뿐만이 아니다. 희망은 선이면서 동시에 악이다. 불행을 이겨낼 힘과 좌절하지 않을 용기의 샘이라는 측면에서 희망은 선이지만, 미래에 대한 확고한 예측과 대비는 불가능한 채 기대와 불안에 영혼을 잠식당하게 한다는 점에서는 악이다. 하지만 이 희망의 역설이 곧 인간의 조건임을 저자는 강조한다. 인간의 운명은 앎과 모름의 중간에 위치해 있다. 그 ‘미완성’의 조건이 희망과 시간과의 관계(미래에서 현재로 ‘역행’하는 희망), 희망과 행동과의 관계(‘행위적 감정’인 희망)를 형성한다. 저자는 “희망은 절망스러운 상태에 있는가?”라는 물음으로 이 책을 시작해 “희망을 포기하고 버리려는 태도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반드시 배척해야 할 태도다”라는 제언으로 끝마친다. 이 책의 미덕은 맹목적으로 희망의 복음을 전하며 희망의 당위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대신 저자는 위기에 빠진 희망의 의미와 역사를 철학적으로 성찰한 뒤, 멈춰서버린 현재에 시간성을 돌려주고 개인의 자폐적인 욕망을 공동체의 희망으로 탈바꿈시키는 것이 인간성을 보존하고 강구하는 길임을 보여준다. 제5부 ‘희망하는 법 배우기’는 압축적이고 유려한 문제로 제시하는 희망의 기술로, 이 책의 백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