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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 수상록Ⅱ
제2권 13 타인의 죽음 판단하기… 673 14 우리의 정신이 어떻게 스스로를 방해하는가… 680 15 우리의 욕망은 어려움에 부닥치면 커진다… 681 16 영예에 대하여… 688 17 교만에 대하여… 704 18 반증에 대하여… 740 19 신앙의 자유에 대하여… 745 20 우리는 순수한 것이라곤 아무것도 맛보지 못한다… 749 21 무위도식에 대하여… 753 22 역마에 대하여… 757 23 나쁜 수단을 좋은 목적에 사용함에 대하여… 758 24 로마의 위대성에 대하여… 762 25 병자를 흉내 내지 말 것에 대하여… 764 26 엄지손가락에 대하여… 766 27 비겁은 잔인의 어머니… 768 28 모든 일에는 저마다 때가 있다… 778 29 도덕에 대하여… 781 30 한 기형아에 대하여… 789 31 분노에 대하여… 791 32 세네카와 플루타르크의 변호… 800 33 스푸리나의 이야기… 807 34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전쟁하는 방법에 대하여… 815 35 세 현숙한 부인에 대하여… 824 36 가장 탁월한 인물들에 대하여… 833 37 자손들이 조상을 닮음에 대하여… 841 제3권 1 유용성과 정직성에 대하여… 874 2 후회에 대하여… 891 3 세 가지 사귐에 대하여… 907 4 기분 전환에 대하여… 920 5 베르길리우스의 시구에 붙여… 932 6 역마차에 대하여… 1002 7 고귀한 신분의 불편함에 대하여… 1021 8 논변의 기술에 대하여… 1026 9 허영에 대하여… 1053 10 자기 의지의 아낌에 대하여… 1121 11 절름발이에 대하여… 1148 12 인상에 대하여… 1160 13 경험에 대하여… 1193 몽테뉴의 생애와 사상… 1258 몽테뉴 연보… 1270 인명 찾아보기… 12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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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데에는 무엇인지 모를 자연적인 달콤한 맛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너무 지나치게 중요시한다.
--- p.696 웅변의 시조인 키케로에게 죽음의 경멸을 말하게 해 놓고, 세네카에게 같은 문제를 다루게 해 보라. 전자는 기운 없이 끌어간다. 그리고 자기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을 그대에게 결단 내리게 하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는 그대에게 조금도 용기를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후자는 그대에게 활기를 주고 불을 지른다. 나는 작가들, 특히 도덕과 의무를 취급하는 작가들은 그가 어느 종류의 인물인가를 호기심을 가지고 살펴보지 않고는 그 작품을 읽지 않는다. --- p.794 건강은 소중한 것이며, 사실 그것을 추구하여 시간뿐 아니라 땀과 수고와 재산과 생명까지도 사용할 만한 단 하나의 것이다. 더욱이 건강 없이는 생명은 우리들에게 괴롭고 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탐락도 예지도 지식도 도덕도 건강 없이는 흐려지고 사라진다. --- p.849 부질없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고는 없다. 그것을 진심으로 말하는 데에서 불행이 나온다. --- p.874 작가들은 자기를 특수하고 외부적인 표징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나는 맨 먼저 미셸 드 몽테뉴로서의 내 보편적 존재인 나를 전해 주는 것이지, 문법학자나 시인이나 법률가로서의 나를 보여 주는 것이 아니다. 만일 사람들이 내가 너무 내 말을 많이 한다고 꾸짖는다면, 나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생각조차 하고 있지 않은 것을 불평하겠다. 그러나 행동 습관이 이렇게 다른 데도 나를 널리 알려 준다는 것이 옳은 일일까? 세상에서는 모양을 내고 기교를 부리는 일이 신용을 얻고 권위를 가지는 터에, 나 같은 생소하고 단순한 본성, 그것도 아직 극히 허약한 내 본성의 소산을 세상에 내보이는 것이 옳은 일일까? 학문도 기교도 없이 책을 짓는다는 것은 돌 없이 담을 쌓거나, 그와 비슷한 수작을 하는 길이 아닐까? --- p.892 인생의 규칙이란 여자와 상의하지 않고 남자들이 멋대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 통용되는 이 인생의 규칙을 여자들이 거절해도 여자들의 잘못은 아니다. 여자들과 우리 사이에 음모와 다툼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여자들과 가장 밀접하게 화합되어 있는 경우에도, 역시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우리 작가(베르길리우스를 말함)의 견해로는 우리는 이 점을 고려하지 않고 여자들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즉, 여자들은 사랑의 실천에서 남자들과 비교할 수 없이 더 열렬하고 능력이 있다. --- p.949 자기 자신을 징그럽게 여기고, 쾌락을 고통으로 느끼며, 불행에 의지해서 지내다니, 인간이란 얼마나 괴상한 동물인가! 세상에는 자기 인생을 감추는 자들도 있다. --- p.980 우리 정신의 가장 자연스럽고도 효과 있는 훈련법은, 사람과 논변(論辯)하는 일이다. 나는 이 방법이 인생의 어느 다른 행동보다도 더 감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만일 내가 이제부터 무언가를 택해야만 한다면, 듣기와 말하기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보기를 버리는 편에 동의할 것이다. --- p.1028 진실한 우정에서는, 나는 이 부문의 전문가이지만, 친구를 내게로 끌어오기보다 나 자신을 친구에게 내준다. 나는 그가 내게 해 주는 것보다도 내가 그에게 더 잘해 주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그가 나보다도 자기 자신에게 더 많이 해 주기를 바란다. 그가 자신을 위해서 하는 것이 가장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며, 떨어져 있는 것이 그에게 유리하고 필요하다면 여기 있는 것보다도 나에게 더욱 마땅하다. 그리고 서로 소식을 전할 방법이 있는 동안은 진실한 부재(不在)가 아니다. --- p.1091~10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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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인간의 자유가 가진 마지막 무기”
친구 라 보에시의 죽음으로 독서와 집필을 시작하게 되면서 몽테뉴가 가장 관심을 가졌던 죽음이라는 주제. 그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으로 생의 자유를 지향하는 스토아주의적 논조를 보이지만, 동시에 쾌락주의적 경향도 볼 수 있으며, 그것들은 작품을 일관하는 온당한 회의주의 정신에 의해 누그러져 있다. 몽테뉴는 불의의 사고로 인해 가사상태에 빠졌던 경험이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었던 것을 묘사하면서 어떤 문제에 대해 미리부터 생각하는 것은 오히려 문제를 확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고통에 대해 지나치게 금욕주의적으로 맞서는 것이 절제나 지혜와 양립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자살을 옹호하는 고대의 주장을 자세히 설명한 다음, 자살은 그리스도교적이지 않고 비겁하며 부자연스러운 행위라고 공격한다. 그리하여 그는 금욕주의를 비롯한 모든 독단론에 맞서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1576년에 집필한 〈레이몽 스봉의 변호〉라는 글(2권 12장)이다. “끄세즈? 나는 무엇을 아는가” 〈레이몽 스봉의 변호〉에는 고대에 원천을 둔 회의주의가 강조되어 기술되고 있으나, 거기에 나타나는 유명한 〈Que sais-je?(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구절은 인간의 이성, 인식력, 그리고 학문적 지식의 허망함을 역설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성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관찰에서 우러난 상대주의와 패러독스, 또는 인간에 대한 자비와 관용의 표현이며, 후세의 과학주의, 민주주의의 원천이 되었다. 제목과 내용이 어긋나기 때문에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부분으로, 스봉의 학설을 변호한다는 것은 구실일 뿐 스봉을 다룬 것은 전체의 10분의 1도 되지 않으며, 몽테뉴는 여기서 대부분 자기 고유의 사상을 전개한다. 게다가 스봉을 다룰 때도 변호하기보다는 반박하는 경우가 더 많다. 몽테뉴는 여기서 인간의 지식을 공격했지만, 자아에 대한 인식까지 공격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자신을 알 수 없다면, 무엇을 알 수 있겠는가?", "적어도 우리는 자신을 강요하여 현명해져야 한다"는 몽테뉴의 말은 자아 인식이 가능함을 의미하는 동시에 자아인식이 지식과 지혜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 회의주의는 몽테뉴를 독단적인 철학에서 자아에 대한 연구로 이끌어간다. 1578년 여름에 신장결석의 통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아버지의 지병이었던 이 병이 언젠가 자신에게도 나타날 것을 전부터 두려워해왔던 그는 그 두려움에 비하면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며 어느 정도 다스릴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써, 초연한 경지에 이르렀다. 교육에 대한 견해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교육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나〈아이들의 교육에 대하여〈에서 그는 좋은 교육이란 어떤 것인가를 논한다. 그에 의하면 단순히 기억 속에 채워넣는 것이 아니라 선악에 대한 판단력을 키움으로써 도덕적으로 독립된 인격을 형성시키는 것이야말로 좋은 교육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일 때 행복할 수 있다” 1588년에 파리에 머무는 동안, 몽테뉴는 에쎄『Les Essais』를 증보해서 제5판을 출판하는 동시에 별도의 13장으로 이루어진 제3권 초판을 펴냈다. 인간에 대한 그의 신뢰와 유대감은 외국인들과 맺은 우호관계, 보르도 시장으로 두 번이나 선출된 일, 흑사병이 창궐하는 동안 영웅적 행동을 보여준 농부들에게 느낀 애정 등으로 인해 깊어져 있었다. 제3권은 첫 문장부터 인류와 개인에 대한 이 새로운 유대감을 선언하며, 그의 자화상은 인류의 자화상으로 확대된다. 자신감이 높아지면서 그는 더욱 솔직해지고 공적 활동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그의 성찰이 다른 어떤 주제보다도 그 자신을 향해 쏠리는 것은 자아 연구야말로 인간 본성을 배울 수 있는 학교이기 때문이다. 그는 인간의 가장 높은 지혜와 행복은 남과 자신에 대한 의무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사생활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 즉 자신의 타고난 조건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준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성찰과 자제를 통하여 정신적 독립을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므로 항상 자신의 심판관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나는 나를 심판하는 나 자신의 법률과 법정을 갖고 있다. 나는 어느 곳보다도 자주 그 법정에 출두한다"고 몽테뉴는 말했다. 결국 몽테뉴는 인간이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다.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려고 애쓰는 것은 위험한 유혹이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자기 개선의 전제 조건이다. 몽테뉴는 질병을 통해 고통을 쾌락과 서로 의존하는 관계로 받아들이고 고통과 쾌락을 조화시키는 법을 배웠고, "신이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기뻐하셨듯이 나는 삶을 사랑하고 삶을 즐긴다"고 그는 말한다. 시대를 뛰어넘는 몽테뉴 몽테뉴(Montaigne, Michel Eyquem de. 1533. 2. 28~1592. 9. 13)는 프랑스 최대의 사상가, 모럴리스트 또는 프랑스의 르네상스기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가이다. 1533년 프랑스 남부 페리고르 지방의 몽테뉴 성(현재의 생 미세르 드 몽테뉴 마을) 출생으로, 어려서 라틴어 교육을 받았고, 1554년 페리그 재판소에 근무하여 1557년 보르도 고등법원 참사관이 되었다. 1565년 프랑수아즈 드 라 샤세뉴와 결혼, 1568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몽테뉴 영주가 되었다. 아버지의 명으로 번역한 15세기 에스파냐 신학자 레이몽 스봉의『자연신학(自然神學)』을 1569년에 간행하였다. 1571년 37세로 법관생활에서 물러나 독서와 저작 생활로 들어갈 결심을 하였으나, 신·구파의 종교전쟁에 휩쓸렸다. 1580년 써 모은 수필을 간추려『인생 에세이』(2권)를 보르도에서 간행하였고, 이 해 신장결석 치료를 겸하여 독일·스위스·이탈리아 관광길에 올라 1년 반을 외국에서 보냈다. 이 여행에서『여행기 Journal de voyage』(1774)가 나왔다. 1586년에 몽테뉴 성으로 돌아가『수상록』에 증보와 수정을 가하고, 그 뒤 집필을 계속하여 1588년 3권 107장의 에쎄『수상록』신판을 간행하고, 독서와 글을 쓰면서 지내다 1592년 자택에서 사망했다. 『수상록』에서 몽테뉴는 인간성의 공통보편이라는 논거에 입각하여 그 자신의 성격·행동·체험·주장을 솔직하게 적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독자는 저자가 제기하는 문제와 직접 부딪쳐 인간성 일반에 대해 고찰하도록 이끌고 있다. 또 자연과 사회의 사물·사실을 병립 또는 대비시켜 고찰케 함으로써 회의와 판단전환을 도입하여, 선입견을 물리치고 객관적인 견지에서 진실을 발견하도록 해 독자 스스로가 검증과 탐색의 길로 들어서도록 이끈다. 몽테뉴는 지식을 체계화하지 않고 사고와 판단력의 자유로운 활동만을 중시, 그 실현을 매력 있는 문장표현으로 이루어냈다. 그는『몽테뉴 수상록』에서 프랑스 모럴리스트 전통을 구축하였을 뿐만 아니라, 17세기 이래의 프랑스 문학, 유럽 각국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