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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고요 비타민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 체프의 집 열병 깃털 대성당 사사롭지만 도움이 되는 일 우리말고 또 누가 이 침대에 누웠을까? 레이먼드 카버의 생애와 작품해설(무라카미 하루키) 옮기고 나서 |
Raymond Car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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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심장이 뛰는 소리도 들렸다. 나는 주위가 캄캄해진 다음에 아무도 움직이지 않고 죽은 듯이 앉아 있는 그 주방 식탁에서, 사람이 내는 소음을 들을 수 있었다. --- p.56
바로 그 순간, 칼라일은 그렇게 현관 앞에 서서, 무언가가 그 막을 내리고 있음을 느꼈다. 그 무언가는 에일린, 그러니까 이 순간 이전까지의 인생과 관련된 것이었다. 내가 에일린을 향해 손을 흔든 적이 있었던가? 물론 있기야 있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언제 그런 적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이제 칼라일은 그 모든 것이 끝났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비로소 그녀를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물론 그들의 삶은 한때 조금 전 그가 웹스터 부부에게 얘기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서로 얽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이었다. 비록 지금까지는 잊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떻게든 붙잡아 보려고 몸부림쳐 왔지만, 그렇게 흘러가 버린 과거 역시 이제 그의 일부가 되었다는 것은 그가 뒤에 남겨 놓은 그 모든 것만큼이나 분명한 사실이었다. --- p.163 버드와 올라의 집에서 보낸 그날 저녁은 아주 특별한 인상을 남겼다. 나는 그런 사실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나는 내 인생의 거의 모든 것들이 행복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어서 프랜과 단 둘이 그런 내 느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안달이 날 지경이었다. 그날 저녁 나는 한 가지 소원을 빌었다. 식탁에 앉은 채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집중했다. 내 소원은 오늘 저녁을 앞으로 영원히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그 소원은 이루어졌다.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는 커다란 불행이었음을 당시의 나로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말이다. --- p.193 그렇게 우리는 계속 그림을 그렸다. 내 손이 종이 위를 옮겨 다니는 동안 줄곧 그의 손가락이 내 손 위에 얹혀 있었다. 지금까지 내 평생 그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이윽고 그가 손을 놓았다. “다 된 것 같군. 한번 보시오. 어때요?” 하지만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아마 그 뒤로도 한참 동안 그렇게 눈을 감고 있었던 것 같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래야 될 것 같았다. “어때요?” 그가 흥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보고 있소?” 나는 아직도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내 집 거실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도무지 어딘가의 안에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정말 멋진 그림이군요.” 내가 중얼거렸다. --- p.221 하워드와 앤은 빵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앤은 갑자기 배가 고파졌고, 빵은 따뜻하고 달콤했다. 앤이 쉬지 않고 세 조각을 먹어치우자, 제과점 주인은 흐뭇한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그가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워드와 앤은 열심히 그 말에 귀를 기울였다. 둘 다 무척 피곤하고 심란한 상태였지만, 그 제과점 주인이 늘어놓는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경청했다. 그가 외로움에 대해서, 그리고 중년의 나이에 느낀 의구심과 좌절감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그는 그 오랜 세월 동안 자식 없이 살아온 자신의 인생이 어떠했는지를 이야기했다. 그의 인생은 끊임없이 오븐을 채웠다가, 또 비워내는 단조로운 작업으로 점철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만들어낸 파티 음식과 축하 케이크가 그 얼마던가. 그가 지금까지 소모한 설탕만 해도 실로 엄청날 것이다. 그가 자기 손으로 만든 결혼 기념 케이크는 지금까지 수백, 아니 수천 개에 달할 것이다. --- p.259 레이먼드 카버는 1981년에 출판된 단편집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가 독자와 비평가로부터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오랫동안 그의 인생을 망쳐온 알코올의존증을 극복하게 된다. 그리고 테스 갤러거와의 새로운 생활이 정상 궤도에 올라 있던 때인 만큼, 이전에 비하면 작품의 질과 작풍이 안정되었다. 작품 하나하나의 단어수도 그때까지의 작품에 비하면 훨씬 많아졌다. 등장인물에 대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시선도 강하게 느껴진다. 그에 따라 작품도 깊이와 설득력이 커지게 되었다. 야구에서 타자를 예로 들면 타석에 들어서자마자 그대로 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배트를 휘두르는 경지에 이른 셈이다. 다시 말해 사람들을 덮고 있는 암흑과 구름 사이에서 순간적으로 살짝 내비치는 광선과도 같은 구원,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방해하려는 어두운 구름, 그들의 숙명적인 대비를 묘사하는 방법이 실로 멋들어지다는 뜻이다. --- p.290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는 제목에서도 볼 수 있듯이 ‘사랑’이다. 네 명쟀 남녀가 각자 사랑에 대한 생각을 얘기한다. 어떤 이는 험난한 사랑이고, 어떤 이는 잃어버린 사랑이며, 어떤 이는 상식을 초월한 사랑이고, 어떤 이는 증오로 변해 버린 사랑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진지하게 사랑과 구원을 원한다. 갈망하고 희구한다. 운명이 아무리 가혹하다 해도 그들은 어떻게든 출구를 발견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고 그 문이 사랑이라는 기호를 통하지 않고는 열리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느끼고 있다. 그것은 어쩌면 도중에 깨어져 버린 꿈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사랑에 대한 진지함은 이 단편집의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솔직한 힘을 가지고 독자에게 호소하고 있다. 카버라는 인간의 내부에서 계속되어 온 냉소주의와 구원 사이의 갈등이 이 작품에서는 분명히 구원 쪽으로 기운다. 그것을 하나의 징후처럼 나는 분명히 느낀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종교적인 빛과 같은 것이기도 하다. --- p.29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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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섹시하다, 재미있다, 분노에 차 있다,
무섭도록 사실적이다. 그렇지만 언제나 감동적인 사랑이 흐른다! 미국의 대표적 단편 작가 중 한 사람인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특별할 것 없어 보이는 우리의 일상을 주제로 독특한 감동을 준다. 순간순간을 섬세하게 그려낼 뿐 아니라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결말로 가슴 찡한 느낌을 전한다. 특히 그의 소설은 일상적인 언어로 쓰여져 있어 너무 쉽게 읽힌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을 읽고 “나는 카버의 소설에서 많은 것, 스타일과 방법 이상의 무언가를 배웠다. 그는 다른 누구와도 다르다. 그가 남긴 그 공백을 대신 메우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로 그를 높이 평가했다. 미니멀리즘이라는 문학적 세계로 알려진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는 확연히 다르다. 마치 우리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들의 느낌들이 그대로 살아서 전달되는 느낌이다. 강렬한 어떤 사건의 전개 형식이 아닌, 은은하면서도 섬세한 그러면서도 날카롭게 삶의 정수를 찌르는 그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것이 바로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이 지니는 독특한 특징이다. 그리고 그의 소설에서 바탕을 이루고 있는 각양각색의 등장인물에 대한 그만의 따뜻한 시각과 묘사 역시 독자들에게 그 어떤 화려한 수식어보다 더 깊은 인상을 심어준다. 스토리의 전개방식이 명쾌한 것도 레이먼드 소설의 장점 가운데 하나이다. 레이먼드 카버는 오랫동안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38세에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1988년 죽기 전까지 총 4권의 작품집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대성당」은 전미비평가 그룹상과 퓰리처상 후보작으로 올랐다. 이 책의 수록 작품 가운데 「대성당」은 1982년,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는 1983년도에 베스트 아메리칸 단편소설에 수록되었다. 레이먼드 카버는 우리가 가볍게 여기는 일상의 모습들, 즉 네 명의 남녀가 각자의 사랑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것, 이발소에 온 사람들의 수다와 시비, 비타민 판매원 이야기 등을 각각의 단편소설이란 장치를 통해 투영한다. 그렇지만 타조를 키우는 친구의 집, 부인의 맹인 친구와 함께 그림을 그려보는 이야기 등은 우리가 흔히 겪을 수 있는 모습은 아니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느낌들을 전달해 감동을 준다. 이러한 힘 역시 레이먼드만의 능력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도 갑작스런 사고로 아이가 죽은 부모를 위로하는 제과점 주인의 이야기도 오랫동안 기억에서 잊혀지지 않는다. 이 책은 레이먼드 카버의 대표적인 단편 11편을 모아 엮었다. 단편들은 코끼리, 사랑에 대해서 말할 때 우리들이 하는 이야기, 고요, 비타민,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 체프의 집, 열병, 깃털, 대성당,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일, 우리말고 또 누가 이 침대에 누웠을까이다. 그리고 이 책의 마지막에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해설을 붙여 두었다. 그의 명쾌한 해설은 레이먼드 카버라는 사람과 작품을 좀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