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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 감사의 글 | 주 | 1 생명과 참 빛으로 오신 로고스(1:1-11)2 은혜와 진리 가득한 집을 지으러 오신 로고스(1:12-18)3 소리가 된 사람(1:19-34)4 영원으로 이어진 첫 만남(1:35-42)5 믿느냐? 보리라!(1:43-51)6 새 시대를 여는 잔치(2:1-11)7 허물라 내가 일으키리라(2:13-22)8 밤에 빛을 찾아온 사람(2:23-3:10)9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3:11-21)10 흥할 때와 쇠할 때(3:22-36)11 값진 생수, 거저 주신 생수(4:1-15)12 지금은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때(4:16-26)13 지금은 추수할 때(4:27-42)14 길 위의 믿음(4:43-54)15 무자비한 연못에서 자비의 연못으로(5:1-18)16 아버지와 아들(5:19-30)17 증인과 증거(5:3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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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의 주제는 “새 집 짓기”입니다. 단순한 보수공사가 아니라 완전히 새롭게 지으시는 이야기입니다. 공사 감독은 하나님이시고, 기술자는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집을 짓는 일은 한순간에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셔서 집을 날마다 조금씩 새롭게 하시고, 관리하시고, 깨끗하게 하십니다. 인간이 자신을 저버리자 눈물을 흘리며 성령을 거두셨던 하나님이 그럴 의무가 없으심에도 불구하고 다시 인간을 용서하시고, 그들에게 돌아오셔서 자신이 거할 집(인간)을 지으신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 요한복음입니다.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돌려주신 역사를 기록한 책이 바로 요한복음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새 집 짓는 작업을 시작하신 사람들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이 “나와 함께 거하자”라고 부르시는 소리를 들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요한복음 1장부터 차근차근 살피면서 어떻게 그 영광스런 자리에 우리도 참여할 수 있는지 알아봅시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연장을 들고 기다리시는 주님을 만납시다. 잘 들었거든 하나님이 가르쳐 주신 매뉴얼을 따라 예수님과 함께 자신을 새롭게 지어 나갑시다. 가정과 교회와 직장과 학교 등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요한복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거하실 만한 처소로 지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우리의 가치관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게 변화되기를 기대합니다. --- pp.20-21 요한이 복음서를 쓰면서 가장 심사숙고해 고른 단어가 하나 있다면 바로 ‘로고스’(말씀)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들어갈 자리를 차지한 로고스가 바로 요한복음 저자가 독자들에게 가장 간절하게 소개하고 싶어 한 대상이신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신원을 드러내는 ‘에고 에이미’(evgw, eivmi, I am, 나는 ~이다)가 요한복음에 일곱 번이나 나오기는 하지만, 예수님을 드러내는 데 가장 적절한 단어는 로고스입니다. 그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로고스는 구약을 잘 아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친숙한 개념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와 계시의 수단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시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고스란히 사건이 되어 애굽에 재앙이 내렸고, 홍해가 갈라졌고, 광야에서 만나와 생수가 공급되었고, 대적들로부터 민족이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은 곧 그분의 행동이요, 창조였습니다. --- pp.23-24 풍성한 생명 혹은 영생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오늘 우리와 우리가 속한 공동체가 누리기를 바라시는 것이 바로 이 생명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력을 발휘하기 원해야 합니다. 생명력이 있으면 창조가 일어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창조가 오늘 우리를 통해서 여전히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하는 것만이 창조가 아닙니다. 어그러진 것을 바로잡고, 부족한 것을 채우고,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하고, 혼돈을 질서와 조화로 만드는 것도 모두 창조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창조력과 생명력이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복’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복의 사람들입니다. 살다 보면 포도주가 떨어진 잔칫집 같은 처지에 놓이곤 합니다. 북에 있는 우리 동포들이 그렇습니다. 공동체 안에도 형제와 자매들의 기도와 격려가 절실한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생명력을 나누고 창조력을 발휘해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역사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영생이 충일한 공동체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바닥을 드러낸 텅 빈 혼인 잔치의 절망을 상상하지도 못했던 풍요로운 잔치로 바꾸어 주신 예수님이 주를 믿고 영접한 우리의 생명을 오늘도 풍요롭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 pp.159-160 사랑은 사랑으로만 만들어집니다. 생명은 사랑이 있을 때만 창조됩니다. 우리의 첫 탄생이 사랑의 결실이듯이, 위로부터 태어나고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새로운 탄생 역시 사랑의 신비입니다. 우리의 탄생은 자격 없는 사람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의 사랑의 합작품입니다. 그 사랑의 역사에 우리도 사랑으로 화답해야 합니다. 함께 사랑과 믿음의 공동체를 일구어 가야 합니다. 성령의 바람이 부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자유로이 숨을 쉬시고 생명의 역사를 일으키시도록 그분께 맡겨 드리십시오. 그리하여 날마다 거듭나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p.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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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에서 묵상으로, 앎의 문제에서 삶의 문제로, 성경 원문에서 삶의 현장으로, 예수님을 알아가게 하는 강력한 지식!원문에 충실한 성경 전문가 박대영 목사의 요한복음 깊이 보기저자 박대영 목사는 성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목회자이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성경과 그러한 관계이지만 저자는 그 지점에서 좀 더 진일보한다.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 이전부터 성경에 깊이 매료되어 묵상을 생활화하였고, 더 나아가 신학을 하는 과정에서도 특히 성경 원문을 충실히 공부하는 데 집중하였다. 바로 이 지점이 성경 원문에 충실한 탁월한 설교자요 교사로, 또한 원어와 영어에 능통하여 성경 연구에 관련된 다양한 저작물들의 번역가로 점점 자리매김 하고 있다. 특히, 저자가 가지고 있는 차분한 가르침의 언어와 통회하게 만드는 말씀의 권위는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요한복음을 강해하는 일반 강해서와 이 책이 다른 점은 바로 이 대목이다. 구절구절 깊이 있는 해설을 바탕으로, 삶과 영성 생활로 적용하게 하는 질문과 독려는 철저한 자기반성에서 시작되어 훈계와는 사뭇 다르다. [감사의 글에서]요한복음을 말할 때 ‘어린아이도 건널 수 있는 얕은 시냇물이면서 코끼리도 빠져 죽을 수 있는 깊은 강’으로 비유합니다. 일곱 개의 “에고 에이미”(나는 ~이다) 구절을 통해 예수님에 대해 잘 정의해 주고 있고, 또 아주 쉬운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어서 신앙에 갓 입문한 이들에게 읽도록 권하기 좋은 책입니다. 하지만 그 신학의 깊이를 헤아리려고 들면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심오해 연구할 때마다, 설교할 때마다 저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하는 책이기도 합니다.요한복음은 초대교회가 ‘독수리’로 묘사했을 만큼 예수님의 선재적, 초월적 성격이 사복음서 가운데 가장 두드러지는 책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어’ 철저하게 인간의 모습으로 사신 예수님의 내재적 사역을 균형 있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곱 표적, 일곱 담화, 예수님에 관한 일곱 개의 정의(생명의 떡, 세상의 빛, 양의 문, 선한 목자, 부활이요 생명, 포도나무, 길이요 진리요 생명)를 문학적으로 잘 배열하고 있고, 아이러니와 이중 의미 등을 통해서 하늘에 속한 예수님의 길과 땅에 속한 이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특히 이미 임한 하나님 나라, 지금 구현되고 있는 하나님의 통치, 오늘 누리고 있는 영생을 미래에 완성될 종말보다 더 강조해 ‘실현된 종말론’의 성격을 가장 뚜렷하게 보이는 책이기도 합니다. 역사적 예수님에 대한 묘사는 공관복음서보다 약하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사건이 담고 있는 신학적 의미를 풍성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태초부터 계신 하늘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오늘, 여기서 다시 우리의 메타포로 재진술하고 재정의하도록 요청합니다. 피안의 나라로의 구원이 아니라 오늘, 여기서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고, 구원을 누리며 살도록 도전하며, 불의한 시대를 거스르고 사랑의 주님이 가시는 십자가의 길에 동참하는 것이 영생과 영광의 길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저는 요한복음을 설교하면서 저 위의 관점에서, 저 영원의 관점에서, 저 하나님의 관점에서 오늘의 복잡한 일상을 조망해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제가 믿는 하나님이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사랑이 많으시고 위대하신 분이었습니다. 제가 누리는 구원이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영광스러운 선물이었습니다. 요한복음을 통해서 제가 먼저 오늘 이 세상에서 더 담대히, 더 당당히, 더 사랑하면서 살 힘을 얻어서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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