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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시우는 아침밥도 먹지 않고 산으로 갔습니다.
새벽에 산토끼 잡는 꿈을 꾸었기 때문에 더욱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산토끼 굴이 있는 소나무가 보였습니다. 그저께 놓은 덫은 그대로 있었습니다. 어제 놓았던 덫 근처로 살금살금 걸어가다가 시우는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번에도 산토끼 발자국은 덫이 없는 곳으로 나 있었습니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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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토끼야』는 창비에서 새로 선보이는 첫 그림책이다. 이상권 · 이태수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린이신문에 공동으로 글과 그림을 연재하면서 더욱 절친한 사이가 됐다. 그래서 이상권씨가 자기가 써두었던 그림책 원고를 이태수씨한테 보여줬고, 둘이 의기투합하여 그림책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때가 2001년 봄이다.
이태수씨는 세밀화 작업의 대가로 정평이 나있는 화가이다. 근 십 년 동안을 세밀화와 관련된 작업을 해온 그가 창작그림책 쪽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세밀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에 그림으로 된 도감이 전무한 상태여서 아이들에게 자연을 좀더 친숙하게 느껴보라는 거였다. 그의 오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이젠 세밀화로 된 도감과 그림책들이 어린이책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그는 창작그림책 쪽에서도 곰 같은 묵묵함과 끈기로 뭔가 새로운 결실을 맺고 싶어한다. 그런 그가 창작그림책 쪽으로 가는 길목으로 확실히 접어든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잘 가, 토끼야』는 산골 아이가 토끼털 귀마개를 갖고 싶어 토끼 사냥에 나서는 이야기이다. 엄마와 단 둘이 사는 시우는 친구들이 하고 다니는 토끼털 귀마개가 부럽기만 하다. 아빠나 형이 없어 외롭고 따돌림을 받던 차라 귀마개에 대한 열망은 더하다. 그래서 직접 토끼 덫을 만들어 산에 오른다. 며칠 몇 차례에 걸쳐 올가미를 나무 둥치에 걸어놓지만 약삭빠른 토끼는 무수한 발자국만 남기고 좀처럼 걸리지 않는다. 곁에서 안타깝게 지켜보던 엄마는 장에 가면 토끼털 귀마개를 하나 사다주겠다고 달래보지만, 약이 오를 대로 오른 시우한테 이제 토끼털 귀마개는 필요 없다. 문제는 오로지 그 놈의 토끼를 자기 손으로 잡는 것이다. 시우는 결국 어렵사리 토끼를 잡게 되지만, 덫에 걸려 괴로워하는 어린 토끼를 보고 한 생명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한다. 그토록 갖고 싶던 토끼털 귀마개 대신 낯선 공포와 죄책감을 떠안고 힘들어하는 어린 시우를 다독일 수 있는 건 엄마뿐이다.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눈 내리는 저녁, 산에 오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내리며 소원을 비는 돌탑 앞에서 산신께 가만히 용서를 비는 모습은 보는 사람마저 평화롭게 한다. 그래서 시우는 토끼에게 정말로 미안한 마음으로 사과할 수 있다. “잘 가, 토끼야……”라고. 장난으로라도 곤충이나 동물을 죽이거나 괴롭혀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했을 생명에 대한 갑작스런 발견을 섬세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주위의 작고 여린 것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살아 숨쉬는 세상의 일부임을 조용히 보여준다. 이상권씨는 이 작업을 위해 여러 번의 원고 수정을 거쳤다. 스케치 더미가 두세 차례 완성되는 사이, 원고는 여러 번 모습을 바꿔가며 군더더기를 많이 덜어냈다. 그래서 책에서는 처음 원고 분량의 반 정도가 줄어들게 되었다. 대신 그 내용들은 이태수씨의 그림으로 녹아 들어가 시우를 아빠도 친구도 없는 외로운 산골아이로 탄생시켰고, 엄마는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려가야 하는 강인한 시골 아낙의 모습으로 나타냈다. 무뚝뚝하지만 속으론 자식에 대한 한없는 사랑을 품은 강한 어머니 상으로. 화가는 눈 내린 하얀 산과 시골 집, 그리고 외로운 산골아이와 어린 토끼와의 끈질긴 싸움을 무슨 재료를 사용하여 그릴까 고민하다가 섬세한 펜 선과 최대한 절제해서 쓴 색으로 완성시켰다. 2년여 간의 기간을 통해 탄생한 이태수씨의 그림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줬던 작업과는 또 다른 세계를 보여준다. 뒤표지는 마지막 장면의 연장선으로 초봄, 돌탑에 슬금슬금 눈이 녹기 시작하고, 봄을 알리는 첫 꽃 복수초가 피어 있는 장면으로 잡았다. 복수초는 복과 장수를 비는 꽃이기도 하다. 2001년에는 주로 화가가 글 내용에 맞는 배경을 찾아 현장답사를 다니며 머릿속에서 구상을 하였고, 작가와 편집자와 함께 몇 차례 회의를 거치며 호흡을 맞췄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가, 철사로 직접 올가미를 만들어 작품 속의 배경이 될 만한 산을 찾다 충북 진천 근처의 산에 올라 덫을 놓고 사진촬영을 하기도 했다. 이 책을 계기로 이태수씨는 창작그림책 쪽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벌일 예정이다. 현재 그는 일산의 작업실에서 다음 작품 『눈미끄럼 타는 할아버지』(이상권 글)를 준비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