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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6
옮긴이의 말 |
Asako Yuzuki,ゆずき あさこ,柚木 麻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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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친구가 생겼다는 기분을 정말 몇십 년 만에 느꼈다. 연애가 시작될 때 시야가 점점 열리는 듯한 행복감과는 비슷한 듯하면서도 좀 다르다. 평소의 경치가 아주 조금 달라 보인다. 자신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는, 사소하지만 가슴 설레는 변화다. 다시는 쇼코와 떨어지지 않아야지 하고 생각했다. 딱 한 명이라도 여자 친구가 생기니 자신의 색감과 형태가 또렷하게 느껴지면서 나라는 존재에 자신감이 생겼다.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안은 팔에 힘을 주었다. --- p.48
그녀는 스토커가 아니라고 몇 번이나 주장하는데, 그 집요함과 진지함은 아무리 생각해도 스토커 그 자체다. 게다가 쇼코는 그녀를 스토커라고 단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스토커라는 말을 그녀 앞에서 사용한 기억도 없다. 다만 ‘블로그에 기분 나쁜 메일이 온다.’ 하는 말만 했을 뿐이다. 불쑥 집에 찾아왔을 때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시무라 에리코라는 인간은 착각이 좀 심하다. 이렇게 생각하고 싶지는 않지만, 에리코의 정신 상태가 좀 이상한 게 아닐까. 물론 나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일 때문에 몹시 바쁘다고 하니까, 그 스트레스 때문인지도 모른다. 연애가 좀처럼 오래 가지 않는다는 말도 했는데, 어쩌면 아직도 실연의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정도 미인에게 남자가 얼씬거리지 않는다는 것도 좀 이상한 일이 아닌가. ‘친구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 p.95~96 ‘친구는 어떻게 만드는 거야? 이 여자들과는 어떻게 알게 되었어? 싸우지 않아? 때로 귀찮게 느껴지는 일 없어? 사이가 멀어지지 않는 요령 같은 거 있어? 상대가 피하면 어떻게 거리를 좁혀야 하는데? 어떻게 하면 무슨무슨 짱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야?’ 자신의 꿈이 그렇게 거창한 것일까. 그저 성욕과 이해가 개입되지 않는 상태에서 타인과 편안한 관계를 쌓고 싶을 뿐이다. 서로 마음 놓고 긴장을 풀고서, 가족이 아닌 누군가와 마주하고 싶다. 같이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면서 고민거리를 털어놓고, 건강을 염려하고, 언젠가는 서로의 결혼식에 초대한다. 취미와 기쁨을 공유하고, 얘기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 실컷 통화를 한다. 이 세상에 그런 상대가 딱 한 명이라도 좋으니 있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그렇게 사치스러운 바람일까. --- p.149~150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은 ‘공감’이라고 생각한다. 에리코만이 아니다. 모두가 몸을 비틀며 눈물을 흘릴 정도로 공감을 원한다. 공감하기 위해서라면 돈은 얼마든지 지불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공감을 원하기에 모두가 인터넷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마음과 머리를 가동하는 품을 들이지 않고도 순식간에 시간과 환경을 뛰어넘어 ‘나는 혼자가 아니다’ 하고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알코올 같은 힘. 단방에 공감할 수 없으면, 아무리 훌륭한 글과 일도 에리코에게는 별 의미가 없다. 그렇다, 발언의 장이 주어진 이상 그 사람은 상대를 끌어들이고 공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공감하게 하지 못하는 여자는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는 여자는 이 차가운 세상을 더 살벌하게 만든다. --- p.180~181 “내 친구가 되어줘. 다시 시작하고 싶어. 그리고 나를 무시하거나 싫어하거나 멀리 하지 않겠다고, 지금 여기서 약속해. 그럼 나, 너에게 겁주지 않을게. 이런 일, 두 번 다시 하지 않을게. 안심하고 사귈 수 있는 보장이 있으면, 나는 너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어. 약속할게. 맹세할게.” 그렇게 겁 난 표정 짓지 마. 에리코는 울고 싶은 심정으로 기원했다. 물고기처럼 아무것도 비치지 않는 눈으로 입을 뻐끔거리지 말라고. 나나 너나 피해자야. 일본의 여자 사회를 촘촘하게 메우고 있는 거미집 같은 치밀한 규칙에서 떠밀려나온, 낙오자라고.--- p.245 변하고 싶다. 눈물이 쏟아질 만큼, 변하고 싶다. 사람과 피가 통하는 대화를 나누고, 홀가분한 심정으로 어떤 장소에든 적응하고, 자신이 즐겁다고 믿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안정된 정신 상태의 인간이 되고 싶다. 소녀 시절부터 간절하게 바라고 있는 일이다. 눈앞에 놓인 일에 열성을 다해 임하면, 성장은 저절로 따라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입시도 취직도 일을 통한 실패도 성공도, 섹스도 연애도 뭐 하나 에리코를 변화시켜 주지 않았다. 지식은 그저 쌓여만 갔지, 게이코가 떠난 그날의 자신에서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사람은 경험을 통해 바뀌는 법인데, 그런 건 이상하지 않은가. 잘못되지 않았나.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사춘기의 사소한 문제가 이렇게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다니, 자신은 아무래도 좀 이상한 것 같다. 이러고 있는 지금도 몸의 세포가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두려워 견딜 수가 없다. 미숙한 채, 아무것도 거머쥐지 못한 채 나이만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몸이 오그라들 정도로 끔찍하다. 정말 이대로 평생, 아무런 변화 없이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 p.314~315 “촌스럽기는. 어른이 되지 못한 건 내가 아니라, 너라고. 엄마의 소중한 아들 노릇, 이제 졸업해야지. 자기만 소중하게 여겨주는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잖아, 이 땅딸보가, 나를 두고 뭐라뭐라 하기 전에 너의 그 엿 같은 재주나 좀 어떻게 해보라고. 야, 일어서. 일어서라고. 이 세상에 위태롭지 않은 인간관계가 애당초 있느냐 말이야. 여자와 여자도, 남자와 여자도, 남자와 남자도 다 마찬가지 아니냐고. 어떤 관계도 형태가 변하고, 서로 싫어하고 미워하고, 거리를 재고 또 손질하면서 끈질기게 계속될 수밖에 없는 거라고. 기껏 관계 하나 손에 넣었다고 배가 부를 수 있겠냐고. 아무것도 안 하는데도 모든 게 다 갖춰지고 승인되고 문제가 전부 해결될 리 없잖아.” --- p.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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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느냐, 먹히느냐’ - 여자들의 하드보일드
「포겟 미, 낫 블루」로 데뷔한 이래 여자들 사이의 우정과 복잡 미묘한 심리를 그린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던 유즈키 아사코의 최신작 『나일 퍼치의 여자들』은 지금까지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이번 작품 역시 ‘여자들의 우정’을 그리고는 있지만, 이를 다른 종을 먹어치워 생태계를 파괴하는 외래종 어류 ‘나일 퍼치’에 빗대어 서로를 물어뜯고 뜯기며 피가 튀기는 무시무시한 관계로 묘사하고 있다. 저자는 이 작품을 집필하게 된 동기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여자들의 우정은 훌륭하다는 소설을 그 동안 열심히 써 왔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사실 여자들의 우정은 없죠’나 ‘여자들은 무섭죠’ 같은 말을 쉽게 합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여자들의 우정을 예찬하는 글을 쓰고 있는데도 여성 차별주의에 한몫하고 있다는 부담을 짊어지게 된 건 왜일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여자 친구가 없는 여자들과 여자들의 우정을 바보 취급하는 남성들을 자세히 관찰하면서 집필하였다고 한다. 그 결과 따뜻하고 달콤했던 지금까지의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하드보일드한 분위기의 작품이 탄생했다. 폭주하는 여자들의 커뮤니케이션 나일 퍼치는 흰살 생선으로 유통되고 있는 식용 민물고기지만, 비정상적인 번식력으로 인해 하나의 생태계를 파괴할 정도로 흉포한 외래 어종이다. 이 책의 두 주인공 에리코와 쇼코 역시 생존 경쟁을 강요하는 가혹한 현대 사회가 낳은 나일 퍼치 같은 파괴적인 내면을 지닌 존재들이다. 서른 살 동갑으로 동성 친구가 없다는 공통점 때문에 쉽게 친해지지만, 두 사람만의 달콤한 여자 모임을 만들고 싶었던 바람은 잠시뿐, 여자들의 커뮤니티로부터 소외되어 맺어진 두 사람의 관계는 친구를 갈망하는 감정의 진폭 차이로 인해 충격적으로 변화한다. 결국 두 사람의 관계는 시시한 대화를 이어가다 스토커처럼 애정을 갈구하는 에리코와 그녀를 기피하는 쇼코의 반발로 인해 파국을 맞는다. 서른 살 여자 친구들의 우정을 그린 『달콤 쌉싸름 사중주』같은 따뜻한 관계도 있지만, 무수한 인간관계에 피로를 느끼거나 차가운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는 또 다른 현실에 주목하여 폭주하는 여자들의 관계를 심층적으로 다룬 작품이 만들어진 것이다. 유즈키 아사코의 주제의식이 농축된 최고의 작품 빠르고 복잡하게 변해가는 사회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따뜻하고 원만한 인간관계를 맺기 원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인해 좋은 사람을 사귀거나 주위 친구들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기가 쉽지 않다. 그 대안으로 만들어진 인터넷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이 많아졌지만, 본질을 감추고 가면으로 만나는 탓에 상대적 피로감도 커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들 역시 가상의 공간에서 벗어나 현실의 만남을 추구하지만, 서로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둘의 관계는 너무도 쉽게 허물어지고 만다. 조연으로 등장하는 남자 스기시타의 나약한 면모와 냉정한 악역을 맡은 마오리, 현실 부적응자 게이코 역시 현대인의 비뚤어진 내면을 드러내는 중요한 캐릭터들이다. 복잡 미묘한 여성들의 심리를 실감나게 그린 작품들로 주목받았던 유즈키 아사코는 그간의 주제의식을 농축시킨 동시에 현실의 단면을 예리하고 냉정하게 포착한 이 작품으로 작가적 역량이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작품은 제153회 나오키상 후보에 올랐으며, 제28회 ‘야마모토 슈고로상’을 수상하였고, 고교생이 나오키상 후보작들 중에서 직접 선정하는 ‘고교생 나오키상’의 수상작으로도 뽑혀 그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고교생 나오키상 : 매년 전국의 고교생들이 모여 나오키상 후보에 오른 작품 중에서 직접 한 작품을 선정하여 시상한다. 고교생 독서 교육의 일환으로 1998년부터 시상 중인 프랑스의 ‘고교생이 뽑는 공쿠르상’을 모델로 삼아 2014년 5월에 만들어졌다. 작가의 말 “20대 전반부까지의 여자 친구들은 비슷한 일상을 살고 있기에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무엇이든 잘 아는 사이였지만, 30세가 되면 직장 일이나 결혼이나 출산 등 생활에서도 각자의 상황이 바뀌면서 서로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20대 때와는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의사소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도 친구의 뜻밖의 일면에 깜짝 놀란 경험이 있고, 거기에서 이번 이야기가 탄생했습니다. 일본은 전통적으로 서로의 사정을 암묵적으로 이해해주는 경향이 있는데, 문화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낮은 상태로 자라서 서른 살이 된 여자들이 만나 새로운 관계를 맺고자 할 때 일어나는 ‘가면 속의 수수께끼’를 그려 보려고 한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추천의 글 “작가의 필력과 진지한 열정에 감탄했다.” - 미야베 미유키 (소설가) “이상한 열의에 찬 소설이다. 읽어가면서 느끼는 위화감도, 수수께끼도, 의문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만드는 박력이 있다. 작가가 만든 ‘설정’에 독자를 끌어들이는 설득력과 그 현실감 모두 에너지가 넘친다.” - 가쿠타 미쓰요 (소설가) “세부 묘사나 대화의 밀도, 감정의 강도 등 모든 점에서 스케일 큰 번역소설을 읽는 듯한 압도적인 느낌이다. 특히 후반부의 폭주는 주노 디아스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같은 라틴 아메리카 소설에서 보이는 리얼리즘의 환상적인 일탈로 평가하고 싶다.” - 이시다 이라 (소설가) “에피소드 하나하나는 극단적이 아니고, 결코 주인공의 광기나 인격의 파괴를 느끼게 하지 않는 서술이었지만, 관계의 파탄과 일상성의 붕괴가 예감되는 그 결말이 궁금해서 독서를 중단할 수 없었다.” - 사사키 조 (소설가) “소설이 내뿜는 에너지가 독자를 굴복시킬 정도로 강인함을 갖고 있다. 이상적인 관계를 만들고 싶은 욕망에서 상대를 밀어붙이고 그 결과 자신도 파괴된다. 그 꼴은 일반적인 틀을 벗어나면서도 아플 정도로 생생하게 전해진다. 이 책에 농락당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 유이카와 케이 (소설가) “기존에 작가가 추구했던 주제를 단번에 응축한 이 작품은 그동안의 겸손이나 뽐내는 계산을 버리고 투쟁하는 지점에서 만들어졌다. 지금 작가로서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증명하는 작품이다.” - 시라이시 가즈후미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