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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우물을 들여다보다 물 속의 사원 달의 물 혼자 간 사람 부석사-국도에서 해설 : 모성의 지위와 탈낭만화(류보선-문학평론가) |
Shin Kyung-Sook,申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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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제차 물었으나 당신은 침묵을 지켰다. 세계 여러 지역의 독특한 풍물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프로였다. 망자의 육신을 새에게 바치는 티베트의 천장(天葬) 풍습이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티베트 동부 캄 지역에서 촬영했다는 천장 풍습은 그곳에 사는 사람은 물론이고 망자의 유족들조차 가려서 참여하는 금단의 현장이라 비밀리에 촬영했다는 설명이 흘러나왔다. 이제 이 지상에서 영혼이 떠났다는 신호로 조의를 표하는 붉은 가사의 라마승들은 엄숙했다. 높은 산정, 황량한 고원 풍경 속으로 퍼져나가는 나직한 독경 소리. 장례를 주관하는 거구의 천장사는 칼을 들고 망자 앞에 서 있었다. 그는 무심에 가까운 표정으로 망자의 사지를 잘라내고 잘게 살점을 저며내고 있었다. 옆에 대기하고 있던 동료가 새들이 먹기 좋게 소스 같은 것을 바른 뒤 한 움큼씩 독수리들에게 던져주었다. 기다렸다는 듯 푸드득 날아드는 독수리들. 바닥을 가로질러 흐르는 흥건한 핏물. 천장사가 망자의 팔을 자르고 다리를 잘라낼 때면 둔탁한 소리가 났다. 나는 그만 화면에서 시선을 돌려 버렸다.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유족들을 봐...... 미소를 띠고 있잖아." 독수리들에게 망자의 살점이 뜯길 대 유족들은 웃고 있었다. 나는 머리가 쭈뼛한데 당신은, 하늘에 시신을 묻는 거야, 새들이 망자의 살점을 한 점 남김없이 잘 뜯어먹어야 영혼이 편안하다는군,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자연에 베푼 다음 떠나는 거지. 물새의 발같이 뼈만 남은 당신이 내 손을 잡았다. 그 순간의 당신은 뼈만 남은 윳긴의 완벽한 소멸과 천상으로의 귀환을 꿈꾸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 pp. 45∼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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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소리」
내 곁에 꼭 당신이 있어야만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찬가지로 당신 곁에 꼭 내가 있어야만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 다른 사람들처럼 당신도 아이들 데리고 목욕탕에도 다니고 일요일이면 피크닉도 다녀라, 그렇게 말해주고 떠났으면 싶었다. 당신이 다른 사람과 새 가정을 이루어 그 사이에 아이가 태어나면 한 번만 보여주라, 말하고서. 「종소리」는, 갑자기 직장을 바꾸고 나서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지 못하고 '크론키드카나다'라는, 음식을 아예 입에 대지 못하는, 그러나 음식을 먹어야만 나을 수 있는 희귀한 병에 걸린 남편을 바라보는 아내 '나'의 이야기가 2인칭으로 서술되고 있는 소설이다. 어느 날 화장실에 둥지를 튼 새와 '당신(남편)'의 모습을 보며 사정이 안 좋은 회사를 그만두고 스카우트되어 직장을 옮긴 죄책감으로 끙끙 앓고 있었을 그간의 남편의 모습이 교차되어 서술되고 있다. 아내인 내가 보기엔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당당하고 밝은 '당신'의 겉모습 뒤에 숨겨진 그 예민하고 섬세한 남편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물을 들여다보다」 마음 아프고 원통해도 멀리멀리 가라, 했습니다. 가서는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돌아오지 마라. 제 새끼 이마 한 번도 못 짚어보고 고사리 같은 손가락 한 번도 못 잡아보고 검은 눈 한 번 못 들여다보고... 저기로 가야 할 망자가 저기로 가지를 못하고 여기를 헤매다니는 봄밤이었습니다. 울지 마라, 울지 마라, 하였네요. 멀리 가라, 멀리 가라, 하였네요. 돌아오지 마라, 돌아오지 마라, 하였네요. 「우물을 들여다 보다」는, 이사를 가기 위해 짐을 꾸리다가 다음에 이사를 들어올 그 사람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왔을 때의 느낌부터 곳곳에 배어있는 기억들을 더듬으며, 조카를 낳다가 죽은 언니를 기억한다. 「물 속의 사원」 그곳은 지금 텅 비어 있어요. 암흑입니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빗소리가 들리면 사람들의 눈은 불안하게 흔들립니다. 눈동자에 두려움이 일렁입니다. 그 때의 거친 숨소리 같은 물소리가 되살아나기 때문이지요. 그 때 휘어졌던 저 오래된 느티나무 가지가 아직도 회복이 안 된 상태입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올해는 그보다 더 센 태풍이 이곳을 강타할 것 같군요. 모르지요. 저 지하 다방에 다시 물이 들어차면 악어가 그녀와 함께 돌아와 있을지도, 그럴지도요. 「물 속의 사원」은, 서로 의지할 곳 없는 두 여자의 이야기이다. '최나영피부관리소'가 세들어 있는 건물과 그 주변의 거리를 무대로 삼인칭 시점으로 서술되고 있는 소설 속에서, 피부관리소의 마사지사로 일하고 있는 '그녀'와 우연히 그곳을 (어쩌면 그녀를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찾은 다방 여자, 그리고 그 다방 여자가 키우는 악어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그녀'와 다방의 수족관에서 악어를 키우는 다방 여자의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우정과 서로의 보살핌, 그리고 그녀들이 떠난 후에도 별반 달라 보일 게 없는 일 년 후의 그 거리가, 작가의 펜 끝에서 정밀묘사를 하듯 세밀하게 그려진다. 「달의 물」 그런 밤에 소변을 보러 뒤란 쪽의 문을 열고 나오면 검은 장을 품고 있는 이 항아리 속에 둥근 달이 홀로 떠 있었다. 바람이라도 불면 달빛은 은은하게 출렁거렸다. 그 동안 나는 이 항아리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동이를 찾으러 이 옥상에 올라와서도 휘휘 둘러보고는 아무것도 없구나, 생각하고 곧장 내려갔다. 새집이 지어지고 토란밭이 사라지고 이 항아리도 오랫동안 놓여 있던 자기 자리를 잃어버리고 옥상에 옮겨져 있었던 모양이다. 모두에게 잊혀진 채로. 「달의 물」은, 인간 사이의 상호소통체계의 소멸 원인으로 이 세상의 구석까지를 단 하나의 시스템으로 개편하고야 마는 모더니티의 원리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작품이다. 잠시 들른 고향의 모습은 예전의 그 고향이 아니다. 도시에서의 생활을 벗어나고픈 들뜬 욕망을 가지고 돌아온 고향 역시 이미 황폐한 도시로 변해 있는 것이다. 더 이상 편안하고 고요한 고향이 아닌 현실을 신경숙 특유의 조용하고 섬세한 묘사로 이끌어간다. 「혼자 간 사람」 마음이 텅 비어 있었어. 그렇게 아름다운 노을빛은 처음 보았다. 회색구름 사이로 사방으로 퍼져 있던 붉은빛이 어느 틈에선가는 위로 치솟으며 인도자처럼 먼 하늘로 길을 만들고는 한없이 흘러가는 것 같았어. 빛물결이었지. 저절로 눈이 감기며 마음이 간절해졌던 그 한순간에 나도 모르게 네 아이를 위해 기도를 했단다. 「혼자 간 사람」은, 먼 곳에 있는 친구에게 얘기하듯, 흘러가는 소설이다. 아이가 거의 시력을 잃은 친구와 통화를 하며, 주변의 이야기들, 기억들을 조용하게 따라간다. 「부석사」 그러나 자신에게 했던 사랑의 행동과 똑같은 행동을 다른 남자에게 조금도 다름없이 반복하는 K를 보는 순간, 그는 K와의 모든 끈이 툭, 끊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런 것이었나. K만의 것으로 여겼던 것. K의 냄새, K였기에 할 수 있었던 맹세, K가 아니라는 이유로 늘 뒷전으로 밀어 놓곤 했던 일들. 그런 것들이 이렇게 재생테이프처럼 반복되는 그런 것이었나. 「부석사」. 2001년 이상문학상 수상작. 한 오피스텔에서 사는 '그'와 '그녀'의 예정에 없던 부석사 여행을 따라가는 소설, 이상문학상 수상 당시 "음악적이고 회화적인 두 요소를 구사해 서사예술의 차원을 한 단계 높여준 수작"이라는 평을 얻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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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숙이 다섯번째 소설집을 묶었다. 1985년에 『문예중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 지 18년 만의 일이다. 짧은소설집까지 포함한다면, 소설책으로는 열 권째이다. 그 각각의 책들에 대한 평가를 차치하고라도, 신경숙 소설은 이제 우리 문학사에 소중한 개성으로 자리잡았다. 신경숙 소설의 특징이라 할 어떤 흐름이 있고, 신경숙의 문체라 할 독특한 빛깔이 있고, 신경숙이 바라보는 어떤 것, 그의 말을 빌자면 “말해질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응시가 있고, 아무튼 ‘신경숙 소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확실히 있고, 그것이 이제는 확고히 자리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소설집의 해설을 맡은 류보선은 “신경숙 소설은 어느새 또다른 영토와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한다. 왜 그런지는 류보선의 해설문을 참조하기 바란다. 재난의 강물에 스스로를 던져 인간의 흔적을 길어올리는 언어! 편집자의 눈길을 끈 것은, 이 책 곳곳에 넘실대는 물의 이미지였다. 그리고 그 물들은 단순한 소재나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작품 곳곳에서 중요한 메타포로 작동하고 있다. 아마도 신경숙은 물, 땅 속으로 아득히 이어져 우물로 솟아나는 물, 복개되어 콘크리트에 갇혀 흐르는 도랑물, 악어(다방 여자의 무덤이자 사원)가 잠겨 있는 물, 옛 항아리 속의 물, 인간의 도시를 휩쓸어버리는 홍수의 물 등을 통해 인간의 생과 세상의 괴로움과 덧없음을 그리고자 하지 않았을까 싶다. 성숙의 문턱을 넘어선 신경숙 소설의 새로운 미학! 이번 소설집에 담긴 신경숙의 소설세계는 분명 이전의 소설집들과는 다른 무늬를 띠고 있다. 그것이 류보선의 지적처럼, 친밀성의 부재, 관계의 단절 혹은 고독으로 현상하는 현대인의 불행한 실존을 다루는 신경숙 소설의 한 흐름과, ‘오래 전 집을 떠날 때’의 그 기억, 아우라, 풍경을 전경화하고 있는 또다른 흐름이 이 소설집에서 하나로 엮여들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기존의 작품들에서 각기 외따로 있거나 보완하기도 했던 두 개의 흐름이 이 책에서는 서로 격렬히 충돌하고 갈등하면서 한층 깊은 세계를 이루는 것이다. 확실히 신경숙 소설은 변모했고, 새로운 영역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이전의 그의 작품에서 고향은 삭막한 도시의 삶에 지친 작중 인물들을 푸근하게 감싸주던 공간이었지만, 이 책에서의 고향은 이제 이전의 고향이 아니다. 그것은 “노란 달을 품고 일렁이던 우물”이 메워져서 이제 아무것도 품을 수 없고 아무것도 낳을 수 없는 공간으로 형상화되어 있다. 우물에 일렁이던, 그리고 또랑을 정겹게 흐르던 추억의 물들은, 갇혀 신음하거나 서러운 넋을 품거나 무덤을 품은 물로 변모했다. 작중인물들이 모두 혼자 살거나 혼자나 다름없이 사는 삭막한 단절의 이미지로 일관하고 있는 점도 분명 이전 작품들과는 다른 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