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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_ 서문
들어가며_ 루비콘 강가에서 제1장 민중 가운데서 자란 왕의 후예 제2장 권력의 계단을 밟아 오르다 제3장 카이사르의 정치적 성장 제4장 혁신으로 대중을 사로잡다 제5장 갈리아 전쟁의 시작 제6장 계속되는 전쟁 제7장 브리타니아 원정 제8장 갈리아와의 마지막 전쟁 제9장 주사위는 던져졌다 제10장 반역자의 길이 영웅의 길이다 제11장 획기적인 돌파력으로 신중함을 이기다 제12장 전략적 동지 혹은 사랑했던 여인, 클레오파트라 제13장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제14장 새로운 로마를 위해 모든 것을 바꾸다 제15장 카이사르의 죽음 나가며_ 밸리포지 야영지의 카이사르와 카토 역자 후기_ 적에게도 관용을 베풀라 부록_ 카이사르 연표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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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의 관점에 따라 카이사르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웅으로 보기도 하고 악의 원흉으로 여기기도 한다. 중세의 시인 단테는 카이사르를 최고의 덕망을 갖춘 이교도의 반열에 올려놓은 반면 그의 살해를 주도한 브루투스와 카시우스에게는 지옥의 가장 밑바닥을 선고했다. 마크 트웨인은 카이사르가 이민족을 상대로 전쟁을 벌인 이유는 그들이 카이사르에게 해를 입혀서가 아니라 ‘카이사르 스스로 이민족들의 땅을 원했고 그곳에 살아남은 미망인들과 고아들에게 문명의 축복을 하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셰익스피어는 카이사르와 그의 살해를 도모한 자들을 모두 칭송하는 희곡을 썼다.
현대 학자들 역시 카이사르가 남긴 유산에 엇갈린 견해를 보인다. 그를 정당한 통치자라는 패러다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카이사르가 너무도 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갔으며 선거로 선출된 공직자들을 제압하고 황제의 통치권을 수립했다고 보는 냉정한 시선도 있다. 그러나 나는 카이사르를 지나치게 칭송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 사이에 묻어버리고 싶지도 않다. 그저 이 뛰어난 인물과 그가 살았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하는 이들에게 카이사르의 삶과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 뿐이다. --- p.6 카이사르는 로마의 한 주거구역인 수부라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수부라는 포룸에서 걸어서 얼마 되지 않는 곳에 있었는데 고귀한 율리우스 가문이었던 아우렐리아와 그 남편이 왜 이런 곳을 선택했는지 의문이다. 작은 계곡에 위치한 수부라는 장사꾼, 매춘부, 유대인을 비롯한 외국인 등이 주로 살았던 하층민들의 주거지였다. 새로운 가문과 인연을 맺었음에도 카이사르의 부모는 호화로운 팔라티노 언덕에 집을 구할 돈이 부족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카이사르는 30년도 넘게 수부라에서 살았기 때문에 같은 귀족계층의 친구들이 잘 알지 못할 로마 거리의 거친 삶에 친밀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훗날 그가 민중파 정치노선을 걸었던 것은 정치적 기회주의도 있겠지만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주위환경 탓이었을 확률이 높다. 그의 가족이 지저분한 수부라에 오래 살아야 했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카이사르는 평범한 로마인들의 삶과 애환을 잘 알고 있는 왕의 후예, 귀족이라는 독특한 개성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 p.26 카이사르는 먼저 분노에 사로잡혀 내린 결정은 종종 결함이 생김을 의원들에게 환기시키며 장중한 연설을 시작했다. 또 과거 원로원은 열정보다는 신중한 분별력에 따라 현명하게 행동했으며 그래야만 원로원의 입지도 강화되고 나라도 안정된다는 의견을 펼쳤다. 카이사르도 물론 역모 주동자들이 명백히 유죄이며 로마를 전복시키려 한 자들은 어떤 일이 있어도 동정할 가치가 전혀 없다고 인정했다. “원로원 의원 여러분, 저 또한 이런 자들에겐 어떤 처벌을 내려도 가혹하다 말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누구보다 평민과 미래의 후손들이 현재 원로원의 행동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해야 할 중요한 순간임을 강조했다. “문제는 사람들이 오직 마지막에 일어난 일만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생각 없는 사람들은 이 죄인들이 저질렀던 사악한 행동을 살피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우리로부터 받은 처벌만 생각할 것입니다. 그 처벌이 도를 넘어서게 혹독하다면 말입니다.” --- pp.105-106 “내가 이끌고 온 이 현장에 의문을 품는 그대들은 과연 누구인가? 그대들은 로마의 병사, 세계 최고의 군대가 아니던가? 그대들은 사령관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 하며 내가 옳다고 판단한 전투라면 그곳이 어디라도 부하를 이끌고 따라와야 한다. 만약 아리오비스투스가 내 말을 귀담아 듣는다면 그 어리석은 자와 싸움을 벌일 이유도 없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 싸움을 벌여야 한다고 해도 그대들이 두려워할 이유가 과연 무엇이란 말인가? 그대들의 할아버지들이 전쟁터를 누빌 때 마리우스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게르만인을 물리쳤다. 그리고 그대들은 얼마 전 게르만인을 상대로 수도 없이 승리를 이끌었던 헬베티족을 정복한 군대다. 아리오비스투스란 작자는 늪지대에 몰래 숨어 있다가 숲 밖으로 튀어나오는 산적 떼처럼 겁이 많은 사람이다. 그런 자는 전쟁터 한복판에서 우리 군의 손에 무너져 내릴 것이다. 그대들은 나를 따르지 않겠는가? 좋다, 우리는 오늘 밤 군장을 꾸리고 아리오비스투스를 향해 진군할 것이다. 만약 로마인의 의무와 영예가 지닌 의미를 모르겠다면 그대들은 겁쟁이니 여기 그대로 머물러 있길 바란다. 나는 제10군단만 이끌고 갈 것이다. 이들은 언제나 내 곁을 지키고 서 있었던 용감무쌍한 병사들이다. 그대들이 수치스럽게 집까지 기어가는 동안 우리는 게르만을 정복할 것이다.” --- pp.193-194 1월 10일 로마의 소식이 라벤나의 카이사르에게도 날아들었다. 그는 키케로가 폼페이우스의 마음을 바꾸는 데 성공하기를 바랐지만 카토와 원로원 보수파가 절대로 타협안을 허락하지 않을 것 또한 잘 알았다. 회담이 결렬되었기 때문에 이제 곧 폼페이우스와 원로원이 세력을 규합해 이탈리아 북부까지 진격할 게 분명했다. 지중해 지역을 가로지를 거대 병력을 조직하려면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진격이 현실이 된다면 카이사르로서는 도저히 이길 수가 없었다. 결국 카이사르는 원로원 보수파가 전혀 예측하지 못할 일에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다. 단 한 개밖에 없는 군단을 이끌고 직접 이탈리아로 공격해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는 누가 봐도 절망적이고 어리석은 행보였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기습공격과 군단의 속도가 결합하면 원로원의 허를 찌르고 폼페이우스를 로마에서 몰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카이사르는 마차를 타고 루비콘 강가로 나갔다. 낮에는 라벤나에서 늘 하던 대로 일상을 보내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만찬을 들며 원로원 첩자가 보기에도 평상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냈다. 불어난 물살이 흘러가는 루비콘 강둑에 서서 카이사르는 잠시 망설였다. 속주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 모든 게 돌이킬 수 없게 되겠지만 마침내 그는 내전을 향해 과감히 몸을 던졌다. --- p.333 카이사르는 앞, 뒤, 옆 모두 스무 차례가 넘게 찔린 뒤 엄청난 고통과 출혈로 비틀거렸다. 그 순간 브루투스가 단검을 높이 치켜들고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필사적으로 의원들과 맞서보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았던 카이사르는 브루투스가 다가오자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불멸의 대사 “브루투스, 너마저?”와는 달리 실제로 카이사르가 남긴 마지막 말은 브루투스를 향한 그리스어 속삭임이었다. “아들아, 너도(Kai su, teknon)?” 카이사르는 이 말만을 남기고 토가로 얼굴을 감싼 뒤 폼페이우스 석상 발치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 p.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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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를 세계적인 제국답게 만들다
로마 제국의 기틀을 다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천재, 카이사르 카이사르의 삶에 대한 균형 잡힌 시각을 보여주는 역사서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대해서는 상반된 평가가 공존한다. 민주주의를 보여준 공화정을 무너뜨린 인물로 보는가 하면 제정(帝政)의 기반을 마련한 이상적인 왕으로 보기도 한다. 이번에 새롭게 발간된 ‘카이사르: 제국을 만든 남자(필립 프리먼 지음, 이주혜 옮김, 21세기북스)’는 카이사르를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 보지 않는다. 저자는 “카이사르를 지나치게 칭송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 사이에 묻어버리고 싶지도 않다”고 말한다. 대신 카이사르가 살았던 로마와 그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물론 카이사르에 대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로마인 이야기’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를 위대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로 잘 표현했다. 하지만 그 책은 카이사르를 너무 미화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후 나온 에이드리언 골즈워디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정통 로마학자의 연구서다. 그러나 이 책은 연구 쪽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식으로 서술되고 말았다. ‘카이사르: 제국을 만든 남자’는 이 두 책과는 달리 균형을 잘 잡고 있다. “이 뛰어난 인물과 그가 살았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하는 이들에게 카이사르의 삶과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저자의 생각처럼 이 책은 카이사르에 대해 균형잡힌 시각으로 전체적인 조망을 하고 있다. 카이사르, 관용과 소통으로 제국을 창조하다 이 책은 루비콘 강가에서 고민하는 카이사르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그가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은 반역이었고, 선전포고였다. 하지만 루비콘 강을 건너지 않는다면 그 자신이 몰락하리라는 것 역시 뻔했다. 고민 끝에 그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넌다. 카이사르의 어린 시절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현재 전해지는 자료는 열여섯 살 이후의 기록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카이사르가 어렸을 때의 시대 정보는 상당히 많이 전해져 내려온다. 저자는 그 시대 정보를 기반으로 카이사르의 어린 시절을 재구성한다. 또한 그의 어린 시절이 이후 정치적 행보에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지도 분석한다. 즉, 그가 하층민들이 사는 곳에서 자랐기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잘 알았고, 그것이 그가 민중파 정치 노선을 걷게 된 가장 큰 원인이라는 것이다. 열여섯 살의 성인이 된 카이사르는 공적인 생활을 시작한다. 결혼도 하고 유피테르 신의 최고사제가 되어 원로원에도 참석하게 된 것이다. 이후 여러 위험을 이겨내고 차근차근 정치적 경력을 쌓아 간다. 군사호민관으로 시작해 재무관, 안찰관, 법무관, 집정관에 이르는 ‘명예로운 경력(cursus honorum)’의 단계를 밟아나간 것이다. 하지만 카이사르의 진가는 갈리아 전쟁에서 발휘된다. 사납고 거칠기로 유명한 갈리아인들을 상대로 이겼을 뿐만 아니라, 게르만인들이 더 이상 밑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기까지 했다. 또한 전설로만 전해져 내려오던 브리타니아 원정을 통해 서유럽 전체를 로마의 품안으로 끌어들였다. 카이사르가 이렇게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로마인들이 ‘클레멘티아(clementia)’라고 불렀던 관용 때문이다. 갈리아에 부임해 지역민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그들이 말에 귀 기울이는 그의 관용 정책은 원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힘이었다. 먼저 항복하는 적에게 관용을 베푸는 것을 철저한 원칙으로 삼았기에 적들은 결사항전보다는 항복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의 관용 정책이 무조건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카이사르에게는 두 번의 관용은 없다”를 원칙으로 삼아 항복 후 다시 배반하는 적을 철저히 응징했다. 카이사르가 전쟁을 통해 이룬 성과는 로마 원로원 의원들에게 위기의식을 심어준다. 그의 힘이 너무 강해져 견제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원로원은 카이사르의 사위였던 폼페이우스를 통해 그를 견제하려 한다. 목숨까지 위험하게 된 카이사르는 루비콘 강을 건너고, 로마는 내전에 돌입한다. “행운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가끔은 의지로 행운을 굴복시킬 필요가 있다”는 카이사르의 말처럼, 그는 자신보다 훨씬 강한 힘을 지니고 있던 폼페이우스군을 획기적인 돌파력으로 이긴다. 그의 가장 강력한 적수였던 폼페이우스는 이집트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그러나 빛이 강하면 어둠 역시 짙어지는 법. 카이사르의 승승장구는 그의 종말을 바라는 사람 역시 늘어나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그 결과, 카이사르는 폼페이우스의 석상 밑에서 장렬한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카이사르는 이후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세 유럽의 왕실에서는 그를 이상적인 왕의 본뢺기로 삼았다. 그 결과 그의 이름이 왕을 뜻하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카이저라는 칭호를, 러시아에서는 차르라는 칭호를 썼다. 근현대에 들어서면서 절대왕정을 부정하는 일환으로 카이사르에 대해 독재자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카이사르에 대해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한 가지는 동의한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은 카이사르였다.” 카이사르가 살았던 시기와 지금은 2000년이 넘는 간극이 있다. 하지만 그때 로마나 지금이나 인간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시대를 뛰어넘는 위대한 영웅을 만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