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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의 잠
삐비꽃 여인 은규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망배(望拜) |
李舜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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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의 잠
몇 년 동안 사귄 여자와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한 대학의 교수인 '나'는 학교 제자, 친구의 아내 등이 계속해서 자신이 가지 않았거나 혹은 자기가 갔던 장소지만 그 시간과 그 날짜가 아닌 곳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그러다, 지방에 강의를 가게 되어 들은 '화전민' 등등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바내'라는 이름을 기억해내는데……. 삐비꽃 여인 첫 아이를 잃은 아픈 과거를 가진 '그'는 정신적인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 점집에 다녀온 아내의 말을 듣고, 예전 군 복무 시절에 만났던 한 미친 여인을 떠올린다. 그리하여 뭔가 자신의 소중한 무엇을 놓고 오고도 무엇을 놓고 온지조차 모르고 있는 것을 꼭 보고 올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에 군 부대가 있는 그 마을로 떠난다. 그곳에서 한 아이를 만나게 된다……. 은규 세상 물정을 잘 몰랐던 조각가 '그'는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형사들이 물어, 은동과 중국 여행 길에 우연히 두 번씩이나 만나게 되었던 '은규'라는 이름의 한 여인과의 인연을 떠올린다. 이혼한 그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많은 아픔을 간직한 듯한 여인 '은규'는 중국에서 결국 몇 번의 섹스를 나누었지만, 여행 길에 그 여인은 행방불명 된다. 서울로 돌아온 그는 그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그 일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어하는 '은규'라는 여인의 언니가 그를 찾아와 그가 작업하고 있는 조각상을 보자 그가 몰랐던 사실을 알려준다.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도근이 아저씨의 부음을 듣고 고향 마을에 내려온 소설가 '나'는 평생을 도근이 아저씨의 노름 밑천을 대주었던 재종숙부 '해파리 아저씨'를 떠올린다. 몸도 성치 않았지만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았던 해파리 아저씨와 그 아저씨와의 추억들은 주인공 '나'에게 평생 잊혀지지 않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는데……. 망배(望拜) 할아버지의 제사에 내려가지 못한 주인공 '나'는 시골집에서 벌어지고 있을 할아버지의 제사 순서에 맞춰 집에서도 똑같이 제사를 지내는 '망배(望拜)' 의식을 행한다. 그러면서, 어렸을 때부터 보아왔던 수많은 제사나 장례 의식의 변화를 떠올리며 속상해 한다. 나는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세월의 흐름과 시속의 변화에 따라 사라진다는 것을 아쉬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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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름을 더하며
큰 산이 아니더라도 내 문학이 작은 골짜기 하나라도 이룰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그것 역시 소박함으로 가장한 턱없는 욕심이다. 그래서 다시 욕심을 줄여 그 골짜기 안에 푸르게 서 있는 한 그루의 나무이길 바란다 해도 우리 삶에, 우리 문학에 작품으로 푸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다만 바라거니, 이 소설들이 누구의 가슴엔가 따뜻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 산도 골짜기도 푸른 나무가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가슴을 아련하게 덮을 따뜻한 삶에 대한 그리움의 노래였으면 좋겠다. 함께 그런 노래를 부른 든든한 독자가 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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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한 작가 이순원. 등단한지 십여 년이 지난 그는 참으로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창작활동을 해왔다. 작품 세계의 다양성에서도 그렇지만, 그 분량에서도 이순원의 소설은 우리 문단을 풍성하게 만든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가 그 길에 서 있으며 여전히 반성과 변화를 모색한다는 점에서 그의 소설과 그를 바라보는 문단과 독자들에게 든든함을 선사한다. 그런 작가가 오랜만에 내 놓은 소설집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는 누이가 죽고, 화전을 일구며 양귀비를 재배하던 아버지마저 잃고 고아가 된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잘 보여주는 「아비의 잠」, 권위적이고 답답했던 군대 복무 시절 알게 된 한 미친 여인과의 인연을 담아낸 「삐비꽃 여인」,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상처 입은 두 남·녀의 못다한 인연의 끈을 이야기하고 있는 「은규」, 주인공의 눈에 비친 친척 아저씨의 여리고 아픈 상처를 간직한 일대기가 읽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는 표제작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시속(時俗)을 따라가며 우리가 버린 것 가운데도 아름다운 그 무엇이 있었다는 것을 담담하게 말하는 「망배(望拜)」 등 주옥 같은 이순원의 신작 중·단편들이 묶여져 있다. 또한, 이 다섯 편의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소설들은 다채로운 이순원의 은연(隱然)한 미학이 아슬아슬하게 삶의 비경을 보여준다.
이 책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별, 즉 떠난 사람에 대하여 또는 잃어버린 소중한 것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아련한 슬픔을 따스한 시선으로 전환시키는 마술을 부리고 있다. 그리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고향을 대하는 듯한 편안함과 함께 우리네 굴곡진 현대사라는 거대 서사와 개인적인 이야기가 조화를 이루어 내면의 성찰까지 가능하게 하는 이순원 소설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순원의 소설들은 "다양한 이야기와 그에 걸맞은 각기 다른 문체를 선보였지만, 어느 경우에나 그의 소설은 흐름이 자연스럽고 호소력이 있는 안정된 문장과 잘 짜여진 이야기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소설이 갖추어야 할 기본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 작가이고, 의식적인 노력과 착실한 훈련을 통해 그것을 체득한 작가이다. 그의 소설이 주는 신뢰감은 우선 여기에서부터 나온다고 할 수 있겠다."(박진, 문학평론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자전적 기억 속에 투영된 풍경화 같은 아름다운 단편 문학의 정수! 누구에게나 고향이 있다. 몸의 고향과 마음의 고향. 그곳은 우선 떠나왔기에 그리운 서정의 공간이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기에 풍요로운 서사의 공간이다. 동시에 언젠가는 되돌아가야 할 영혼의, 그래서 종교적인 공간이다. 서정의 공간은 나를 따뜻하게 하고, 서사의 공간은 나를 성찰하도록 이끌며, 종교적 공간은 나의 영혼을 품어 안아 정화시킨다. 존재의 집이라고 부를 이 공간을 되살려내는 일에 있어 이순원은 뛰어나다. 엄정함과 따스함과 함께 일상을 넘어서는 운명의 자리를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사랑과 이별, 올바름과 그름, 이 생(生)과 저 생(生)이 교차한다. 하지만 그 모든 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하고, 또 마침내는 나와 함께 지워진다. 그런, 어쩔 수 없는 슬픈 운명의 자리를 적는 것, 그게 이순원의 문학이 지니고 있는 장소의 푯말이다. 작가에게는 그래서 고향이 하나 더 있다. 말의 고향이 그것이다. 이 소설집에 오면 작가의 그 말의 고향이 어디인지가 더욱 뚜렷해진다.-박철화, 문학평론가 이순원의 소설 중에는 영화화 된『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1995)를 비롯하여 TV 드라마와 연극 등 많은 작품이 영상화 되었다. 그가 비록 토속적이고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와 주제를 가지고 소설을 쓰기 때문에 편안하게 느껴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가 제시하는 이미지들은 시각적 직접성을 초월해 깊이와 울림과 개인적인 것과 역사성의 다층적 생성을 가능케 하는 창조적 공간을 생산해낸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상상력이 팽팽하게 살아 움직이는 소리의 이미지로 우리 앞에 현현(顯現) 된다. ……(중략)…… 그러나 느닷없는 충동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옛날, 내가 모르기도 하고 알기도 할 어느 사내와 계집도 이 길을 따라 야반도주를 하던 중 이 탑 연화석에 몸을 받치고 서로의 몸을 섞었을지 모른다. 그리고 사내는 말했을 것이다. 자, 또 올라가자. 그때까지만 해도 계집은 도리 없이 그 말을 따랐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자락을 넘고 다시 무수한 산과 강을 건너 멀리 멀리 설악산 밑자락까지 흘러 들어가 그곳 어느 깊은 산에 불을 지르고 화전을 일구었을지도 모른다. 그곳 역시 내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한 곳이었다. "그만 내려가요." 그녀를 따라 비척비척 아래로 내려올 때, 다시 그 길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바내야. -「아비의 잠」중에서 이러한 장면에서, 한국전쟁이라는 비극적인 역사의 문제와 그로 인한 개인적인 슬픈 가족사가 맞물리면서 삶이 사랑과 고통을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독자들은 '가시적인 세계마저 별 의미 없이 지우고 있는 광막한 공간의 이미지 속에 본능적으로 삶과 죽음의 흔적을 불어 넣는 소리'를 통해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이렇듯 이미지는 소리를 부르고 소리가 다시 이미지를 생성하는 이러한 조화와 균형은 이순원의 소설이 자주 영상화 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또한, 이순원의 작품의 배경은 대부분 고향, 강원도 강릉에서의 기억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가 쓴 연보에도 "지금은 강릉으로 내려갈 때마다 정신의 무장해제를 당하여 전혀 원고를 쓸 수가 없다 .언제나 청산할 것인가. 이 전쟁터 같은 타관 생활……." 이라며 고향을 떠나있음에 대한 부채의식이 드러난다. 이것은 특히, 표제작「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나 「망배(望拜)」에 잘 드러나고 있다. 언젠가 내가 발표한 어떤 소설을 두고 거기에 노새 이야기가 나오고 봉평 장터 이야기가 나오고 하니까 사람들은 대번에 「메밀꽃 필 무렵」의 패러디가 아니냐는 말들을 했지만, 사실 내게 그 소설을 쓰게 했던 사람도 가산(可山) 이효석이 아니라 수모(水母, 해파리) 이세일 아저씨였다. 그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메밀꽃 필 무렵」에 나오는 '허생원'보다 내 곁에 더 가까이 한 세상을 살았으며 나와 그리 멀지 않은 피를 나눈 그 재종숙부만을 생각했다. -「그가 걸음을 멈추었을 때」 중에서 더 많은 눈물은 다음 날 할아버지의 상여를 따라나가면서 쏟아졌다. 유월장으로 치룬 할머니의 십구일장과 할아버지의 삼일장 속에 세월이 이렇게 달라져 가는구나를 느끼고, 그렇게 달라져 가는 세월 속에 할아버지가 가시는구나 싶어 펑펑 눈물이 쏟아지던 것이었다. 할아버지의 상세도 서럽고, 그때와는 달라진 삼일장의 조촐하고도 쓸쓸한 풍경도 왠지 모르게 나를 서럽게 하던 것이었다. ……(중략)……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어릴 때 내게 익숙했던 많은 것들이 다 그렇게 할아버지를 따라 떠나가고 있는 것이었다. -「망배(望拜)」 중에서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작품이 고리타분하다거나 "우리 것을 지켜야 한다"는 보수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토속적인 이러한 정서와 은일한 문체가 상기시키는 이러한 장면들은 모두에게 혹은 어느 한 개인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며, 그러한 상처를 내밀하게 그려낸 이순원만의 풍경화는 완연히 드러나는 '삶'이라는 궁극적 표정들을 더 자세히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작가 개인의 사적 체험을 소재로 하면서도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르지 않고 보편적 가치의 차원으로 확대시키는 힘을 가진 이러한 이순원의 풍경화는 그래서 어떤 때는 가열찬 발언이 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시적 눌변의 정지된 독백이 되기도 한다. 물론 두 풍경 모두 한국 단편 문학이 보유하는 경이로운 자산임에 틀림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