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강력추천
빈곤론
양장
원제
貧乏物語
베스트
사회 정치 top100 1주
가격
15,000
10 13,500
YES포인트?
75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책소개

목차

가와카미 하지메는 누구인가
머리글

상편∥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가
가난한 사람이란 누구인가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존재하는가
가난은 사람을 얼마나 불행하게 하는가
가난과 싸울 준비가 되었는가

중편∥왜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가
오늘의 인간을 만든 것은 무엇인가
가난은 인류사의 숙명인가
빈곤의 악순환은 어디에서 오는가

하편∥어떻게 해야 가난을 근본적으로 퇴치할 수 있는가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인간은 자유방임 경제에서 행복해질 수 있는가
개인의 자유는 영구불변의 가치인가
항산(恒産)이 없는 곳에는 항심(恒心)도 없다
유한계급의 사치는 사회적 죄악이다
궁핍한 시대에 도덕을 논하다

부록∥로이드 조지
해설
역자 후기

저자 소개 2

가와카미 하지메

관심작가 알림신청
 

Hajime Kawakami,かわかみ はじめ,河上 肇

일본의 경제학자이자 사상가. 근대 일본 경제학의 전기(轉機)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되는 가와카미 하지메의 생애와 사상에는 당대 역사가 부여한 영광과 상처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1879년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교토대학 교수로 학생들의 신망을 받던 그는 1928년 좌경사상을 유포한다는 이유로 대학 당국의 압력을 받아 교직에서 쫓겨났다. 이후 정치운동에 투신, 1932년 공산당에 입당하여 지하활동을 전개하다가 검거되어 5년 형을 선고받고 1937년까지 옥중생활을 했다. 비전향의 태도를 관철했지만, 실천의 장에서 퇴각한 마르크스주의자는 스스로 ‘전향의 대가
일본의 경제학자이자 사상가. 근대 일본 경제학의 전기(轉機)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되는 가와카미 하지메의 생애와 사상에는 당대 역사가 부여한 영광과 상처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다. 1879년 야마구치 현에서 태어나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교토대학 교수로 학생들의 신망을 받던 그는 1928년 좌경사상을 유포한다는 이유로 대학 당국의 압력을 받아 교직에서 쫓겨났다. 이후 정치운동에 투신, 1932년 공산당에 입당하여 지하활동을 전개하다가 검거되어 5년 형을 선고받고 1937년까지 옥중생활을 했다. 비전향의 태도를 관철했지만, 실천의 장에서 퇴각한 마르크스주의자는 스스로 ‘전향의 대가’를 짊어져야 한다는 뜻에서 석방 후 ‘폐호한인(閉戶閑人)’을 자처하며 칩거, 자서전 집필과 『자본론』번역을 완성하는 일에 몰두한다. 1945년 패전 후 활동을 재개하려 했으나 영양실조에 급성폐렴이 발병, 이듬해 1월 사망했다.(향년 67세)

가와카미 하지메의 다른 상품

연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졸업 후 도쿄외국어대학교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연세대학교에서 강의하며 번역 작업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환상의 빛』, 『수상한 신호등』, 『케첩맨』, 『괴물원』, 『나는 달걀입니다』 등이 있다.

송태욱의 다른 상품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08월 1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494g | 153*224*20mm
ISBN13
9788996217572

출판사 리뷰

‘빈곤’과 정면대결을 선언한 근대 일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대부 가와카미 하지메의
기백 넘치는 명작을 100년이 지난 오늘 다시 읽는다


고전이 한낱 처세의 교본으로 전락한 시대에 선보이는
곧은 정신의 기록

“앞으로 나는 합법, 비합법을 불문하고 실제 운동하고는 완전히 관계를 끊고 애초의 서재로 돌아가 은거하겠다. 이것이 현재 나의 결의이다. 나는 지금 이러한 결의를 공언하고, 이 발언에 사회적 효과를 부여함으로써 공산주의자인 나를 내 손으로 매장한 것이다.”
-가와카미 하지메, 「옥중독어(獄中獨語)」중에서

하나. 파란(波瀾)과 역경으로부터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최대 스타이자, 교토제국대학 경제학부 교수로서 ‘교토대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었던 가와카미 하지메. “명성이 교토대 경제학부를 압도하여, 경제학부의 가와카미인지, 가와카미의 경제학부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던, “추앙의 대상으로 지나가는 학생들이 집을 향해 탈모하고 경의를 표하던” 가와카미는 좌경사상을 유포하며 당에 거액의 자금을 제공한 데다 당대 최고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라는 위치로 인해 체포된 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5년 형을 선고받아 1937년까지 감옥생활을 했다.
풍경은 여기서부터 갈린다. 당이 풍비박산 나고,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지도적 인사들이 노선의 오류와 과오를 인정하며 전향서를 제출하는 사태가 이어지는 가운데 나이 들고 깡마른 육신의 백면서생 가와카미는 이런 난감한 상황 앞에서 그만의 특유의 포즈를 취하게 된다. 그는 우선 “미진하긴 해도 30년 세월의 고난을 뚫고 온 나의 학문적 신념이 불과 반년의 감옥생활에 일찌감치 동요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비전향의 자세를 견지하려 한다. 설사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 하더라도, 그는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삶의 방식이 진리이며 올바른 길이라고 승인되지 않는 한 결코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공산당 입당이 승인되었을 때, “나는 로샤(로자 룩셈부르크)같은 용기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보다 더 나이가 들어 비로소 입당 기회를 얻고서 로샤처럼 울었다(『자서전』)”고 회고하던 그였다.
가와카미의 오랜 지적 방황과 사상변천사는 오히려 감옥의 사유 안에서 통합되고, 그의 독창적인 윤리적 마르크스주의 역시 여기서 완성된다. 하지만, 이 ‘일본적 마르크스주의의 가능성’은 가와카미의 생전 온전히 실현되지 못한다. 석방 후 칩거하며 자서전 집필과 『자본론』 번역의 완성에 매진하던 그는 일본 패전 이듬해인 1946년 1월, 영양실조에다 급성폐렴이 겹쳐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기모노 입은 마르크스주의자’ 가와카미는 그리하여 일본 근대 사상사의 신화 속으로 들어갔다.

둘. 신화(神話) 이전―방황과 탐구의 나날들

가와카미 하지메의 생애와 정신사는 단호한 ‘몰입’과 ‘단절’, 그리고 수없이 ‘거듭나기’를 시도하는 구도자적 집요함으로 특징지어진다.
이와 관련된 두 가지 삽화가 있다. 1901년 어느 겨울날, 아시오(足尾) 광산 광독사건 지원연설회에 학생 신분으로 참가하였다가 그곳에서 입고 있던 외투와 하오리(羽織) 등을 벗어 기부해 버린다. 그것을 본 노부인이 그렇게 옷을 모두 벗어버리면 감기에 걸린다고 만류했지만 그는 아무 말 없이 그 자리를 떠났고, 다음날 다시 그는 입고 있는 옷만 빼고 집에 있던 옷가지들을 모두 챙겨 다시 기부해 버린다. 혹시 정신이상자가 아닌가 하여 조사해본 결과 그 청년은 도쿄제국대학 재학생. 이 에피소드는 『도쿄마이니치신문』에 기사화된다. 그리고 1905년 무렵, 도쿄대 농과대학 강사였던 26세의 가와카미는 『요미우리신문』에 「사회주의평론」을 연재하고 있었다. 그의 글은 신문 발행부수가 네 배로 늘어날 만큼 인기를 끌었지만, 절대적 이타주의를 내세운 무아애(無我愛) 운동에 공명, 연재를 중단하고 강사직도 그만 둔 채 아예 이들 종교단체로 들어간다. 그러나 그로부터 반년 뒤. 구체적인 실천이 없는 이 집단의 ‘신선놀음’에 실망한 가와카미는 무아애주의를 더없는 사교(邪敎)로 탄핵하고 그곳에서 나와 버린다. “그것이 진리라고 생각되면 무상(無上)의 명령에 응소하는 마음가짐으로 몰두하지만, 몰두한 상대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그 순간 일체의 진행 상태에 구애받지 않고 단호하고도 즉각적으로 그것을 버린다. 이것이 내 인격의 본질이다.”(『자서전』) 이것이 바로 가와카미 하지메이다.

1916년 9월부터 12월까지 『오사카아사히신문』에 연재되고, 1917년에 책으로 묶여져 나온 『빈곤론(貧乏物語)』은 가와카미의 그때까지의 학문적 방황과 진화과정의 결산서였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전으로 벼락부자가 생겨나는 반면, 물가폭등 속에서 빈자들이 속출하는 일본 사회 한복판에 던져진 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일본 경제학의 전기(轉機)를 알리는 전주곡’이라고 평가받는다. ‘빈부격차의 시정(是正)’, ‘경제조직의 개조’, 그중에서도 ‘부자의 사치근절’을 주장하는 이 책은, 그러나 가와카미 경제학의 빛나는 성취이면서 동시에 그림자였다. 이 빛과 그림자를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일(극복할) 것인가는 가와카미 개인의 문제이면서 일본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발전방향과도 관련된 일이었다. 일본 마르크스주의는 가와카미의 도덕주의적(혹은 윤리주의적) 경향(『빈곤론』 이후로도 줄곧 지속된)을 비판하는 방향으로 성장하고 정립되고 갔다고 할 수 있다.

셋. 윤리적 마르크스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서

가와카미 하지메의 이름으로 된 『빈곤론』은 두 권의 책이 있다. 하나는 약육강식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자의 사치근절’을 대안으로 주장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는 이유로 폄하되었던 지금까지 언급한 바로 이 책이고, 다른 하나는 마르크스의 사적 유물론에 입각하여 인류(좁게는 일본사회)의 경제사적 발전과정을 설명한 『빈곤론 2』이다. 이론적 설명의 명쾌함으로만 따지면 단연 후자의 책이 눈길이 가겠지만, 우리는 기꺼이 허물투성이의 전자를 택했다.
이유는, 이와나미 쇼텐(岩波書店)에서 나온 36권의 가와카미 하지메 전집 중에서 『빈곤론』이 단연 최고의 베스트셀러여서도 아니고, 21세기의 오늘이 이론적 마르크스주의의 완전히 종언을 고한 시대여서도 아니다. 우리가 1917년 『빈곤론』을 우선 선보이려는 것은, 다름 아니라 이 책에 담긴 인간의 불행을 대면하는 정신적 거인의 뜨거운 인간애와 빈곤으로 인해 인간의 존엄 무너져가는 현실 앞에서 전율하는 윤리주의자의 예민한 감성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절실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말미에는 “살아서 걸어가는 가와카미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격한 나머지 소리 없이 술렁거리는 대열” 속에 있던, 당시 오사카 상대 학생이었던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의 해제가 실려 있다. 오늘 우리를 다시 술렁거리게 하여 고통 받는 인간 조건으로 눈을 뜨게 하고 윤리적 결단으로 이끌 언어와 사유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여기 한국 사회에 제출하는 가와카미 하지메의 『빈곤론』에는 오늘의 빈곤을 극복할 유용한 방책 같은 것은 없다. 다만 이 책에는 빈곤과 온 몸을 던져 정면으로 대결하려던 한 윤리주의자의 정신과 태도만 살아서 꿈틀거리고 있을 뿐이다. “백 년 전 사람이 묻는다. 왜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가난한가?”

추천평

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던 1950년대 중반, 서울로 유학 온 나의 유일한취미는 동대문과 청계천의 고서점을 돌아다니는 일이었다. 가와카미의 『빈곤론』을 발견한 것도 그 무렵 한 고서점의 책 더미 속에서였다. 자장면 한 그릇 값을 주고 산 이 책을 밤 새워 읽고 난 뒤 나는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것을 느꼈고, 이후 심지어는 이 책을 읽었는가를 따져 친구를 사귀는 잣대로 삼기까지 했다. 그 아련한 옛 시절 기억 속의 책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나온다는 사실을 듣고 느끼게 되는 감회는 한 가지이다. 그렇다. 이 시대는 다시 인간과 사회의 현실을 고민해야 하는 궁핍의 시대인 것이다.
신경림(시인, 동국대 석좌교수)
가와카미 하지메가 『빈곤론』을 쓰고, 감옥행을 무릅써야 했던 20세기 초·중반의 일본과 오늘의 한국 사회는 얼마나 다른 것일까. 대량해고의 위협과 인간 노동이 한 번 쓰고 버려지는 일회용품으로 전락해버린 한국적 현실을 두고, 빈곤이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리는 사실 앞에 전율했던 이 위대한 도덕적 사회주의자는 어떻게 반응했을까. 문제는 빈곤과 정면으로 맞서려는 치열한 정신이 일거에 이 땅에서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진실로 두려운 것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고 사회적 약자들마저 서로를 적대하게 되는 현실이 도래할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명성만으로 찾아 읽었던 가와카미의 책이 도덕주의가 과도하다고 느꼈던 내가 다시 그의 글을 되돌아보게 되는 까닭이다.
노회찬(진보신당 대표)

리뷰/한줄평0

리뷰

첫번째 리뷰어가 되어주세요.

한줄평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