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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Marie-Gustave Le Clez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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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모든 것을 벗어 버리고
“프리즘의 가장자리”로 훌쩍 날아간 소녀의 이야기 시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 “륄라비(lullaby)”라는 이름의 소녀는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한다. 아버지는 먼 나라에 가 있고 어머니는 사고를 당해 병석에 누워 있다. 그런 륄라비에게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결심은 완전한 혼자가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륄라비가 학교 대신 찾아간 곳은 드넓은 바다. 륄라비는 자신이 있는 곳을 “일인용 바닷가”라 부르며 아빠에게 편지를 쓰고, 실컷 수영을 하고, 마음껏 거닐며 시간을 보낸다. 륄라비의 “가출”은 낯선 것, 닿을 수 없는 것을 향한 열망에서 비롯된다. “ECHO SUPER VAMPER MADE IN GERMANY”라는 글씨가 적혀 있는 작은 하모니카(자신의 것이 아닌), 그 하모니카에 새겨져 있는 “david”라는 이름(누구인지 모르는)과 같은 낯선 물건을 소중히 지니고, “프로콤 사 페르도브스키 가 84번지 테헤란, 이란”이라는 주소(갈 수 없는)로 끊임없이 편지를 보내는 륄라비가 지금 바라는 것은 익숙한 무언가가 아니다. 그리하여 소녀는 가족, 친구, 학교라는 익숙한 모든 것을 벗어 버린다. “지배적인 문명 너머 또 그 아래에서 인간을 탐색한 작가”로 평가받으며 2008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산과 바다와 태양과 대지 사이에서 자발적 유배자의 삶을 살며 글을 쓰는 작가 J. M. G. 르 클레지오의 이력을 아는 독자라면 륄라비의 “벗어 버림”이 도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짐작할 것이다. 륄라비는 단순히 학교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학교로 대표되는 도시와 문명을 벗어 버리고 자연으로, 문명의 낯선 여백으로 떠난 것이다. 륄라비는 이제 학교 생각을 하고 있지 않았다. 바다는 그런 것이다. 그런 식으로 지상의 일들을 지워 버린다. 왜냐하면, 바다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본문 17쪽 중에서) 르 클레지오 식 표현으로 “프리즘의 가장자리”인 그곳에서 륄라비는 다음과 같은 글귀 를 발견한다. 나를 찾아보시오. 시멘트 플랫폼에 분필로 커다랗고 삐뚤빼뚤하게 쓰여 있는 이중적인 의미의 글귀는 륄라비의 여행이 “자신을 찾는 여행”임을 어렴풋이 암시한다. 예민한 독자들이라면 륄라비가 암벽을 타다 발견한 “용기를 잃지 마시오!”나 “아마도 물고기 꼬리로 끝날 일”(호라스의 문구에서 유래한 숙어로, 우리말 “용두사미”나 “허탕”에 해당한다.)이라는 글귀 또한 나를 찾는 여행에 대한 흥분과 불안을 담아낸다는 것을 알아차릴 것이다. 륄라비는 우연히 “카리스마”(그리스어로 “은총”, “은혜”라는 뜻)라는 이름의 그리스 식 집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또한 발견하게 된다. 비행(飛行) 속에서 찾은 목소리와 몸짓, 그리고 “나” 그리고 여행에서 돌아오기까지 “륄라비(lullaby)”라는 이름은 “자장가”라는 뜻이다. 어린 아이를 재우기 위해 부르는 노래를 이름의 소녀는 그 자체로 “성장”의 아이콘(icon)이다. 륄라비에게는 아빠가 지어 준 또 하나의 이름이 있다. “아리엘”이라는 이름으로 투명하고 가벼운 공기의 요정을 가리킨다.(셰익스피어의 『태풍』에도 등장한다.) 그리스 식 집 기둥에 기대앉은 륄라비는 바다를 바라보며 잠들기 직전 아빠가 불러주던 노래를 부른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제 자신에게 들려주었다.” 소녀는 모든 것이 저를 떠나 몹시도 빠르게 멀어져 가는 것을 느꼈다. 마치 찌르레기 떼의 비상처럼. 먼지의 소용돌이처럼. 사라져 가는 그 움직임은 또한 륄라비 자신의 팔다리의 움직임, 내면의 떨림, 전율, 소스라침이기도 했다. (본문 43쪽 중에서) 륄라비는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몸짓을 느끼면서 정신의 고속 성장을 체험한다. 이전에는 결코 상상하지 못한 것들, 가령 곤충들의 은신처, 구름의 이면, 바다 깊은 곳에 펼쳐진 거대한 계곡과 무한한 봉우리 같은 것들을 보고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책으로 기록되지 않은, 세계를 형성하는 법칙을 깨닫는다. 또 륄라비는 우연히 만난 소년과 함께 아빠에게서 온 편지들을 태우며 자신에게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되새긴다. 소년에게 그림을 선물 받은 륄라비는 왜 그림을 태우지 않느냐는 소년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이 그림을 내가 무척 좋아하게 되면, 그때 태울 거야.”(본문 56쪽 중에서) 『오늘 아침, 학교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라는 제목을 접한 독자들은 아마도 소녀가 학교에 가지 않은 이유를 궁금해 할 것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하지 않는다. 이 책이 이유 있는 개인의 방황기가 아니라, 방황하는 이유를 모르는 모든 이들을 위한 비망록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륄라비의 발자취를 좇은 독자들은 모든 것을 이해할 것쳀다. 아무것도 묻지 않고, “여행”이라는 단 한마디로 모든 것을 이해한 필립피 선생님처럼. “성장”을 그리는 작가, 박형동의 감각적인 일러스트 이 책의 그림을 그린 박형동은 『리버 보이』, 『우리들의 스캔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비롯한 다수의 베스트셀러 표지 그림을 그린 실력파 일러스트레이터이다.“성장”을 주제로 한 단편 만화와 일러스트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온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순수 문학의 최고봉에 오른 르 클레지오의 작품을 특유의 약동하는 소년 ㆍ 소녀의 감성”으로 재해석했다. 박형동은 낯설고 신비로운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풍경 속으로 “뛰어든” 주인공 륄라비를 그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다를 바라보며 일순간에 모든 법칙을 깨닫는 장면, 바다와 하나가 되는 장면, 다시 돌아온 도시의 거리에서 머뭇거리는 장면 등을 통해 내면과 외부 세계가 긴밀하게 연결된, 청소년 시기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담아냈다. 폐허가 된 집터에서 출구를 찾아 서성이는 “륄라비들”을 표현한 마지막 장면은 “방황”이라는 단어와 함께 오랫동안 독자들의 마음속에 기억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