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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신원 불명의 여인 옮긴이의 말 | 『폭풍우』 - 제주의 해녀들에게 바치는 오마주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연보 |
Jean-Marie-Gustave Le Clez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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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는 신비로운 비밀이 가득하다. 그래도 난 바다가 무섭지 않다. 이따금 바다는 누군가를 삼켜버린다. 해녀일 수도 있고, 낙지잡이 어부일 수도 있고, 아니면 파도에 의해 평평한 바위로 떠밀려간 부주의한 관광객일 수도 있다. 대부분의 경우, 바다는 시체를 돌려주지 않는다. 저녁이 되면 해녀 할머니들은 불턱에 모여 옷을 벗고 물을 뿌려가며 몸을 씻는다. 나는 옆에 앉아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제주도 말로 이야기하기 때문에 다 알아들을 수는 없다. 할머니들이 하는 말은 꼭 노래 같다. 할머니들은 땅 위에 올라와서도 물속에서 외치던 소리를 잊을 수가 없나 보다. 할머니들의 말은 우리가 하는 말과 완전히 다른 바다의 언어이다. 그 속에는 바닷속 소리가 뒤섞여 있다. 거품 이는 소리, 모래 사각거리는 소리, 암초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의 둔탁한 소리가.”---「폭풍우」중에서
나는 타르쿠와로 돌아갈 시간을 기다리면서 바다를 바라보려고 모래 위에 앉는다. 파도 밑 부분이 누런색이고 거품은 별로 희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얼마 전에 폭풍우가 지나간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 냄새를 기억한다. 냄새를 맡으니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그것은 내 안으로, 내 머리 한가운데까지 들어간다. 달콤하지만 쓰라린 냄새, 평온하지 않고 세련되지도 않은 냄새, 이해할 수 없는 폭력의 냄새이다. 그것은 내가 엄마 배에서 나올 때 처음으로 맡은 냄새이다. 눈도 뜨기 전이었지만, 그때 나는 콧구멍을 크게 벌리고 바다 냄새를 맡았다. ---「신원 불명의 여인」중에서 |
바다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소녀들
두 개의 관점으로 쓰여진 하나의 이야기 『폭풍우』에는 다른 듯 닮은 두 편의 노벨라(novella)가 실려 있다. 각각의 작품은 아버지를 모르는 소녀 준(「폭풍우」)과 어머니를 모르는 소녀 라셸(「신원 불명의 여인」)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폭풍우」는 베트남전쟁 종군기자 출신의 필립 키요와 해녀 엄마를 둔 혼혈 소녀 준의 이야기다. 전쟁 중 집단 성폭행을 방관했다는 죄의식과 사랑하는 여인 메리의 죽음으로 삶의 의미를 잃었던 키요는 폭풍우 몰아치는 제주 우도에서 엉뚱하고도 순수한 열세 살 소녀 준을 만나 생명의 에너지를 느낀다. 아버지 없이 자란 준은 키요에게서 아버지의 사랑을 찾지만, 그와의 이별을 통해 유년기를 끝내고 새로운 삶을 찾아 떠난다. 폭풍우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휩쓸어가지만, 동시에 정화시키기도 한다. 그 안에서 삶과 죽음이 격렬하게 만난다. 「신원 불명의 여인」의 주인공은 아프리카 가나의 타코라디 해변에서 태어난 소녀 라셸이다. 여덟 살이던 어느 날, 라셸은 자신이 엄마라고 부르던 여인이 엄마가 아니며, 자신은 성폭행의 결과로 태어난 아이임을 알게 된다. 가족의 파산으로 파리 외곽으로 이주한 그녀는 곧 가족으로부터 버림받고 방랑하지만, 결국 자신의 뿌리를 찾아 아프리카로 돌아온다. 제주 그리고 아프리카와 파리 외곽이라는 서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일어나지만, 두 작품은 마치 두 개의 관점으로 쓰여진 하나의 이야기처럼 닮아 있다. 폭력(특히 성폭력), 전쟁, 출생, 정체성, 기억 등의 공통된 키워드와 더불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바다, 바람, 파도가 있다. 르 클레지오의 소설에서 종종 그러하듯, 소녀들은 유년기의 무거운 트라우마를 안고 여성(성인)의 삶을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버려진 자들(「폭풍우」의 키요, 「신원 불명의 여인」의 아비가일)과 함께, 서로의 삶을 소생시키도록 돕는다. 바다의 숨결이 모든 것을 지울 때, 중요한 것은 과거의 기억이 아니라 현재다. 그래서 두 작품은 모두 열린 결말을 갖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