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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르타뉴의 노래
아이와 전쟁 작품 해설 작가 연보 독후감―최수철(소설가) |
Jean-Marie-Gustave Le Clez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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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마린, 그곳에서는 물 냄새가 난다(한국어에서는 향기로운 물도 ‘향수’香水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향수’鄕愁라고 한다). 선착장에서 강변을 따라 배가 출발할 때면, 톡 쏘는 듯 자극적이고 시큼하고 썩은 냄새, 매운 야채의 냄새, 낚싯밥의 냄새, 그리고 중유의 냄새가 뒤섞인다. 또한 밀물 때 강물은 시커먼 색이 되고, 썰물로 인해 모래사장이 드러날 때면 투명해지면서 거의 노란색이 된다.
---「브르타뉴의 노래」중에서 한 시대가 가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던 시기였지만, 우리는 그런 것들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랬기에 우리는 유년기 시절에 우리가 경험했던 것들이 영원히 지속되리라 믿었을 수도 있다. 그 당시, 브르타뉴의 교회는 생삼송, 생튀디, 생로낭, 생티브, 생튁뒤 알, 생게놀레, 혹은 돌배를 타고 영불해협을 건넜던 생코노강 등 아일랜드와 웨일즈의 성인들이 브르타뉴 사람들을 기독교 신자로 만들러 왔을 당시 초기 기독교의 역할을 여전히 수행하고 있었다. ---「브르타뉴의 노래」중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하고, 기억의 조각조각을 맞추고, 삶의 흐름을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향수에 젖기 위함이 아니다. 먼 옛날의 마술적 힘을 묘사하고, 현재의 모습에서 순간순간 비치는 그 과거의 마력이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기 위해서다. ---「브르타뉴의 노래」중에서 아이들은 전쟁이 무엇인지 모른다. 나는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그리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몇 년동안은, 전쟁이라는 단어를 들은 기억이 없다. 아이들에게는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전부 당연하며, 아이들은 자신의 삶이 다를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이와 전쟁」중에서 사람들은 어떤 이의 용감한 행동을, 또 어떤 이의 기지를, 위대한 지휘관의 천재적 능력을, 그리고 끔찍한 시간을 통해 인간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던 가치를 찬양한다. 그러나 여자나 아이들에 대해서는 아무 언급도 하지 않는다. 그들에 대해 말할 때는 인명 피해나 민간인 학살 등의 참화를 이야기할 때뿐이다. 최근 사람들은 군사작전에서 발생하는 무고한 민간 피해를 의미하는 ‘부수적 피해’라는 용어를 만들어냈다. 그 말에는 모든 의미가 담겨 있다. 여성과 아이들은 전쟁에 부수적인 요소다. 부상을 당하거나 사망한 이들의 숫자를 세고, 그들을 조사한다. 마치 가축의 손실이나 건물의 파괴, 보유한 금이나 비축된 양식의 약탈 현황에 대해 수를 세고 조사하는 것과 같다.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피해다. ---「아이와 전쟁」중에서 전쟁 중에 태어났다는 것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그 전쟁의 가깝고도 먼 증인이 되는 것이다. 무관심한 증인이 아니라 보통의 증인과는 다른, 마치 전쟁을 경험한 새나 나무 같은 증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곳에 있었고, 그것을 몸소 겪었다. 하지만 그들이 경험한 전쟁은 나중에(너무 늦게서야?), 다른 사람들이 알려준 것을 통해서만 의미를 부여받는다. ---「아이와 전쟁」중에서 |
“인간성 탐구, 관능적 엑스타시, 시적 모험, 새로운 출발의 작가”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영원한 유배자’ 르 클레지오가 말하는 어린이의 세계 2023년 등단 60주년을 맞은 르 클레지오의 작품 세계는 다채롭다. 23세 첫 소설 『조서』로 르노도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한 그는 현대 사회의 개인이 겪는 실존적 위기와 소통의 단절을 다뤘다. 이후 그의 작품 세계는 크게 세 범주로 나눠볼수 있다. 1960년대 프랑스 문단을 풍미했던 실존주의와 누보로망의 색채가 남아 있는 초기, 1970년 무렵 프랑스를 떠나 중남미 등에 머물며 고대 마야문명과 멕시코사에 매료됐던 시기, 1980년대부터 3대에 걸쳐 한 곳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이주를 거듭했던 그의 가족사를 다룬 시기. 이 중에서도 가족사를 다룬 시기는 르 클레지오의 자전적 측면이 강하다. 실존 인물의 이름과 성격을 그대로 드러내거나 약간의 허구적 요소를 넣어 ‘소설(roman)’의 장르적 특징을 유지하거나 그 정도는 다양하다. 이번 르 클레지오의 작품은 ‘레시(recit, 이야기)’로 분류된다. 소설(roman)보다는 가볍고, 수필(essai)보다는 무거운 장르를 일컫는데, 르 클레지오의 레시는 보통 서사의 차원에서 소설적 요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고하듯 서술하는 점에서 기존 ‘르 클레지오의 레시’와는 거리가 있다. 첫 번째 이야기 〈브르타뉴의 노래〉에서는 유년 시절을 보냈던 브르타뉴에서의 일화를, 두 번째 이야기 〈아이와 전쟁〉에서는 “인생의 첫 다섯 해를 전쟁 속에서 살았던” 르 클레지오 자신의 제2차 세계대전 시기를 그린다. 두 편의 글은 분명 작가의 어린 시절을 돌아보지만, 작가는 이것이 연대기도 추억담도 회고록도 아님을 분명히 밝힌다. 기억의 변질성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이 이야기는 단순한 ‘개인’의 회고가 아닌 ‘인간’의 본질과 역사에 대한 섬세한 성찰로 이어진다. “전쟁 중에 태어났다는 것은 본인 의지와 상관없이 그 전쟁의 가깝고도 먼 증인이 되는 것이다.” 왜 르 클레지오는 ‘브르타뉴’와 ‘전쟁’이라는 두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 담았을까? 〈브르타뉴의 노래〉에서 작가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 그저 매해 여름 몇 달 정도만 보냈을 뿐”인 브르타뉴에 깊은 향수를 갖는다. 이는 ‘클레지오’라는 그의 성이 브르타뉴어 ‘클뢰지우(kleuziou)’에서 유래해서 뿐만이 아니라, 브르타뉴의 역사에서 볼 수 있었지만 이제는 거의 사라져버린 고유의 문화와 생명력의 영향이 크다. 한편 〈아이와 전쟁〉에서는 “내 삶의 첫 번째 기억은 폭력에 대한 기억”이라며 전쟁의 파괴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특히 전쟁 과정에서 그저 ‘부수적 피해’로 분류되는 여성과 아이에 대해, “그들은 피해자가 아니다. 그들은 피해다”라며 소외된 자에 대한 연대의식을 표명한다. 만인의 기억 속에서 흐려지는 “대문자 역사의 주변인”을 이야기하는 과정으로부터 브르타뉴와 전쟁이 만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다시 하고, 기억의 조각조각을 맞추고, 삶의 흐름을 다시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향수에 젖기 위함이 아니다.” 『브르타뉴의 노래·아이와 전쟁』은 르 클레지오의 회고록으로 볼 수도 있지만, ‘회고’처럼 보이는 일련의 이야기에는 무차별 현대화에 대한 비판, 고유한 생명력의 회복 등 우리 시대를 위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실제 서구에서 태어났지만 서구의 틀에서 벗어나 영원한 노마디즘을 추구하는 르 클레지오의 삶이 이러한 이야기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상대적 약자와의 연대의식 등 르 클레지오의 일관된 가치관에서 독자는 작가의 외침을 더욱 선명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잘 구워진 진흙 항아리’를 위하여 _‘독후감’: 최수철(소설가) 그리하여 비로소 우리는 앞에서 제기한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듯하다. 르 클레지오는 스스로 자신에게 묻고 있다. 심리적 사실주의에 바탕을 두고서, 근원적인 어떤 것에 대한 반성과 숙고를 깊고 넓게 이끌고자 할 때, 더 나아가, 감정을 고양하고, 영광과 기쁨을 누리고, 교훈과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자 할 때, ‘이야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무엇일까. 달리 말해, 시간의 화학 작용에 의해 변화되고 변질된 기억에 어떻게 접근해야, 그로부터 현재를 진단할 수 있는 의미적인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까. 작가의 메타포를 옮기자면, ‘찌는 듯한 더위 속에서 잘 구워진 진흙 항아리’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소설 이전의 소설, 혹은 소설 이후의 소설, 이를테면 그야말로 계시적인 “신기루”에 대한 절망적인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게 아닐까. 그렇게 볼 때, 어쩌면 이 책은 작가가 지금까지와는 조금은 다른 이야기 형식을 시도하는 도정의 시작 그 자체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그 도정의 잠정적인 성취로서 르 클레지오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가져도 되지 않을까. 분명 그러할 것이다. 새롭게 펴내는 ‘책세상 세계문학’은 이전 ‘책세상문고 세계문학’이 영미나 유럽 문학 중심의 세계문학 소개 방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제3세계 문학에서 고전에 이르기까지 동서고금, 이념과 장르를 막론하고 문학이라 불리는 모든 형태의 텍스트를 선보였던 것과 맥을 같이한다. 지향점은 이어가되 작품 목록은 전면 재구성해, 고답적인 분위기는 덜어내고 젊고 현대적인 시각과 감각을 불어넣어 감성과 향수를 고양하는 문학으로 인식될 수 있도록 번역과 장정에 공들인 고품격 세계문학을 추구한다. ‘원문에 충실한 정확하고 우리말다운 번역’, ‘책 속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작품 독후감’, ‘신뢰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담은 작품 해설과 작가 연보’, ‘작품의 개성을 살린 유니크한 디자인과 장정’을 바탕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어보고 싶고 소장하고 싶은 ‘제대로 만든, 함께 읽는’ 책이다. 이 시리즈를 통해 고전은 단순히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낡은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 우리와 함께 호흡하는 지성의 토대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