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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진정 세상을 놀라게 한 것, '용서'
1부 거울을 보지 않는 사람들 종교개혁의 선봉장, 개혁자 중의 개혁자 피로 얼룩진 거울, 『순교자의 거울』 얼굴 없는 제이콥 암만의 후예들 '거룩한 실험'의 땅, 펜실베이니아로 '차밍낸시'호를 따라온 따가운 시선들 가장 높은 증가율, 20년마다 두 배 사교도가 아닌, 극보수 크리스천 예배당이 없는 교회 후예들이 부르는 순교자의 노래 제비뽑기로 선출하는 교역자들 재세례파의 핵심, 성인세례와 세족례 말이 아닌 행동으로 전하는 복음 아미쉬 사람들에게 추파를 던진 부시 대통령 '나를 먼저 쏘세요', 마지막 순교 2부 겸허한 사람들, 신비의 공동체 연합회가 없는 종교단체, 관리 조직이 없는 공동체 1 명문화되지 않은 관습법, 오드눙 청소년의 인가 받은 탈선, 럼스프린가 아미쉬 가정에서 가장 소중한 세간, 식탁 가족이 '보험', 공동체는 '재보험' '처치 왜건' 네트워크 우편배달부을 놀라게 하는 아미쉬 잡지 진흙은 팔지 않는 '머드 세일' 다툼을 멀리하는 무저항 평화주의 'Engilsh'와 거리가 먼 사람들 벽이 없는 교육, 이력서가 없는 세상 교실 하나에 선생님 한 명, 원룸 스쿨 아미쉬 마을의 슈바이처, 홈스 모턴 박사 공동체 최고의 축제, 결혼식 운구를 따르는 장엄한 마차 행렬 아미쉬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 쫓기는 형사와 아미쉬 미망인, 위트니스 앤 아줌마와 랩 목사 형제들 3부 서두르지 않는, 단순하고 소박한 삶 문명의 이기는 바깥세상과의 연결고리 전봇대와 전깃줄이 필요 없는 아미쉬 전기 아미쉬 택시와 스쿠터 빨리 그리고 멀리 갈 수 없는 마차, 버기 마을 어귀의 '오두막 전화' 아미쉬 사람들의 엔진, 말 필요치 않은 '빠른 시간', 일광 절약 시간 외모의 과시는 모반의 증거 턱수염에 챙 넓은 모자와 검정 조끼 긴 머리를 감싼 하얀 기도모자와 앞치마 설자리를 잃어가는 '땅의 사람들' 도시락을 든 가장이 드리운 그림자 밀려오는 관광객 우상을 만들지 말라 근면, 검소, 절제로 얻는 건강한 심신 4부 아미쉬, 메노나이트 그리고 펜실베이니아 더치 아미쉬와 '올드 오더 메노나이트' 아미쉬와 '펜실베이니아 더치' '펜실베이니아 더치'의 독특한 문화 펜셀베이니아 더치어(독일어 방언) 민간 전승의 미신, 파우 와우 헥스 사인 독특한 문양의 증명서, 프락투 지붕이 있는 다리 고유 음식 문화 아미쉬 여인들의 섬세한 손길, 아미쉬 퀼트 에필로그 남다른 삶의 길을 택한 보통 사람들 참고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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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저자입니다.
2009-10-13
아미쉬 공동체와 그 사람들에 관하여 독자 분들께서 궁금해 하시는 점 이나 여행에 필요한 정보 등을 원하실 경우 아래 블로그의 안부게시판, 방명록 또는 댓글 란을 이용하여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최대한 빨리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http://blog.naver.com/amishstory http://blog.daum.net/amish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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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 책의 저자입니다.
2009-10-13
반갑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한 삶, 아미쉬로부터 배운다>에 저자로 이름을 올린 저, 임세근 독자분들께 인사드립니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시고 저의 졸저를 찾아주신데 대하여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현재 미국과 캐나다에만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에 계신 분들이 그들을 직접 만나보거나,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살펴보기가 그리 쉽지 않습니다. 다양한 목적아래 아미쉬에 관하여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그들과 이웃하여 10여년간 살아오면서 제가 보고, 듣고, 겪으면서 깨우친 점들을 실제 체험내용 중심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그러한 면에서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에 관한 살아있는 유익한 정보를 드릴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독자분들께서 보내주시는 관심과 성원에 큰 힘을 얻어 더욱 분발하겠습니다. 아미쉬 공동체에 관한 궁금사항이나 도움이 필요한 점이 있으시면 저의 블로그(저자 소개란의 하단부에 실린 블로그)를 통하여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성심성의껏 도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mishstory 임세근 인사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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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쉬, 그들은 누구이며, 왜 공동체 삶을 중시하는가?
아미쉬를 이야기 하자면 16세기 초 종교 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유럽 전역으로 급속히 확산된 종교 개혁.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교회와 정부의 완전 분리' '무저항 평화주의'와 '성인세례'를 근본 교리로 내세우는 새로운 교파가 형성된다. 이들은 선악을 구별할 수 없는 유아의 세례를 반대하고, 이성적 판단 하에 신앙을 고백할 수 있는 성인 세례를 주장하여 '재세례파'라 불렸다. 하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 징수를 위한 신생아 출생 파악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유일한 근거인 '유아 세례'를 거부하고, 군 징집을 거부하는 재세레파는 국가의 존폐와 지역 안보를 위협하는 범죄자일 뿐이었다. 이로써 '개혁자 중의 개혁자'로 인식된 이들은 반사회적 위협 집단으로 지목되어 혹독한 박해를 받기 시작했다. 이 재세례파 교도들이 겪은 고난과 순교에 관한 구체적인 사례를 담은 『순교자의 거울The Martyrs Mirror』은 지금도 아미쉬 각 가정마다 소장하고 늘 읽는 책이기도 하다. 모진 박해 속에서 그들은 신앙을 바탕으로 한 그들만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되었고, 그들은 공동체 바깥세상을 'world'라 부르며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오늘날 아미쉬 사람들이 그들만의 공동체를 이루고 바깥세상을 경계하며 살아가는 연유도 바로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18세기 초반부터 시작된 신대륙 이주로 그들에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었고 조상들이 당한 육신의 고통과 생명의 위협은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쟁과 살인 폭력 그리고 마약, 가정 파괴, 낙태와 퇴폐 등의 비도덕적인 행락의 범람은 여전히 존재한다. 바깥세상에 항상. 왜 문명의 이기를 거부하는가? 아미쉬 사람들에게는 '오드눙Ordnung'이라는 규범이 있다. 오드눙은 크게 그들이 지켜야할 관습적 규범과 금기 사항으로 나뉜다. 의복의 색상과 모양새, 모자의 크기, 마차의 색깔, 말을 이용한 농사일, 독일어(방언)의 사용, 예배 모임의 순서, 교도들 간의 결혼 등이 전자에 속하고, 전기 사용 금지, 자동차 소유 금지, 컴퓨터와 라디오, TV 소유 금지, 트랙터 사용 금지, 고등학교 이상의 학교 교육 금지, 법적 소송 금지, 군복무 금지, 보석 패용 금지 등등의 해서는 안 될 금기 사항이 후자에 속한다. 특이한 점은 통제된 사회에서 그토록 엄정하게 지켜나가야 할 공동체의 규약인 '오드눙'이 명문화되지 않고 구전과 솔선수범으로만 전승되어 온다는 것이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문명의 이기들을 멀리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세 가지가 전기, 자동차, 전화이다. 이들의 삶의 교본이 되는 성경 어디에도 현대 문명의 이기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이 없고, 이들이라고 해서 편리함을 싫어할 리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문명의 이기를 멀리하는 것일까? 그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공동체 바깥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함이다. 그들에게 있어 전기와 자동차, 그리고 전화는 곧 공동체와 바깥세상을 손쉽게 넘나들고, 빠르게 연결하는 수단이자 연결고리로 인식되어 있다.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문명의 이기를 금기하거나 절제하는 것은 그들이 가장 우려하는 공동체의 결속과 전통적 가치관을 약화시키는 위험 요소를 사전에 뿌리 뽑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아미쉬 사람들의 관점에서는 ‘진보와 발전’이 곧 ‘보다 좋은 삶의 질’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특별한 삶 현재 아미쉬 인구는 약 24만 명에 이른다. 그러나 총괄하는 관리 조직은 없다. 이 거대한 공동체가 자연스레 그 전통을 이어오고 있을 뿐이다. 아미쉬 사람들의 삶 어디를 보더라도 체계적 혹은 강압적인 관리의 흔적은 없다. 종교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들은 연합체가 없으며, 예배당이 없고, 헌금도 하지 않는다. 900페이지에 달하는 악보 없는 찬송가를 400여 년간 불러오고 있다. 성경 공부 시간도 없고, 전문 교육을 받은 성직자도 없으며 전도사와 선교사도 없다. 중학교 과정인 8학년까지의 자체 학교 교육을 실시하고 있을 뿐이며, 외부의 교사 양성 과정을 거치지 않은 20세 전후의 아미쉬 처녀가 아이들을 가르친다. 아미쉬 부모들은 자녀가 성인이 되어 모두 세례를 받고 교회의 일원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도 이를 강요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자녀들에게 아미쉬 교도로서의 삶의 가치와 율법을 보여주고 일깨울 뿐, 이를 평생의 삶의 길로 택하여 교회의 일원이 될 것인지의 여부 결정은 전적으로 본인들의 의사에 맡긴다. 이에 따라 16세에 이른 아미쉬 청소년들은 '럼스프린가'라는 통과의례를 거치게 된다. '럼스프린가' 기간에 아미쉬 청소년들은 바깥세상으로 나가 속세의 삶을 직접 경험해 볼 수 있는 특혜(?)를 누린다. 그리고 일생을 아미쉬로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바깥세상으로 나갈 것인가? 하는 일생일대의 중차대한 결단을 스스로 내리게 된다. '럼스프린가' 를 마치고 공동체에 남기로 결정한 아미쉬 젊은이의 비율은 90% 에 다다르며, 나머지 10% 정도만이 공동체를 떠나 바깥세상으로 나가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미쉬 공동체 학교에는 표어로 JOY가 게시되어 있다. JOY는 Jesus first, Others next, Yourself last를 말한다. 즉 ‘예수의 말씀이 가장 먼저, 그 다음에 상대방, 너 자신은 맨 마지막’이라는 이 표어는 아미쉬 공동체 사람들이 어느 정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배려하는지, 또 이를 어떻게 어린 자녀들에게 일깨우는 지를 단적으로 알게 해준다. 온 세상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2006년 초가을에 발생한 아미쉬 원룸 스쿨 총기 난사 사건. "나를 먼저 쏘세요"를 외치며 죽은 소녀들과 아미쉬 유가족의 용서와 관용은 어떻게 나보다 타인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지를 보여준 예이다. 간결한 행복을 선택한 땅의 사람들 아미쉬 사람들의 삶과 일상은 지극히 기본의 기본에 충실한 모습을 보인다. 예를 들면, 가족 간에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식탁이 가장 소중한 세간이며, 하루 세끼 식사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남자 아이는 아버지를 돕고, 여자 아이는 어머니를 도우며 저마다의 몫을 한다. 노인은 은퇴 후 자녀 중 한 명의 집에서 함께 기거하며 힘닿는 데까지 도우며 집안의 어른으로서 구심점 역할을 한다. 아미쉬 사람들은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겸허한 자세를 취하고, 소박한 용모와 복장을 한다. 부지런하고 검소하며 공동체 중심으로 서로 협동하며 살아간다 등등. 이러한 덕목들은 아미쉬 사람들에게 더 이상 뺄 것도 더할 것도 없는 간결함 그 자체의 행복을 선사해왔다. 19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들의 모습은 적어도 외형적으로는 공동체 밖의 일반인들이 농경 사회에서 누리는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이후 과학과 산업의 급격한 발달에 대한 저항은 스스로를 바깥세상과 구별시키는 결과를 낳았고, 한편으로는 눈요기로 전락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했다. 이들에게는 아직도 농사가 천직이며, 농지는 삶의 터전이다. 농사 역시 재래식 방법으로 짓지만, 무슨 작물이든지 수확할 때면 일반 농가를 크게 능가하는 성과를 올린다. 이는 유기농법과 휴지기를 엄격히 지키는 등 땅에 대해 정성을 다하기 때문이며, 땅에 대한 애착은 단지 양식을 얻는 수단 이전에 자손만대 대를 물려주어야 할 삶의 터전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농사야말로 '공동체 유지의 가장 이상적인 생업'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