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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론 제3권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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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7편 공격(초안)
제1장 방어와 관련된 공격
제2장 전략적인 공격의 성격
제3장 전략적인 공격의 대상
제4장 공격력의 감소
제5장 공격의 정점(頂點)
제6장 적의 전투력의 파괴
제7장 공격전투
제8장 도하(渡河)
제9장 방어진지에 대한 공격
제10장 보루진지에 대한 공격
제11장 산악 공격
제12장 초병선에 대한 공격
제13장 기동작전
제14장 늪, 침수지, 숲에 대한 공격
제15장 결전을 치르는 전쟁터에 대한 공격
제16장 결전을 치르지 않는 전쟁터에 대한 공격
제17장 요새에 대한 공격
제18장 수송대에 대한 공격
제19장 사영하는 적군에 대한 공격
제20장 견제
제21장 침략
승리의 정점에 대하여

제8편 전쟁계획
제1장 서론
제2장 절대전쟁과 현실전쟁
제3장 A. 전쟁의 내적인 연관성 / B. 전쟁 목적과 노력의 수준
제4장 전쟁의 목표에 대한 자세한 정의. 적을 쓰러뜨리는 것
제5장 계속. 제한적인 목표
제6장 A. 전쟁 목표에 미치는 정치적인 목적의 영향 / B.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제7장 제한적인 목표. 공격전쟁
제8장 제한적인 목표. 방어
제9장 적을 쓰러뜨리는 것이 목표일 때의 전쟁계획

저자 소개 1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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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l von Clausewitz

1780년 6월 1일 프로이센의 작은 도시 부르크에서 중산층 가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12살의 나이에 소년병으로 입대한 그는 프랑스혁명 후에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벌인 싸움에서 처음으로 전투를 경험했으며 1831년 11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군에서 보낸 직업군인이었다. 그는 1803년 베를린 정규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당시 프로이센군 개혁의 기수였던 사관학교 교장 샤른호르스트(Gerhard von Scharnhorst) 중령의 총애를 받았으며 졸업 후 장교 생활 중에도 줄곧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클라우제비츠에게 샤른호르스트는 그의 말대로
1780년 6월 1일 프로이센의 작은 도시 부르크에서 중산층 가정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일찍이 12살의 나이에 소년병으로 입대한 그는 프랑스혁명 후에 프로이센이 프랑스와 벌인 싸움에서 처음으로 전투를 경험했으며 1831년 11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평생을 군에서 보낸 직업군인이었다.
그는 1803년 베를린 정규 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는데, 당시 프로이센군 개혁의 기수였던 사관학교 교장 샤른호르스트(Gerhard von Scharnhorst) 중령의 총애를 받았으며 졸업 후 장교 생활 중에도 줄곧 매우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클라우제비츠에게 샤른호르스트는 그의 말대로 “정신적인 아버지이자 친구”였다.
임관하자마자 클라우제비츠는 샤른호르스트의 천거로 프로이센의 젊은 황태자 아우구스트(August) 장군의 전속부관으로 발탁되었다. 그 후 그는 궁중 출입을 자주 하면서 여왕의 시녀였던 마리 폰 브륄(Marie von Bruhl)을 만나 결혼했다.
1806년 나폴레옹군과 맞서 싸운 아우에르슈테트(Auerstadt) 전투에서 그는 황태자 아우구스트와 함께 포로로 붙잡혀 1년 동안 파리에 억류되었다. 포로 생활을 마치고 귀환한 뒤 그는 샤른호르스트 장군의 핵심 참모로 기용되었으며 프로이센군의 개혁과 개편 작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일련의 개혁 논쟁에서 인력 정책과 군기 및 훈련 제도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당시 군내 분위기에서는 파격적인 주장을 많이 했다. 그 바람에 과격주의자라는 평판이 항상 따라다녔다.
그런데 클라우제비츠는 무엇보다도 프로이센 정부의 프랑스에 대한 굴욕적인 종속 상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러시아 침공 지원을 요구해 왔을 때 프로이센 정부가 너무 쉽게 그것을 수용하는 비굴한 모습을 보고서 그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조국의 군대를 떠났다.
1812년의 전쟁에서 그는 러시아군에 입대해 참전했다. 이때 그는 대령 계급이었지만 언어 장벽 때문에 관전자 이상의 주요한 직책을 맡지 못했다. 그러나 종전 무렵에 프로이센군 군단장 요르크 폰 바르텐부르크(Yorck von Wartenburg) 장군을 찾아가 나폴레옹 군대에서 이탈, 전향하도록 설득함으로써 프랑스군에 큰 타격을 입혔다.
프로이센이 드디어 1813년에 반기를 들고 대(對) 프랑스 전쟁에 가담함으로써 이보다 앞선 클라우제비츠의 행동들은 모두 정당화되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프로이센 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Friedrich Wilhelm III)는 클라우제비츠의 프로이센군 복귀 요청을 상당 기간 동안 거절했다. 그의 과거 돌출적 행동에 대한 괘씸죄를 적용한 것이다.
프로이센군에 복귀한 클라우제비츠는 1815년 나폴레옹의 백일천하(百日天下) 시절에 제3군단 참모장으로 근무했다. 이 군단은 워털루(Waterloo) 전투에서 프랑스군의 그루시(Grouchy) 군단을 묶어 놓는 중요한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연합군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나폴레옹 전쟁이 끝난 뒤에 클라우제비츠는 프로이센 군부 내에서 늘 보수파로부터 심한 견제를 받아 최고위급 요직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1818년에 그는 당시 비교적 한가한 행정직인 베를린 사관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그러나 덕분에 오랫동안 중단한 연구를 재개함으로써 한직은 오히려 그를 위대한 전쟁 이론가로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그는 스승 샤른호르스트의 전기를 집필하고 그 밖에 많은 독창적인 정치 및 군사 관련 논문들을 저술했다. 그리고 역작 ≪전쟁론≫을 집필하는데 1819년부터 시작해 오랜 기간에 걸쳐 온 정열을 다 바쳤다. 하지만 초고 집필을 마친 뒤, 세심하게 수정 작업을 하던 중에 1831년 콜레라에 감염돼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결국 이듬해에 그의 부인이 유고를 모아 출판했다. 따라서 엄격히 말하면 ≪전쟁론≫은 하나의 미완성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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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만수
1962년 서울 출생으로, 1985년 홍익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프랑크푸르트대학교 및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사회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보쿰대학교 한국학과 객원교수로 재직한 뒤 고려대와 배재대에서 사회학을 강의하였고 지금은 홍익대와 대전대에서 사회학과 정치경제학 그리고 군사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대전대학교 군사연구원의 연구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저서로 『리영희-살아있는 신화』(나남출판),『실업사회』(갈무리)가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9년 10월 10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244쪽 | 498g | 153*224*20mm
ISBN13
9788961950190

책 속으로

저는 초판 서문에서 이 저작의 독자들에게 말씀을 드릴 용기를 낸 적이 한 번 있고, 이러한 대담함이 관대하게 받아들여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제 제3권에도 몇 마디를 덧붙이도록 허락해 줄 것을 독자들에게 부탁드려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저는 제3권이 늦게 출판된 점을 설명하고 사과를 드리고자 합니다.
제3권은 『전쟁론』의 제7편과 제8편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편은 유감스럽게도 미완의 상태로 남아 있으며 단지 빠르게 써내려간 초안과 원고로만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독자들에게 숨길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미완성의 형태로도 이것은 우리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적어도 저자가 가려고 했던 길을 암시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초안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수행할 자질을 갖춘 오에첼 소령은 군대의 업무 때문에 오랫동안 그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4권이 본래 전쟁사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1796년의 전쟁을 담고 있다면, 완성된 체계를 갖춘 제4권을 제3권보다 먼저 내놓는 것이 더 합당하게 보였습니다. 또한 이 저작의 제3권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출판했으면 한다는 요구도 여러 곳에서 받았습니다.
제3권을 제5권과 동시에 출판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불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순서를 두 번이나 중단하게 되니 독자들에게 더 많은 관대함을 요구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미완으로 남은 『전쟁론』의 두 편에는 이와 관련된 논문이 몇 편 남아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본래의 『전쟁론』에 속하지는 않지만 『전쟁론』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원고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저자는 1810년과 1811년 그리고 1812년에 존경해마지 않는 황태자 전하에게 강의할 수 있는 영광을 얻었는데, 그 원고들 중에 첫 번째 원고는 이 강의를 바탕으로 한 것입니다. 그 원고는 첫째로 저자가 황태자의 가정교사인 가우디(Gaudi) 장군에게 제출한 초안을 담고 있으며, 둘째로 저자가 그 강의를 마칠 때 했던 『전쟁론』 전체에 대한 개괄을 담고 있습니다. 이미 제1권의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이 원고는 동시에 『전쟁론』 전체의 맹아를 포함하고 있으며, 이 점에서도 아마 대다수 독자들이 그 원고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존엄하신 황태자께서 그 원고의 인쇄를 허락하는 은총을 베푸셨습니다. 그와 같은 망극한 성은에 대해 존귀하신 황태자에게 깊이 머리 숙여 감사의 마음을 드리고자 합니다.

베를린, 1833년 12월 5일
마리 폰 클라우제비츠

--- 편집자 서문 중에서

이제 『전쟁론』 제2권과 제3권의 번역을 모두 끝냈습니다. 이 일을 끝내면서 제일 먼저 독자들에게 죄송하고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독자들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고 독자들께서 오래 기다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마음을 전하고자 이번에 『전쟁론』 제2권과 제3권을 동시에 출간하였습니다.
이 『전쟁론』 번역은 독어 원전의 완역판이므로 원전과 똑같이 세 권으로 출간하였습니다. 『전쟁론』 제3권의 분량이 다른 두 권에 비해 적은 것은 원전 제3권에 있는 부록을 제외했기 때문입니다. 그 부록은 『전쟁론』이 아닙니다. 제3권의 분량이 적다고 제3권의 중요성도 줄어드는 것은 아닙니다. 독자들께서 알고 계시겠지만, 제3권의 제8편은 제1권의 제1편처럼 『전쟁론』의 핵심입니다. 독자들께서는 제3권 제8편에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철학, 절대전쟁과 현실전쟁의 차이점, 전쟁과 정치의 관계를 한층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제1권 제1편을 읽은 독자라면 그 내용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는 데 제3권 제8편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전쟁론』 제2권과 제3권은 『전쟁론』 제1권의 편집 체계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번역의 텍스트뿐만 아니라 참고한 번역본도 제1권과 똑같습니다. 제2권은 1833년의 『전쟁론』 제2권을 텍스트로 삼았고 제3권의 번역에는 1834년의 『전쟁론』 제3권을 토대로 했습니다. 영어 번역판과 일어 번역판 그리고 우리말 번역판도 제1권을 번역할 때와 같은 책을 참고했습니다.
1853년의 제2판에서 브륄이 수정한 곳은 [2판: ]으로 밝혔습니다. 그렇지만 『전쟁론』의 우리말 번역이 『전쟁론』의 문헌학의 가치를 따지는 것은 아닌 만큼, 『전쟁론』 제2권과 제3권에서는 2판의 수정을 제한하여 반영했습니다. 즉 클라우제비츠의 초판과 브륄의 2판 중에 내용상으로 더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표현을 선택하여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다만 논쟁의 대상이 되는 첨예한 부분에 대해서는 초판과 2판은 물론 영어 번역본도 밝혀 놓았습니다.
역자의 해설에 대해 여러 의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체로 『전쟁론』을 처음 읽는 독자에게는 쓸모 있지만, 본문을 읽는 데 방해를 준다는 의견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전쟁론』 제2권과 제3권이 제1권의 후속편으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제1권의 체계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원칙에 따라 제2권과 제3권에도 해설을 붙였습니다. 다만 제2권과 제3권은 제1권처럼 어렵지 않아 해설은 꼭 필요한 경우로 제한하였습니다. 제2권과 제3권은 해설이 없어도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크게 어려움을 겪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제1권과 마찬가지로 제2권과 제3권에도 인물들을 간략히 소개하였습니다. 책의 마지막에는 찾아보기를 달았습니다. 외국의 인명이나 지명을 표기할 때 더 나은 표기법을 찾아 조심스럽게 고쳤습니다.

번역을 하는 동안 내 영혼을 갉아먹는 척박한 환경과 부단한 투쟁을 벌이느라고 심신이 이처럼 소모되지 않았다면 번역의 내용과 수준이 더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 『전쟁론』을 번역하려고 애썼습니다. 그렇지만 최선이 완전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책의 잘못된 부분이나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 또는 낱말에 대해, 특히 군사 용어나 군사학의 개념과 관련하여 역자는 이곳(mansasuwol@gmail.com)에서 언제나 독자들의 따뜻한 관심과 날카로운 비판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지난 7년의 시간을 돌아보니 그동안 이 일에 매달리지 않았다면 내게 닥친 영혼의 피폐함을 감당할 수 없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무지막지한’ 일을 하도록 제안하신 대전대학교 김준호 교수님께 마음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또한 『전쟁론』 제2권과 제3권의 번역을 오랫동안 기다려준 갈무리 출판사에도 감사를 드립니다. 양심상의 이유로 감옥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오정민 님께서 옥중에서도 『전쟁론』 원고를 읽고 잘못된 부분을 지적해 주었습니다. 오정민 님께 깊은 감사와 존경을 보냅니다.
또한 이 원고를 완성하도록 많은 분들이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조용상 형은 이 원고의 완성을 간절히 바라며 많은 자극을 주었습니다. 한은조 형은 『전쟁론』 제1권의 출간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 주었습니다. 이명수 형은 원고를 읽고 의심나거나 잘못된 부분들을 날카롭게 지적해 주었습니다. 특히 정연택 형은 자신의 일은 내버려둔 채 오로지 이 번역 원고를 다듬는 일에 매달렸습니다. 남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며 열과 성을 다해 도와주는 벗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은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자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연택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전쟁론』 전3권의 번역을 정연택에게 바칩니다.

--- 옮긴이 서문

출판사 리뷰

2005년 말에 출간된 제1권(제1편~제4편) 완역에 이어, 2009년 10월에 제2권(제5편~제6편)과 제3권(제7편~제8편)이 완역·출간되었다.

〈제3권〉
제7편 공격

제7편의 주제는 공격이다. 공격 편은 총 21개의 장으로 되어 있지만 초고를 고려하면 22개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공격은 방어를 뒤집어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분량도 적다. 공격이 정점에 이르면 전투는 방어로 전환해야 한다. 그래서 이 편에서는 방어의 수많은 종류에 나오는 지역, 진지, 장소들을 어떻게 공격해야 하는지 언급하고 있다. 즉 이 편에서는 방어의 종류에 상응하는 공격의 종류를 볼 수 있다. 도하 방법, 방어진지에 대한 공격, 보루진지에 대한 공격, 산악 공격, 초병선에 대한 공격, 기동작전, 늪지대에 대한 공격, 침수지에 대한 공격, 숲에 대한 공격, 결전을 치르려고 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전쟁터에 대한 공격, 요새에 대한 공격, 수송대에 대한 공격, 사영하는 적군에 대한 공격, 견제, 침략 등이 방어의 종류이며 공격 편에서 다루는 주제들이다.

제8편 전쟁계획
총 9개의 장으로 된 전쟁계획 편에서 우리는 제1편의 논의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즉 전쟁의 본질, 절대전쟁과 현실전쟁, 전쟁과 정치의 관계를 좀 더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제8편의 제목은 전쟁계획이 아니라 전쟁의 본질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모든 자원(병력, 무기, 국민, 영토 등)을 한꺼번에 쏟아 붓는 절대전쟁은 현실에서는 일어나기 힘들다. 이는 모든 상황을 전체적으로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 인간 지성의 한계 때문이기도 하다. 현실에서는 현실의 전쟁이 일어난다. 그러니 현실전쟁의 목표는 제한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전쟁은 정치적인 교류의 일부이며 하부 개념이다. 전쟁을 정치에서 독립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전쟁은 총으로 하는 외교이며, 외교(국제 정치)는 말로 하는 전쟁이다. 전쟁은 정치의 수단이다. 전쟁을 순전히 군사적인(병사, 무기, 화력 등) 판단에 따라 수행해서는 안 되며, 이는 오히려 해로운 생각이 된다. 왜 전쟁을 하는지(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고 총만 쏘는 행위는 무모하다. 이렇게 이해하면 공격의 목표뿐만 아니라 방어의 목표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나폴레옹의 말, ‘불가능이란 단어는 어리석은 자의 사전에만 있다.’ 그렇지만 『전쟁론』의 마지막 문장은 다음과 같다. ‘불가능한 것을 얻으려고 지금 얻을 수 있는 것을 놓치는 사람은 바보다.’

『전쟁론』 완간의 의미

카알 폰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 원전 전 3권을 국내 최초 완역

서양사상의 고전이자 군사학의 고전으로 유명한 『전쟁론』 원전이 처음으로 우리말로 완역되었다. 번역자는 『리영희 - 살아있는 신화』와 『실업사회』의 저자인 김만수 박사. 김 박사는 지난 7년 동안 『전쟁론』을 다섯 번 읽었다. 장인정신으로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루어냈다. 15년의 독일 유학과 7년 동안의 번역 작업이 마침내 결실을 보았다.
이는 국내에서는 원전이 나온 지 173년 만이며, 『전쟁론』의 첫 번째 우리말 번역이 나온 지 33년 만의 일이다. 이제까지 우리말로 된 『전쟁론』 번역서는 모두 일어판?영어판의 중역이거나 독어판의 초역으로서 원전 완역이 없는 실정이다.
현재 여러 대학에 군사학과가 설치되어 군사학이 군인들의 전유물에서 학문의 자유시장으로 넘어오고 있어 원전 번역의 필요성은 더욱 절실하다. 『전쟁론』에 관해 학문적으로 연구하려면 원전이 먼저 번역되어 있어야 한다. 원전이 번역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오는 『전쟁론』 관련 논문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읽고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쉬운 말을 사용하고 상세한 해설을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은 난해하기로 악명이 높다. 물론 그 일차적인 책임은 클라우제비츠에게 있다. 이는 『전쟁론』에 쓰인 독어나 『전쟁론』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니라 저자가 원고를 탈고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전쟁론』은 클라우제비츠가 사망한 후에 그가 남겨 놓은 초고(草稿)이자 유고(遺稿)를 그의 부인과 지인(知人)들이 초고의 상태 그대로 편집하여 출판하였다. 이것이 『전쟁론』을 난해한 책으로 만든 가장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말로 된 번역된 모든 책들은 공통적으로 너무 어려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다.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국어로 된 번역서들이 독자들로 하여금 『전쟁론』에 접근하는 길을 막아 놓았다. 이번에 출간되는 『전쟁론』은 독자들께서 해설을 통해 원전을 조금이나마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라크전쟁과 같이 최근에 그리고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성격과 본질을 이해하는데도 『전쟁론』은 여전히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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