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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노 요코 & 존 레논(이벤트가 종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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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살엄음판 위의 삶
1장 1933년에서 1966년까지 대양의아이 고통스러운 어린 시절 자유를 맛보다 ... 2장1966년에서 1980년까지 런던에서 새 출발 오쿄와 존이 yes라고 말하다 존 레논의 후원 반쪽짜리 물건들과 나머지 반쪽 .... 3장 1980년에서 현재까지 삶은 계속된다 음악은 나의 구세주였다 청동기 시대 몰래 뉴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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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오노 오코의 예술적 야망은 이런 일련의 사건 뒤로 밀려났다. 그럼에도 이미 언급한 엘피판 <공감 느끼기>가 세상에 선을 보였다. 이 앨범에서는 존 레논의 영향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오노 요코에게는 이 엘피판이 남편의 영향에서 벗어나려는 해방의 몸집이었다. 하지만 대중은 그녀의 작품에서 거듭 레논과의 유사성을 찾아보려고 했다. 오노 요코가 결코 풀 수 없는 딜레마였다. 그녀의 노래에서 레논의 냄새가 나면 표절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반대로 비틀즈와 레논의 흔적을 지우고 나면 남편의 도움 없이는 이류 음악밖에 만들지 못한다고 그녀를 비난했다. 그럼에도 오노 요코가 이런 공평하지 않은 비평을 감수하고 흔들림 없이 자신의 예술 목표를 추구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 2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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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억지로 떠맡게 된 어머니의 역할과 예술적인 야망 사이에서 그녀는 심한 압박감을 느꼈다. 그런 무언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일본식 가족 생활에서 탈출하여 그녀의 계획을 실현할 수 잇는 곳으로 돌아가는 방법준이었다. 축복 받은 땅, 그 이름은 미국이었다. 그곳엔 존 케이지와 마키우나스, 백남준, 앨리슨 놀스가 있었다. 이 시기에 지금껏 숨어 있던 그녀의 다른 면모가 발휘되기 시작했다. 강하고 진취적이며 목적 의식이 투철한 여성. 자기 힘으로, 굽히지 않는 의지로 목적을 추구하는 여성, 훗날 오노 요코는 이 시리를 회상하며 자신을 입센의<인형의 집>에 나오는 노라와 비교했다. "노라는 독립을 위해 남편과 자식을 버렸지요. 노라는 내게 초기 페미니즘적 태도를 상징합니다." 그녀의 결심은 확고했다. 일본을 떠나 미국으로 돌아가 그곳 예술계에서 명성을 쌓는 것이었다.
딸 교코에 대한 요코의 태도는 무관심과 지극한 정성이라는 양극단 사이를 오갔다. 하지만 정작 딸이 부모를, 특히 어머니를 필요로 하던 어린 시절에, 요코는 딸을 장애물로 생각하였다. 요코의 활동은 가족의 의무와 조화를 이룰 수 없었다. 그 결과 아버지쪽이 아이의 양육에 더 많은 시간과 관심을 쏟았다. 오노 요코가 갑자기 다시 모성애를 느끼고 딸을 보고 싶어하고 곁에 두고 싶어했을 때는, 갖은 수단을 동원해 아이를 못 만나게 방해했다. 아이에 대한 그녀의 이중적인 태도는 독특한 반응으로 나타났다. ---pp. 95-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