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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서문
제1장 하의도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성장하다 제2장 민중의 선택을 받다 제3장 마타도어 정치 제4장 폭력의 시대 제5장 민주주의, 재판정에 서다 제6장 감옥에서 명명까지 제7장 민주주의의 탄생 제8장 민주 야당에서 제9장 햇볕정책의 여명 제10장 절정에 이른 햇볕정책 제11장 비난 받는 햇볕정책 제12장 타락의 시간 에필로그- 노벨 오블리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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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인생 초반에 김대중의 예리한 직감은 포퓰리스트의 그것이었다. 그에게는 좌파와의 접촉이 득표로 연결되고, 목포와 전라도의 이익을 염두에 둔 사회개혁의 길을 열어줄 것으로 여겨졌다. 많은 외국인들이 믿는 것처럼, DJ는 통일 한국에 대한 비전과 북한에 대한 이해, 한국 대중 사이의 카리스마 넘치는 호소력 등을 바탕으로 정치적 명성을 이루지는 않았다.”
“김대중은 서울과 남한을 해방시킨 미군의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감사의 마음이 그로 하여금 군에 입대해야겠다는 마음을 품도록 만들지는 못했다. 그가 군대에 가지 않은 이유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런 설명이 가능하다. 기회주의적인 기업인으로서, 김대중은 자신이 군인으로 복무하는 것보다 기업인으로 일하는 것이 국가에 더 효과적으로 기여하는 길이라고 당국을 설득시켰을 수 있는 것이다.” “DJ는 독재에 맞서는 ‘성전’이 국제적 지지를 얻고 아울러 학대받는 시민들, 특히 오랫동안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인물을 갖지 못한 채 지낸 전라도 사람들의 인기를 얻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 그의 지지의 원천인 전라도 사람들에게는 자신들을 수 세기 동안 억압한 중앙정부에 맞서 싸울 그들만의 투쟁이 있었다. DJ로서는 자신의 정치 조직과 권력 기반을 다질 때 그런 정서를 동력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베트남에서 하노이 정권이 승리를 거두고 10개월 뒤 김대중을 비롯한 반체제 인사들이 ‘민주구국선언’을 발표했다. 이 선언은 박정희가 심혈을 기울이던 경제에 대한 평가에서는 공정치 못했다. 이 선언은 북한과의 치열한 갈등에 대해 논하고 있지만, 북한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예를 제시하지 못했다.” “한국전쟁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서도 아무 말을 않는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이 아무리 가혹했다 하더라도, DJ는 그들이 통치하던 시기에 처한 위기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DJ는 철저히 부정적인 해석을 드러냈는데, 미래의 지도자에게는 그 자체가 문제이다.” “미국에서 망명생활을 하다가 한국에 돌아올 때 미국 국무부는 DJ가 서울에 도착할 때 그의 안전을 보장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구해 이미 확답을 받아놓고 있었다. 그런데도 DJ는 스스로 장렬한 모습을 취했다. 그는 인사말에서 ‘아키노와 같은 운명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우리가 공산주의와 맞선 싸움에서 이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솝의 유명한 우화에 담긴 진리를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 우화에서는 거세게 몰아치는 겨울 북풍이 아니라 뜨거운 태양만이 사람의 두툼한 코트를 벗길 수 있다.’ 그는 서독의 경우에는 ‘그 자체의 향기로운 태양으로 승리를 거두었다.’고 주장했다. ‘우리도 겨울 삭풍에 의존해서는 승리를 거둘 수 없다.’ 그가 이런 말을 할 때, 북한은 글로벌 테러리즘의 새로운 시대로 들어가고 있었을 뿐 아니라 자국민들에 대한 잔혹성에서도 최악의 단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미국의 잡지 ‘포린 어페어즈’에 리콴유를 비판하는 내용을 담은, 민주주의에 관한 에세이를 발표한 적이 있다. 리콴유가 그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서구 스타일의 민주주의와 서구적 가치들이 아시아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한 것을 비판하는 글이었다. 그때 DJ는 “국민들을 경제적 및 사회적 변화의 나쁜 요소들로부터 보호하려는 정책들도 국민의 동의 없이 행해질 경우에는 절대로 효과적일 수 없다.”고 썼다. 그런데 정작 DJ 본인은 북한에 대한 비판을 말리는 한편으로 햇볕정책을 놓고 국민의 동의를 구할 생각을 별로 하지 않은 것 같다.” “대체로 미국인들은 현실의 정확한 반영과는 약간의 거리가 있는, DJ의 정치적 열망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한국을 보았다.” “부패의 문화에서는 북한에 뇌물을 안기는 것도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DJ의 경우에는 그 과정이 노벨상 노력과 맞물려 있어 복잡해졌다. 과거 DJ를 미행했던 국가정보원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노벨상을 받을 가능성을 조사했던 경험을 활용했다. 그 후 노벨상으로 가는 지름길로 통하는 미국 필라델피아의 ‘국립헌법기념관’의 ‘자유의 메달’과 노르웨이 라프토 재단의 인권상이 DJ에게로 돌아갔다.” “한국 국민들 중에는 대북 화해의 아이디어에는 찬성하지만 그 의사결정 과정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DJ의 동기가 이기적이고 성실치 못하다는 의심이 햇볕정책에 대한 폭넓은 반대로 이어졌다.” “북한의 절망적인 자금사정을 고려하면, 당시 김정일은 아마 거액의 돈을 내놓기만 하면 한국의 지도자 누구라도 기꺼이 만났을 것이다. 노벨상을 위한 운동의 일환으로, 김정일이 돈보다는 남북화해를 간절히 원한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 필요성이 없었다면, 그 지급을 은밀히 감추어야 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2009년 8월 18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부인 이희호 여사와 아들 김홍일과 홍업, 홍걸이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의 병상을 지키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을 때, 햇볕정책의 희망이 다시 살아났다. … 북한 조문단이 그를 기려 조화를 바쳤으며, 장례식이 열린 8월 23일에는 그때까지도 북한의 매체들이 “반역자”와 미국의 “앞잡이”라고 비난하던 이명박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 메시지를 전했다. 세계 평화의 사도들이 영생을 누리는 창공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미소를 지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김정일 위원장의 메시지는 관계의 “진전”에 대한 것이었다고 청와대는 말했다. 핵무기와 미사일에 관한 내용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망각 속으로 사라져가던 햇볕정책이 조문 외교의 한 장치로 되살아났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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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서울 특파원으로 활동 중인 저널리스트가 쓴 김대중의 삶과 햇볕정책
평생에 걸친 민주화운동과 대북 화해 정책으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세계무대에서는 넬슨 만델라나 레흐 바웬사와 같은 반열의 인물로 추앙을 받아왔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서는 평판이 크게 갈린다. 시카고 트리뷴의 서울 특파원으로 1972년 김대중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난 저자는 바로 그 점에 착안하여 DJ의 삶과 정책에 때로는 존경의 맘으로, 때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 도널드 커크의 시각도 결코 객관적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소개된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책들은 본인이 썼거나 그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이 쓴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현실에서 이 책은 그 동안 우리가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서 보지 못했거나 보았더라도 애써 무시해왔을지 모르는 다른 반쪽을 살려내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저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에서 투우사의 이미지와 저항의 브랜드를 읽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