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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鏡潾, 본명:안애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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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나에게로 돌아가는 시간
도서3팀 박숙경(beblue84@yes24.com)
2016.06.09.
우리는 얼마나 많은 ‘일어났어야 했던 일’을 겪으며 살고 있을까. 그것은 다분히 결과적인 것이라서 늘 지나고 나서야 ‘일어났어야 했던 일’로 말해진다. 또 그 운명적인 뉘앙스에 기대 자신의 무력함을 기꺼이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치부할 때도 유용하게 쓰인다. 그 일은, 그 사랑은 그녀에게 왜 일어났어야 하는 일일까.
소녀의 시간, 풀숲에서의 사건 이후 누경 안에서 성장을 멈춘 소녀는 서강주와의 재회 후 마치 주술을 풀어낸 듯 급격하게 자라났다. 단 두 번의 계절을 지나는 동안 누경은 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겪는 듯 시간을 통과했고 그 마음이 더 이상 아무것도 받아들이지 않고 아무것도 내뱉지 않는 순간 - 그 일이 끝났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 스스로의 시간을 멈추게 했다. 그렇게 그 순간에 자신을 묶어두고 많은 현재의 순간 속에서 과거로서 존재하는 여자가 되는 일이 결과라면, 그 일은 진정 일어났어야 했다고 할 수 있을지. 얼마간의 기쁨과 황홀함, 사무친 마음과 또 일부는 불안과 초조, 근심과 걱정으로 점철된 서강주와의 시간이 그 수많은 ‘현재의 누경’을 만들어내고 결국 끝에 이르렀을 때, 그 많은 누경들은 과거가 되어버린 시간 속에 각기 다른 파편으로만 남는다. 어쩌면 누경이 누누이 강조하는 고유한 리듬이란 결국 그 모든 누경의 파편들이 모두 현재에 도달해 온전히 지금 존재하는 자신을 인식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을 뜻하는지도 모르겠다. 등장인물 중 평생 고독하도록 손금에 운명지어진 남자, 나는 기현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왜냐하면,난 그 많은 소년들이 남자가 되는 시간들도 참 신기하니까. 그에 비하자면 누경은 참으로 영리하고 이기적인 편이다. 야금야금 시간을 탕진하며 자신이 원하는 바를 추구할 줄 알고, 몇몇의 남자들에게 나쁜년(!) 소리를 들어먹을 줄도 안다. 반면 기현은 그 나이에 속물적이라는 단어에 뒤숭숭해하고, 자기한테 별 감정 없다는(싫다는 것도 아니고!) 여자 앞에서 펑펑 울기도 한다. 그 여자가 딴 남자를 보는데도, 그래도 괜찮을 것 같다고도 한다. 사랑을 떠맡는 남자. 아마도 많이 고독한 남자. 문득 연애소설이 읽고 싶어서 오래 책장에 꽂아만 뒀던 책을 꺼내 들었던 기대와는 다른, 이 글은 내게 아주 낯선 사랑이야기였다. 소설의 중심이 되는 서강주와의 시간을 사랑이라고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사랑이라기보다, 누경의 말을 빌려 표현하자면 그건 그저 ‘일어났어야 하는 일’ 일뿐. 하긴, 모든 지나간 사랑 중 ‘일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일’인 것이 얼마나 있을까도 싶지만. 일어났어야 할 일을 지나고 정리해야 할 일들과 마음을 제자리에 두는 노력으로, 누경은 말미에 이르러 몸의 고요를 느낀다. 일상의 반복 속에서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그 근원이었을 텐데. 주말이면 냉장고를 비우고 욕실을 청소하고 식재료를 다듬는, 그런 삶의 활동을 통해 자신을 닦아내는 기현에게는 아무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니, 역시 사랑의 일은 영역 밖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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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지지 않는 게 사랑이야.
어떤 균열이든 두 팔로 끌어안고 지속하는 그것이, 사랑의 일이야.” 전경린은, “독을 독으로 푸는” 소설가다. 그의 매혹적인 문장들은, 언제나 그 치명적인 독성으로 인해 독자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더 벼리지 않아도 그 자체로 이미 더없이 날카로운 그의 펜 끝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거둘 수 없는 증오를, 화해되지 못하는 관계를, 부서지고 조각난 삶을, 그로 인해 온통 흔들리는 영혼을, 후벼판다. 그리고, 역시 그 날 선 펜 끝으로, 그 모든 것들을 다시, 온전히 끌어안는다. 전작 『엄마의 집』에서 엄마와 딸의 이야기를 따스한 시선으로 담아냈던 전경린은 새 장편 『풀밭 위의 식사』에서 다시, ‘사랑’을 말한다. 사랑의 감정에 대해, 사랑하는 이들의 현재와 과거에 대해, 사랑의 본질에 대해 그보다 더 아름답고도 정확하게 그려내는 작가가 또 있을까. 마음 한켠을 날렵하게 베어내 얇게 벼린 그 조각을 들이미는 듯한 그의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은, 어느새 자신의 마음자리까지 작가에게 내어주고 말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과 독자들의 마음까지를 온통 깨어지기 쉬운 유리의 그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작가는, 그러나, 말한다. “더 많이,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 * 소설은, 그 시작부터 이미 깨어질 것을 알았지만, 그 예고된 위험마저 받아들인 ‘그 여자’, 누경에게서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여자를 바라보는 한 남자. 그 여자는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잔을 들어올리거나 내려놓는 동작을 따라 검은 머리카락이 어깨 위로 가볍게 흩어졌다. 유난히 팔이 긴 듯하고 손이 희었다. 기현은 그 여자의 옆 테이블에 대각선으로 앉아 있었다. (……) 두 여자는 간간이 웃음소리를 냈고 이따금 음성이 바닥을 스치듯 낮아졌다가 다시 올라가곤 했다. 대각선에 앉은 여자가 미소를 지으며 기현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기현은 자신이 그 여자를 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가 황급히 눈길을 피했다. 눈길을 피하면서, 미소지은 여자의 눈 속에 잠겨 있던 검은 섬광에 놀랐다. 얼린 맥주잔 속 시원하고 진한 맛의 맥주가 거품과 함께 목젖을 감으며 위장에 싸하게 스며들 때, 그때 몰려오는 통렬한 청량감, 여자의 가늘고 흰 팔, 공기를 흩뜨리는 웃음소리, 공중에서 부딪히고 얽혀드는 그 눈빛…… 이 기록을 하는 것이 두렵다. 그런데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누가 읽을까봐 무서워하면서, 나는 쓴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숨겨진 그녀의 일기장 속의 한 남자. 두려워하면서도 쓰지 않을 수밖에 없는 그녀의 일기장은 어떤 사람과, 사랑과, 삶과, 기쁨과, 그리고 상처의 기록들로 메워져 있는 것일까. 글자들은 망각의 물 위에 쓰인 것처럼 한순간 읽혀진 뒤에 다시 비밀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직 글자들이 해독되는 순간에만 그 시절의 기억도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누경은 낯익은 자신과 낯모를 자신을 나누며 일기를 읽어나갔다. 우리의 두 눈은 꽃처럼 많은 겹으로 피어 있었다. 인간의 눈 속에 그토록 많은 눈꺼풀이 들어 있었다니…… 우리가 포옹한 시간이 실제로 몇 분 동안이든, 그 순간은 감각작용의 편애를 받으며 시간을 벗어나 영원이 되어버렸다. 그런 일은 더이상 시간에 속한 일이 아니다. 그날 이후, 나는 몇 개의 영원 속에서 살고 있다. * 단둘이 있는데도 더욱더 단둘이 있고 싶었다. 자신이 하려는 행위를 의심하듯 그는 손가락 끝으로 나의 뺨을 쓰다듬었다. 그리고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밥냄새와 미소국 냄새와 맑은 생선 냄새와 바다 냄새와 깊은 산골의 냄새가 차례로 지나갔다. “우린 마음이 같을까요?” 내가 물었다. 그가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같아.” 왜 그렇게 슬픈 눈으로 나를 보았나요? 눈을 감으면, 당신 눈 속의 눈동자가 내 눈 속에 고인 물처럼 흔들려요. 당신의 속눈썹이 내 속눈썹을 덮어요. 여린 속눈썹 아래서 이슬처럼 떨리는 이 집요한 시선…… 내가 당신을 보고 있는지 당신이 나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어요. 이토록 보고 있다 해도 여전히 보고 싶어요. 어쩌다가,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이런 일을 만들었는지, 우리가 원한 건 단지 보고 싶어하는 마음인 걸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라고 당신 눈이 말하네요. 그러면 나는 이 마음을 생의 끝까지 지니고 가야 하는 건가요? 그 외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요? 차라리 이 마음을 부수어버리고 싶어요. 내 눈 속에 가만히 닫아 익사시키고 싶어요. 화장시켜 멀리 날려버리고 싶어요. 그렇게 나를 해쳐서 헝겊인형 같은 무생물의 마음이 되어 당신이 죽을 때, 단 한 번 열리는 그 구멍 속으로 순장처럼 함께 사라지고 싶어요…… 더 사랑하는 사람이 상대를 허용한다. “더 많이, 깊이 사랑한 사람은 사랑으로 인해 다치지 않아.” 사랑에 관한 한, 사람들은 자기의 감정에 엄청난 권리가 있다고 착각을 하곤 한다. ‘내 사랑’만큼은, 언제나, 어떤 이유에서건 가장 순결하고 고귀하다. 내 사랑에 대한 권한이 있는 만큼 욕심을 부리지만, 때문에 또한 두렵기도 하다. 더 많이, 더 깊이 사랑을 하다 혹시 상처입지 않을까…… 하지만, 세 노르말. 세 노르말 c’est normal, 이 표현은 극복하거나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 역점을 두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안고 일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쓰인다고 했다. 세 노르말 c’est normal, 어떤 일이 일어나도, 그것을 안고 일상적 상황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럴 것이다…… 사람들은 내 눈 속의 사랑을 보고 당황하죠. 그것이 무엇을 향한 것인지 알고 싶어했어요. 정체불명의 사랑이 내 눈 속에 낙화처럼 떠돈다 해도, 나의 웃음이 도처에서 사랑처럼 보였다 해도, 실은 그 누구를 향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정말 그보다는, 들에 핀 꽃나무가 누구를 향하지도 않으면서 세상을 밝히며 활짝 피어나듯, 내 사랑도 그런 것이면 좋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