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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1장 01 인생의 봄을 회고하다 02 ‘회’라는 글자를 처음 배운 날 03 찬란했던 소학교 시절 04 삼류 학교의 즐거움 05 베이위안의 풍경 06 베이징대학을 꿈꾸다 07 어린시절을 회고하며 08 우물안 개구리에서 벗어나다 09 늙은 개 한 마리 10 닝차오슈 아저씨를 그리며 11 소중한 첫 직장 12 괴팅겐의 은인, 하룬 교수 13 영원한 친구 장톈린 2장 01 스스로를 돌아보다 02 ‘국학대사’의 호칭을 사양하다 03 ‘국보’의 호칭을 사양하다 04 투병 끝에 얻은 것 05 세 번째 입원 06 하늘나라와 인간 세상 07 백의천사에 대한 새로운 찬사 08 나와 소동파의 사 09 찬란한 빛을 발하다 10 풋사랑 11 석류화 12 어리석기도 어렵구나 13 조금은 어리석게, 조금은 소탈하게 14 불로장생 15 친일파에 대한 생각 16 노년을 다시 논하다 17 개의 해 첫 날의 감회 18 ‘다시 젊어지는’ 문제에 대해 담담하게 논하다 19 우려해야 할 현상 20 평범한 것들의 아름다움 21 분석이 학문 연구의 유일한 수단은 아니다 22 저우이랑을 애도하며 23 남극에서 온 식물 옮긴이의 말 |
季羨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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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난 아흔 하고도 하나가 되었다. 지씨 가문의 족보를 다 뒤져도 아마 내 나이만큼 산 사람을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도 난 내가 늙었다는 사실을 조금도 느낄 수가 없다. 늙은 천리마처럼 몸은 이미 노쇠하여 울타리에 엎드려 있지만 그 뜻은 만 리를 내달리고 있다. 육신은 비록 이런저런 병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이 역시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이 나이 되도록 아무런 병도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 아니겠는가. 갖가지 병을 몸에 지니고 있지만 목숨을 내놓아야 할 만큼 치명적인 병은 없다. 비록 귀가 조금 어둡고, 눈이 침침하기는 하지만, 머리만큼은 결코 녹슬지 않았다. 노인성 치매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쭙잖은 자만심마저 생겨버렸다. 세상엔 아직도 날 필요로 하는 일이 많은 것 같다. --- pp.16-17
숙모에게 아침 사먹을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아 속으로 끙끙 앓았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느 여름날 저녁, 식구들이 모두 마당에 멍석을 깔고 누워 선선한 바람을 쐬고 있었다. 다들 편히 쉬고 있는데 나 혼자 돈 달라는 말을 하지 못하고 몇 번이나 입만 벙긋거리다 말았다. 그러다 결국 깊은 밤이 돼서야 가까스로 용기를 내서 말을 꺼냈다. 그때 엽전 몇 푼을 받고 얼마나 기쁘던지 그걸 손에 꼭 쥔 채 그대로 잠이 들었다.--- p.38 난 여섯 살 되던 해에 어머니 곁을 떠났다. 지난의 숙부 댁으로 온 그날 밤새도록 서럽게 울었다. 어느 해인지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아홉 살에서 열두 살 사이에 할머니가 병으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고향집에 다녀왔다. “자식이 어머니를 만나면 아무 일 없이도 세 번 운다”는 옛말도 있지만,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어머니를 만났는데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날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엔 눈물이 가득 고였다. --- p.56 우체국에서 책을 찾으면, 비록 얇디얇은 책 한 권일지라도 내겐 그 무엇보다 큰 힘을 주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복감이 가슴 속에서 복받쳐 올랐다. 책을 품에 안고 학교로 돌아가는 길엔 이미 20여 리 길을 걸어왔는데도 하나도 힘든 줄 몰랐다. 오히려 우체국에 갈 때보다 하늘이 더 푸르고, 구름이 더 희고, 연못은 더 맑았으며, 나무는 더 푸르고, 연꽃은 더 붉고, 연잎도 더 둥글었다. --- p.96 그 전까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남의 밑에서 일하면서 그럭저럭 먹고 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었다. 용이 되어 승천하겠다는 망상조차 품어보지 않은 어린 뱀이었다. 하지만 표창장 하나가 나의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불현듯 용은 되지 못할지언정 이름없는 뱀으로 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03 숙부 집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서 어머니가 병이 나신게 아니라 돌아가셨다는 걸 알았다. 하늘이 무너져도 그보다 절망적이지는 않았다. 후회와 자책감이 독사처럼 내 가슴팍을 헤집고 들어왔다. 설마 8년간 여덟 번의 여름방학을 보내는 동안 단 며칠이라도 어머니를 만나러 갈 시간이 없었단 말인가? 적적함과 쓸쓸함에 가난까지 겹쳤는데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몸으로 어떻게 견딘단 말인가? 도저히 내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 p.136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어린 누이의 고운 자태가 떠오른다. 중국에는 예로부터 ‘물고기가 보고 헤엄치는 걸 잊고 가라 앉는다’, ‘달도 부끄러워 구름 뒤로 숨는다’ 등등 아름다운 여인을 칭송하는 수사들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어린 누이의 미색을 표현하기에는 부족하다. 옛날 문인들의 시 속에 묘사된 미인들은 대부분 허상이고, 어린 누이는 생생하게 살아 있으니 허구를 향한 찬사로 어떻게 살아 있는 미인을 표현할 수 있겠는가. --- p.256 세상 모든 사람이 황천길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 길에선 굳이 1등을 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다. 난 이 길에선 절대로 기득권을 주장하거나, 새치기를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저 느긋하게 가다가 내가 ‘끝내야’ 할 때가 오면 담담히 받아들일 것이다. ‘술잔을 기울여 한탄하지도’ ‘애써 울음을 삼키며 억지 웃음을 지어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 p.294 그런데 이 남극의 ‘식물’은 1백 년 동안 단 1밀리미터밖에 자라지 않았다. 중국의 역대 왕조 가운데 가장 길었던 주나라는 약 8백 년 동안 유지되었다. 그 8백 년 동안 역사는 얼마나 많은 격변을 겪었던가.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가 모두 그 기간에 속한다. ‘백가쟁명百家爭鳴 백화제방百花齊放’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철학가들이 각양각색의 주장을 내놓고, 기기묘묘한 논리를 펼쳤다. 하지만 이 남극 ‘식물’은 그 기나긴 세월동안 빙산 속에서 묵묵히 인내하며 불과 6밀리미터 자란 것이다. --- pp.329-3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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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국민적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는 대학자 지셴린의 자전적 병상 에세이
이 책은 저명한 학자 지셴린(季羨林) 선생의 최신작으로 2001년 투병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병상에서 새로 쓴 수십 편의 에세이가 수록되어 있다. 자신의 유년기와 소년기, 청년기의 생활과 학문, 불굴의 의지로 고난을 이겨낸 감동적인 인생 역정이 차분한 필치로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이 책에는 부모님과 은사, 어린 시절 친구들에 대한 그리움, 병마와 사투를 벌이는 중에도 선생이 일생 동안 고민하고 숙고해 온 인간과 자연의 조화, 사회적인 공덕(公德), 인생관, 생명관, 그리고 인생에 대한 깨달음에 관한 글이 담겨 있다. 거세게 몰아치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굴하지 않은 패기와 당당한 노익장,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호연지기가 정련된 언어와 세심한 관찰력, 직접 겪은 생생한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와 독자들에게 더 강렬한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한 세기를 빠듯하게 산 ‘천생 학자’ “하루가 48시간이 아닌 것이 애석하다. 1분 1초로 긴장을 풀고 편히 지낼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허비한 날엔 죄를 지은 것 같아서 밤잠을 이룰 수가 없다. 편하게 시간을 보내는 건 내게 만성 자살과도 같다” 『라마야나』 후기에서 지셴린선생이 한 말이다. 일생 동안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책상 앞에 앉아 연구를 했고, 백내장으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은 후에도 매일 새벽 돋보기를 끼고 연구를 계속했다고 하니, 100년이라도 그의 열정을 다 담기엔 빠듯한 시간이었으리라. 병상에 누워서도 자신이 아직 건재함을 알리고 싶었고, 세상에 지혜의 목소리를 내고 싶었던 진정한 학자. 이 책은 생의 뒤안길에 선 노학자가 죽음 직전까지 놓지 않고 세상에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렇기에 한 구절, 한 문장이 결코 가볍지 않다. 세기의 전환점에서 세대의 소통을 이끌어내다 지셴린이 많은 이들에게 존경받는 것은 비단 학문적 성과 때문만은 아니다. 베이징대학 중문과 천핑위안(陳平原) 교수는 “지셴린 선생은 이미 전문가의 범주를 초월해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지셴린은 항상 젊은 세대에 관심과 애정을 쏟았으며, 국가의 운명,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운명에도 관심을 거두지 않았던 ‘큰 지식인’ 이었다. 지셴린이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대중과 대화하는 통로는 바로 산문이었다. 그의 학문의 폭은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넓고 깊었지만, 그의 산문은 결코 무겁거나 어렵지 않다. 일생 동안 현학적인 수사를 경멸해왔다는 그는 스스로 ‘박물관에나 들어가야 할 노인’이라고 자조했고, 원자바오 총리가 자신의 정신적 스승이라고 칭할 정도로 인품이 높았던 원로 학자이지만, 고리타분한 말로 설교하거나 가르치려들지 않았다. 모진 세파에 담금질 되어 단단해진 지혜를 특유의 소탈한 화법으로 담담하게 풀어냈다. 행간에 숨겨진 잔잔한 해학과 기개를 마주할 때면 10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쓴 글이라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당당하면서도 겸손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예리하다. 거짓으로 어리석은 현인(賢人), 지셴린 청나라 문인 정판교는 자신의 시에 이렇게 읊었다. “똑똑해 보이기도 어렵지만, 어리석게 보이기도 어렵다. 똑똑한 이가 어리석게 보이기는 더 어렵다.” 난득호도(難得糊塗). 재물이 많고 학식이 뛰어나면서도 실력이나 재물을 감추고 자신을 낮춰 어수룩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 국보’, ‘국학 대사’, ‘중국 동방학의 대가’ 등의 칭호를 평생 거부한 그지만, 스스로를 ‘난득호도파’라 부르는 것만큼은 사양하지 않았다. 바로 이런 점이 지셴린을 단순한 지식인이 아닌 ‘나라의 어른’으로 추앙받게 만들었을 것이다. 평생 낡은 옷과 해진 가방에 만족하며 청렴하고 질박한 삶을 산 지셴린의 인간적인 성품이 오랜 세월의 풍파를 이기고 완성되는 과정을 글을 통해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끝내야 할 때를 받아들이다 “끝내야 할 곳에서 끝내버리고 다시는 혼자 깊이 생각 마시게.” 지셴린의 좌우명으로 알려진 도연명의 시 〈신석〉의 한 부분이다. 생과 사를 결정하는 것은 사람의 몫이 아니므로 길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는 병상에 누워 신문을 통해 과학자들의 불로장생 연구 소식을 보며 잠시 생명 연장을 꿈꿨노라 고백한다. 하지만 금세 그런 자신을 탓하며 생에 대한 애착을 여생이 아닌 ‘살아있는 오늘’로 돌린다. ‘수명은 사람 의 의지로 어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길든 짧든 단 한 번뿐인 삶을 헛되이 보내지 말아 야 한다’. 이것이 그가 생의 마지막까지도 책보기와 글쓰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힘이었을 것이다. 지셴린은 생전에 남긴 글에서 느긋하게 가다가 끝내야 할 때가 오면 담?하게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한탄하지도, 억지웃음을 지어보이지도 않겠다던 그의 자세는 세상의 조화를 아는 현인의 참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 나아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대자연 전체가 화목하고 행복하게 공존하기를 꿈꿨던 지셴린. 100년을 거쳐 단단하고 명쾌해진 그의 신념과 지혜가 이 책 속에 오롯이 녹아있다. 그는 이미 끝내야 할 때를 받아들였고, 우리는 이제 인생의 대선배가 남겨준 선물을 감사히 품에 안고자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