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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키는 여느 때처럼 제 쿠션에서 소파 등받이로 폴짝 뛰어오른 다음, 내 어깨에 앞발을 척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지칠 때까지 내 얼굴을 철저히 핥았다. 트리키는 금세 지쳐버렸다. 그만한 크기의 개한테 필요한 양의 갑절에 가까운 먹이를 먹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먹이란 것이 모두 개한테 먹여서는 안되는 것들뿐이었다.
펌프리 부인은 그런 트리키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와주셔서 정말 기뻐요. 트리키가 또 털썩병에 걸렸지 뭐예요." 털썩병이라는 질병은 어느 교과서에도 나와 있지 않다. 사실은 트리키의 항문샘이 막히는 증세에다 펌프리 부인이 갖다붙인 이름이다. 항문샘이 막히면 트리키는 산책을 하다 말고 '털썩' 주저앉아 괴로운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여주인은 소스라치게 몰라서 전화기로 달려간다. "헤리엇 선생님! 빨리 좀 와주세요! 트리키가 또 털썩병에 걸렸어요!" 나는 작은 개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항문에 솜을 대고 힘껏 눌어서 항문샘에 가득 차 있는 것을 짜냈다. 트리키가 나를 만날 때마다 반가워해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만나기만 하면 움켜잡고 엉덩이를 쥐어짜는 인간을 좋아할 수 있는 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관대한 성격을 타고나야 한다. 트리키는 나를 원망하거나 미워하는 기색을 한번도 보인 적이 없었다. 사실 트리키는 변덕스럽지 않고 늘 침착하고 영리한 개였다. 나는 진심으로 트리키를 좋아했다. 그래서 기꺼이 트리키의 주치의가 되었다. 처치가 끝나자 나는 환자를 탁자에서 들어올렸다. 갈비뼈에 군살이 더 붙고 몸무게가 또 늘어나 있었다. "또 먹이를 너무 많이 주시는군요. 케이크는 먹이지 말고 단백질을 좀더 먹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았나요?" "알아요." 펌프리 부인은 구슬픈 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트리키는 닭고기에 물려서 입도 안 대는걸 난들 어쩌겠어요." 나는 어깨가 으쓱했다. 사태는 절망적이었다. 하녀가 나를 호화로운 욕실로 안애해주었다. 나는 처치가 끝나면 반드시 그 욕실에서 무슨 의식이라도 치르듯 손을 씻었다. 널찍한 욕실에는 화장품이 즐비하게 놓여 있는 화장대, 거대한 초록빛 대리석 세면대와 욕조, 세면도구가 놓여 있는 유리 선반이 완비되어 있었다. 값비싼 비누 옆에는 내 전용 수건도 걸려 있었다. 거실로 돌아와보니 벌써 내 술잔에 셰리주가 가득 채워져 있었다. 나는 펌프리 부인과 대화를 나누려고 난롯가에 자리를 잡았다. 이야기는 펌프리 부인 혼자 도맡아 하니까 대화라고 부를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항상 보람있는 시간이었다. 펌프리 부인은 호감이 가는 노부인이었다. 자선사업에도 많은 돈을 기부하고, 곤경에 빠진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었다. 부인은 재미있고 지적이며 묘한 매력을 갖고 있었지만, 사람은 대부분 맹점을 갖고 있는 법이다. 부인의 맹점으 바로 트리키였다. 사랑해 마지않는 이 개에 대해 부인이 하는 이야기는 완전히 환상적이었다. 다음에는 또 어떤 판타지가 펼쳐질까.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부인이 입을 열기를 기다렸다. "아주 신나는 소식이 있어요. 트리키한테 펜팔이 생겼답니다! 사실은 트리키가 기부금을 동봉해서 <개들의 세계> 편집장한테 편지를 보냈거든요. 편지 내용은 이런 거였어요. 나는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 황제의 자손이지만, 몸을 낮추어 평범한 개들과 기꺼이 교제하기로 결정했으니, 서로 도움이 되는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도록 당신이 아는 개들 가운데 적당한 펜팔을 소개해달라. 나는 '허풍쟁이'라는 필명을 쓰기로 하겠다. 그랬더니 글쎄 편집장이 멋진 답장을 보내오지 않았겠어요?" (나는 이 노다지에 덤벼든 현명한 사내를 상상할 수 있었다.) "편집장은 본조라는 달마시안을 펜팔로 소개하고 싶대요. 그 달마시안도 외로우니까, 요크셔의 새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으면 기뻐할 거라고..." --- pp 29~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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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는 곧잘 항문샘이 막히는 트리키, 눈 속에서 잠자는 팁, 평생 동안 딱 한 번 짖는 지프 같은 개들과 오지랖 넓은 도노번 부인, 고집스러운 화가 파트리지 씨, 무뚝뚝한 농부 윌킨 씨 같은 친숙한 이웃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어딘가 부족하고 약하지만, 미워하거나 버릴 수 없는 사랑스러움을 지니고 있다.
<털썩병에 걸린 트리키> - 트리키와 펌프리 부인 트리키 : 페키니즈, 헤리엇 아저씨의 조카. 음식이라면 절대로 거절할 줄 모르는 것이 유일한 결점. 가끔 항문샘이 막히는 ‘털썩병’을 앓고 있음. 취미는 펜팔과 경마 도박. 트리키가 나를 만날 때마다 반가워해주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만나기만 하면 움켜잡고 엉덩이를 쥐어짜는 인간을 좋아할 수 있는 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관대한 성격을 타고 나야 한다.(29쪽) 펌프리 부인 : 맥주로 떼돈을 번, 이른바 맥주 귀족이었던 남편에게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다. 트리키라면 이성을 잃는 것이 유일한 결점. 트리키의 말을 알아듣는 듯. “제발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세요. 나도 개한테 어울리는 먹이를 주려고 애쓰기는 하지만, 그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트리키가 한입만 달라고 애걸하면 매정하게 거절할 수가 없는 걸요.”(34쪽) <대러비의 해결사> - 로이와 도노번 부인 로이 : 골든리트리버. 태어나자마자 묶여서 1년이 넘게 방치됨. 도노번 부인을 만나 새로운 삶을 얻는다. 개의 눈 속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침착한 신뢰뿐이었다.……이 개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사람을 굳게 믿고, 그들이 무슨 짓을 해도 불평 없이 받아들였다. 아무도 없는 어둠 속에 혼자 끝없이 앉아 있었기 때문에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따금 낑낑거렸을 뿐이다. 이 어두운 헛간이 개한테는 온 세상이었다.(140쪽) 도노번 부인 : 사건과 사고가 있는 곳이면 어디라도 나타난다. 동물에 관한 지식도 해박하여 헤리엇의 진료활동을 방해하곤 한다. 빈사상태의 로이를 몸과 마음을 다해 살려낸다. “내가 이 개를 맡을 수는 없을까요? 나라면 이 개를 살릴 수 있어요. 난 알아요. 제발, 제발 내가 키우게 해주세요!”(142쪽) …… 나를 탐색하듯 살피는 부인의 검은 눈에는 자랑스러움과 승리감이 담겨 있었다. 로이를 구출한 것이 바로 어제 일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 자랑스러움과 승리감은 여전히 뜨겁고 생생했다. “어때요, 몰라보게 달라졌죠!”(149쪽) <온 동네 개들이 모여든 이유> - 퍼시와 파트리지 씨 퍼시 : 실리햄 테리어 잡종. 긍지와 기개를 지닌 용감한 수컷이지만, 고환에 종양이 생기는 바람에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시간이 갈수록 퍼시의 불알은 점점 거대해졌다. 게다가 퍼시는 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고 다녔기 때문에 거대한 고환이 더욱 눈에 잘 띄었다. 파트리지 씨와 퍼시가 길을 걸어가면 사람들은 으레 고개를 돌려 퍼시의 불알을 말똥말똥 바라보곤 했다. 퍼시는 용감하게 종종걸음을 쳤고, 퍼시의 주인은 앞을 똑바로 노려보며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체했다.(209쪽) 파트리지 씨 :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늙도록 홀로 초라한 집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며 산다. 인간미가 부족하고 남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평을 받기도 하지만, 퍼시에겐 다르다. 퍼시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수술을 미루다 갖은 수모를 겪는다. “수술!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생각만 해도 참을 수가 없어요!……나는 퍼시한테, 칼을 대고 싶지 않아요.”(208쪽) …… “싫습니다! 싫어요! 그렇게는 못합니다!” 그는 어깨 위에서 격렬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나를 뚫어지게 노려보는 그는 불행을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했다. “사실은 겁이 납니다. 마취된 상태로 죽으면 어떻게 합니까.”(201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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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개들과 평범한 사람들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이야기!
온화하고 겸손한 시골 수의사 제임스 헤리엇. 그는 평생을 영국 요크셔 지방의 시골에서 살면서 자신이 만난 순박한 이웃과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전세계 3,000만에 가까운 독자가 사랑하고 아껴 읽는, 이 시대의 동물과 사람에 관한 가장 감동적인 이야기인 제임스 헤리엇의 책은 그렇게 탄생했다.
헤리엇이 발표한 많은 책들은 나중에 4부작 시리즈로 정리되었고-All Creatures Great and Small(1972), All Things Bright and Beautiful(1974), All Things Wise and Wonderful(1977), The Lord God Made Them All(1981)-이 중 2부와 3부는 웅진닷컴에서 <조금씩 행복해지는 이야기(2002)>, <아름다운 이야기(2001)>로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 책 <수의사 헤리엇의 마음이 따뜻해지는 개 이야기>(원제 : James Herriot's Dog storise, 1986년)는 4부작 시리즈에 실린 갖가지 이야기들 가운데 개에 관한 글들만 따로 골라서 엮은 것이다. 헤리엇은 이 책에서 특유의 정감 어린 시선과 위트 넘치는 필치로 개와 사람이 어우러진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소박하게 일상을 꾸려 가는 이웃들과 개들이 만들어 내는 이 풍경에는 영화 <랫쉬>에 등장하는 뛰어난 개들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식탐에 빠져서 비만증에 걸리기도 하고, 눈 내리는 밤에도 한데서 잠을 자는 미련스러움을 지닌 개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아름답다. 주인에 대한 믿음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지혜가 있고, 안일한 삶을 경멸하고 스스로 명예롭다고 생각하는 자리를 지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이다. 개와 함께 등장하는 사람들 역시 완벽한 사람들은 아니다. 남의 일에 지나치게 참견하고, 팔리지 않는 그림에만 몰두하거나, 자신의 기준을 주위 사람들에게 강요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름답다. 생명을 품어줄 수 있는 넉넉함이 있고, 생명을 존중할 줄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운 사람들과 개들이 헤리엇의 기억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만드는 이야기들은 <워싱턴 포스트> 지의 서평대로, “어떤 이야기는 재미있고, 어떤 것은 훈훈하고, 어떤 것은 극적이고, 또 어떤 것은 눈물을 자아낼 만큼 감동적”이다. 이 글의 장점 -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생명에 대한 신뢰와 애정이 돋보이는 글 제임스 헤리엇의 글에서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자연과 그 품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생물에 대한 저자의 순수한 애정이다. 그 애정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소똥 냄새 풍기는 시골의 수의사로서 수십 년 동안 고통에 신음하는 동물들을 소생시키면서 쌓은 애정이다. 처음 수의사를 지망했을 때 그의 꿈은 시골 수의사가 아니었다. 그러나 낙천적이며 성실했던 그는 자신이 수의사로서 가장 적당한 곳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곧 깨닫는다. 자신의 손에서 되살아나는 동물들의 온기, 그 온기로 인해 웃음을 짓는 순박한 이웃들 속에서 자신의 열의와 애정이 얼마만큼 가치가 있는지 절감한 것이다. 헤리엇이 그런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은 어떤 설명이나 이치가 아닌 갖가지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에 진솔하게 전달된다. “자라면 나을까요?”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죽을 때까지 계속하게 될까요?” “그럴 겁니다.” “언제라도 발작을 일으킬 수 있겠지요?”…“이를테면 경연대회에 출전했을 때도?” 세프 윌킨은 경연대회와 관련된 문제에서는 절대로 결정을 망설일 사람이 아니었다.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동물은 무자비하게 도태시키는 것이 그의 방침이다. 그가 마침내 헛기침을 했을 때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예감하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런데 내 예감이 빗나갔다. “… 지프를 계속 기른다면, 선생님이 지프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습니까?”(281쪽) 헤리엇에게는 윌킨 씨 같은 고객이 많다. 표현은 안 하지만, 속정이 깊고 언제 어느 때라도 한 번 맺은 관계를 저버리지 않는 순박한 사람들. 헤리엇은 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요크셔의 시골에 깊이 감화되어 뿌리를 내린다. “벽에 하얀 타일을 바른 수술실에서 반짝이는 금속기구를 옆에 놓고 그림자가 지지 않는 불빛 아래서 수술하는 그를 지켜보면서 나는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늘 원했던 일이다. 처음 수의사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 나는 바로 이런 모습을 꿈꾸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마소를 전문으로 치료하는 초라한 시골 수의사다.……그래도 후회는 없었다. 상황이 나에게 강요한 생활이지만, 막상 겪고 보니 성취감으로 가득 찬 것이었다.(230쪽)” 이런 깨달음에서 비롯된 순수한 애정은 부족하고, 약하고, 가치가 없는 듯 보이는 생명에게 더욱 아낌없이 제공되는데, 헤리엇의 그런 행동에서 독자들은 생명은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모든 생명에 등급을 매기고, 생명의 값을 계산하는 이 시대에 헤리엇의 글이 더욱 빛을 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시골 수의사의 험난한 일상과 그 일상에 대한 애정이 생생하고 위트 있게 그려지는 헤리엇의 글을 아껴 읽다보면, 어느새 우리들은 오래 지속되는 온기, 약한 것들의 사랑스러움, 변치 않는 믿음, 생명의 소중함 같은 풀씨들이 우리의 가슴에도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