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Marcel Proust,Marcel Valentin Louis Eugene Georges Proust
마르셀 프루스트의 다른 상품
|
화목한 대가족의 일상을 그린 무난하고 평범했던 드라마, '달빛 가족'을 기억하시는지? 그 드라마의 주제곡 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었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언젠간 찾아서 떠나고 싶어요~'. 프루스트.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 드라마 주제곡에도 그의 책을 읽어보겠다는 포부, 다짐의 글이 등장하는가. 이번에는 사강의 소설, 『지나가는 슬픔』을 보자. 이 소설에는 프루스트라는 작가가 프랑스인들에게 지니는 의미를 가볍게, 그러나 공감할 수 있는 방식으로 언급하는 장면이 나온다. 소설의 주인공은 폐암 말기 환자. 여기서 심각한 표정의 주인공이 꼽은 '죽기 전에 해야 할 소일거리들' 중의 하나가 바로『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끝까지 읽는 것이었으니. 남아 있는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보람차게 보내야만 하는 사명을 띤 자가 그 '보람참'의 경지에 이르는 지름길로 꼽은 책. 자, 이 정도면 '읽어보고 싶다'라는 호기심을 유발하기에는 충분하다. 좋은 책이겠다, 호기심도 생겼겠다, 이제 읽는 일만 남았다? 과연 그럴까?
아쉽게도『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는 일이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자그마치 7권짜리인데다가 문장의 복잡다단함이란 'Le 어쩌구, La 어쩌구' 하면서 무생물에도 성을 부여할 만큼 예민한 프랑스인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 '소설 문학이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극한점'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받는 그의 소설은, 호기심만으로 도전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상대이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만화화 작업은 바로 이러한 연유에서 시작한다. 만화화 작업이 절실히 필요했다는 가장 기본적인 이유. 그래서인지 '만화로 읽는 고전문학'이라는 부제가 그 어떤 책보다도 반갑게 들리는 책. 물론 쉽지는 않았다는 소문이다. 재해석 내지는 재창조물들에 가해지는 따가운 시선들을 감안한다면 '고전 문학의 재해석 + 문학에서 만화로의 장르 이동 + 프루스트 문학의 만화화' 라는 상황은 가히 삼중고라 불리울만 하다. 이 삼중고의 부담을 기꺼이 짊어진 인물은 스테판 외에라는 영상 전문가. 그의 명함을 보니 프루스트의 문장을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 자체가 그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을 듯도 싶다. 여기서 그가 취한 방식은 원작의 내용을 요약, 변경하는 방식이 아닌 취사선택한 원문을 그대로 인용하는 방식. 결과적으로 이 작품은 엄청난 속도감으로 읽혀진다. 물론 이 '속도감' 이란 말이 원작의 감동은 그대로 유지하되 그것을 빠른 시간 내에 전달함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일반인들도 프루스트 문학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그 자체로 미덕이기까지 한 속도감. 원작의 1권에 해당하는『만화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스완네집쪽으로』는 어린 시절 콩브레라는 고장에서 보낸 한 철을 회상하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머니의 굿나잇 키스를 기다리던 그 길고도 슬픈 밤의 추억과 유명한 마들렌느 과자의 일화를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일단 매력적. 단, 과거의 마르셀과 현재의 마르셀이 나누는 심오한 대화(원작의 가치라고 불리는 그것)는 온전히 살아있지 못하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이 책이 지닌 가치는 Tribute Album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사실. 원작을 향한 기대치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 책에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뜻이다. 프루스트 문학을 접해봤던 사람에게는 시각화된 그의 작품을 만나는 기쁨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는 접할 기회 자체를 만나는 기쁨으로 다가갈 작품. 그러나『만화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시리즈의 완결편을 보려면 좀 더 긴 시간을 참고 기다려야 한단다. 일년에 한 권씩 12년에 걸쳐 총 12권이 출간될 예정이라고 하니, 작가나 자신이나 처음의 열정이 변치 않길 바라며 기다리는 수밖에. 속도감 운운하긴 했지만 프루스트가 제시하는 철학을 공유하는 일이란, 글쎄.. 어쩔 수 없이 긴 시간을 필요로 하는 어렵고도 고된 일이긴 한가 보다. --- 이지영 jylee721@yes24.com |
|
이렇듯,나에게 메제글리즈 쪽과 게르망트 쪽은 우리가 복합적으로 영위할 수 밖에 없는 삶의 다양한 국면들이 서로 얽혀 있는 공간, 여러 우여곡절과 자잘한 사건들로 풍요로운 공간, 요컨대 나의 지적 삶을 이루는 공간이었다. 울타리를 따라서 배어 나오는 산사나무의 향기, 오솔길 자갈 위를 거닐 때의 서걱거리는 소리, 강물 위 수초 주변에 생겼다가는 곧 터져 버리는 물거품... 이제는 길도 사라지고 그 길을 거닐던 사람들은 물론 그 사람들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져 버린 후에도, 너무도 소주한 이런 인상들이 무수한 세월의 질곡을 가로질러 되살아나는 때가 있었다.
--- p.71 |
|
이 책을 옮기면서 번역자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두 번째 사항은 과연 이 책을 어떤 독자층이 읽겠는가 하는 점이었다. 왜냐하면 이 작품은 프랑스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꼭 읽고는 싶지만 쉽게 읽히지 않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번역자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도, 이 작품은 우리 나라 대학의 학부과정에서 불문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웬만한 불어 독해력을 갖고 있지 않은 이상 사실상 접근이 불가능한 작품이다. (역자 해설)
--- p. |
|
여름날 저녁, 평온하던 하늘이 갑자기 어두워지고 비바람이 몰아쳐서 사람들이 급히 몸을 피할 때, 나는 홀로 비를 맞으며 황홀경에 잠겨 메제글리즈 쪽을 생각해 보곤 했다. 떨어지는 빗소리를 가로질러,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은은하게 풍기는...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이렇듯, 내가 밤에 잠이 깨서 아침이 될 때까지 다시 잠을 이루지 못할 때는, 콩브레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이나 에전에 지낸 슬픈 불면의 밤들을 기억하거나, 아니면 최근에 차 한 잔의 맛(콩브레에서는 '향기'라고 불렀는데)에 의해 되살아난 무수한 과거의 나날들을 돌이켜보면서 지내게 되었다. 잠이 깬 후 아침이 가까워지면, 내가 정말로 잠에서 깨어났는지 더 이상 의심을 품지 않아도 되었다. 전날 내가 어느 방에서 잠이 들었는지를 기억해내, 잠이 깬 후 어둠 속에서도 내 주위로 방의 윤곽을 다시 그릴 수 있었다. 내가 어둠 속에서 그려 본 처소의 기억이 과거에 지냈던 무수한 처소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바로 전날의 그 자리를 되찾아 겹쳐지고 나면, 그 밖의 다른 모든 처소들은 커튼 위로 비집고 들어오는 희미한 아침 햇살에 쫓기어 이내 모습을 감추는 것이다. --- pp.71~72 |
|
감미로운 행복감이 나를 엄습해와, 어찌 된 영문인지 나를 고립시켜 버렸다. 도대체 이 극도의 희열감은 어디서 온단 말인가? 나는 이 희열감이 홍차와 과자때문에 생겨나긴 했지만, 단순한 감각의 차원을 뛰어넘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란 느낌이 들었다. 내가 도달하려는 본질은 과자가 아니라, 바로 내안에 있었다. 홍차에 적신 과자가 뭔가를 일깨운 것이다... 그후, 연거푸 열번은 더 마셔봐야 했는데... 지금 내안에는 과자때문에 되살아난 이미지, 시각적기억이, 이 맛의 뒤를 따라 내 자아에까지 이르고 있음이 틀림없다. 머나먼 과거의 기억이 과연 내 의식의 표면에 까지 이를수 있을지....
--- p.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