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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일주기
사계四季 독고준 소묘 |
Koh, Johng-Seok,高宗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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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편에도 가담하지 않는 삶에 관하여
도서1팀 김성광(comma99@yes24.com)
2015.04.08.
작가 독고준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찬사를 받은 몇몇 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는 47년 동안 오로지 자신의 일기 속에서만 속내를 밝힌 작가였다. 딸에게 쓰는 편지도, 작품에 대한 비평도 모두 일기 속에 갇혀있었다. 물론 문단에서도 눈에 띄는 교류는 없었다. 그가 일기 속에서만 펜을 놀린 사연은 이러하다.
이북 태생인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자아비판’의 경험은 혹독했다.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았다가 ‘정신 개조’를 요구 받았던 그는 북의 경직성에 몸서리쳤다. 하지만 그는 남한에서도 '문인 간첩단' 사건에 연루되었는데 자본주의의 폭력성 보다는 사회주의적 가치에 호의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사건으로 어떤 고초를 당했는지 그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입을 다물었고, 누구도 사상범으로 얽어맬 수 없을 아주 관념적인 글들을 쓰기 시작했다. 남에서도, 북에서도 그는 자신을 드러낼 수 없었고, 문단에서는 그를 '회색인'이라 평했다. 그나마 그가 남쪽에 계속 남았던 것은 남쪽에선 ‘회색인’의 자리라도 존재했기 때문일테다. 그의 소설이 '운동권 필독서'가 되었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는 근본적으로 현실에 거리를 두고 살았다. 오로지 일기 속에서만 입을 열었다. 작가 독고준에게 (조금 거칠게 말해) 사회주의는 정의지만, 북한은 정의가 아니었다. 남한은 (적어도 북보다는 나은) 정의였지만, 자본주의는 정의가 아니었다. 그는 남이냐 북이냐라는 질문 앞에서 '정의'를 명확히 구분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희뿌연 안개 속으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의 사연이, 그의 결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아니 심지어 매력적이다. 내 한 몸이 불의에 가담하지 않는다는 것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정의란 애초에 많은 불순물들을 껴안고 있다. 피를 흘리지 않고 1파운드의 살을 떼어낼 수 없듯,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정의'와 '불의'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우리가 내리는 대부분의 결정에는 아마 정의와 불의의 함량이 엇비슷하게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항상-이미 정의롭거나 정의롭지 못하다. 그런 우리들이 지금 정의를 갈구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순결한 정의’라기 보다는 ‘좀 더 많은 정의’일 것이다. 정의로부터 불의를 적출할 외과적 수술이 불가능하다면, 우리는 항상-이미 ‘좀 더’ 노력해야 한다. 정의란 적어도 ‘피하는 것’보다는 좀 더 노력을 요하는 일인 것이다. 덕분에 세상은 지금 충분히 불의롭다. 그럼에도 ‘회색의 지대’는 용인되고, 존중될 필요가 있다. 정의란 ‘정의로우세요’라고 다그친다고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정의도 과오가 없을 리 만무한 상황에서, 정의/불의를 편가르는 모든 시도에 대해 우리는 한 발 물러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나의 정의’에 동조하지 않는 이들이 항상 불의로운 것은 아니고, 오히려 ‘나의 정의’가 지닌 한계를 바라보고 있는 이들일 수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둔다면 좋을 것이다. 작가 독고준이 그랬듯, 어떤 시대에 이르면 ‘회색인’의 삶은 심지어 생존의 문제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 정의롭다면 늘 ‘회색’을 용인할 필요가 있다. 작가 독고준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다행히도 어느 한 쪽을 택하지 않고 눈을 감을 수 있었다. 그에겐 그것이 ‘생존’과 직결되어 세상로부터 후퇴한 것이긴 했겠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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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원의 첫돌이다. 학學을 비롯해 친구 몇을 불러서 간소한 돌잔치를 했다. 오늘은 승은承恩의 4주기이기도 하다. 지난해에 수유리에 조성된 4·19묘지에 친구들과 잠깐 들렀다.
‘내 사랑스러운 딸 원에게: 네가 떠돌이 아비를 정박시켰구나. 네가 오기 전에 아비는, 이를테면 권문세가에 잠깐잠깐씩 묵는, 가난한 떠돌이 예술가였다. 그러나 네가 세상으로 나온 순간, 아비는 붙박이가 되었다. 그것이 잘된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다. 총명하기까지를 바라지는 않을 테니, 병 없이 무럭무럭 자라서 착한 어른이 되어다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널 이 세상에 나오게 한 걸 후회하지 않을 거야.’ (1964. 4.23. 木) 이것이 아버지가 내게 쓴 첫 편지였다. 세상에서 나와 가장 가까웠던 남자가 쓴 편지. 아버지의 바람대로 나는 잔병치레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총명하거나 착한지는 모르겠으나. 아버지는 남한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할아버지가 병든 뒤 손도 못 써보고 돌아가신 데 대해 두고두고 회한을 느낀다고 했다. 가족들 중 누군가 아픈 것에 대해 아버지는 유난히 민감했다. 아버지의 사랑은 그 사람을 잃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 그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으로 이어지나 보다. 어려서부터 나는 선이에 비해서 허약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홍제동의 작은 한옥에 살 때, 한번은 선이랑 같이 자던 방에 연탄가스가 샌 적이 있었다. 선이는 일어나서 두통을 앓는 정도로 그쳤지만, 나는 정신을 잃었다. 어머니가 억지로 떠먹인 동치밋국도 소용이 없어, 아버지 등에 업혀서 적십자병원에 실려 갔다. 아버지가 날 들쳐 업고 택시 정류장으로 뛰면서 “원! 원! 아빠 말 들려? 아프면 안 돼!”라고 외치는 소리가 아버지 등 저편에서 웅웅거리며 들렸다. 그때 아버지의 등은, 뭐랄까 왜소한 아버지의 체격 때문에 딱히 편안하다거나 포근하다곤 말할 수 없는 덤덤한 등이었다. 그러나 아버지의 말소리는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가끔 내 가슴을 휘젓는다. --- pp.60~63 순임에게. 당신과 단둘이서만 걸어본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소. 세 해? 네 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벚꽃을 당신은 아름답다고 했지만, 벚꽃이 아니라 세상의 어떤 꽃도 당신만큼 아름답지는 못할 거요. 우리들이 처음 만났을 때, 나는 세상에 아무도 없는 혼자였소. 그리고 떠돌이였소. 몸만 떠돌이인 게 아니라 마음까지 떠돌이였소. 그런데 당신이 나를 정박시켰소. 그리고 가족을 만들어주었소. 총명하고 어여쁜 딸내미 둘과 당신 덕분에 나는 서울 사람이 되었소. 정말 나는 서울을 내 고향으로 느낀다오. 원산은 반세기 저편의 기억 속에서 흐릿하기만 하오. 이제는 통일이 된다 해도 특별히 원산에 가보고 싶은 마음이 안 들 것 같아요. 내 이기주의, 내 경제적 무능력, 내 좁은 도량을 당신은 수십 년 세월 동안 다 받아주었소. 당신에게 표현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당신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이 없다면 내 어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소? 당신은 나 없이도 살 수 있었겠지만, 나는 당신 없이는 살지 못했을 거요. 당신은 내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나타나 내게 힘을 주었고, 그 뒤에도 당신만의 강인함으로 내 허약한 존재를 떠받쳐주었소. 당신도 어느덧 갑년을 맞았구려. 아이들이 제 앞가림을 잘들 하고 있으니, 당신도 이제 마음을 편하게 가져요. 당신에겐 연희나 선우서방이 맘에 차지 않을지 모르나, 그 사람들은 우리 딸내미들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아이들은 아마 당신과 나보다 그 사람들을 더 사랑할 거요. 당신에게 고생만 시키며 살아온 내 한평생을 돌이켜보면, 나 자신이 밉소. 우리 앞으로는 자주 둘이서만 돌아다닙시다. 남산의 벚꽃길만이 아니라 일본이고 유럽이고 다 돌아다닙시다. 재작년에 불란서에 들렀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게 당신과 동행하지 못했다는 거였소. 세상엔 우리가 상상하지 못할 거리와 숲과 강과 사람들이 있습디다. 지금 내가 바라는 건 오직 당신과 나의 건강이오. 언제 삶을 마감하든 그때까진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랑하오. 당신의 남편 준. (1998. 4. 5. 日) 아버지가 이 편지에서 보여준 사랑을 어머니에게 직접 털어놓으셨는지 여부는 모르겠다. 아마 안 그러셨을 것이다. 이걸 기벽奇癖이라 해야 할까. 부치지도 않을 편지를 쓰는 것도 야릇하지만, 그 편지를 일기장에 쓰는 것도 야릇하다. 그리고 또 그 ‘정박’ 타령. 아버지에겐 가족들을 생각하면 처음 떠오르는 말이 ‘정박’인 모양이다. --- pp.92~94 광주가 무너진 모양이다. 박정희의 죽음이 내게 준 안도감은 너무 일찍 온 것이었다. 좋은 세상은 언제 올 것인가. (1980. 5. 27. 火) 1987년 6월의 거리엔 나도 있었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학생운동쳀나 사회운동에 거리를 두고 있었다. 아버지는 1987년 이후의 한국을 좋은 세상이라고 판단했을까? 2007년 12월 19일 이후의 한국은 아버지에게 어떻게 비쳤을까? 아버지의 자살은, 그러니까 아버지의 절망은 정치적인 것이었을까, 아니면 순수하게 실존적인 것이었을까? 알 길이 없다. 아버지는 2007년 12월 19일 이후 일기를 쓰지 않았다. --- pp.113~118 원의 아파트에 들렀다가 그 아이와 나눈 말놀이: “One is the queen of daughters.” “June is the king of fathers.” “Gold is the king of metals.” “The human is the king of the Blue Marble.” “The chestnut tree is the king of the forest.” “The cherry blossom is the queen of flowers.” “The herring is the king of the sea.” “The salmon is the king of fish.” “Chess is the king of games.” “The eagle is the king of birds.” “The tiger is the king of the jungle.” “Jupiter is the king of gods.” “Death is the king of terror.” 죽음이 가장 큰 두려움이라고 원이 말했을 때, 우리 부녀 간의 말놀이는 끝났다. “벌써 죽음 같은 걸 생각하니?” “제 죽음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죽음이요. 아니,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숨탄것들의 죽음이요.” “누구에게나, 아니 생명을 지닌 모든 것들에게 가장 무서운 게 죽음일까?” “모든 생물체가 그렇달 순 없지만, 대갠 그렇지 않을까요?” “그래, 우리 딸내미 말이 옳아. 그런데 죽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수치스럽게 살아야 한다면, 그게 더 무서운 거 아닐까?”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아빠가 상상하는 그런 예가 있어요?” “너무 많지. 가족들이 너무 슬퍼할까 봐, 또는 가족들이 굶어 죽을까 봐 치욕스런 삶을 살 수도 있고, 어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모 속에서 구차하게 삶을 이어나갈 수도 있고, 죽는 것이 사는 것보다 더 불명예스러워서 죽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구체적인 예 말이에요.” “글쎄, 정순왕후定順王后도 그러지 않았을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도 그랬을 수 있고. 그 사람들에게 어쩌면 삶이 죽음보다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잖아. 게다가 본디 삶에는 기쁨보다 슬픔이 많잖니?” “전 그렇지 않아요.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어요. 이 손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어루만질 수 있다는 것, 살갗과 살갗을 서로 부빌 수 있다는 것, 이런 게 다 행복해요. 무엇보다도 가족이 있다는 게 행복하고, 제가 우리 가족을 사랑하고 있다는 게 행복해요.” “그래, 나도 네가 내 딸인 게 행복하다. 녹차 한 잔만 타주겠니?” 외출했던 연희가 그때 들어왔다. 나는 연희를 힘껏 안아주었다. 그리고 이 아이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네가 내 딸인 게 행복해.” 연희도 내 귀에 대고 화답했다. “저도 아버님이 제 아버님인 게 행복해요.” 왠지 연기를 하는 기분이기는 했다. 그러나 셋이 함께 녹차를 마실 때, 나는 행복했다. 원의 말이 옳을지 모른다. 살아 있어서, 사랑하는 사람의 몸에 내 몸을 부빌 수 있다는 것,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주는 행복은 분명히 있다. (1994. 3. 20. 日) 그날 내가 아버지에게 작은 행복을 일깨워드린 게 기쁘다. 잠깐 동안이라도. 그러나 아버지가 느끼는 삶의 슬픔은 근원적이었다. 가족들과의 사랑도 그것을 치유할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너무 일찍 세상에 나오셨거나 너무 늦게 나오셨다. --- pp.359~3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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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최고의 문장가 고종석의 신작 장편소설,
『광장』의 작가 최인훈이 완성하지 못한 독고준 3부작이 완성되었다! ‘흠 잡을 데 없는 문장력을 지닌 스타일리스트’, ‘가장 정확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하는 작가’로 평가받아온 고종석은 첫 장편소설 이후 소설 단행본은 출간하지 않았지만, 다양한 주제들의 시사칼럼과 에세이 등을 발표하며 명문가(名文家)로서 그의 글을 사랑하는 고정 팬들의 욕구를 충족해왔다. 그런 그가 17년 만에 펴내는 신작 소설이라는 점에서 더욱 기대감을 모으는 『독고준』은 스타일(형식)과 메시지(내용)를 모두 갖춘, 오직 고종석만이 쓸 수 있는 특별한 작품이라 하겠다. 더구나 이 소설은 『광장』의 작가이자 지난 시대 최고의 소설가 최인훈이 미처 끝내지 못한 ‘독고준 3부작’의 완결판이기도 하다. 최인훈은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삼은 두 연작 장편 『회색인』 『서유기』를 통해 실천이성 바깥의 관념에 몰두하는 인간을 ‘회색인’이라 부르고, 그 회색인의 관념 여행을 ‘서유기’라 불렀다. 그가 창조해낸 회색인 독고준은 월남민 출신의 국문과 대학생으로 소극적이고 회의적인 성격을 지닌 인물이다. 4ㆍ19혁명 한 해 전인 1959년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는 두 소설은 1960년대에 발표되었다. 그 후로 반세기가 흐른 2010년, 고종석은 젊은 시절에서 멈춰버렸던 독고준의 그 이후 삶을 그려냈다. 두 연작 장편 이후 3부작을 완성하지 못하고 병상에 누운 최인훈을 대신하여 독고준 3부작을 완성한 것이다. 1960년 4ㆍ19혁명에서 2007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일까지 자살한 아버지 독고준의 회색일기에 레즈비언인 딸 독고원이 자신의 삶을 포갰다 『독고준』은 독고준 3부작의 마지막 이야기이면서 또한 독고준과 그의 딸 독고원의 관념과 생활을 그린 독립적 작품이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대통령이 죽던 날, ‘관념소설’을 쓰며 ‘회색인’이라 불렸던 유명 소설가 독고준 역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그 후 일 년, 그의 딸 독고원은 1960년 4ㆍ19혁명에서 시작해 2007년 대통령 선거일까지 47년간 계속된 아버지의 일기를 읽는다. 일기에는 역사의 흐름과 한국사회, 예술, 문학 전반에 걸친 독고준의 관념들이 넘쳐난다. 소설은 독고원이 화자가 되어 아버지의 삶과 문학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들에 자신의 일상을 겹친다. 레즈비언으로 살아가는 스스로의 삶, 소수종파 기독교도인 엄마, 이혼한 남자의 후처가 된 여동생 선의 가족, 자신의 동거인이자 유명 드라마 작가인 연희 등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백하게 이어지는 것이다. ‘감각적인 지식인 소설로 한국 소설문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고종석 소설들에 대한 그동안의 평가는 이 소설에서 정점을 이룰 듯하다. 작가 특유의 역사나 사회 문제에 대한 해박한 이해와 더불어 개인주의, 자유주의에의 지향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역사적 흐름에 겹쳐지는 독립적 개인인 소설가 독고준의 관념들은 집단과 개인, 사회와 문학의 관계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며 독자들을 사색의 심연으로 이끈다. 하나의 이야기로서 주는 감동도 충분하다. 작가 특유의 단정한 문장은 자살한 아버지의 일기장을 읽는 화자의 마음결을 정갈하게 드러내고 그 담담함이 오히려 마음에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이다. 단숨에 읽고 넘길 흥미 위주의 소설이 아니라 곁에 두고 오래오래 곱씹을 만한 소설이 탄생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