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黃晳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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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심청. 태어나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눈먼 아버지의 품에 안겨 이 사람 저 사람 동네 아낙들의 동냥젖을 먹고 자란 청이, 열다섯 나이에 중국 상인에게 팔려가 황해 바다 인당수에 뛰어든 그 ‘심청’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그 ‘심청’이 새로 태어났다. 그저 심성 고운 효녀 심청이 아닌,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여자이고, 또 세상과 사람을 품을 줄 아는 여자로! 그렇다, 그네 심청은 “여자”였다. 심청을 새로 태어나게 한 이는 우리 시대의 거장 황석영 선생. 방북사건으로 5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1998년에 출감한 이래, 2000년에 『오래된 정원』, 2001년에 『손님』을 발표하며 문단과 독자의 주목을 집중시킨 이순의 황석영 선생이 새로 내놓은 『심청』은 그가 耳順의 귀가 아닌, 청년의 귀와 감각을 지닌 불꽃의 작가임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는 작품이다. 황해 바다를 끼고 펼쳐지는 매춘의 오디세이아 『심청』은 처절하고 안타까운 생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한 한 여자의 일대기다. 은자 삼백냥에 중국 선상들에게 팔려갈 때가 열다섯. 아직 달거리도 시작되지 않은 어린 여자아이 ‘청’은 풍랑을 잠재우는 제물이 되어 굿을 치른 후 중국의 한 부잣집에 팔려간다. 황해 바다를 건너 중국 진장을 거쳐 그네가 처음으로 정착한 곳은 난징. 중국으로 가는 배 안에서 ‘렌화(연꽃)’라는 이름을 얻은 후 차 장사로 부자가 된 첸 대인의 어린 첩실로 팔려간 것이다. 첸 대인의 보약 노릇을 하던 청은, 첸 대인이 죽은 후 그 집 막내아들 구앙을 따라 그가 운영하는 진장의 기루(妓樓) ‘복락루’로 가게 된다. 그곳에서 청은 처음으로 자기의 의지로 자신의 몸을 판다. 그후 떠돌이 악사 동유를 만나 처음으로 사랑을 느끼고 둘만의 혼례를 치른다. 복락루에서 도망친 두 사람은 만두집을 열어 평범한 삶을 꾸려나가고 싶어하지만 운명은 그들의 편이 아니었다. 청이 다시 창녀가 되어 팔려간 곳이 타이완의 지룽 섬. 하룻밤에 열 두세 명의 사내를 상대해야 하는 밑바닥 창녀의 삶이 그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기녀들의 대모 격인 샹 부인을 만나고, 그녀 아래 들어가 일하던 청이는 영국인 제임스의 눈에 들어 그의 첩이 되어 싱가포르로 가게 된다. 싱가포르에서 다시 지금의 오키나와인 류큐로, 다시 나가사키로, 다시 제물포로...... 청이에서 렌화로, 로터스로, 다시 렌카로...... 이 기구한 여인 청/렌화/렌카의 삶은 말 그대로 파란만장하다. 이 여자의 일생은 19세기 동아시아의 벌거벗겨진 역사이기도 하다. 그 역사는 청이라는 가냘픈 여자의 몸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다. 황씨는 이 작품을 두고 “동아시아의 근대화를 문학적인 장치를 통해 상징화한 것”이라고 말한다. 동아시아는 서구 제국주의에 의한 타의적인 근대화 과정을 겪었으며, 이는 여성의 몸이 팔리면서 사물화, 객체화하는 과정과 겹쳐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굳이 작품 속에서 이러한 의미들을 찾아내려 애쓸 필요는 없다. 이미 말했듯이 이러한 역사는 그네의 몸에 고스란히 기록되어 있고, 우리는 그저 그네의 삶의 행로를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심청』은 재미있다.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여성이 아닌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가려 하는 청이가 겪게 되는 사건들은 거장 황석영의 손에서 어떤 드라마보다 더욱 역동적이고 생생하게 살아난다. 『심청』은 아름답다. 소설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는 성애(性愛)의 묘사는 지극히 구체적이고 해부학적이지만 또한 그지없이 아름답기도 하다. 달빛이 내리비치는 거룻배 위에서 동유와 첫날밤을 치르는 장면은 더욱 그러하다. 두 사람의 움직임에 맞추어 비파가 차르릉거리고, 한쪽에 대어진 작은 배 역시 물결 위에서 찰랑거린다. 호궁과 비파의 연주에, 너른 평원 위를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과 힘찬 폭포의 움직임에 비유되는 두 사람의 사랑의 장면은 그윽한 음악에 귀를 열어두고,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듯하다. 이미지와 감각만이 넘쳐나고 정작 이야기는 슬그머니 빠져버린 소설들이 주를 이루고 있는 요즘, 『심청』을 통해 우리는 진짜 대가의 손맛을, 글맛을 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