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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머리에
프롤로그 마음을 보는 눈 소중한 친구 사랑이란 속 깊은 헤아림 사랑의 종소리 그리움 속으로 영혼이 맑은 아이 가을의 풍경 살아가는 이유 사랑을 기다리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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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때 창조주를 원망하며 삶을 허비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숲의 친구들은 모두 나를 보면 걱정이 앞선다고 했지요. 그런 몰골로 이 험한 세상을 어찌 살아갈꼬, 억센 이빨도 날개도 없이 이 풍진 세상을 어찌 견뎌낼꼬 염려가 된다는 것이었죠. 정말 나 같은 달팽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 듯했습니다. 고작 느릿느릿 나뭇잎이나 갉아먹어 목숨을 지탱할 뿐, 나는 숲속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라 여겨졌습니다.
‘아, 내 삶은 왜 이토록 변변치 못할까?’ 가끔 말하기 좋아하는 숲의 친구들이 나를 보고 무골호인이라 했지만, 아무런 위안도 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그 시절 삶은 너무나 막막했고, 내가 사명을 느끼며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그런 나의 아픔을 같이할 수 없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때 목긴달팽이, 그(그녀)를 만났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달팽이들은 자웅동체이지요. 다시 말해 내 몸속에는 암컷과 수컷, 여성성과 남성성이 공존하지요. 우리 달팽이들에게 성적인 차별에서 비롯된 저급하고 유치한 갈등이 없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랍니다. 그러나 내 몸 안의 암컷과 수컷이, 여성성과 남성성이 서로를 이해할 수는 있어도 사랑은 하지 못하죠. 가까이 있지만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아시는지요? 나와 밤을 지새우는 존재는 다름아닌 나일 뿐이며, 오히려 내 몸 속에는 두 배의 외로움만 가득할 뿐이랍니다. 처음 우리가 만난 곳은 각시패랭이꽃이 흐드러지게 자라고 있는 옹달샘 둔치였죠. 목긴달팽이는 그 긴 목을 쳐들고 어디 먼 피안의 땅이라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의 아픔을 나눌 수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목긴달팽이를 처음 본 순간 나는 강력한 자기에라도 이끌린 듯 다가서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녕?” “응? 누구.......” “난 눈큰달팽이라고 해. 우습지? 시력이라곤 거의 없는 달팽이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지. 네 이름은 뭐니?” 갑작스런 나의 접근에 목긴달팽이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보였죠. 잠시 멈칫한 후에야 그(그녀)는 말했어요. “나는 목긴달팽이라고 해.” “정말 멋진 이름이구나. 너하고 잘 어울리는 이름이야.” 그제서야 목긴달팽이는 나의 호들갑에 살며시 미소를 지었어요. 그리고는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습니다. “한데 너는 왜 눈큰달팽이라는 이름을 못마땅해하니? 내 생각에는 무척 아름다운 이름 같은데.” “그런 말 말아. 사람들은 핀잔을 듣거나 겁이 나서 어쩔 줄 모르는 경우에 ‘달팽이 눈이 되었다’라고 이야기하곤 하지. 그만큼 우리 달팽이들의 눈은 아무런 쓸모도 없다는 뜻이야. 그런데 눈큰달팽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봐도 우스운 이름이야.” 나는 짐짓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숨결이 떨리면서 흔들리는 나의 촉각을 목긴달팽이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결핍된 삶에 대한 슬픔과 세상에 대한 분노가 나를 아주 예민하게 만들어놓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눈이라고 해서 꼭 사물을 바라보는 기능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어. 그렇다면 밝고 어두운 것조차 겨우 구별하는 우리의 눈은 아무 쓸모도 없다는 네 말이 옳지. 하지만 마음을 보는 눈이라는 것이 있잖아. 나는 네가 그런 의미에서 눈큰달팽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믿어.” 목긴달팽이의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그때까지 아무도 내게 그런 식으로 말을 해주는 이는 없었습니다. 마음을 보는 눈이라니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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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의 느린 사랑을 통해 배우는 사랑의 원형
고작 느릿느릿 나뭇잎이나 갉아먹으며 목숨을 지탱할 뿐, 자신은 숲속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존재라 여기던 눈큰달팽이는 각시패랭이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옹달샘 둔치에서 목긴달팽이를 만난 후 삶을 새롭게 바라보게 된다. 밝고 어두운 것조차 구별하지 못하는 눈을 갖고 있는 자신에게 ‘마음을 보는 눈’을 가졌다고 말해주는 목긴달팽이를 사랑하게 되고서부터 눈큰달팽이의 삶은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여름으로 접어들면서 눈큰달팽이는 다른 달팽이들과 함께 싱싱하고 부드러운 풀잎과 습기가 풍부한 계곡 쪽으로 이동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선출하고, 큰 비와 산새들의 공격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삶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 그동안 눈큰달팽이는 목긴달팽이와 가까워져 둘이 함께 전에 살았던 곳으로 여행을 떠나게 된다. 돌아오는 길에 목긴달팽이는 사람들이 사는 곳 근처까지 혼자 여행을 다녀오겠다며 떠나고, 눈큰달팽이는 목긴달팽이가 돌아오는 날 자신의 마음을 숨김없이 내보이겠다고 다짐한다. 설령 용기의 결실이 너무나 하찮은 것일지언정, 용기를 갖지 않는다면 삶은 아무런 희망도 잉태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눈큰달팽이는 그동안 너무 느리게 에둘러 돌아왔지만 사랑 앞에 놓여 있는 마지막 물길은 한달음에 달려가 건너뛰겠다고 마음먹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