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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없는 사회
미토 2004.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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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비평/비판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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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히 전집

책소개

목차

서문

제1장 우리는 왜 학교를 폐지하여야 하는가
제2장 학교의 현상학
제3장 진보의 의례화
제4장 제도적 스펙트럼
제5장 불합리한 일관성
제6장 학습망
제7장 에피메테우스적 인간의 재탄생

역자후기

저자 소개 2

이반 일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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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an Illich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교황청 국제부 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빈민가의 아일랜드-푸에르토리코인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다. 1956년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 대학 부총장이 되었고, 1961~1976년에는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 일종의 대안 대학인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하여 연구와 사상적 교류를 이어갔다.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80년대 이후에는 독
1926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다. 로마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잘츠부르크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51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교황청 국제부 직이 예정되어 있었으나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 빈민가의 아일랜드-푸에르토리코인 교구에서 보좌신부로 일했다. 1956년에 푸에르토리코 가톨릭 대학 부총장이 되었고, 1961~1976년에는 멕시코 쿠에르나바카에 일종의 대안 대학인 ‘문화교류문헌자료센터’(CIDOC)를 설립하여 연구와 사상적 교류를 이어갔다. 교회에 대한 비판으로 교황청과 마찰을 빚다가 1969년 스스로 사제직을 버렸다. 80년대 이후에는 독일 카셀 대학과 괴팅겐 대학 등에서 서양 중세사를 가르치며 저술과 강의활동에 전념했다. 『깨달음의 혁명』 『학교 없는 사회』 『공생공락을 위한 도구』 『에너지와 공정성』 『의료의 한계』 『그림자 노동』 『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등 성장주의에 빠진 현대 문명과 자본주의 사회에 급진적 비판을 가하는 책들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사회, 경제, 역사, 철학, 언어, 여성 문제에도 깊은 통찰들을 남겼다. 2002년 12월 2일 독일 브레멘에서 타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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沈聖輔

거시적·장기적 교육 전망과 현장에서의 미시적·단기적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실천적 이론가’와 ‘이론적 실천가’를 꿈꾸고 있다. 이상주의(idealism)와 현실주의(realism)가 분리되지 않는 변증법을 굳게 믿고 실천하면서 교육이론 운동과 교육실천 운동의 두 갈래 길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최근 『진보주의 교육의 세계적 동향』,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세계적 동향과 전망』, 『마을교육공동체운동의 세계적 동향과 과제』, 『민주학교의 탄생』, 『시민이 만드는 교육 대전환』, 『교육사상가의 삶과 교육사상』을 공동으로 펴냈다. 또한 『비판적 페다고지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거시적·장기적 교육 전망과 현장에서의 미시적·단기적 실천이 분리되지 않는 ‘실천적 이론가’와 ‘이론적 실천가’를 꿈꾸고 있다. 이상주의(idealism)와 현실주의(realism)가 분리되지 않는 변증법을 굳게 믿고 실천하면서 교육이론 운동과 교육실천 운동의 두 갈래 길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최근 『진보주의 교육의 세계적 동향』,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세계적 동향과 전망』, 『마을교육공동체운동의 세계적 동향과 과제』, 『민주학교의 탄생』, 『시민이 만드는 교육 대전환』, 『교육사상가의 삶과 교육사상』을 공동으로 펴냈다. 또한 『비판적 페다고지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21세기 교육과 민주주의』, 『프레이리와 교육』, 『존 듀이와 교육』, 『진보주의 교육운동사』, 『세계시민교육』, 『사랑의 교육학』, 『다시 읽는 민주주의와 교육』, 『세계의 대안교육』의 번역에 참여했다. 2018년 정년 퇴임 후에는 『한국 교육의 현실과 전망』, 『교육과정에서 왜 지식이 중요한가』, 『코로나 시대, 마을 교육공동체운동과 생태적 교육학』, 『프레이리에게 변혁의 길을 묻다』를 펴냈다.

현재 부산교대 명예교수로서 한국교육연구네트워크 이사장, 한 국교육개혁전략포럼 대표, 마을교육공동체포럼 이사 등 다양한 역할을 하면서 교육과 사회의 동시적 변혁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촛불혁명의 미완성 과제와 코로나 사태의 발생으로 새로운 과제가 대두하면서 대한민국의 다중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적 사상을 모색하고 이를 실천하려고 한다. 저자는 1995년 5·31교육개혁이 신자유주의적 문명화 시도였다면 지금은 지속가능한 포용적·공동체적·생태적 문명으로의 이동을 위한 사회 및 교육 체제의 거대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보며, 한국교육의 전면적 전환을 위한 총체적 교육사상의 정립과 다면적 실천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함을 강조한다. 또 100여 년 전 기술적 근대화(개화파)와 토착적 근대화(개벽파)가 분열되어 일제 식민지화를 초래했듯 제2의 식민지화를 막으려면 한국의 미래교육 100년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내란 이후의 대안적 세상을 여는 혁신적·변혁적 교육 및 운동임을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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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04년 01월 26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338g | 크기확인중
ISBN13
9788990687173

출판사 리뷰

<학교 없는 사회 그 이후>

일리히는 선진국이나 후진국이 똑같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의무교육을 페지하고 진정한 교육목적을 추구하는 대안적인 공생적 제도를 설립하는 일을 제시했다. 국가는 아동들이 학교에 다니도록 강요하지 말아야 하며, 또 하나 매우 중요한 것을 고용주들이 입직조건으로써 개인의 학문적 경험, 즉 학점, 시험성적, 학위 등을 고료하지 않도록 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내놓는 대안은 교육학에서 흔히 논의되는 바우처제도와 비슷한 교육증표의 유통이다. 의무적인 취학연한을 폐지하고 누구나 평생 학습이 가능한 형태의 교육증표가 부여되어야 한다. 그가 어느 곳에서 어느 나이에 배우던 그건 본인의 선택이다. 물론 이것을 더욱 가능하고 풍부하게 하는 것은 학습네트워크의 역할이다. 학습네트워크에 참여한 사람들은 학습연결망, 교육기능의 상호교환을 위한 증표의 활용, 컴퓨터를 이용한 상호연결 방법 등을 이용해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에 대해 ‘학습’하게 된다. 이 학습연결망은 상대방과 정보교환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전화국관리자-전화를 사용하는 사람이 그 전화를 아편 밀매에 이용하던 테러에 이용하던 통제하거나 강제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의 지배를 받음이 없이 여러 가지 정보교환이 이루어지는 학습을 위한 공생적 네트워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학교 없는 사회 논쟁>

『학교 없는 사회』는 발간 직후 서구 사회에서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이 논쟁은 국내에서도 탈학교론의 주장과 유사한 이한의 『학교를 넘어서』가 발행되고 나서 큰 논쟁에 휩싸인 바 있다) 신낭만주의교육론자들(존홀트, 코졸, 실버만, 칼 로저스, 매슬로우, 닐 포스트만 등)은 탈학교론자의 학교진단을 수용하면서도 학교 대신의 급진적인 대안보다는 ‘학교의 개혁’을 주장했다. 신낭만주의자들은 교사나 학교 그 자체를 공격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지적하며, 교육제도 내부의 개혁을 목표로 하는 교육의 성격 재규정, 교육과정의 내용 재구성 등에 진력하게 된다.(이러한 주장은 현재 한국사회 내에서 교육개혁을 주창하는 사람들 다수의 입장이기도 하다)
신낭만주의자들과 달리 네오막시스트교육론자들(대표적인 학자로 보울스, 진티스, 애플 등을 들 수 있다)은 일리히의 탈학교론이 현실성을 결여한 낭만적 대안이라는 비판을 한다. 기본적인 경제구조를 유지하면서 단지 ‘조작’을 중지하는 것만으로는 사회의 변혁을 가져올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그러기에 오늘날 광범위하게 실시하고 있는 보통의무교육을 폐지하는 것은 현재 직면하고 있는 교육적 문제들을 해결한다기보다는 그러한 문제들로부터 탈피하려는 것으로서 모든 사람들의 기회를 공교육화한 의무교육을 폐지할 것이 아니라 무상화하고, 대중화하고, 동시에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교육적 실천이 더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반면 저드슨 제롬 같은 학자는 의무교육은 의무적 애정과 마찬가지로 모순이라며 일리히를 적극적으로 지지한다. 인간은 의무가 있는 곳에서도 배울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읽는 방법과 쓰는 방법 및 산술보다는 ‘의무’에서 대해 배운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만약 학교(‘자유로운’ 학교이든, 전통적인 학교이든)가 존속하고자 한다면, 우선 누구나 원할 때는 언제라도―교실에서든 학교에서든―거기서 자유로이 떠날 수 있고, 안전하며 자극적이고, 권위 있고, 진실을 대표하는 장소로서 성취해야 할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을 일반에게 확인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계속된 연구를 통해 일리히가 주장한 ‘학교 없는 사회’ 이후의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상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서구사회에서의 논쟁은 1996년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현실적인 쟁점으로 등장했다. 1990년대 들어 사회민주화와 함께 권력의 민주화의 싹이 움트면서 교육의 민주적 조치가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본직적 성격이 좀처럼 변화되지 않자 일군의 진보적 교육운동가들에 의해 대안교육에 대한 논의와 탈학교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역자 심성보는 그 이전에는 ‘조직’을 지키는 것에 급급해 이러한 논의가 본격화하기 위한 조건을 갖추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물론 아직 그 논의가 명확한 결과물로 나타났다고 하기에는 미진하다. 하지만 학교교육이 현재와 같은 모습을 띠고 계속 전진하는 한 이러한 논의는 그치지 않고 진행될 것이다.
<타율적 관리를 뛰어 넘어 자율적 공생으로>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일리히의 모든 저작 속에는 ‘타율적 관리’가 아니라 ‘자율적 공생’이라고 하는 일관된 주장이 새겨져 있다. 이는 기존의 사회과학적 해석틀 중 하나인 좌(공산주의)와 우(자본주의)의 구분에 의한 사회 현상 해석과는 명확히 다른 것이다. 오히려 그는 ‘제도의 스펙트럼’이라는 분석틀을 통해 자율과 타율이라는 극과 극의 선 안에서 우리를 어느 위치에 고정시켜야 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일리히가 특히 일반적(?)으로 좌파로 분류되는 사람들과 충돌하는 부분이 바로 이 지점이다. 심지어 『성gender』에서는 기존의 여성해방운동과 그 맥을 달리함으로서 보수반동이라는 지적까지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역전적 사고 방식은 21세기가 막 시작된 현재, 그리고 여전히 ‘자율적 공생’사회로 접근하고 있지 못한 한국 사회에 여전히 유효한 함의를 갖고 있다. 비록 그의 대부분 저작이 사제직을 떠난 1969년 이후부터 그가 암과 투병하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까지에 몰려 있지만, 20-30년이 경과한 지금도 그가 제기한 의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특히 ‘학교’와 ‘병원’의 문제는 서구사회는 물론이고 한국사회에서도 제도적 강화와 예산의 전면적인 투입에 대한 반론을 함부로 내놓기 어려운 ‘불가침’의 영역이다. 그 불가침 영역에 대해 발본적 문제제기를 해내는 일리히의 책은 당연히 수많은 질타(비판 내지는 오독) 속에 던져질 것이지만 우리의 고정된 사고 방식에 결정적 균열을 야기하게 될 수도 있다. 그가 연구한 다양한 분야 중에서도 학교와 병원을 주제로 한 『학교 없는 사회』와 『병원이 병을 만든다』를 전집의 첫 번째 목록에 올려놓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다.

<학교 없는 사회? - 단 한번도 ‘반론’의 목록에 올려놓지 못했던 주제>

학교가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전제가 있다.
가치 있는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교사나 전문가에 의존해야 한다거나, 교육기회의 균등을 의무취학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 등이다. 이는 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가 공히 가지고 있는 전제이며, 대안학교를 주장하고 있는 신낭만주의학파나 ‘신인간형’ 창출을 주장하는 네오막시스트 역시 공히 가지고 있는 전제이다. 하지만 이들이 학교에 대해 가지고 있는 환상은 일리히가 주장했듯이 마치 영혼의 구제를 교회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이는 학교와 학습을 동일시하고 있는 오도된 관념이다.

학교교육의 근저에 있는 가장 중요한 전제에 대한 문제제기 하나! 사람들은 거의 모든 학습이 가르침을 받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물론 가르친다는 일은 어떤 환경 밑에서 어떤 종류의 학습에는 도움이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지식의 대부분을 학교 밖에서 얻고 있다. 사람들이 학교 안에서 지식을 얻는다는 것은 몇몇 부유한 나라들의 경우 사람들이 평생을 학교 안에서 갇혀 있는 기간이 점점 길어지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학습이 가르침을 받은 결과라고 하는 신화는 오늘날 학교제도가 유사 이래 유력한 종교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3중의 기능을 수행하게 한다. 그것은 사회의 신화를 저장하는 장소, 그 신화가 가지고 있는 모순을 제도화하고 신화와 현실 사이의 차이를 재생산하는 장소, 그리고 그것을 은폐하기 위한 의례의 장소라는 3가지 역할이다. 이에 따라 교사도 ‘보호자로서의 교사’, ‘도덕자로서의 교사’, ‘치료자로서의 교사’라는 (마치 중세의 교회의 성직자와 같은) 확고한 지위를 갖게 됐다. 이들은 절대 자신을 떠나지 않는 ‘신자’들에게 일방적인 ‘설교’를 해댄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전제는 모든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한다는 의무취학의 신화와 전일제 출석이라는 신화다.

하지만 일리히가 주장하고 있는 탈학교론은 교육을 이처럼 독점지배하는 강제적이고 보호소적인 제도를 제거하는 것이다. 또 교육기회가 평등하다는 신화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한다. 빈부의 차가 존재하는 한 학습자의 사회적 조건 때문에 교육기회는 불평등하게 남을 것이 뻔하다. 교육이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정당하고 올바른 방법이라는 신화를 파기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학교교육의 폐지다.
일리히의 제안은 학교교육의 효과에 대한 자유주의적이고 전통적인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현대사회에서 학교교육의 확대는 국가간 또는 사회 내의 불평등을 고조시킨다. 현대사회에서 교육성취와 직업 신분 간의 밀접한 관계는 우리 사회가 점차 합리적이고 업적주의적으로 되어 간다는 신호는 아니다. 오히려 그 관계는 학교교육이 곧 교육이며, 학교자격증이 개인의 능력을 보증해 준다는 잘못된 생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일리히는 교육의 관점보다 학습의 관점을 채택하고, 교사의 관점보다 학생의 관점을 지향한다.
<가디언>, <르몽드>, <뉴욕타임즈> 등에 의해 20세기 최고 지성 중의 한 명이라고 치켜세워졌던 이반 일리히. 그가 20세기 최고 지성이라는 찬사를 받게 된 것은 언어, 심리, 종교, 성, 노동, 환경 등 그의 관심이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고, 그가 정통하지 않는 학문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에게 돌아간 찬사의 8할은 기존의 분석틀을 깨는, 역전적 사고 방식에 있다.

<역전적 사고 방식 -현대가 만들어낸 ‘신화’에 대한 반론>

그가 실천한 역전적 사고 방식의 출발은 일상적으로 자명한 것으로 되어온 관념(신화)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제도 혁명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끝은 산업사회의 ‘생산성’에 대립하는 공생적 사회로의 이동이다.
그가 비판하고 있는 자명한 관념(신화)의 개념을 추적해보자.
가령 의료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한 그의 역작 『병원이 병을 만든다Limits to Medicine』에서는 의료기술의 결과로 생긴 고통, 마비, 불구 그리고 번민 등이 오늘날에 있어서 교통사고, 노동재해, 전쟁에 의한 질병 상태에 필적함을 자료와 함께 제시하며 관료적 프로그램 하에 진행되는 ‘의료의 신화’를 비판하고 있으며, 에너지 문제를 다룬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Energy and Equity』에서는 오염이 없는 에너지에 대한 ‘신화’를 비판하며 설령 오염이 없는 에너지가 발견된다고 하여도 한계를 넘는 에너지 사용이 인간을 정치적으로 불능으로 만들고 자율적 공생사회를 위한 조건들을 제약하게 될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처럼 일리히는 의사한테 치료받기만 하면 건강치료를 받은 것처럼, 사회복지사업이 강화되면 사회생활의 개선을 의미하는 것처럼, 경찰의 보호가 높아지면 안전을 의미하는 것처럼, 그리고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 자체가 생산활동인 것처럼 오해하게 되고 마는 현대의 ‘신화’에 강력한 반론을 제기한다.
일리히는 이런 사회를 ‘가치가 제도화된 사회’라고 정의했다.(우리는 그의 글에서 언명된 이 단어를 ‘가치’가 아니라 ‘제도화’에 방점을 찍고 독해해야 한다) 그리고 일리히는 이런 가치가 제도화된 사회의 전복을 꿈꾼다.
그가 전복을 꿈꾸는 이유는 명쾌하다. 가치가 제도화된 사회는 결국 물질적인 환경오염, 사회의 분극화, 그리고 사람들의 불능화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 병원, 노동, 성,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 망라된 그의 저작은 가치의 제도화에 정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한 그의 일관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결국 일리히가 필요하다고 생각한 연구는, 사람들의 인간적?창조적 그리고 자율적인 상호작용을 돕는 제도이며, 또한 가치를 만들어 내는 데-그것이 제도화 되는 것이 아니라- 이바지하고 더 나아가서는 중요한 부분을 전문 기술관료에 의해 통제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어 내는 데 있어 과학 기술을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다. 즉 현재의 미래학을 역전시키는 것과 같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것이 그가 꿈꾸는 공생의 사회로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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