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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프랑스어판 머리말 1. 공공적 선택의 세 가지 차원 2. 고유한 가치 3. 인간생활의 자립·자존에 대항하는 전쟁 4. 민중에 의한 탐구 5. 그림자 노동 주석과 문헌소개 <부록>일리히와 나눈 대화 역자 해설 |
Ivan Ill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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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에 대한 도전을 감행하라!
자원의 희소성에 근거한 근대 산업사회는 소유로부터 만족을 구하는 상품집약사회의 도래를 의미했다. 상품집약사회에서는 반생산적인 상품들을 ‘반드시’ 소비해야 하는 사람들, 자칭 봉사자들의 봉사를 ‘반드시’ 소비해야하는 사람들인 ‘경제인’이 활개를 치게 된다. 재빠른 전문가들은 전문적 관리로 공간, 시간, 재료, 기획을 모두 생산.소비에 잘 기능할 수 있도록 환경을 재편성하고 규격화했다. 우리는 어느 순간 ‘경제인’으로서 돈을 벌고 현명하게 소비해야만 하는 ‘경제인’의 감옥에 갇히게 됐다. 우리는 ‘선진국 따라잡기’, ‘고용창출’, ‘1인당 소득 향상’ 혹은 전문가의 관리로부터 이루어지는 ‘자조’, ‘대안적 라이프 스타일’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경제인’인 우리는 가사, 교육, 보육, 통근과 같이 대가가 지불되지 않은 일을 임금노동으로 바꾸는 방법을 논의하는데 더욱 주력한다. 결국 임금을 위한 고용을 합법화하고 자율적인 활동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상품집약사회는 인간생활의 자립?자존을 지향하는 문화를 방해한다. 이러한 사회에서 필수적인 경제성장?발전이 결국 ‘공용commons’을 위협하게 되는 것이다. 일리히는 말한다. “이제 고용을 창출하고 성장에 자극을 준다는 ‘수요’라는 단어를 의심하라! 또한 ‘소비로부터 스스로 절연하여unpluged’ 발전에 대한 도전을 감행하라!” ‘그림자 노동’을 말한다 임금을 획득하는 임금노동자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사회는 그림자 노동을 계속 은폐해왔다. 일리히는 이렇게 은폐된 그림자 노동은 곧 지불되지 않는 활동이며, 여성에게 어쩔 수 없이 부과된 새로운 형태의 예속으로 이해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품집약사회의 ‘경제인’은 ‘노동자’와 ‘주부’로 창조되었고, 이러한 성분할을 토대로 ‘경제인’의 가장 극단적 형태인 ‘산업인’이 창조되었다. 남성과 여성에게 특화된 노동이란 산업사회에서만 존재하는 특수한 분열이다. 따라서 남성과 여성에게 상이한 경제적 성질을 부여한 두 종류의 노동이 공존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경제인’은 결코 성적으로 중성일 수 없다! 결국 여성의 활동이 갖는 가치를 하락시키고 남성에게는 특권을 부여하는 활동을 유지시킨다. 그림자 노동은 사회의 형식적인 경제를 뒷받침하고 인간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뺏는다. 이를 토대로 그림자 노동은 성에 근거한 역할분담의 경제적 구별을 정당화한다. 이때 한가지 질문이 떠오른다. 과연 산업노동자의 영원한 아이콘으로 멜빵 달린 작업복을 입은 남자가 등장하는 것은 정당한가? 더 이상 불량주부는 없다!? 세탁기를 돌리는 것보다 빨래감을 분류하고 삶을 빨래를 삶고 드라이할 건 맡기고 속옷은 주물러 빨고 찌든 때는 손으로 비비고 표백할 건 표백하고 다림질 할 것은 따로 분류하고…. 얼마나 힘이 드는지 알기나 하는가? …전업주부들의 진을 빼는 그림자 노동에 당장 가치를 부여하라! ― 어느 불량주부의 일기 중에서 최근 진보적인 여성운동가들은 전업주부들의 가사노동이 경제적으로 평가되기를 바란다. 그들은 국민총생산에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에 대한 가치평가가 포함되는 그날을 위해 민첩하게 움직인다. 과연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을 임금노동으로 환산하기만 하면 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일리히에게 있어 불량주부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불량주부에서 탈출하려는 그들의 노력을 향해 일리히는 인간생활의 자립?자존의 견지에서 행하는 여성의 독자적인 행위를 값싼 임금으로 환산해 보람없는 노동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일침을 가한다. 일리히에게 가사는, 그림자 노동의 원형이며 인간의 삶의 토대이자 빛이었다. 산업사회는 집요하게 빈민을 임금노동자로 내몰았고 노동을 점점 단순한 재화와 서비스를 창출하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 노동가치설은 여성을 임금노동으로부터 효과적으로 떼어 놓았고 비생산적인 주부의 자리로 후퇴시켰다. 여성은 무상의 노동을 행하기 위해 가정이라고 하는 피난처를 필요로 하는 남성의 아름다운 소유물이 되었다. 어느덧 남성은 산업사회 계급의 일원으로 자신의 고용주와 공모하여 직접적으로 여성을 억압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 산업사회든 희생자를 필요로 하고 그 희생자들을 억압하여 노동을 강요한다. 결국 사회는 전문적인 관리를 통해 여성에게 억압에 협력하는 대상이 될 것을 강요하였으며 결국 인간생횔의 자립?자존의 고유한 영역이던 여성의 가사활동을 그림자 속으로 사라지게 했다. 이대로 우리는 항복해야 하는 것인가? ‘고유한 노동’의 부활을 꿈꾸며 “나는 고유한 노동, 즉 생존에 고유한 노동을 배치할 것을 제안한다. 그것은 지불되지 않는 활동이지만 생활을 마련하고 개선시켜 가는 것으로 표준적인 경제학의 내부에서 발전된 개념을 사용한 분석으로는 전혀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이러한 활동에 ‘고유한vernacular’라는 말을 사용한다. 나는 ‘고유한’이라는 말을 상품과 그림자에 대치되는 용어로 부활시킬 것을 제안한다. ‘고유한 노동’을 통하여 현대적인 생활의 자립과 자존을 확대시켜야 한다.” ― 이반 일리히 일리히는 경제의 ‘비공식적 부문’을 조직화하려고 애쓴다. 즉 그림자 노동과 고유한 분야를 구분하는 시도이다. 비생산적?비상품적이라는 이유로 생산노동에 가려진 지불되지 않은 이러한 노동의 세계는 임금노동보다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으며, 역사적으로는 새로운 활동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임금노동 중심의 산업사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고유한 영역을 침범하기 위한 도구로 지불되지 않는 일을 화폐로 환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들은 가격이 없는 것조차도 조작적, 통계적, 관료적인 개발을 가능케 했다. 일리히는 15세기 말 스페인의 인공어, ‘카스틸랴어 문법’의 사용을 통해 여왕이 민중들을 지배, 억압할 수 있는 장치를 고안해낸 네브리하를 되살려 ‘일상 언어’의 검토를 통해 고유한 영역을 향한 침범이 어떻게 조직적으로 이뤄져 왔는가를 재확인한다. 네브리하는 ‘자발적인’ 민중언어의 억압으로 여왕에게 권력과 권위를 부여했던 인공어를 ‘모국어’로 전환시켰다. 결국 모국어는 규격화된 언어, 표준적인 언어로 민중을 억압하고 강제하는 역할을 주도한 것이다. 가르쳐지는 ‘모국어’에 의존하는 시대를 사는 인간들은 아나운서의 언어, 어릿광대극의 언어, 품팔이 문인의 언어를 구사한다. 오늘날과 같이 교육된 언어가 판치고, 전문가적인 부모가 전문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관리하는 관습이 이어지는 한 고유한 세계의 회복은 더욱 불가능하다고 일리히는 말한다. 일리히에겐 유토피아가 없다 일리히는 ‘민중에 의한 탐구’가 인간 스스로의 자율성을 추구하는 탐구로 생활의 쾌적함이나 아름다움을 개선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다고 말한다. ‘민중에 의한 탐구’란 인간이 자연을 파괴한 죄로 약함의 상태에 이르렀고, 약함의 상태를 치유하기 위해 탐구하는 것을 뜻한다. 인간의 약함을 치유하고자 하는 일련의 시도들은 자연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닌 실용적인 기예와 지혜를 품은 과학으로써 자연을 모방한 인공물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 모습은 어떠한가? 우리는 자연을 무자비하게 지배하고 정복하여 연구?개발하는 데 주력했다. 이것은 ‘민중에 의한 과학’, ‘공생의 탐구’, ‘비판적 탐구행위’에 있어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우리는 세상의 제도화된 오류를 스스로 극복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해나가야 하는 생활 그 자체를 중시해야 하며, 삶의 근본에서 다시 생각해야 하는 적극적인 개념을 도입해야만 한다. 그렇기에 일리히에게는 유토피아가 없다. 단지 자신의 마음 속에서 나와 스스로 해보려는 희망만이 있을 뿐이다. 다시, ‘공생의 사회’로! 인간생활의 자립과 자존에 도전하는 전쟁의 폭풍은 계속되고 있다. 상품집약사회에서 경제성장은 ‘공용’을 위협하고 있으며, 자율적인 활동의 가치를 저하시키는 등 일종의 산업 노예상태에 머무르게 한다. 이러한 상태를 벗어나기 위해서 인간은 발전을 역전시키는 것과 소비재를 인간도구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일리히는 주장한다. 창의적인 활동을 하는 노동자가 도구?자원의 자유로운 소유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손으로 생존과 쾌락에 필요를 판단하는 ‘공생의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또한 고유한 노동을 통한 인간생활의 자립?자존을 확대시켜야 한다. 이제는 ‘경제인’ ‘산업인’이 아닌 ‘예술인?생활인’이라고 하는 인간 인식을 활성화해야 한다. 이들은 독립된 생활방식으로 각각의 작은 공동체 속에서 새로이 형성되어야 하며 절대로 강제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이것이 ‘공생의 사회’로 가는 첫 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