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공화국 이후에 생각하다
서문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다만 이해하기를 대담 결론: 결론 내리지 않기 위한 결론 |
미셸 옹프레의 다른 상품
이세진의 다른 상품
|
생각한다는 것은 단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의문을 품는 것이다. 그러자면 고개를 번쩍 들고 우리가 지나온 길을 잠시 돌아보아야 한다. 역사를 공부하자. 감정적인 것과 맞서기에는 이보다 더 좋은 약이 없으니. --- p.39
종교적인 것의 회귀는 부정할 수 없다. 그 회귀가 서구 사회에서는 이슬람교의 형태를 취했다. 이 회귀를 스피노자의 정신에서 생각해야 한다. 정념에서 벗어나, 미워하지도 말고 우러르지도 말고, 경멸하지도 말고 맹목적으로 좇지도 말고, 미리 단죄하지도 말고 처음부터 좋아하지도 말고, 그저 이해하기 위해서. --- p.44 동성애 혐오적인 수라는 불편하다, 동성애를 단죄하는 수라가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 겁니까? 반유대주의 수라는 무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어떻게 할 건가요? 여성 혐오가 농후한 수라는요? 코란은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서 사는 슈퍼마켓이 아닙니다. --- p.66쪽 우리는 이 최소한의 것에 합의를 봐야 합니다. 텍스트 생성의 역사적 조건들과 텍스트 안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에는 합의가 되어야지요. 그다음에야 비로소 다른 작업, 즉 텍스트에서 출발한 대화가 가능합니다. 우리는 철학, 영성, 정치 텍스트를 읽을 때처럼 모든 종교의 경전들도 역사학자의 눈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게다가 3대 일신교의 경전들은 철학, 영성, 정치 텍스트이기도 합니다! --- p.71 베르그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행동하는 인간으로서 사유하고 사유하는 인간으로서 행동해야 합니다. (…) 프랑스 이슬람이 존재하게끔 프랑스 내에서 이슬람과 일종의 사회계약을 체결해야 합니다. (…) 공화국의 가치들과 분명히 양립 가능한 것만을 취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이슬람의 이름으로 피와 증오를 정당화하는 것들을 포기할 때), 공화국은 그들에게 주어야 할 것을 주어야지요. 공화국은 이맘들을 교육하고, 그들에게 보수를 지급하고, 그들의 설교가 공화국에 어긋남이 없는지 눈여겨보고, 예배 장소에 보조금을 지원하고, 무슬림들을 보호해야 할 것입니다. --- p.99~100 내가 올린 트윗은 대단히 부정적인 반응을 몰고 왔다. 과거 독재 체제에 정치경찰의 탄압이 있었다면 미디어의 탄압 아래 있는 지금의 서구 사회에서는 감정적인 것이 지배한다. 촛불 시위자, 시시한 시를 쓰는 사람들, 자기 사진을 찍는 자들, 슬로건에 목매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한 행동 말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들의 행동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철학자가 제 소임을 다하기를 원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들 가운데 없었다. --- p.118 이 정치인들은 모두 착각하고 있다. (…) 권력에 목마른 이 자들은 프랑스에 봉사하기보다는 프랑스를 이용해먹기를 더 좋아한다. 이 뇌 없는 꼭두각시들은 그들의 재선(再選)이라는 관점에서가 아니라 역사의 관점에서 사유하는 지식인을 파시스트 취급한다. 그들은 평화라는 카드를 굳이 써먹을 가치가 있겠다고 인정하면서 약간의 겸손과 대단한 역사 감각을 과시한다. 테스토스테론을 낮추고 회백질을 더 많이 써야 한다. 나는 환상을 품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는 잃었음을 아는데도 바라는 바가 있다. 이 전쟁의 포화 속에서 사유의 훈련은 이미 죽었다. 사유의 훈련을 존경하지 않음은 말할 계제도 아니다. 안타깝고, 안타깝고, 또 안타깝다. 역사가 내 말이 옳다는 것을 밝혀줄까 봐 두렵다. 차라리 내가 틀렸으면 좋겠다. 그리 된다면 나는 내 오류를 고백하면서 프랑스를 위해 참으로 기뻐할 터인데. --- p.130 |
|
무신론자이자 좌파 철학자,
무슬림 기자와 이슬람을 논하다 “알제리인 기자 아스마 쿠아르가 나에게 〈알 자디드〉에 실을 이슬람 관련 대담을 청했을 때 나는 내 답변 내용만으로도 작은 책 한 권이 나올 수 있을 만큼 그의 질문들을 상세하게 다루었다. 이슬람 전문가가 쓴 책이 아니라 이슬람을 철학의 한 문제로 생각하는 시민이 쓴 책, 이슬람을 시민의 한 문제로 생각하는 철학자가 쓴 책 말이다. 이슬람을 사유함에는, 자유로이 사유하고 싶다는 마음이 필요할 뿐 그 밖의 어떤 정당화도 필요치 않다.” _15쪽 프랑스 풍자 언론 잡지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에 총기 난사 사건이 발발하자 프랑스 좌파 정당을 향한 거침없는 비판을 내왔던 ‘반역의 철학자’ 미셸 옹프레에게 많은 매체들이 전화를 걸어 그의 의견을 물었다. 지금 우리는 미셸 우엘벡의 소설 《복종》을 비롯한 많은 언론 보도를 통해 들어 ‘샤를리’가 익숙하지만, 사실 〈샤를리 에브도〉는 적자에 시달리는 대중으로부터 소외된 작은 매체였다. 옹프레는 〈알 자디드〉와 주고받은 대담이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이슬람을 철학의 한 문제로 생각하는 시민이 쓴 책, 이슬람을 시민의 한 문제로 생각하는 철학자가 쓴 책’이 될 것이란 사실을 직감했다. 이 책에서 옹프레는 이슬람 테러에 관해 발언하는 대부분의 정치인과 학자들, 심지어 종교지도자들이 코란을 읽지 않았음을 고발한다. “내가 이 주제에 대해 텍스트와 콘텍스트를 공부하지도 않고 아무 말이나 지껄인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 또한 나에 대한 모욕입니다.” 이어 무슬림은 반드시 이슬람교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최소한의 요구이며, 이 요구는 문제를 함께 논의할 기독교인 혹은 유대교도, 무신론자 등에게도 해당된다고 일침을 놓는다. ‘작품 한 점 본 적도 없는 화가를 싫어한다고 말’할 수 없고, ‘먹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어느 요리사의 음식이 맛없다 말할 수’ 없다는 것. 즉 생각한다는 것은 단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의문을 품으며 역사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평화적인 이슬람과 폭력적 이슬람은 본질적으로 다른 게 아니라 정도의 차이를 가질 뿐이라며, 동일한 코란을 두고 “종교에는 구속이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을 받드는 이슬람과, 호전적이고 전투적이며 반유대주의, 남성 우월론, 여성 비하, 동성애 혐오가 농후한 말씀들에만 주목하고,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은 뒤로한 채 경전을 앞세워 살인’을 일삼는 이슬람이 다르지 않음을 설명한다. 그러니 선한 이슬람들은 이슬람 테러가 이슬람과는 무관하다는 말을 거두고, ‘야만적이고 경전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는 이슬람, 과격한 군사적 이슬람’을 공동의 적으로 간주할 것을, 평화 가치를 위해 공화국의 시민들과 함께 싸워 세계 곳곳에서 이슬람으로 존중받으며 당당하게 존재할 것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끔찍한 과거를 돌이키지 않기 위해 “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이해하기를!” 단일민족 국가라는 판타지가 아직 지배하는 한국에도 종교 갈등, 정치적 맹신, 다양한 혐오와 테러들이 엄연히 존재한다. 문자 그대로의 해석에 집착하여 정신과 문자를 혼동하고 오로지 쓰여 있는 것만 읽는 근본주의자들, 반대로 콘텍스트에만 치중하여 엄연히 쓰여진 것을 무시하고 이따금 정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자들의 갈등은 신의 은총처럼 세상 어디에나 있다. “스피노자의 정신에서 생각해야 한다. 정념에서 벗어나, 미워하지도 말고 우러르지도 말고, 경멸하지도 말고 맹목적으로 좇지도 말고, 미리 단죄하지도 말고 처음부터 좋아하지도 말고, 그저 이해하기 위해서”를 행동 강령으로 삼은 이 명료한 책이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 안에 자리 잡은 폭력적 이슬람과 이슬람 혐오, 이데올로기적 범죄, 그저 기호로 작동하는 이슬람을 편견 없이 생각하고 말하는 데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