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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러 나가다
한겨레출판 2011.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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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부
2부
3부
4부

조지 오웰 연보
옮긴이 후기

저자 소개 1

조지 오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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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Orwell,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언론인,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1903년 6월 25일, 영국령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세관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영국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악마적 만행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는 자신의 직업에
본명은 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인도에서 태어나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언론인, 비평가로 활동하였다. 1903년 6월 25일, 영국령 인도의 벵골 주 모티하리에서 세관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8세 때 사립예비학교에 들어갔으나, 이곳에서 상류층 아이들과의 심한 차별을 맛보며 우울한 소년시절을 보냈고, 장학생으로 들어간 이튼교에서의 학창시절 역시 계급 차이를 뼈저리게 실감하는 계기가 되었다. 졸업 후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1922년부터 5년간 미얀마에서 대영제국 경찰로 근무했으나 영국 제국주의가 저지르는 악마적 만행을 두 눈으로 목격한 그는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껴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건너가 작가수업을 쌓았다.

유럽으로 돌아와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던 작가가 되기로 한다. 파리와 런던에서 노숙자, 접시닦이, 교사, 서점 직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는 속에서도 소설을 쓰고 서평과 에세이를 발표했다. 1933년에 파리와 런던에서 겪었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첫 소설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생활(Down and Out in Paris and London)』과 1935년 식민지 백인 관리의 잔혹상을 묘사한 소설 『버마 시절』이다. 이 시기부터 그는 죽음의 원인이 된 결핵을 앓기 시작했다. 사회 정의의 문제에 민감했고,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던 그는 첫 소설 『버마 시절』에 이어 『목사의 딸』, 『그 엽란을 날게 하라』를 출간했고, 잉글랜드 북부 노동자의 가난한 삶을 그린 사회주의 색채가 짙은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발표했다. 중·장년 시절에는 버마(현재 미얀마)에서 경찰관으로 재직했지만, 식민지배의 불합리성을 목격한 후 사직을 하고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빈곤한 생활을 겪다가 전체주의를 혐오한 그는 스페인 내전에 가담하여 부상을 입기도 했다. 그 체험을 기록한 1936년 『카탈로니아 찬가(Homage to Catalonia)』는 뛰어난 보도 문학으로 평가된다.

1941년부터 1943년까지 BBC방송국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후 [트리뷴]의 문학 담당 편집자로 일하면서 정치와 문학 분야의 논평을 정기적으로 썼다.그리고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에는 러시아 혁명과 스탈린의 배신을 우화로 그린 『동물농장』으로 일약 명성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해 그는 아내를 잃고 자신도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1946년 스코틀랜드 주라 섬에 머물며 작품 활동을 계속하여 전체주의의 종말을 기묘하게 묘사한 디스토피아 소설 『1984년』을 집필하였고, 1949년에 출간되었다. 『1984년』은 전제주의라는 거대한 지배 시스템 앞에 놓인 한 개인이 어떻게 저항하다가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그 과정과 양상, 그리고 배후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작품의 무대인 오세아니아는 전체주의의 극한적인 양상을 띠고 있는 나라이다. 오세아니아의 정치 통제 기구인 당은 허구적 인물인 빅 브라더를 내세워 독재 권력의 극대화를 꾀하는 한편, 정치 체제를 항구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텔레스크린, 사상경찰, 마이크로폰, 헬리콥터 등을 이용하여 당원들의 사생활을 철저하게 감시한다. 당의 정당성을 획득하는 것과 동시에 당원들의 사상적인 통제를 위해 과거의 사실을 끊임없이 날조하고, 새로운 언어인 신어를 창조하여 생각과 행동을 속박함은 물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인 성욕까지 통제한다. 『1984년』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예브게니 이바노비치 자먀찐의 『우리들』과 더불어 디스토피아를 다룬 소설 가운데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후 많은 예술작품에 영향을 주었다. 주인공 윈스턴 스미스는 이런 당의 통제에 반발을 느끼고 저항을 꾀하지만, 오히려 함정에 빠져 사상경찰에 체포되고, 혹독한 고문 끝에 존재하지도 않는 인물 '골드스타인'을 만났다고 자백하고, 결국 당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무기력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1984년』은 오웰을 20세기 최고의 영향력 있는 작가로 만들었다.

장르에 상관없이 언제나 확고한 정치적 신념을 바탕으로 글을 썼으며 소설, 에세이, 르포, 평론 등 700여 편의 작품을 남기고, 1950년 4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조지 오웰의 47년간의 삶 중 시대적 배경은 전쟁으로 인한 평화가 무너지는 격변기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전체주의(집단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민주주의 사상이 다변화되면서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대표 언론가로 상징된다. ‘조지 오웰’은 21세기 새 시대를 맞이하여 199년 영국 BBC 조사한 ‘지난 천년동안 가장 위대한 작가 3위’, 2008년 [더 타임스]가 선정한 영국 작가 50인의 2위로 선정되었다. 게다가 영문학에서는 ‘오웰주의’, '오웰주의자'라는 뜻의 Orwellism이나 Orwellian이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이니, 이 정도면 그가 서양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주로 당대의 문제였던 계급 의식을 풍자하고 이것을 극복하는 길을 제시하였으며, 또 일찍이 스탈린주의의 본질을 꿰뚫고 거기서 다시 현대사회의 바닥에 깔려 있는 악몽과 같은 전체주의의 풍토를 작품에 정착시켰다. 그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글을 쓰는 이유를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며, 자신의 글 중에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쓴 글들만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파리와 런던의 밑바닥 생활』 ,『버마의 나날』, 『목사의 딸』, 『엽란을 날려라』,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카탈로니아 찬가』, 『숨쉬러 올라오기』, 『고래 뱃속에서』, 『사자와 일각수』, 『동물 농장』, 『비판적 에세이』, 『영국 사람들』, 『1984년』 등이 있다.

조지 오웰의 다른 상품

역자 : 이한중
1970년 부산 출생. 연세대 경영학과 졸업. 번역자. 역서에 『나는 왜 쓰는가』, 『위건 부두로 가는 길』, 『울지 않는 늑대』, 『인간 없는 세상』, 『글쓰기 생각쓰기』, 『리아의 나라』 등이 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04월 11일
쪽수, 무게, 크기
368쪽 | 432g | 153*224*30mm
ISBN13
9788984314634

책 속으로

우리 같은 사람의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같이 잃을 게 있다고 상상하는 데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엘즈미어로드 주민의 9할은 자신들이 집을 소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엘즈미어로드와 그 주변 단지 전체(하이스트리트에 이르기까지의 구역)는 사실상 ‘헤스페리데스 주택단지’라는 거대한 사기판의 일부이며, 이 단지는 ‘명랑 신용 주택금융조합’의 소유다. 주택금융조합은 아마 현대의 가장 영악한 사기 집단일 것이다. 내가 종사하는 보험업계도 협잡이긴 하지만, 그건 그래도 테이블에 카드를 펼쳐놓고 벌이는 공개 협잡이다. 그런데 주택금융조합의 협잡이 놀라운 것은, 당하는 사람들이 협잡꾼이 무얼 베푼다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사기꾼한테 한 대 얻어맞고도 그의 손을 핥는 격이다.
엘즈미어로드에 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집값을 다 치렀다 해도 사실상 집을 소유한 게 아니다. 부동산 소유권이 자유보유권(freehold) 아닌 임차권(leasehold)인 것이다.
우리가 실은 소유주가 아니라는 사실, 우리 모두 집값을 지불하고 있는 중인데 마지막 할부금을 내기 전에 무슨 일이 날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 이 두 가지는 그런 심리를 더욱 부채질한다. 우리는 모두 매수된 것이며, 더 딱한 점은 우리 자신의 돈으로 매수됐다는 것이다. --- pp.22-25

플로어 매니저는 못생기고 작달막한 몸집에, 어깨가 딱 벌어지고 반백의 콧수염을 뾰족하게 기른 자였다. 그는 방금 막 그 여종업원에게 달려들어 무언가에 대해 퍼붓기 시작한 참이었다. 잔돈을 잘못 내어준 것인지, 기계톱 소리 같은 음성으로 마구 몰아붙이고 있었다.
“나 원! 계산도 못한단 말이지! 단순 계산도 못해! 이거 보통 문제가 아닌 걸. 나 원!”
매장 반대편에서도 들릴만한 목소리로 이런 식의 질타가 5분쯤 계속되었다. 할 만큼 했나보다 싶기 무섭게 돌아섰다가는 되돌아와 퍼붓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더 고약한 것은, 그녀가 나에 대한 배려로 아무 일도 없었던 체해야 했으며, 가게 여점원이 남성 고객에게 지키는 게 원칙인 적당히 거리를 두는 절제된 태도를 보여야 했다는 점이다. 하녀처럼 욕먹는 꼴을 보인 지 30초밖에 안 되어 어엿한 젊은 숙녀처럼 처신해야 하다니! 그녀는 빨개진 얼굴이 여전했고 손도 계속 떨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욕먹는 꼴을 내게 보였기 때문에 나를 지독히 미워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면도날값을 치르고 바로 나와버렸다. 왜 그런 꼴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물론 두렵기 때문일 것이다. 한마디라도 대꾸를 했다간 당장 해고당하고 말 테니까. 어디나 마찬가지다.
물론 위에서 시키니까 하는 일이다. 고객은 언제나 옳다고 하니 말이다. 그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건방지다며 상사에게 일러바치면 해고당할지도 모른다며 몹시 불안해하는 마음이다.
비누 계산대의 그 아가씨는 가게 문을 나서는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할 수만 있었다면 나를 살해했을 것이다. 그녀는 내가 보았다는 이유로 나를 얼마나 미워했는가! 플로어 매니저보다 내가 훨씬 더 미웠던 것이다. --- pp.26-29

이 시절이 1909년 무렵이었다는 걸 기억하시기 바란다. 아버지는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으며, 새라진 사람들의 체계적인 저가공세에 밀려 망한 뒤 먹혀버릴 것임을 내다볼 수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는가? 아버지 젊은 시절에는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이다. --- pp.138-139

작은 소매상이 기울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건 몹시나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 과정은 해고를 당해 당장 실업수당을 타야 하는 노동자의 운명처럼 갑작스럽고 명백한 게 아니다. 약간의 부침을 겪어가면서, 말하자면 여기서 몇 실링 적자를 보면 저기서 그 절반쯤 흑자를 보는 식으로 서서히 무너져가는 것이다. 몇 년 동안 거래하던 누군가가 갑자기 발을 끊고 새라진으로 가버리면, 다른 누군가가 닭을 여남은 마리 사놓고서 1주일치 모이를 주문하는 식인 것이다. 그래도 당장 망하지 않고 버틸 수는 있다. 조금 더 근심이 늘고 조금 더 궁색해져도, 자본금을 계속 까먹어도, 자기 장사를 하는 “주인”인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몇 년을 버틸 수 있고, 운이 좋으면 평생을 갈 수도 있다.
나는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가게를 영속적인 무엇으로 여겼고, 아버지가 장사를 더 잘하지 못하는 것을 적이 불만스러워하기까지 했다. 나는 아버지가 서서히 망해가고 있음을, 아버지의 사업이 다시는 회복될 수 없음을, 아버지가 일흔까지 산다면 분명히 구빈원에 가게 될 것임을 내다보지 못했고, 그건 아버지도 다른 누구도 마찬가지였다. 이따금 나는 아버지한테 통신강좌 교과서?서 본 것들, 이를테면 영업력이니 현대식 기법이니 하는 따위를 들먹이곤 했다. 그런 소리를 아버지는 한 번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역사가 오랜 장사를 이어받았고, 언제나 열심히 일했고, 거래를 깨끗하게 했고, 좋은 물건을 공급했고, 그래서 사정이 곧 나아지겠거니 했던 것이다. --- pp.148-149

그게 뭘까? 다만 그들은 미래를 공포스러운 무엇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 시절의 삶이 지금보다 수월했다는 건 아니다. 실은 그때가 더 힘들었다. 사람들은 대체로 일을 더 많이 했고, 덜 편리하게 살았고, 더 고통스럽게 죽었다.
집에 욕실이 없었고, 겨울날 아침엔 세면대에 얼어붙은 물을 깨어 써야 했고, 뒷골목에선 날이 더우면 악취가 지독했고, 성당 묘지는 타운 한복판에 있어 누구에게나 끝이 있다는 사실을 단 하루도 잊고 살 수가 없었다. 그런데도 그 시절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바로 안정됐다는 느낌이었다.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도 그들은 그렇게 느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계속 이어진다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모두 언젠간 자신도 죽는다는 것을 알았고, 소수는 자신이 파산할 것임을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몰랐던 것은 세상사의 기존 질서가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세상사는 그들이 알아오던 바대로 계속될 터였다.
영국의 유구한 생의 질서가 바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 pp.155-157

하지만 출장 외판원 일도 일정한 급여를 받는 자리는 없었다. 있다면 커미션을 받는 자리뿐이었다. 이는 마침 대대적으로 시작되고 있던 착취 방식이었다. 아무 위험부담 없이 물건을 홍보하고 매출도 올릴 수 있는 더없이 환상적이고 간단한 방법이며, 시절이 나쁠 땐 언제나 번성하는 방식이다. 3개월 뒤면 급여 받는 자리가 생길지 모른다는 암시로 사람을 조종하며, 그 사람이 넌더리를 내도 당장 일을 이어받을 딱한 인간들이 언제나 있다.
나는 더 이상 고상한 지성인이 아니었으며, 현대 생활의 냉엄한 현실을 바닥에서 체험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생활의 현실이 대체 무엇인가? 아마 제일 주된 것은 무언가를 팔기 위한 끊임없고 광적인 발버둥이 아닌가 싶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것은 자신을 파는 형식을 띤다. 달리 말해 일자리를 구하고 자리를 보존하는 것이다. 전쟁 이후로 일자리보다 구직자가 많지 않았던 때는 (어떤 업종이라도 좋다) 단 한 달도 없었지 싶다. 그런 현실은 인생살이에 참 별나고 살벌한 느낌을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생존자는 열아홉 명인데 구명튜브는 열네 개밖에 없는 난파선에 있는 느낌이다. 그런데 그게 특별히 현대적인 현상인가, 할지도 모르겠다. 그게 전쟁과는 무슨 상관인가? 나로서는 전쟁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싸우고 부산을 떨어야 한다는 느낌, 남한테서 빼앗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하리라는 느낌, 내 자리를 노리는 누군가가 반드시 있다는 느낌, 다음 달이나 그 다음 달이면 감원이 있을 것이고 이번은 내 차례일 것이라는 느낌. ‘그런’ 건 전쟁 이전의 옛 시절엔 존재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 pp.181-184

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하던 옛 시절이 뿌리부터 잘려나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할 만큼의 지각은 내게도 있다. 나는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다가올 전쟁이, 전후와 식량배급 줄과 비밀경찰이, 생각할 것을 지시해주는 확성기가 눈에 선하다. 나만이 그렇게 느끼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처럼 느끼는 사람이 수백만은 될 것이다. 어디서나 만나게 되는 평범한 사람들이, 펍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이들이, 버스 운전사들이, 철물회사의 출장외판원들이 세상이 잘못된 길로 들어섰음을 직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발밑에서 무언가가 쩍쩍 갈라지며 무너져 내리는 것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도 이 학식 있는 사람은, 평생 책과 함께 살았고 역사에 푹 빠져있어 몸에서 역사 향이 발산되는 듯한 이 사람은, 세상이 변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히틀러가 문제가 된다는 생각도 없고, 또 한 번의 전쟁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왜 슬로건이나 확성기나 무슨 색 셔츠단에 신경을 써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한다. “지성인이 왜 그런 데에 주목해야 하지?” 그는 늘 그렇게 말한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사라지고 말겠지만, 그가 말하는 “영원한 진리”는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모든 게 언제나 그가 알아온 대로만 될 것이라는 말을 다르게 하는 데 지나지 않는다. 교양 있는 옥스퍼드 출신들은 언제까지나 책이 꽉 찬 서재에서 유유히 오가며 라틴어 문구를 인용하고, 문장 찍힌 단지에 든 좋은 담배를 피울 것이다.
나는 그가 다시 서가에 기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사립학교 출신이라는 사람들은 참 재밌다. 언제까지나 학창시절이다. 평생 모교 언저리를 맴돌고, 라틴어나 그리몽어나 시의 파편들로부터 헤어나지 못한다.
우리 주변에 걸어다니는 사람들 중 상당수가 실은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는 누가 심장이 멎어야 비로소 죽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건 다소 자의적인 판단 같다. 우리 신체의 일부는 심장이 완전히 멎은 뒤에도 작동을 완전히 멈추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머리카락은 몇 년이 지나도록 계속 자라는 것이다. 인간이 정말 죽는 것은 두뇌 활동이 멈추는 때인지도 모른다. 새로운 관념을 받아들일 힘을 잃어버릴 때 말이다. 포티어스가 그렇다. 학식이 풍부하고 취향이 고상한 그이지만, 변화를 도무지 받아들이지 못한다. 언제까지나 같은 말, 같은 생각만 되풀이할 뿐이다. --- pp.227-229

뭘 하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그게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나는 평화와 정적을 원했던 것이다. 평화라! 한때 로어빈필드에는 평화가 있었다. 전쟁 전 옛 시절, 그곳에서의 삶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얘기한 바 있다. 그 생활이 완벽하기라도 했다는 건 아니다. 따분하고 나른하고 식물적이라 해도 좋은 생활이었다. 원하신다면 우리가 순무처럼 살았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순무는 상사 때문에 두려움에 떨며 살지 않아도 되고, 한밤중에 다음번 불황이나 다음번 전쟁 생각을 하며 잠 설치지 않아도 된다. 그 시절 우리는 마음에 평화가 있었다. --- p.239

험악한 시절이 시작되기 전에 평정심을 되찾고 싶을 뿐이었다. 천치가 아닌 이상 험악한 시절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의심할 이는 없을 테니 말이다. 우린 그 시절이 과연 어떠할지는 알 수 없어도 그런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건 안다. 전쟁일지, 공황일지 확실히 알 수 없다. 하지만 험악한 무언가임은 알 수 있다. 어떤 시대로 접어들게 되든 아무튼 내리막일 것이다. 무덤일지 오물구덩이일지 확실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런 시대에 직면하자면, 내면에 온전한 느낌을 간직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전쟁 이후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내면에 있던 무언가가 빠져나가버렸다. 없어서는 안 될 원기 같은 것을 다 뽑아 써버리고 남은 게 전혀 없는 것과도 같다. 그동안 이리저리 얼마나 분주했던가! 돈 한푼을 더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앞 다투었던가. 버스며 폭탄, 라디오, 전화벨의 소음은 얼마나 질기고 요란했던가. 원기가 다 빠져나가버리고, 골수가 있어야 할 뼛속이 텅 비어버린 느낌이다.
나는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다. 로어빈필드에 다시 가본다는 생각만으로도 벌써 힘이 난 것이었다. 어떤 느낌인지 아실 것이다. 숨 쉬러 나간다는 것! 커다란 바다거북이 열심히 사지를 저어 수면으로 올라가 코를 쑥 내밀고 숨을 한껏 들이마신 다음, 해초와 문어들 있는 밑으로 다시 내려오듯 말이다. --- pp.240-241

차를 몰고 언덕을 내려오며 생각한 것 하나. 이제 과거로 돌아가본다는 생각일랑 끝이다. 소년시절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가본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런 건 존재하지도 않는다. 숨 쉬러 나가다니! 숨 쉴 공기가 없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쓰레기통 세상의 오염은 성층권에까지 도달해 있다. --- p.311

로어빈필드에 있으면서 배운 것 하나를 말하자면 이렇다. ‘어떤 일이든 다 벌어지고 말리라.’ 우리가 마음 한구석에 두고 있는 일들, 끔찍이 두려워하는 일들, 악몽일 뿐이거나 외국에서나 있는 사건이라고 자위하는 일들이 전부 벌어질 것이다. 폭탄, 식량배급 줄, 경찰봉, 철조망, 무슨 색 셔츠단, 슬로건, 거대한 얼굴 포스터, 침실 창 밖으로 갈겨대는 기관총. 그 모든 일이 나고 말 것이다. 나는 안다. 아무튼 그때 난 알 수 있었다. 헤어날 길이 없다는 것을. 원한다면 맞서 싸울 수도 있고, 고개를 돌려버리거나 못 본 척할 수도 있고, 스패너를 들고 나가 사람들과 누구의 얼굴을 내려칠 수도 있다. 하지만 벗어날 길은 없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인 것이다.

--- pp.321-322

출판사 리뷰

조지 오웰의 숨은 걸작, 국내 첫 번역!
현대 사회의 본질인 ‘불안’에 대한 통찰
다가올 2차대전을 예견하는 무섭도록 정확한 안목
『1984』의 모든 문제 의식이 이 책에서 비롯되었다!

국내에 처음 번역 소개하는 조지 오웰의 장편 소설

한겨레출판이 또 한 권의 조지 오웰 작품을 한국 독자들에게 처음 선보인다. 영국 북부 탄광지대 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해 쓴 르포 문학 『위건 부두로 가는 길』(1936)과 오웰의 가장 빼어난 에세이 29편을 뽑아 엮은 『나는 왜 쓰는가?』 출간에 이어서, 이번에 그 세 번째로 조지 오웰의 장편 소설 『숨 쉬러 나가다』(1939, 원제 : Coming up for Air)를 국내 처음으로 번역해서 소개한다.
오웰은 모두 여섯 편의 장편 소설을 썼는데,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물론 『동물농장』(1945)과 『1984』(1948)이며, 처녀작 『버마 시절』(1934)이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있다. 오웰은 작가로서의 삶의 큰 전환점이 되었던 1936년을 거치며 그 이후 자신이 쓴 모든 글은 “정치적인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작업의 일환이라 술회한 바 있는데, 이 『숨 쉬러 나가다』는 그러한 문학적 입장에 입각한 첫 소설 작품이자, 자신의 대표작 『1984』에 담긴 많은 문제 의식의 씨앗을 엿볼 수 있는 장편소설이다.

중년의 뚱보 보험영업사원이 감행한 1주일간의 일탈!
“나는 15년 동안 좋은 남편이자 아빠였다. 하지만 이제 싫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 모르게 생긴 17파운드를 어디다 쓸 것인가?”

소설의 주인공은 마흔다섯 살 먹은 중년의 뚱보 보험영원사원, 조지 볼링. 런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작은 마을의 곡물?종자상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차대전에 참전해서 하급 장교로 전역했고, 운좋게 들어간 보험회사에서 18년째 일하고 있는 샐러리맨이다. 런던 외곽 대규모 주택단지에서 살고 있으며 겨우 먹고살 만한 형편에(하류 중산층쯤 된다), 매사 돈 걱정뿐인 아내와 쟁쟁거리는 두 아이들과 함께 애정 없는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세일즈맨 특유의 넉살 좋은 성격에, 바람 피울 기회라도 생길 참이면 굳이 거부하지 않는 현실 순응적이며 적당히 세속적인 인물이지만, 런던 상공을 날아다니는 폭격기, 임박해오는 듯한 전쟁, 히틀러와 파시즘에 대한 공포로 잠을 설칠 만큼, 그가 마주하고 있는 1938년의 현실은 숨 막힐 듯하다.
그러던 차 우연히 경마를 통해 공돈 17파운드가 주머니에 들어온다. 그 돈을 어디에 써야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20년 전 떠나온 고향을 떠올린다. 그가 원하는 것은 가스요금과 학비, 우유값, 라디오 소음, 무엇보다 전쟁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난 ‘평화’와 ‘정적’이다. 현실의 모든 중압감을 잊고, 오로지 자기 혼자만의 공간(그만이 알고 있는 비밀 연못이 있었다)에서 낚시를 하며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은 채, 소년시절의 옛 마을로 ‘숨 쉬러’ 떠나는데…….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규모 주택단지와 공업타운으로 변해버린 옛 마을과 자신을 기억하지도 못하는 옛 연인, 쓰레기매립장이 된 비밀 연못뿐, ‘숨 쉴 곳’은 이미 아득히 사라져버렸다.

저무는 세계, 그것을 잠식하는 ‘현대’의 탄생

이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 주인공 조지 볼링이 좋았던 옛 시절로 회상하고 있는 1910년 전후 무렵과 소설의 현재 시점인 1938년의 시대적 상황을 잠깐 살펴보자. 그 30년 사이 1차대전과 대공황을 겪으며, 영국은 미국에 정치?경제적 주도권을 넘기고, 독일을 비롯한 유럽 파시즘의 위협에 직면하게 된다. 제국주의 세력들 사이의 힘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과 더불어, 영국 내부에서도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자본주의의 원리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던 시기가 20세기 초반 무렵이었다.
오웰은 『숨 쉬러 나가다』에서 주인공의 회상을 통해, 저무는 한 시대의 질서가, 현대라는 이름의 새 시대 정신에 의해 어떻게 삼켜지는지 그 과정을 작품 속에 담아낸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열심히 꾸려가던 곡물 종자 가게가 어떻게 대형 할인점의 체계화된 저가 공세에 의해 망해가는지를, “고객은 언제나 옳다”는 지침 아래 무조건 고개를 조아려야 하는 여자 종업원과 그녀를 닦달하는 중간 관리자 모두가 해고라는 불안에 떨고 있는 처지임을, 런던 외곽 주택개발업자들의 사기극과 그들이 엄청난 이익을 거두는 시스템의 구조를(1990년~2000년대 한국의 상황과 너무나 유사하다), 생존자는 열아홉 명인데 구명튜브는 열네 개밖에 없는 난파선 위에서 자신이 살기 위해 남들을 밀어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팔기 위해 발버둥쳐야 하는 것이 현대인의 운명임을, 무엇보다 그 모든 경쟁과 불안감이 전쟁을 겪으며 더 악화되었으며, “마치 거대한 기계에 휘어잡”힌 개인들이 “자기 삶의 주인이 아”닌 채 살아가야 하는 시대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오웰은 담담히 그려낸다.

낚시의 세계와 슬로건의 세계, 그 사이

역자 이한중 씨와 몇몇 외국 평자들은 이 소설 『숨 쉬러 나가다』가 낭만주의 색이 짙은 이전의 세 장편과 본격적인 정치풍자의 세계로 넘어간 『동물농장』『1984』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작품이라고 평하고 있다. 이 소설 속에는 현대 사회의 실체인 ‘불안’과 ‘소외’의 징후를 예리하게 밝혀내는 예언자적 시선이 전반에 깔려 있으면서도, ‘낚시’로 상징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매우 아름답고 서정적인 장면이 곳곳에 펼쳐져 있다. 한편, 묘사를 통해 여러 인물들의 계급과 성격을 표현해내는 솜씨가 돋보이는데, 주인공 뚱보 영업사원 조지 볼링을 비롯해, 쇠락해가는 관리 계급 출신의 아내 힐다, 사립학교와 옥스퍼드 출신으로 오로지 자신이 나온 학교와 그때 배웠던 고전의 세계 안에 정체되어 있는 포티어스, 히틀러가 없으면 무얼로 먹고 살지 모르겠다며 볼링이 조롱하는 반파시스트 연사 등 여러 캐릭터가 단박하지만 핵심적인 묘사를 통해 오웰의 펜끝에서 만들어진다.
그럼에도 무엇보다 이 작품에 주목해야 할 이유는 다가올 2차대전과 파시즘이 지배하는 세상을 너무나도 정확히 예견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동물농장』『1984』가 2차대전과 히틀러 혹은 스탈린식 전체주의를 경험하고 난 뒤 그 특징과 폐해를 풍자와 패러디로 회고한 이점을 누린 작품이었다면, 『숨 쉬러 나가다』는 (물론 이미 기미나 징후를 있긴 했지만) 철조망과 거대한 얼굴 포스터, 슬로건, OO색 셔츠단, 생각을 지시하는 확성기 등이 지배하는 세상의 모습을 정확하게 그려냈고, 그것은 작품을 출간하고 난 3개월 뒤 2차대전과 아우슈비츠로 현실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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