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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orge Orwell,에릭 아서 블레어Eric Arther Bl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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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주요 위치마다 검은 콧수염 얼굴이 어김없이 붙어 있었다. 바로 맞은편 집 벽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꿰뚫어 보는 듯한 그 시커먼 눈동자.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저 아래 길가에 붙은 포스터의 찢어진 귀퉁이가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였다. 그때마다 ‘영사’(‘영국 사회주의’의 약자.)라는 단어가 보이다 안 보이다 했다.
--- p.11 그러나 결정적으로 그런 마음을 먹게 해 준 것은 서랍에서 방금 꺼낸 이 공책이었다. 정말이지 빼어나게 아름다운 공책이었다. 세월이 흘러 약간 누렇게 바래긴 했지만 아직 만질만질한 이 크림색 종이는 적어도 지난 사십 년간 생산된 적이 없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그 공책은 사십 년도 훨씬 더 된 물건인 셈이었다. 지금은 어느 구역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 빈민가의 누추한 고물상 진열창에서 이 공책을 처음 본 순간 곧바로 마음을 빼앗겨 버렸다. --- p.15 아이들의 흉포함은 언제나 외부의 적을 향했다. 국가에 저항하는 반역자들, 외국인, 공작원, 사상범들. 서른이 넘은 부모가 제 자식을 두려워하는 건 별로 드문 일이 아니었다. 부모끼리 나누는 위험한 이야기를 몰래 엿듣고 사상경찰에 고발하는 고자질쟁이들에 관한 기사가 일주일이 멀다 하고 신문에 실렸다. 그런 아이들을 흔히 ‘어린이 영웅’이라고 불렀다. --- p.39 새말의 궁극적인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것임을 모르겠는가? 결국에는 사상죄를 저지르는 일 자체가 불가능해질 걸세. 그런 불경한 사상을 표현할 말이 남아 있지 않게 될 테니 말이야.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한 단어로 표현되며, 그 단어의 의미는 엄밀하게 규정될 거야. --- p.74 여자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씩씩한 걸음으로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이 모든 일이 불과 삼십 초 안에 일어났다. 얼굴에 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타고난 습관처럼 굳어졌기 때문에 텔레스크린 앞에서 태연함을 유지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럼에도 윈스턴은 하마터면 놀란 내색을 할 뻔했다. 넘어진 여자를 일으키는 그 짧은 순간에 윈스턴의 손에 무언가가 살짝 미끄러져 들어왔기 때문이다. 여자의 행동은 철저히 계획된 게 분명했다. 무언가 작고 납작한 물건이었다. 윈스턴은 화장실 안으로 들어서면서 그 물건을 주머니에 넣고 손가락 끝으로 감촉을 느껴 보았다. 네모반듯하게 접은 쪽지였다. --- p.145 윈스턴은 잠시 읽기를 멈췄다. 아득히 먼 곳에서 로켓 폭탄의 폭발음이 들려왔다. 텔레스크린이 없는 방에서 혼자 금서를 읽고 있다는 기쁨은 잦아들 줄을 몰랐다. 적당히 노곤한 몸, 안락의자의 푹신함, 뺨을 스치는 바람의 부드러움. 거기 한데 어우러진 고독과 편안함이라는 감각을 온몸으로 누렸다. 그 책은 단숨에 윈스턴을 사로잡았다. 아니, 책이 윈스턴의 마음을 북돋워 주었다고 하는 편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 p.267 오브라이언이 왼손을 들어 손등이 윈스턴을 향하도록 했다. 그러고는 엄지손가락만 접고 나머지 네 손가락을 편 채로 이렇게 물었다. “손가락이 몇 개로 보이나, 윈스턴?” “네 개입니다.” “만약 당이 넷이 아니라 다섯이라고 하면 몇 개인가?” “네 개입니다.” --- p.333 당에 맞선다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따지고 보면 당이 옳았다. 그럴 수밖에. 불멸의 집단 지성이 어떻게 오류를 범할 수 있겠는가. 감히 어떤 외적 기준으로 그들의 판단을 평가할 수 있겠는가. 옳고 그름은 결국 다수결의 문제였다. 따라서 그들의 방식대로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관건이었다. 오직 그것뿐이다! --- p.372 어느 날인가, 아니 어쩌면 어느 ‘날’이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겠다. 한밤중이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윈스턴은 아주 이상하고도 더없이 행복한 몽상에 잠겼다. 복도를 걸어가며 곧 뒤에서 총알이 날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당장 뒤에서 총을 쏠 게 분명했다. --- p.3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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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어지러울수록 더욱 주목받는 고전
감시와 노출 사회의 이면을 비춘, 디지털 시대의 나침반 같은 책 《1984》는 전 세계 65개 언어로 번역되어,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읽히는 고전 중 하나다. 이 책이 출간된 20세기에는 동시대를 예리하게 그려낸 소설, 21세기에는 고도의 정보화 사회를 내다보는 ‘미래 소설’이라고 평가받는다. 실제 정부의 감시, 정보 조작과 왜곡 논쟁이 일어날 때마다 이 책은 새롭게 해석되고 주목받는다. 미국에서는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대규모 감시 프로그램을 폭로했을 때《1984》의 판매량이 약 60배,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했을 당시에는 약 95배 급증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정치적인 긴장이 높아지는 지금과 같은 시기, 《1984》의 인기는 사그라들 틈이 없다. 그런 점에서《1984》는 현실 세계와 가장 가까운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은 언론을 주관하는 진실부 기록실 직원 윈스턴 스미스의 시점으로 펼쳐진다. 배경은 ‘빅 브라더’가 지배하고 영국 사회주의(영사)를 통치 이념으로 당이 지배하는 가상 국가 오세아니아다. 오세아니아의 통치 이념은 당이 내건 슬로건인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이다. 이 통치 이념을 영속시키기 위해 당은 끊임없이 ‘늘 전쟁이 벌어지고 있으며, 당이 국민을 보호하기에 평화가 유지된다’고 선전한다. ‘무지는 힘’을 강화하기 위해 최근 신문 기사를 조작한다. 또한 사람들의 생각을 단순화·획일화하기 위해 ‘새말’을 만들어 보급한다. “빅 브라더가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오웰은 감시 사회를 예견한 작가다.《1984》가 현재까지도 널리 읽히는 이유는 소설 속 ‘빅 브라더’가 데이터 감시와 국가 감시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과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는 텔레스크린과 사상경찰이 감시 체계로 작동한다. 24시간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텔레스크린은 자의적으로 종료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사상경찰이 염탐하고 있을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징검다리 클래식《1984》의 해설에서는 개인의 사생활과 감시 사회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다룬 이 작품이 디지털 기술에 일상이 노출되고 있는 지금 시대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고 말한다. 정보를 독점하고 조작, 감시, 처벌로 체제를 유지하거나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민을 감시하는 국가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CCTV가 일상화되고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빅테크기업이 개인정보를 독점하고 유출하며, 인스타그램, 틱톡,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신상정보를 넘어 ‘취향’까지 수집한다. 오웰은 이 작품을 통해 감시 사회에 대한 경계를 말하고자 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서 데이터 감시와 국가 감시가 벌어지는 사례는 무엇이 있을까? 개인정보 유출과 사생활 침해를 막기 위해 국가와 기업, 그리고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책과 해설을 읽으며 질문의 답을 찾아가 보자. “2+2=4일까, 5일까?” 생각의 자유마저 빼앗긴 개인, 자유와 행복 사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윈스턴은 작품에서 자유를 열렬히 갈망하는 인물로 나온다. “2 더하기 2는 4가 아니라 5”라는 당의 강요 앞에서 ‘4’라 투쟁하고, 당이 국가 정복을 노리는 악의 집단으로 상정한 ‘형제단’을 마음속으로 추종하며 ‘빅 브라더를 타도하자’고 일기에 쓴다. 그리고 성적 욕망을 철저히 통제하는 당의 지침에 반해 몰래 줄리아를 만나 사랑을 나눈다. 윈스턴이 목숨을 내걸 정도로 이토록 자유를 갈망한 이유는 무엇일까? 《1984》에서는 개인의 일상뿐 아니라 ‘생각할 자유’마저 강력하게 억압한다. 당원들은 어린 시절부터 당에 해로운 사고는 무조건 무시하고 반박하는 법을 배우고, 당이 요구한다면 흑을 백이라고 말하는 충성심을 쌓는다. 결국 이전에 다르게 알았던 사실마저 잊어버리는 ‘이중사고’가 이들의 생각을 지배하게 된다. 사랑할 자유, 의사 표현의 자유, 언론 출판의 자유, 심지어 생각할 자유마저 빼앗겼지만, 당의 방침을 어기면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1984》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조건이 무엇인지 묻는다. 조지 오웰은 자유 없이 행복은 없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진실을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행복은 시작된다 글과 삶이 일치한 작가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희망의 메시지 조지 오웰만큼 글과 삶이 일치한 작가도 드물 것이다. 그는 스페인 내전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으며 1949년 전체주의의 종말을 묘사한 《1984》를 펴냈고, 그다음 해인 1950년 세상을 떠났다. 온몸으로 글을 써내려간 오웰은 에세이《나는 왜 쓰는가》에서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글 쓰는 이유를 밝히기도 했다. 전쟁이 끝나고 새로운 세계질서가 재편되던 20세기 중반, 조지 오웰이 글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무엇이었을까? 《1984》에서 윈스턴이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 계급에게 있다”고 한 것처럼 오웰은 일하는 사람, 권력에 맞서 저항하는 사람, 즉 ‘달걀로 바위를 치며 희망의 끝을 붙잡은 사람들’이 사회 개혁의 주역이라고 믿었다. 소설의 책장을 덮고 나서, 어두운 현실을 이겨내기 위해 희망을 붙잡고 실천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