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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
양장
구상
나무와숲 201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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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책을 내며

1부 나의 인생 행각기

나의 금잔디 동산|아버지의 유훈과 형의 교훈|나의 대학 시절|나의 기자 시절|고마운지고 반려인생|8·15의 추억 몇 가지|낙동강변 나의 시골집|무등병 복무|나의 인생 행각기|강, 나의 회심의 일터

2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나의 문학적 자화상|나의 시의 좌표|자기 존재에 대한 물음|삶의 보람과 기쁨|홀로와 더불어|존재의 신비|참된 휴머니즘|명인·명품들의 여향(餘香)|예술인의 자세|정신적 고려장

3부 나의 친구 이야기

이중섭의 인품과 예술|야인 김익진 선생과의 영혼놀이|깡패 시인 박용주 형의 추억|마해송 선생의 인품|한 은수자(隱修者)의 죽음|무영 선생의 만년|김광균 형을 산에 묻고|조각가 차근호 이야기|공초 선생의 치세훈(治世訓)

4부 가진 것 없이 베풀기

무료와 은총|저승길 차림|순교자와 예술가|실존적 확신|불교와 나|가진 것 없이 베풀기 |죄와 은총|발밑을 살피다|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자|망자와 더불어

5부 아름다운 시비

인간 왜소화|아름다운 시비|인간꽃밭|여성 3제|들풀과 선물|청춘의 가능성|삶의 본보기 셋|고민의 과대망상증|성급과 나태|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정치가의 용기

작품해설 한 촛불이라도 더 켜는 삶 _ 임헌영

저자 소개 1

具常, 본명 : 구상준

시인. 영남일보 주필이며, 하와이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기독교적 구원 의식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탐구했다. 시 「여명도」, 「초토의 시」 등을 썼다. 동서양의 철학이나 종교에 조예造詣가 깊어 존재론적·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이룩했다. 현대사의 고비마다 강렬한 역사의식으로 사회 현실에 문필로 대응, 남북에서 필화筆禍를 입고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지조를 지켜 온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전인적 지성. 1919년 서울 이화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구상준具常俊. 그가 네 살 때 그의 가족은 함경남도 원산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독일계
시인. 영남일보 주필이며, 하와이 대학교 교수를 역임하였다. 기독교적 구원 의식을 바탕으로 인간 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탐구했다. 시 「여명도」, 「초토의 시」 등을 썼다.

동서양의 철학이나 종교에 조예造詣가 깊어 존재론적·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이룩했다. 현대사의 고비마다 강렬한 역사의식으로 사회 현실에 문필로 대응, 남북에서 필화筆禍를 입고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지조를 지켜 온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전인적 지성.

1919년 서울 이화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구상준具常俊. 그가 네 살 때 그의 가족은 함경남도 원산으로 삶의 보금자리를 옮겼다. 독일계 신부들이 원산에 교구를 개설하면서 교육 사업을 그의 아버지에게 맡겼던 것이다. 보통학교를 마친 그는 형처럼 신부가 되기 위해 신학교에 입학했으나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의 가슴에서 들끓고 있는 일제와 신神과 제도에 대한 저항 의식 때문이었다. 결국 시인은 고향을 떠나 일본으로 밀항했다. 그리고 일본대학 종교과에 입학하여 불교, 기독교, 가톨릭 등 각 종교의 철학적 근거를 배우며 정신적 근원을 다져 나갔다. 귀국 후 활발히 집필 및 사회 활동을 하다가 해방을 맞아 1946년 원산문학가동맹이 광복 1주년 기념으로 발간한 시집 『응향凝香』에 실린 시 세편이 문제가 되면서 ‘응향필화사건’에 휘말렸다. 이 사건으로 구상 시인은 자유를 찾아 월남을 감행했다.

그 후 구상 시인은 1949년 초에는 [연합신문] 문화부장을, 6·25 전쟁 중에는 국방부 기관지인 [승리일보]를 만들며 종군했다. 1952년 전세가 교착 상태에 빠지고 [승리일보]가 폐간되자 구상 시인은 영남일보의 주필 겸 편집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959년 이른바 ‘레이더 사건’을 겪은 이후 일체의 사회적 직책을 맡지 않았다. 대신 그가 선택한 길은 후학을 양성하는 것이었다. 효성여자대학, 서강대학교, 서울대학교, 중앙대학교, 하와이대학교 등에서 후학들을 가르쳤는데, 이때 역시 시인은 일체의 보직을 사양했다.

구상 시인은 1953년 베네딕도 수도원이 있는 왜관으로 내려가 1974년까지 기거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낙동강이 바라다 보이는 왜관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구상시인의 시의 원천이었다. 하지만 그는 개인적으로 두 아들을 일찍 가슴에 묻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큰아들 구홍은 1997년 9월 10일 폐렴으로, 둘째 아들 구성은 1987년 폐결핵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1993년에는 그를 헌신적으로 보살펴 주었던 아내 또한 타계했다. 남은 가족으로는 소설을 쓰는 딸 자명 씨와 작은 아들이 남긴 유일한 혈육인 손녀가 있다.

노벨문학상 본선 심사에 두 번씩이나 올랐던 구상 시인의 시는 프랑스·영국·독일·스웨덴·일본·이탈리아어로 번역·출판돼 널리 읽히고 있다. 1997년에는 영국 옥스퍼드 출판부에서 펴낸 『신성한 영감-예수의 삶을 그린 세계의 시』에 그의 신앙시 4편이 실렸을 정도로 그는 가톨릭을 대표하는 시인이기도 했다. 그는 시를 쓸 때 기어綺語의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말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언령言靈이 있으므로 참된 말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묘하게 꾸며 겉과 속이 다른, 진실이 없는 말을 결코 해서 안 된다는 것이다.

구상 시인은 이른바 기인奇人들과의 교류로도 유명했다. 천재 화가 이중섭을 극진히 돌보았는가 하면 시인 공초 오상순, 우리나라 아동문학의 선구이자 ‘어린이 헌장’의 기초자인 마해송을 비롯해 걸레스님 중광에 이르기까지 그와 인간적으로 따뜻한 관계를 맺었던 기인들이 수없이 많다. 구상 시인은 박삼중 스님이 벌이는 사형수 돕기에도 적극적이었다. 그중 한 명을 양아들로 삼고 옥바라지를 하는 한편 구명운동에 나서기도 했는데, 결국 사형수는 7년 만에 무기로 감형된 데 이어 15년 만에 석방되었다. 그만이 아니라 구상 시인에게 그를 ‘아버지’라고 부른 이들이 많다. 이처럼 그의 품은 넓고도 따스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이중섭 화백의 작품을 판 1억원을 이웃을 위해 스스럼없이 내놓은 것을 비롯해 투병 중에도 장애우 문학지 [솟대문학]에 그동안 아껴 두었던 2억원을 쾌척하는 등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늘 관심을 가져왔다. 이처럼 성자聖子와도 같은 삶을 살았던 구상 시인은 지병인 폐질환이 악화된 데다 교통사고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며 힘들게 병마와 싸우다가 끝내 2004년 5월 11일 사랑하는 아내와 두 아들이 기다리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동서양의 철학이나 종교에 조예(造詣)가 깊어 존재론적ㆍ형이상학적 인식에 기반한 독보적인 시 세계를 이룩한 시인. 현대사의 고비마다 강렬한 역사의식으로 사회 현실에 문필로 대응, 남북에서 필화(筆禍)를 입고 옥고를 치르면서까지 지조를 지켜 온 현대 한국의 대표적인 전인적 지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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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7년 09월 14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316쪽 | 410g | 128*188*30mm
ISBN13
9788993632675

책 속으로

오죽해야 어머니는 매양 “나는 네가 세상에서 잘났다는 소리를 듣느니보다 그저 수굿이 살아 는 게 소원이다”라는 애원에 가까운 당부를 하셨고,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사흘 전 나를 불러 앉히시고는 “너는 매사에 너무 기승을 하지 말라! 아무리 의롭고 바른 일이라도 기승을 면 위해를 입느니라” 하시면서 《채근담》을 손수 펼쳐 짚어 보이신 것이 다음과 같은 구절이다. “조금 줄여서 사는 것이 조금 초탈해 사는 것이니라.” --- p.20

불쑥 이렇게 말하면 독자들은 이해가 안 가겠지만 내가 일찍 열다섯에 가톨릭 신부가 되고자 베네딕도 수도원 신학교엘 들어갔다가 3년 만에 환속을 했고 일반 중학으로 전입했으나 퇴학을 당했으며, 문학을 한답시고 고향의 소위 불령선인들과 어울려 다니며 유치장 신세가 일쑤고 하니 어느새 스물 안짝에 교회에선 이단아요, 가문에선 불효자요, 마을에선 ‘주의자’가 되었다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다. --- p.23

어쩌면 매서운 현실 고발의 시다. 그러나 나의 상념은 강을 통하여 역사에 대한 낙관을 획득한다. 즉 우리의 오늘의 삶이 아무리 연탄빛 강으로 흐르고 그 오염이 징그럽게 번득이더라도 언젠가는 푸른 바다에 흘러들어 맑아질 그날이 있을 것을 나는 믿고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오늘의 저 눈 뒤집힌 삶이 가엾기까지 한 것이다. --- p.81~82

대구 시절 하루는 중섭이 빙글빙글 웃으며 예의 양담뱃갑 은지에다 파조(爬彫)한 그림 한 장을 내보이며, “음화를 보여 줄게.” 하였다. 참으로 음화라면 거창한 음화였다. 그 화면에 전개되고 있는 것은 위에서 말한 산천초목과 금수어개와 인간까지가, 아니 모든 생물이 혼음 교접하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는 구태여 범신론적 만유나 창조주의 절대 사랑과 같은 인식의 세계가 아니라 그 자신이 만물을 사랑의 교향악으로 보는 사상의 실체였다. --- p.161

오늘날 우리들의 주변을 돌이켜보면 저렇듯 소행 삼매에 들어 있는 사람은커녕 자기 삶을 충실히 하려는 사람들보다 남의 삶이나 세상살이를 떠벌리고 비난하고 통탄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성싶다. 한마디로 말해 제 일과 제 허물은 선반 위에 올려놓거나 제 눈의 대들보는 못 보고 남의 눈의 티끌만을 보거나, 제 발밑은 살피지 않고 세상살이 걱정부터 앞세우는 사람들로 차 있는 것이다.

--- p.230

출판사 리뷰

한 촛불이라도 켜는 삶
“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낫다!”


구상 선생은 “오늘날 우리들의 주변을 돌이켜보면 자기 삶을 충실히 하려는 사람들보다 남의 삶이나 세상살이를 떠벌리고 비난하고 통탄하는 데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며 “오늘이 영원과 무한의 한 과정이고, 한 시간이고, 한 공간”이므로 “오늘서부터 영원을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낫다”고 이야기한다.

구상선생기념사업회 유자효 회장은 “아무쪼록 이 책이 일반 독자와 연구자들에게 널리 읽혀 삶의 훈향(薰香)으로 퍼져” 나가길 소망한다고 밝혔다. “구상 선생의 생애는 영원한 물음인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한 해답을 우리에게 다정하게 들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추천평

‘관수재’ 서재에서 선생님과 함께 듣던 새소리를 떠올리며 책을 읽었다. 글과 인품의 향기로 많은 이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한 작가의 일생이 들어 있는 책 『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 시인은 세상을 떠났어도 그의 작품이 독자의 가슴속에서 별처럼 빛나는 것을 보는 기쁨! 이 책을 읽다 보면 시인의 따뜻한 인간관, 폭넓은 세계관, 깊이 있는 종교관에 새삼 감동하게 된다. 한때 사제를 꿈꾸었던 시인이기에 그는 어쩌면 시대의 아픔을 보듬고 세상의 고뇌를 자신의 것으로 여기며 불면의 밤을 보낸 것은 아니었을지! 누구보다 강을 좋아한 그의 글들에는 사소한 일에도 존재론적 사유를 풀어내는 철학이 출렁이고, 「밭 일기」의 연작시에서처럼 흙냄새 나는 일상의 행복이 글의 행간마다 보물로 묻혀 있다. 큰 나무를 닮은 예언자적 시인이 전하는 삶의 진리, 사랑 그리고 선을 재촉하는 목소리에 차분히 귀 기울여 보자. _ 수녀·시인 이해인

풀꽃 같은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 해답을 구상은 한 촛불이라도 켜려고 노력하는 삶이라고 주장한다. 한국을 사랑했던 펄 벅이 1960년 서울에 왔을 때, 11월 4일 공초 오상순의 명동 청동다방으로 찾아가 사인북에다 남긴 말이 “한 촛불이라도 켜는 것이 어둡다고 불평하기보다 낫다”는 것이었다. 그만큼 들꽃 사랑이란 현실 사랑의 지표인 것이고, 구상의 산문은 우리들 가슴에 촛불을 켜게 해준다. _ 문학평론가·민족문제연구소 소장 임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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