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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그날부터 영국은 내게 펍으로 다가왔다 제1막 삶이 무의미해질 때 펍을 찾아라 한 잔의 맥주를 마시며 옛 사람의 숨결을 느끼다 펍은 의회이자 스포츠 관람장이다 500년 역사는 되어야 명함을 내미는 영국 펍의 내공 펍을 알아보는 데에는 특별한 요령이 필요하다 제2막 펍, 역사의 증인이 되다 그림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곳이 술집임을 펍 간판에서 만나는 기독교 코드 펍에서는 오늘도 십자군이 동방원정을 떠난다 교황의 머리를 내리고 왕의 머리를 매달다 빨간 장미를 걸까, 하얀 장미를 걸까 여왕, 자신의 얼굴을 그린 펍 간판을 불사르라 명하다 펍 간판은 왕권 브랜드 홍보 수단이었다 제3막 해적과 펍 해적질이 국부의 원천 해적왕 캡틴 키드와 펍의 교수대 악마들의 선술집과 판사 제프리 맥주의 거리와 진의 거리 펍, 신대륙을 꿈꾸다 제4막 영웅과 예술가들의 펍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펍 셜록 홈스가 좋아했던 메뉴를 아십니까? 펍 '쇼블 제독의 배'가 골목 양쪽으로 나뉜 까닭 펍, 판타지 세계를 탄생시키다 예술과 지성과 보헤미안, 펍에서 만나다 비틀스가 사랑한 펍 '포도송이' 펍이 배출한 또 한 명의 스타, 엘튼 존 웨스트엔드, 뮤지컬 그리고 펍 epilogue 도시의 매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들은 서울에서 어떤 추억을 만들 수 있을까 appendix 런던을 여행하는 맥주광들을 위한 펍 안내서 햄스테드, 런던의 몽마르트르 소호, 마이너리티와 보헤미안의 마음의 고향 사우스와크, 활력이 넘치는 생활인들의 고장 코벤트 가든, 숨겨진 이야기 가득한 예술의 거리 플릿 스트리트, 잉크 향기 아련한 아일의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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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펍(Pub)', 영국을 말하는 또 다른 그 곳
김태희 (여행, 예술, 청소년 담당)
나에게 있어 장거리 여행의 첫 번째 나라는 영국이었다. 처음으로 먼 곳으로 떠난다는 설레임, 그리고 단체 관광이 아닌 혼자만의 여행이라는 (친구와 함께였지만) 설레임이 더해져 잔뜩 부푼 마음으로 첫 발을 내디뎠다. 대학생 때 하는 배낭여행이란 게 다들 그렇겠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보려고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니고 끼니도 제대로 못챙길 때도 많아서 지금 생각하면 내가 제대로 갔다오긴 한걸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도 영국의 히드로 공항에 내렸을 때의 설레임은 잊지 못한다. 그리고 아직도 남은 아쉬움으로 다시 한 번 꼭 가고 싶은 그곳이 바로 영국이다.
'영국'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축구, 비틀즈, 해리포터, 빨간색 이층버스, 왕실 등등.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펍 Pub'이다. 가보지 않고서야 알 수 없지만 영화나 티비 속에서 본 맥주 한 잔 들고 서서 이야기하고, 축구를 응원하는 영국인들의 모습이 결코 낯설지가 않다. 나도 그 분위기 속에 한 번 어울려 봤음 싶기도 하고. 『펍, 영국의 스토리를 마시다』의 저자는 기자로 활동하며 여러 나라를 다니다 영국에서 우연히 '펍'에 대해 관심을 갖고 본격적으로 '펍'에 대한 연구와 함께 '펍'을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 어느 나라나 그 나라의 독특한 술 문화가 있다. 영국의 '펍' 문화도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5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펍'이 아직까지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고 한다. 100년, 200년이 넘은 '펍'은 부지기수라니. '펍'의 정식 명칙은 '퍼블릭 하우스(Public House)' 다. 우리 말의 선술집, 맥주집으로 통하지만 영국인에게 '펍'은 원래 단어 그대로 '공공장소'의 기능을 담당해왔다고 한다. 최신 뉴스나 가십, 여론을 나누고 토론을 벌이는 정치 마당이자, 퇴근 후 피로를 잊기 위한 노동자들의 휴식처로 그렇게 늘 함께 있었다. 그래서 그 속에는 영국의 역사와 문화가 고스란히 반영되어 변화되어왔다. 저자는 먼저 '펍'의 간판에서 그것을 찾아냈다. 문맹률이 높았던 노동자들을 위해 그림만 봐도 이 곳이 술집임을 알 수 있도록 해야 했고, 그 문양은 시대에 따라 지역에 따라 그 특징을 달리했다. 종교의 영향이 막강했던 시기에는 양, 열쇠, 심지어 수도승이 그려져 있는 간판이 생겨났고, 왕의 세력이 강해지면서부터는 '교황의 얼굴'은 내려가고 '왕의 얼굴'이 간판에 올라가기도 했다니, 보기만 해서는 이해할 수 없던 '펍'의 간판에 대한 궁금증들이 풀리는 것 같다. '펍'에 영국인들의 삶이 묻어있듯 영국의 유명한 예술가들도 바로 이 곳에서 그들의 예술을 꽃피웠다. 영국인들이 사랑하는 '셜록 홈즈'를 쓴 코난 도일이 자주 다니던 호텔 근처에는 '셜록 홈즈' 펍이 들어서고,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C.S. 루이스의 '나니아 연대기'도 펍이 없었다면 태어날 수 없었을 거라고 말한다. 비틀즈와 엘튼 존 역시 펍을 사랑한 뮤지션이었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든 그 나라의 문화에 흠뻑 젖어 돌아 볼 수 있다면 오래도록 잊지 못할 여행이 될 것만 같다. 책장을 덮고 나니 '펍'을 따라 영국을 여행하는 꿈을 살짝 꿔보게 된다. 그 전에 먼저 퇴근 길 맥주 한 잔이 더 간절할 것 같긴 하지만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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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술집이 그런 것이다. 술집의 본질은 예나 지금이나, 동양이나 서양이나 별 다를 바 없다. 온갖 사연을 가진 군상의 집합소가 술집이고, 그렇기 때문에 술집은 당대를 대변한다. 한 시대의 크고 작은 사조, 요즘 말로 하자면 '트렌드'의 본산이자 거점이다. 따라서 한 술집이 계속 그 자리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한 그 술집은 작든 크든, 유명하든 아니든 나름의 사연을 유지하면서 그 자체로 역사가 되는 것이다. 영국의 술집들은 파리에서 인상파
들이 활약하던 그때나 지금이나 거의 차이가 없다. 공간의 본질 또한 변함없이 잘 보존돼 있다. 나를 매혹시키면서, 때로 흥분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 펍의 가치에 눈뜬 이후 나를 줄곧 사로잡은 펍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왁자지껄한 웃음과 수다, 그리고 서로 부딪치는 어깨로 느껴지는 체온의 따뜻함, 문을 들어서서 가장 먼저 마주치는 바텐더의 미소와 짙은 암갈색 카운터 위에서 반짝반짝 매혹적으로 빛나는 생맥주 기계의 손잡이들, 그리고 큼직한 잔에 가득 채워진 시원하고 향기로운 갈색 액체의 풍미……. 한때 오스카 와일드와 찰스 디킨스가, 또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바이런과 예이츠가 드나들면서 예술과 삶과 무산 노동자 계급과 산업자본과 속절없는 청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던 바로 그 장소에서, 그들의 숨결을 느끼면서 한 잔의 맥주를 마시는 그 작은 떨림과 희열. 그렇다. 이곳이 바로 펍(PUB)이다. --- p.20 펍 '셜록 홈스'의 특색 중 하나는 바로 펍의 메뉴이다. 메뉴가 마치 소설 속에서 바로 꺼내 온 듯하기 때문이다. 전채 메뉴만 보더라도 다음처럼 소설 제목이나 인물을 그대로 차용했다. ○ 주식 중매인 : 메리 로즈 소스로 바삭하게 튀긴 새우 ○ 세 개의 박공 : 연어 샐러드 ○ 네 개의 서명 : 주방장이 만든 오늘의 수프 이는 주 요리도 마찬가지여서 주요 인물들이 모두 들어 있다. ○ 셜록 홈스가 좋아하는 것 : 토마토와 버섯을 곁들인 등심 스테이크 ○ 왓슨 박사가 좋아하는 것 : 으깬 감자, 양파 등을 곁들인 전통적 컴버랜드 소시지 ○ 모리어티 교수가 좋아하는 것 : 체다 및 스틸톤 치즈와 감자 및 샐러드를 곁들인 구운 버섯 그렇다면 작가인 코난 도일 본인이 좋아했던 메뉴는 무엇일까. 펍 식단으로 보자면 요크셔 푸딩, 구운 감자와 야채를 곁들인 소의 볼기살 구이이다. 런던을 여행할 때 하릴없이 옥스퍼드나 리젠트 스트리트에서의 아이쇼핑에 시간을 빼앗기기보다, 펍 '셜록 홈스' 같은 장소에서 맥주 한 잔 혹은 셜록 홈스가 좋아했던 메뉴로 식사를 하면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 분위기를 느껴 보는 것도 하나의 괜찮은 추억거리가 될 것이다. 사진을 보면 가로등에도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는 셜록 홈스의 대표적인 이미지가 들어가 있다. 이러한 '작은 감각'들이 여행객에게 큰 기쁨을 줄 수도 있고, 이러한 것들이 모여 바로 한 나라의 문화를 판단하는 척도를 형성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 p.175 버지니아 울프는 여자라는 이유로 케임브리지 대학에 들어갈 수 없었지만, 이 대학에 다닌 오빠의 친구들과 어울려 그룹의 주축을 형성하면서 런던 지성의 일각을 완성했다. 블룸스버리 그룹은 딜런 토마스나 조지 오웰만큼은 아니었어도 '피츠로이 태번' 등 블룸스버리 지역의 많은 펍을 다니며 담소와 토론을 즐겼다. 마치 박인환이 시인 김수영 등과 어울려 명동의 여러 술집들을 전전했던 것처럼. 아마 지금도 버지니아 울프의 후예들은 펍 '피츠로이 태번'에 모여 앉아 그녀의 삶과 예술을 논하면서 통속한 삶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 p.199 '포도송이'에서 맥주를 마실 때의 비틀스에게 미래는 불투명한 것이었다. 20대의 불안감과 두려움은 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자리잡고 있었다. 만약 리버풀에 갈 일이 있다면 펍 '포도송이'에 꼭 가보기를 바란다. 맥주 한 잔을 시키고 자리에 앉아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펍의 시끄러움 속에서도 비틀스 멤버들의 속삭임이 들려올 것이다. 우리 역시 불투명한 때가 많았노라고. 우리 역시 미래의 불안감에 두려워했노라고. 다만, 음악을 할 때가 즐거웠고 행복했기에 계속 했노라고. 성공은 우리가 잘 모르는 단어였으며, 좋아하는 일을 추구하다 보니 우연하게 따라온 것이었노라고. --- p.206-2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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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맥주를 마시며 영국을 음미하는 여행
'오래된 체셔 치즈(Ye Old Cheshire Cheese), 요크 공작(Duke of York), 웨일스의 왕자(Prince of Wales), 왕의 얼굴(King's Head), 푸른 수퇘지(Blue Boar), 장미와 왕관(Rose & Crown), 깃발 든 양(Lamb & Flag)….'
이 알쏭달쏭한 말들은 대체 무엇일까? 바로 런던 시내에서 만날 수 있는 펍들의 이름이다.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수수께끼 같은 이들 펍의 이름에 저자는 강렬한 호기심을 느꼈고, 마치 『다빈치 코드』를 연상시키는 기호와 상징의 미로 같은 매력에 빠져 결국 펍을 찾는 모험에 뛰어들었다. 그렇게 찾아낸 이야기들은 천여 년의 세월을 담은 영국 그 자체이며, 어느 서사시 못지 않게 흥미롭다. 영국의 역사에 관심이 있으나 딱딱한 역사책이 싫은 사람들에게 권해도 좋을 만하다. 펍의 간판에서는 오늘도 중세에 왕위 쟁탈을 벌이던 리처드 3세의 하얀 수퇘지 문장과 헨리 7세의 푸른 수퇘지 문장이 서로에게 엄니를 드러내고 있다. 지지하는 세력의 문장을 펍의 간판에 그려 매다는 것으로 민심을 표출했던 영국 국민들의 의지가 21세기까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이다. 드라마 《튜더스》를 보는 현대의 시청자들에게 아내를 여섯 명이나 갈아 치운 헨리 8세는 방탕한 스캔들 메이커이겠지만, 튜더 왕조를 성립시킨 배경이 된 '장미전쟁'의 비극을 아는 사람이라면 강력한 왕권과 안정을 위해 후계자에 집착했던 왕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장미전쟁의 주인공 요크가와 랭커스터가의 장미 문장들 역시 '요크 공작'과 '장미와 왕관'이라는 이름의 펍 간판 속에 여전히 희고 붉게 피어 있다. 이렇듯 펍에는 스토리가 넘친다.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역사를 만들고 삶을 이야기하고 희망을 꿈꿔 왔다. 영국인들이 마시는 한 잔의 맥주에는 왕조의 흥망성쇠, 전설, 사랑, 굴곡진 인생 역정이 녹아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영국 여행을 계획하면서 웨스트엔드의 뮤지컬, 첼시와 옥스퍼드 스트리트에서의 쇼핑, 코벤트 가든의 볼 거리,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파크의 쾌적함을 떠올리겠지만, 그것이 영국의 전부는 아니다. 오히려 길을 가다 수없이 마주치는 펍, 바로 그곳에 영국의 역사와 예술에 관한 모든 스토리가 들어 있다. 한때 무명의 비틀스가 꿈을 키우던 곳, 톨킨과 루이스가 판타지 세계를 건설했던 곳,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노동과 자본을 이야기하던 곳, 영국에 매혹된 여행자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 그곳이 펍이다. 그러므로 펍을 이해하고 한 잔의 맥주 속에 녹아 있는 영국의 스토리를 음미할 수 있다면 영국은 보다 즐겁고 매혹적인 나라로 다가올 것이다. 도시의 매직 펍, 그리고 서울을 위한 제안 매력적인 도시에는 '매직 10(10가지 매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저자에게 펍은 영국의 매직 10 중 하나였으며, 단연 으뜸이었다. 저자는 영국 펍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고, 이런 관점에서 시선을 서울로 옮긴다. 그가 먼 나라까지 가서 펍의 매력을 탐구한 궁극적인 이유는 바로 이런 장소가 우리의 서울에도 생겨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면 사과나무를 심는 대신 '펍'으로 달려갈 만큼 맥주를 사랑하는 영국인들은 지역 커뮤니티의 소소한 일에서부터 커다란 정책 결정까지 펍에서 의견을 나누고 여론을 모았다. 사랑방이자 의회의 역할을 감당했던 소통의 장소였기에 펍은 오래도록 존속할 수 있었다. 영국인들의 유별난 맥주 사랑이 펍을 가꾸고, 펍에 이야기를 심었으며, 펍의 역사에 자부심을 갖도록 만든 것처럼, 서울의 거리에도 우리 일상의 소소한 자취가 녹아 들어 전통과 스토리가 될 수 있는 공간을 제안하는 것이 이 책의 또 하나의 목표이자 바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