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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교토역에서 제1부 미야코都의 탄생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 교토의 봄 *마이코와 오도리 아라시야마의 도래인들 고류지의 일본 국보 1호 술의 신을 모신 신사, 마츠오다이샤 우아함의 극치, 아오이 마츠리 일본의 여우 신앙과 이나리 신사 신라대명신과 세키잔젠인 헤이안 시대, 화려하게 꽃피운 귀족문화 간무 천황의 교토 천도 *대장군팔신사의 석상과 소나무 교토 답사 1번지, 기요미즈데라 교토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 야사카 신사와 기온 마츠리 도지와 사이지 이야기 *교토의 랜드마크, 불탑 화려한 귀족문화의 등장과 뵤도인 모노노케 신앙과 음양사 아베 세이메이 학문의 신을 모신 기타노텐만구 제2부 무인 정권 하의 교토 일본 중세의 시작 귀족의 몰락과 사무라이의 등장 호겐의 난과 두 가문의 대결 겐페이 전쟁, 최후의 결전 간토와 간사이의 차이 비운의 여인 겐레이몬인과 오하라메 *영자의 전성시대 전설이 되어 버린 비운의 영웅 홍백가합전과 교토의 세밑 풍속 막부 시대의 도래 가마쿠라 막부의 성립 가마쿠라 막부의 멸망과 남북조 시대 무로마치 막부와 킨가쿠지 백년 전국 시대의 도래 히가시 문화와 긴가쿠지 *가레산스이 정원의 백미, 료안지 에마의 발상지 기부네 신사 제3부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교토 재편 천하통일과 새로운 교토 건설 오다 노부나가의 통일사업과 혼노지의 변 고도이의 축성 주라쿠다이와 데라마치 다이고지의 하나미와 모모야마 문화 *모모야마 문화의 3대 가라몬 도요토미 가문의 몰락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후 에도 막부의 성립과 니조조 교토의 변두리 야마시나와 쥬신구라 이야기 짝사랑의 미학과 즈이신인의 오노노 고마치 *연인들의 신사 물과 술의 고장 후시미 제4부 영광의 세기, 찬란한 노을 속으로 근대화의 물결 존왕과 양이의 갈림길에서 시마바라에 부는 바람, 신센구미 막부 최후의 항전, 무진 전쟁 사카모토 료마와 유신의 길 천황의 부활과 절반의 근대화 근대 이후의 교토 헤이안신궁과 지다이 마츠리 교온나와 센본샤카도의 오카메 *히가시혼간지와 오타니 컬렉션 러?일 전쟁과 노기 장군 교토의 전형적인 민가, 마치야 *일본의 표준말은 홋카이도 말 가모가와, 윤동주와 정지용의 교토 에필로그 교토, 그리고 교토 사람들 후기 사요나라 교토 |
조관희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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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는 일년 내내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곳에 정주해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이 찾지만 정작 이곳 사람들은 자신들의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외지 사람들을 대하는 이들의 태도는 겸손함 속에 미야코(都), 곧 서울 사람 특유의 오만함도 깔려 있습니다. 거기에는 교토의 역사가 곧 일본의 역사라는 자부심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바, 실제로 교토에 살면서 옛 자취를 더듬어가다 보면 일본 역사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이 거리마다 골목마다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수도로서의 교토의 위상은 시대마다 부침을 겪긴 했지만 한 나라의 수도로 보낸 세월이 천년이 넘기에 그렇게 오랜 시간 축적된 역사와 문화를 돌아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 시간을 거슬러 꿈이라도 꾸듯 그 길을 천천히 거닐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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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벚꽃의 화사함이야 어디 간들 변하겠습니까. 우리에게도 유명한 진해의 벚꽃이 있고, 굳이 그곳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곳곳에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 많이 있습니다. 벚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는 나무 그늘에 앉아 있노라면 누구라도 시심이 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벚꽃이 흩날리면 새삼 인생을 돌아보게 되고 각자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과 같은 왠지 모를 서글픔이 밀려들어옵니다. 유난히도 벚꽃을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인지라 벚꽃 철이 되면 꽃구경 나온 사람들로 교토 시내 곳곳이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일본말로 꽃구경은 말그대로 꽃을 본다는 의미로 '하나미(花見)'라 합니다. 그러니 벚꽃 구경은 '사쿠라노하나미(櫻の花見)'인 셈이지요. 교토의 봄은 벚꽃과 함께 시작해서 벚꽃과 함께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 p.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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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를 기점으로 한 헤이안 시대의 중심은 간토의 가마쿠라로 옮겨졌다가 무로마치 막부 시절 다시 교토로 옮겨지고, 에도 막부가 세워지면서 권력의 중심지가 다시 간토의 에도, 곧 현재의 도쿄로 옮겨지게 됩니다. 실로 일본 역사의 무대는 오랜 동안 간사이와 간토 사이에서 시계추처럼 오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대정봉환 이후 천년 만에 다시 권력을 잡은 천황이 에도로 천도한 것을 두고 간사이에 있던 천황이 간토로 옮겨가서 천하를 지배한 것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습니다. 2011년 3월 간토 동북부 해안 지방을 중심으로 한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도 인근의 도쿄 지역의 지진 발생으로 인한 타격을 우려한 이들이 좀 더 안전한 간사이 지역으로 수도를 옮겨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지만 쉽사리 실행에 옮길 수 없었던 것도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p.2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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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동아시아 삼국은 물론 아시아 전체를 통틀어 비교적 순조롭게 근대화에 성공한 나라로 손꼽힙니다.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권력자였던 막부의 쇼군이 평화적으로 권력을 천황에게 이양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일본의 근대화가 안고 있는 문제가 내재되어 있기도 합니다. 곧 개혁 세력이 내세웠던 '존왕양이'란 구호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와의 단절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웠던 것이 바로 무가 정권 하에 명목상으로만 남아 있던 천황의 복권이라는 사실입니다. 앙시앵 레짐을 혁파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그 대신 끌어들였던 게 어찌 보면 똑같은 앙시앵 레짐이라 할 천황제라니, 뭔가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일본의 근대화는 기득권을 가진 막부 세력을 견제하고 말살하기 위해 서구의 의회민주주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등의 방식이 아닌 일단 무가 정권 하에 천년 넘게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살았던 천황을 되살리는 것에서 출발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현재까지 일본의 근대화가 안고 있는 한계이자 비극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보자면 일본의 근대화는 절반의 성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 p.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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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정신과 역사를 말해주는 곳,
천년의 시간을 품어온 도시 교토를 만난다 일본인들의 영원한 마음의 수도 교토, 비록 지난 천년의 찬란한 영화는 사라졌지만 그곳에는 발걸음 닿는 모든 장소마다 아련히 사라져 간 역사의 향기가 깊이 배어 있다. '교토의 역사'는 곧 '일본의 역사'이며, '교토의 정신'이 곧 '일본의 정신'이다. 진정한 일본의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토다. 교토가 '일본인들의 마음의 고향', '도시 전체가 박물관'이라 불리며 일본인들은 물론 수많은 여행자에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단순히 천년의 역사 위에 자연스럽게 쌓인 문화재들 때문만은 아니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벚꽃 축제가 끝나면 1년에 딱 한번 열리는 마이코들의 공연인 미야코 오도리, 일본의 3대 마츠리 중 하나로 꼽히며 무더운 여름의 교토를 더욱 뜨겁게 만드는 기온 마츠리, 교토의 외곽 아라시야마에서 즐기는 단풍놀이와 헤이안신궁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가장행렬의 지다이 마츠리, 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알리는 치온인의 타종행사와 후지산의 일출까지. 교토에는 건물이나 유적 구경 이상의 것을 즐기고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이벤트와 행사가 일년 내내 끊이지 않는다. 또한 교토는 헤이안 시대의 화려한 귀족문화를 거치며 '국풍문화'라 불리는 일본 고유의 문화가 발전하였고, 이는 문학 작품과 유적으로 아직까지도 전해져 오고 있다. 교토를 여행하다 보면 일본 대표 모노가타리로 꼽히는 『겐지 이야기』와 『헤이케 이야기』, 영화 「음양사」로 더 알려진 아베 세이메이, 아직까지 영화와 드라마로 만들어지며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는 『쥬신구라』 등의 흔적을 쉽게 만날 수 있어 여행은 더욱 즐거워진다. 교토는 알면 알수록, 머물면 머물수록 천년의 시간 속에 품어 온 모습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마법 같은 도시이다.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찾는 교토의 명소는 '교토 답사 1번지'로 불리는 기요미즈데라와 기온, 옛 골목의 운치를 그대로 간직한 니넨자카와 산넨자카, 화려함과 소박함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킨가쿠지와 긴가쿠지, 교토 시내 중심에 위치한 야사카 신사 정도뿐이다. 하지만 진정한 교토의 모습을 보고 싶다면 때로는 관광지를 살짝 벗어나 조금은 느릿하게 골목골목을 거닐며 교토 사람들의 일상을 공유하고, 그 속에 숨겨진 교토의 명소와 이야기를 찾아 떠나 볼 것을 권한다. 『교토, 천년의 시간을 걷다』는 저자 조관희가 교토에 1년 동안 머물며 직접 걷고, 보고, 경험한 여행자로서의 생생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학자인 저자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교토의 역사 이야기를 통해 그냥 지나치던 오래된 비석과 다리 하나에도 의미를 찾게 되는, 보다 폭넓고 뜻깊은 교토 여행을 할 수 있다. 교토에 가보지 못한 사람은 교토의 유명한 명소와 볼거리를 미리 엿볼 수 있고, 이미 교토를 여행한 사람은 미처 알지 못했던 교토의 모습을 발견하는 특별한 역사 기행을 통해 새로운 교토를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벚꽃향 아련한 교토의 흥망성쇠 이야기 교토는 간무 천황이 나라에서 헤이안쿄(현재의 교토)로 도읍을 옮기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수도로서의 기반을 다지고, 오다 노부나가가 천하통일 과업을 이루었던 일본 역사의 주무대였다. 비록 1897년 도쿠가와 막부가 대정봉환을 통해 권력을 천황에게 넘기고 에도가 '도쿄(동쪽의 수도)'로 개칭되면서 교토는 수도로서의 지위를 잃고 일개 지방 도시로 전락했지만 천년의 시간 동안 일본의 경제ㆍ정치ㆍ문화의 중심지였다. 교토는 오랜 기간 축적된 전통문화 덕분에 다른 도시들은 흉내낼 수 없는 전통과 기품을 가졌고, 근대 이후 돈과 권력은 모두 도쿄와 오사카로 옮겨갔지만 지금까지도 우아한 '문화 수도'로 남아 있다. 또한 도시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가득차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공습조차 피했기에 교토에서는 발걸음이 닿는 모든 장소마다 일본 역사에서 일어났던 크고 작은 사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간무 천황이 불교 세력을 억누르기 위해 세웠지만 온갖 부침과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국보로 남은 도지와 황량하게 초석으로만 남은 사이지, 빼어난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실력을 지녔던 헤이안 시대 최고의 음양사 아베 세이메이를 모시고 있는 신사,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교토 재편과 권력 과시를 목적으로 지은 역사상 가장 화려한 건물로 손꼽히지만 그의 욕심과 의심 때문에 지금은 사라져 버린 주라쿠다이의 흔적을 거닐다 보면 천년 교토의 역사가 병풍을 펼치듯 구비구비 펼쳐진다. 과거의 찬란했던 위상은 벚꽃이 피고 지듯 시대를 지나며 부침을 겪었지만 한 나라의 수도로 보낸 시간이 천년이 넘기에 교토의 역사와 문화를 돌아보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라고 저자는 말한다. 하지만 익숙하면서도 낯선 이야기와 풍경을 따라 꿈길을 걷듯, 아련하게 사라져 간 역사의 향수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천년의 시간이 살아 숨쉬고 있는 교토를 오롯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