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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I부 건국집단의 성격
제1장 육정산 고분군과 건국집단 1. 머리말 2. 육정산 고분군의 발굴 자료 3. 속주와 속말말갈 고분 4. 고분 자료의 비교 5. 건국집단의 구성 6. 맺음말 제2장 속말말갈의 원류와 부여계 집단 1. 머리말 2. 부여설과 물길설 3. 물길의 서진과 속말말갈 4. 속말말갈 집단의 부여적 인소 5. 맺음말 제II부 지방지배와 수령 제3장 지방 통치와 그 실상 1. 머리말 2. 지방 통치제도의 변천 3. 지방 통치의 실상 4. 맺음말 제4장 수령의 성격 1. 머리말 2. 수령의 개념 3. 발해의 수령 4. 수령과 지방 사회 5. 맺음말 제5장 5경제의 연원과 역할 1. 머리말 2. 5경제의 연원 3. 5경의 설치 시기와 역할 4. 후대에 끼친 영향 5. 맺음말 제 III부 불교와 문화 제6장 불교의 전개과정과 몇 가지 특징 1. 머리말 2. 건국기의 불교 상황 3. 문왕의 불교 진흥과 왕권 강화 4. 9세기대의 불교 융성 5. 유민들의 불교 활동 6. 발해 불교의 몇 가지 특징 7. 맺음말 제7장 함화사년명 발해 비상 검토 1. 머리말 2. 명문 분석 3. 양식 검토 4. 비상의 연대 5. 맺음말 제8장 문화사 연구의 현황과 과제 1. 각국의 연구 개황과 문화 총론 2. 고고 연구 현황 3. 문화사 연구 현황 4. 연구의 시각과 과제 제IV부 고구려 계승성 제9장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 1. 머리말 2. 발해인의 자의식 3. 주변국의 인식 4. 문물제도 5. 맺음말 제10장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 보론 1. 머리말 2. 연구의 시각 3. 마한과 고구려, 발해 4. ‘발해인’의 의미 5. 맺음말 제11장 발해 쪽구들의 유래 1. 머리말 2. 쪽구들의 전수자 3. 발해 쪽구들의 특징 4. 맺음말 제12장 용해구역 고분 발굴에서 드러난 발해국의 성격 1. 머리말 2. 말갈족의 나라인가? 3. 당나라 지방세력이었나? 4. 맺음말: 남은 문제 논문출전 참고문헌 찾아보기 국문초록 중문초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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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정산 고분군에서는 고구려와 말갈 문화가 상호 결합된 양상이 주목된다. 그러면서도 위로 올라갈수록 고구려 문화 요소가 상대적으로 더 많이 보인다. 따라서, 말갈계 고구려인이나 원고구려인이 상층부를 주도하고 있었고, 그 아래로 내려오면서 말갈인이 좀 더 많은 수를 차지하였던 면모가 도출될 수 있다. 이것은 이미 발표한 문헌 연구와도 다르지 않다. 그런 면에서 육정산 고분군은 발해 건국집단의 구성과 성격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된다.--- p.42
최치원의 글을 훑어보면, 스스로 번국이라 하면서 사대로서 당나라를 대하고 있는 사실을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문장 가운데 제번, 추장, 신번, 번신과 같은 용어들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것은 신라 왕이 신으로서 중국 황제에게 올리는 형식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신라의 일부 비문에서 신라 왕의 명령에 대해서 교와 함께 조란 용어를 섞어 쓴 예가 보이지만, 그가 지은 금석문에서는 어디까지나 교만을 쓰고 있는 사실을 감안하면, 당나라에서 벼슬살이 했던 경험이 있는 그의 개인적인 성향도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그가 사용한 수령이란 용어는 신라에서 실제로 통용되던 것이라기보다는 당나라 시각에서 쓰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라에 수령이란 실제 계층이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당나라에서 사용되던 외교적인 용어를 차용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이 글에 보이는 수령을 실제로 수령 계층이 존재했던 발해의 경우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 기작을 위시한 대수령 8인과 소은을 위시한 소수령 2인은 지방의 촌주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 아마 궁인등급의 고저에 따라 구분하여 부른 것이라 생각된다.--- p.146 문헌 자료를 통하여 발해 불교를 적극적으로 다룬 이는 북한의 최봉익이다. 그러나 뒤에 언급하는 바와 같이 자료 취급에 오류가 많다는 문제점이 있다. 북한에서는 불교를 유교와 함께 반동적인 것으로 규정하여, 주로 불교가 끼친 해독성을 규명하는 데에 연구의 중점을 두고 있으며, 그것도 역사학자들보다는 철학사 연구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남한의 경우에 발해 불교가 불교사학계에서 거의 다루어지지 못하여 사실상 한국불교사에서 소외되어 왔다. 그것은 문헌 자료가 빈약한 실정인 데에다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고고학적 자료마저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봉쇄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중에 안계현이 한국 고대 불교사를 개관하면서 처음으로 발해 불교를 다루었고, 그 후 이용범도 발해사 서술에서 발해 불교를 다루어 이 방면의 선구를 이루었다. 또 그레이슨(Grayson J. H.)이 한국 종교사를 다룬 저서에서 발해 불교를 다루면서 발해 불교가 고구려 것을 계승했다고 설명하여 눈에 뜨인다. 그러나 이들은 내용면에서 아주 초보적이고 매우 소략하다. 그밖에 최근에는 발해 불상, 사찰 건축을 연구한 논문이 발표된 바 있다.--- p.202 발해가 말갈을 계승했다는 기록이나 의식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반면에 고구려 계승을 반영하는 자료는 상당수가 된다는 사실만을 강조해두고자 한다. 발해인 스스로 남긴 사료가 없어서 발해인의 사고를 직접 확인할 수 없고, 특히 당나라에서는 발해를 고구려의 부활로 보려 하지 않음으로써 사료가 일정 부분 왜곡되어 있는 가운데서도 그러한 사실이 확인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 p.3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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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의 전개 과정을 세밀하게 복원하다.
이 책은 발해의 지배층 구성,지방 사회의 구조,불교사 및 문화사,고구려 계승성 문제 등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 있다. 특히 육정산고분군 자료를 정밀하게 분석하여 발해 건국집단의 구성을 밝히고, 발해 건국자로 주장되고 있는 속말말갈의 실체에 대해서도 규명하고 있으며, 속말말갈을 부여계 집단으로 보는 관점의 오류를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밝혀내고 있다. 발해의 사회 구조에 대한 설득력 있는 통찰 송기호 교수는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발해 지방사회가 다수의 말갈계 집단을 소수의 고구려계 집단이 지배하는 형태를 지니고 있었고, 말갈계가 중심인 수령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위에 지방제도를 얹어놓은 불안정한 구조를 하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발해 5경은 고구려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당나라 영향의 산물임을 입증하기도 하다.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깊이 있는 발해사 연구 결과물 이 책에서 저자는 발해국의 위상을 추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함화 4년명 발해 비상’을 처음 발굴하여 소개하고 있으며, 발해 불교사를 개괄적으로 정리하고 있다.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 문제는 한?중 학계가 크게 대립하고 있는 매우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이다. 발해사에 대한 실증연구를 어느 정도 진전시킨 뒤에 이를 토대로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