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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종교 게임을 끝내고 사랑을 시작하다
Part 1. 죽은 종교를 벗다 ― 종교, 무엇이 문제인가 1. 모든 사람은 ‘종교적’이다 - 같은 출발점, 그러나 다른 도착지 2. ‘종교’가 세상을 어떻게 망치는가 - 위험, 두려움, 통제의 악순환 3. ‘종교’를 없애면 다 해결될까 - 진짜 문제는 종교가 아니라, 실질적 무신론자 4. 하나님은 ‘우리가 부리기 위해’ 존재하는 분이 아니다 - 내 멋대로 믿는 소비주의의 함정 5. 우리도 ‘하나님께 이용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 열심이 우상으로 변질된 사명주의 Part 2. 살아 있는 복음을 입다 ― 예수와 살면, 반드시 일상이 개혁된다 6. ‘함께 살자’ 날마다 초대하신다 - 같이 살고 싶어서 오신 예수 7. 진정한 ‘래디컬’ 삶을 살라 - 종교가 아니라 예수로 사는 래디컬한 삶 8. 하나님 손안에서 당신은 완전하게 안전하다 - 종교의 악순환을 끊는 믿음, 소망, 사랑 9. 당신에게 필요한 전부는 사랑이다 - 충분한 사랑의 원천과 함께하는 인생 |
Skye Jeth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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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가 진화하면서 그 통제 시스템도 발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의식과 주문, 제사 외에 도덕이 신의 은총을 입거나 신의 진노를 피하는 중요한 방법으로 등극했다. 도덕적으로 살면 풍년이 찾아오고 가문이 번성하며 국가가 전쟁과 가뭄을 피할 수 있다는 믿음이 뿌리를 내렸다. 이런 이유로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함으로써 경건의 껍데기를 치장하고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속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종교적인 사람은 사랑에서 우러나온 헌신을 하기보다는 단순히 예측 불가능한 세상을 두려워하는 사람일 수 있다. “내가 과연 취직할 수 있을까?” “내 자식들이 무사할까?” “우리 팀이 결승에 진출할 수 있을까?” 그는 이런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도덕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의 복을 얻어 내려고 한다. 그래서 겉으로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 위해 하나님을 꼭두각시처럼 조종하려는 것일 뿐이다.
--- p. 35 20세기 가장 압제적인 체제 대부분이 무신론을 기초로 건설되었다. 스탈린의 소련과 모택동의 중공, 캄보디아의 크메르 정권,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북한은 모두 살인적인 무신론 정권이다. 물론 종교적인 사람들도 끔찍한 악을 저지르곤 한다. 하지만 종교를 없앤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지지는 않는다. 그래 봐야 종교적인 악을 비종교적인 악으로 대체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바츨라프 하벨(Vaclav Havel)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공산 정권 아래서 투옥되어 극심한 고초를 겪었던 그는 나중에 체코 공화국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그런데 그는 정적들을 제거하지 않고 용서함으로써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과 악을 가르는 선은 우리와 그들 사이가 아니라 각 사람의 중심을 통과한다.” --- p. 52 사명이 정확히 무엇이냐를 두고 종교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대체로 하나님이 시작해서 이제 그분의 종들이 인생의 최우선 과제로써 수행하는 위대한 역사를 지칭한다. 그런데 종교는 모든 사람을 이 사명과의 관계에서 본다. 사명에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추앙을 받는 반면, 덜 거룩한 일에 한눈을 파는 사람들은 비판을 받거나 은근히 손가락질을 당한다. 많은 종교적인 사람들이 소비주의라는 우리 문화의 우상을 제거한다는 명목으로 ‘사명주의’라는 또 다른 우상을 끌어들였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그들은 더 심한 이교도로 전락했다. --- p. 83 물론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요 1:29)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마 10:45) 이 땅에 오셨다. 하지만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하신 희생의 궁극적인 목표는 우리를 천국에 데려가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목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것이었다. 천국에 가는 것은 그곳에 계신 하늘 아버지와의 연합에 따르는 보너스일 뿐이다. 따라서 천국 자체를 목표로 삼으면 완전히 헛다리 짚은 셈이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이 점을 분명히 지적했다. “천국에 그리스도께서 계시지 않아도 행복해할 사람들은 그곳에 가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천국은 천국이 아니다. 예수님은 천국이 아닌 하나님을 갈망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분이 주신 가장 큰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이다(막 12:30). 하지만 알지도 못하는 분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보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갈망할 수 있는가? --- p. 109 침묵과 고독 속에서 두려움과 통제 욕구를 비롯한 우리 영혼 속에 숨겨진 것들이 밖으로 표출된다. 자신의 악과 이기적인 욕심이 그늘 아래서 스멀스멀 기어 나오면서 불쾌함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가 끝없는 활동에 매진하고 텔레비전 오락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떠드는 동안 억지로 한쪽에 치워 두었던 분노와 수치심, 죄책감, 슬픔이 갑자기 노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한다. 침묵 속에서 우리는 요동치는 내면의 소음에 기진맥진해진다. 하지만 계속해서 견디면 어느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우리가 충분히 안전하지 않다고, 충분히 똑똑하지 않다고, 충분히 선하지 않다고, 충분히 아름답지 않다고, 충분히 성공하지 못했다고, 충분히 인기가 없다고 속삭이는 내면의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더 많은 통제’를 외치는 종교와 세상의 목소리들도 아우성친다. 그러다 이 모든 목소리가 서서히 잦아들고 정말로 중요한 단 하나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진리를 속삭이기 시작한다. 침묵 가운데서 하나님이 우리를 만나 “너를 사랑받는 자다”라고 속삭여 주신다. --- pp. 153-1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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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된 짐’을 다 내려놓고
‘예수의 쉬운 멍에’를 메고 날아오르라 스카이 제서니는 힌두교도와 인본주의자, 복음주의 기독교 신자와 무신론자, 가톨릭교도가 한데 뒤섞인 집안에서 자랐다. 종교 경기장에 너무 많은 ‘팀들’이 나와 쉴 새 없이 다툼을 벌이는 통에 그는 종교에 지독한 환멸을 느끼게 됐고, 청년 시절 이 지겨운 시합에서 아예 손을 떼기로 작정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예기치 못한 인물이 경기장 한복판으로 걸어왔다. 그분은 그분의 이름을 도용한 문화적·제도적 ‘팀들’과는 전혀 달랐다. 스카이 제서니는 종교 제도가 아닌 진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 “말할 수 없이 부담스러우면서 동시에 말할 수 없이 매력적인 분이었다”라고 예수님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내용의 이해를 도와줄 일러스트까지 직접 그려 가면서, 자신이 종교 게임을 그만두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한 뒤로 그분께 배운 아홉 가지 놀라운 진실을 열정적으로 밝힌다. “천천히 읽을수록 좋은 책이다” _스캇 맥나이트(신약학자) 이 책은 종교와 신앙과 하나님을 단단히 잘못 이해하고 있는 우리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무너뜨린다. 분량은 짧지만 논리적 비약이 없고, 저자의 의중을 명쾌하게 전한다. 또한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통해, 책의 메시지를 한층 쉽고 친근하면서도 와닿게 전달하고 있다. 다원주의 종교와 무신론자는 차치하고도, 크리스천들마저도 엉뚱한 방향과 목적을 향해 신앙생활, 종교생활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신자든 비신자든, 이제 예수와 살라. 예수와 함께 살아 있는 삶을 살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