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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송별시(送別詩)
과거에 낙방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무잠을 송별하며 손이를 송별하며 제주에서 조영을 송별하며 이별의 광경을 바라보며 기수(淇水) 가에서 조선주를 송별하며 촉(蜀) 땅으로 돌아가는 엄 수재를 송별하며 양양으로 돌아가는 맹호연을 송별하며 회남으로 유랑 길 떠나는 사촌 동생 왕번을 송별하며 최흥종을 송별하며 산중의 족형(族兄) 온고 상인께 유별(留別)하며 아우 왕진에게 보이다 ‘쌍황곡가’로 송별하며 부모님을 뵈러 밀주로 가는 최삼을 송별하며 영운지에서 사촌 아우를 송별하며 귀임하는 기주 원 장사를 송별하며 자성사에서 감이를 송별하며 봉 태수를 송별하며 강 태수를 송별하며 선성군으로 부임해 가는 우문 태수를 송별하며 계주 형 자사를 송별하며 대주로 출정하는 조 도독을 송별하며 분운(分韻)함에 청(靑) 자 운(韻)을 뽑아 짓다 육 원외를 송별하며 과거에 낙방하고 강동으로 돌아가는 구위를 송별하며 벼슬을 버리고 강동으로 돌아가는 교서랑 기무잠을 송별하며 기무잠을 떠나보내며 산중으로 돌아가는 장인을 송별하며 선성으로 돌아가는 장인을 송별하며 촉 땅으로 유랑 길 떠나는 최흥종을 송별하며 외사촌 동생 최흥종이 종남산으로 가려 할 제 말 위에서 즉흥시를 지어 주며 송별하다 서 낭중을 송별하며 수양 이 태수를 송별하며 부임 길에 오르는 위군 이 태수를 송별하며 일본국으로 돌아가는 비서감 조형을 송별하며 최흥종의 <남쪽으로 돌아가는 형산 원 공을 송별하며>에 화답하다 생질 하수 원외랑을 송별하며 당주로 가는 구위를 송별하며 산속으로 돌아가는 친구를 송별하는 노래·2수 진운군 묘 태수를 송별하며 임회로 돌아가는 고도의 아우 고탐을 송별하며 짓다 상락군으로 부임해 가는 이 태수를 송별하며 안양으로 부임해 가는 웅구를 송별하며 하서로 부임해 가는 장 판관을 송별하며 행군사마가 되어 하서로 부임해 가는 우문삼을 송별하며 위 평사를 송별하며 안서로 부임해 가는 유 사직을 송별하며 평담연 판관을 송별하며 안서로 출사(出使)하는 원이를 송별하며 높은 누대에 올라 여 습유를 송별하며 산중 송별 남전으로 돌아가는 전 소부를 송별하며 동경유수 위척(韋陟)을 송별하며 동생 진(縉)을 떠나보낸 후 청룡사에 올라 멀리 남전산을 바라보며 과주로 부임해 가는 양 장사를 송별하며 강회전운사로 부임해 가는 원 중승을 송별하며 육혼으로 돌아가는 여섯째 외숙을 삼가 송별하며 송별 권이를 송별하며 강주자사의 좌리(佐吏)로 부임해 가는 장 사인을 송별하며 설거의 10운(韻) 20구(句)에 화답하다 최오 태수를 송별하며 강동으로 부임해 가는 이 판관을 송별하며 산중으로 돌아가는 장 도사를 송별하며 손 수재를 송별하며 방성 위 명부를 송별하며 이 원외의 영랑(令郞)을 송별하며 재주 이 사군을 송별하며 남쪽으로 돌아가는 벗을 송별하며 숭산으로 돌아가는 방 존사를 송별하며 침주로 좌천되어 가는 양 소부를 송별하며 성묘하러 촉 땅으로 돌아가는 왕 존사를 송별하며 강동으로 돌아가는 심자복을 송별하며 2. 회인시(懷人詩) 9월 9일 산동의 형제들을 그리며 조자허를 눈물로 추모하며 활주에 이르러 황하 너머로 여양을 바라보며 정우를 그리다 제수(濟水) 가 네 현인의 노래·3수 산중에서 동생들에게 부치다 맹호연을 눈물로 추모하며 은요를 눈물로 추모하며 은요를 장송(葬送)하며 태을산 도관(道觀)의 가생의 거처를 찾아서 오지 않는 저광희를 기다리며 가을밤에 홀로 앉아 외사촌 동생 최흥종을 생각하며 심 거사의 산장에 들러 고인(故人)을 눈물로 추모하며 그리움 겨울밤에 흰 눈을 마주하고 호 거사의 집을 생각하며 눈 내린 날 이읍을 그리며 저 사마를 눈물로 추모하며 최흥종의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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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으로 돌아가는 맹호연을 송별하며
문을 닫아걸고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않으며 이 몸은 오랫동안 세상사를 멀리해 왔는데 분명 그것이 상책(上策)이라 그대에게 권하노니, 고향으로 돌아가 한거(閑居)하소서 때로는 농가의 술로 흠뻑 취해 노래 부르고 때로는 즐겁게 웃으며 옛사람의 책을 읽을 것이니 이야말로 평생에 가장 즐거운 일일진대 굳이 사마상여처럼 부(賦)를 지어 바칠 필요가 있을쏘냐? 送孟六歸襄陽 杜門不復出 久與世情疎 以此爲長策 勸君歸舊廬 醉歌田舍酒 笑讀古人書 好是一生事 無勞獻子虛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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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唐詩)의 문학적 가치와 고전적 향기는 오늘날에도 불후의 생명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을 매료한다. 시불(詩佛) 왕유는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당시의 황금기를 이끈 대시인이다.
이백이 풍류 넘치는 삶을 살며 호방한 필치와 낭만적인 서정으로 시운을 만나지 못한 개인적 시름과 울분을 토로했다면, 두보는 우국 우민(憂國憂民)의 충정을 바탕으로 침울하면서도 사실적인 필치로 전란(戰亂)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회 민생을 여실히 반영했다. 반면 불교에 심취했던 왕유는 역관역은(亦官亦隱)의 고뇌에 찬 삶을 살며 담박하면서도 고아한 필치로 세속적 번뇌에서 초탈하고 해탈한 정서를 묘사했다. 그 때문에 왕유의 시는 자연의 정취와 불가(佛家)적 선취(禪趣)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며 이는 속세를 떠난 서정의 극치로 이어진다. 그러나 왕유의 시적 재능은 은일(隱逸)한 서정에만 머물지 않았다. 적극 진취적인 처세를 보인 전기에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정치적 이상을 표출하는가 하면, 현실 사회의 불합리를 풍자하기도 했다. 또한 생애 전반에 걸쳐 창작된 교유시(交遊詩)와 증별시(贈別詩), 그리고 일상생활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작품에서 묻어나는 은근하면서도 온후한 정감은 감탄을 자아낸다. 입신 현달(立身顯達)의 꿈을 품고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장안으로 가던 왕유는, 굳이 진시황릉을 찾아 애절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흥망성쇠에 대한 깊은 감개를 토로할 정도로(1208쪽 「진시황릉을 찾아서」 참조) 어려서부터 이미 인생에 대한 통찰이 남달랐다. 그러므로 그는 가정적인 불행에 정치적 실의와 실절(失節)이 이어지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결코 비관하거나 염세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적 생명 가치를 추구하며 정신적 해탈에 이를 수 있었다. 오늘날 치열한 생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누구도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소중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는커녕 왕왕 상대적 빈곤과 열등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몸소 밭을 갈며 인생의 참뜻을 깨닫고 희열의 노래를 부른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보다는, 고통과 시련의 삶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통찰로 자신을 지켰던 왕유에게서 더욱 매력을 느낀다. 왕유의 시는 분명 고단한 현대인에게 초탈과 해탈의 지혜를 일깨워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