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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회시(詠懷詩)
도화원의 노래 「옥병 속 얼음처럼 맑도다」를 시제(詩題)로 받아 읊다 젊은이의 노래·4수 우연히 짓다·5수 불우의 노래 신진군 소나무의 노래 콩새의 노래 겨울밤에 울적한 회포를 읊다 등루가 백발을 한탄하며 초가을 산중에서 짓다 「망천도」에 적다 가을밤에 홀로 앉아 좌액 앞 배나무 꽃 백발을 한탄하며 불볕더위에 허덕이며 홍모란 꿈이려니 2. 풍자시(諷刺詩) 우언·2수 어리석은 섬참새 궁중 꾀꼬리 소리 들으며 우공곡·3수 지빠귀 소리 들으며 3. 영사시(詠史詩) 진시황릉을 찾아서 이능의 노래 식 부인 서시의 노래 이문의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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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짓다·제3수
밤낮 저만치 태항산이 바라다뵈건만 머뭇머뭇 아직껏 떠날 수가 없었네 그대에게 묻노니, 어찌 그렇단 말인가? 속세의 그물이 이 몸을 휘감은 탓이로다 어린 누이는 나날이 자라고 형제들은 아직 장가들지 못했네 집은 가난한데 녹봉까지 변변치 않아 평소 저축은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네 몇 번이나 홀가분히 떠나가려 했건만 머뭇머뭇 망설이다 다시 가족을 돌아보았네 손등이 은거하며 휘파람을 불었다는 장소대는 무성한 송죽 언저리에 그 흔적이 남아 있거늘 그곳까지 도대체 거리가 얼마란 말인가? 옛 친구들은 이미 은거지로 가는 도중에 있다네 애염(愛染)은 어느새 날로 엷어지고 선적(禪寂)은 어느새 날로 굳어지나니 세상만사 다 잊고 내 홀연히 먼 길을 가리라 어찌 마냥 또 한 해가 저무는 것을 기다리랴? 偶然作 三 日夕見太行 沈吟未能去 問君何以然 世網?我故 小妹日成長 兄弟未有娶 家貧祿旣薄 儲蓄非有素 幾回欲奮飛 ??復相顧 孫登長嘯臺 松竹有遺處 相去?幾許 故人在中路 愛染日已薄 禪寂日已固 忽乎吾將行 寧俟歲云暮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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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唐詩)의 문학적 가치와 고전적 향기는 오늘날에도 불후의 생명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을 매료한다. 시불(詩佛) 왕유는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당시의 황금기를 이끈 대시인이다.
이백이 풍류 넘치는 삶을 살며 호방한 필치와 낭만적인 서정으로 시운을 만나지 못한 개인적 시름과 울분을 토로했다면, 두보는 우국 우민(憂國憂民)의 충정을 바탕으로 침울하면서도 사실적인 필치로 전란(戰亂)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회 민생을 여실히 반영했다. 반면 불교에 심취했던 왕유는 역관역은(亦官亦隱)의 고뇌에 찬 삶을 살며 담박하면서도 고아한 필치로 세속적 번뇌에서 초탈하고 해탈한 정서를 묘사했다. 그 때문에 왕유의 시는 자연의 정취와 불가(佛家)적 선취(禪趣)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며 이는 속세를 떠난 서정의 극치로 이어진다. 그러나 왕유의 시적 재능은 은일(隱逸)한 서정에만 머물지 않았다. 적극 진취적인 처세를 보인 전기에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정치적 이상을 표출하는가 하면, 현실 사회의 불합리를 풍자하기도 했다. 또한 생애 전반에 걸쳐 창작된 교유시(交遊詩)와 증별시(贈別詩), 그리고 일상생활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작품에서 묻어나는 은근하면서도 온후한 정감은 감탄을 자아낸다. 입신 현달(立身顯達)의 꿈을 품고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장안으로 가던 왕유는, 굳이 진시황릉을 찾아 애절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흥망성쇠에 대한 깊은 감개를 토로할 정도로(1208쪽 「진시황릉을 찾아서」 참조) 어려서부터 이미 인생에 대한 통찰이 남달랐다. 그러므로 그는 가정적인 불행에 정치적 실의와 실절(失節)이 이어지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결코 비관하거나 염세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적 생명 가치를 추구하며 정신적 해탈에 이를 수 있었다. 오늘날 치열한 생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누구도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소중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는커녕 왕왕 상대적 빈곤과 열등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몸소 밭을 갈며 인생의 참뜻을 깨닫고 희열의 노래를 부른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보다는, 고통과 시련의 삶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통찰로 자신을 지켰던 왕유에게서 더욱 매력을 느낀다. 왕유의 시는 분명 고단한 현대인에게 초탈과 해탈의 지혜를 일깨워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