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王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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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 장인에게 재미스레 주다 제1수
내 아우 그대 동산에 은거하던 시절 마음으로 숭상하는 바 그 얼마나 고원(高遠)했던가! 해가 중천에 떠올라도 마냥 누웠다가 종소리 울리고서야 비로소 일어나 밥을 먹는데 목 위에는 늘어뜨린 머리채 빗지도 않았고 침상 머리맡엔 서책을 말아 놓지도 않았네 맑은 냇물 바라보며 유유자적하고 텅 빈 수풀 마주하고 한가로이 쉴 제 푸른 이끼는 돌덩이 위로 파릇파릇 정결하고 가는 풀잎은 소나무 아래로 나긋나긋 부드럽다 창밖에는 새소리 한가롭고 섬돌 앞엔 호랑이 마음 다정도 하다 온갖 사려(思慮)의 번다(繁多)함도 부질없고 현허(玄虛)한 도(道)의 심원함도 담박할 뿐이러니 사람도 만물과 다를 게 없음을 깨달으면 사람으로서 자못 천박했음을 스스로 돌아보나니 바야흐로 그대를 대하며 문득 터득한 바 있어 헛된 잡념일랑 번거로이 떨쳐 버릴 것조차 없다네 ?贈張五弟?·一 吾弟東山時 心尙一何遠 日高猶自臥 鐘動始能飯 領上髮未梳 牀頭書不卷 淸川與悠悠 空林對偃蹇 靑苔石上淨 細草松下軟 ?外鳥聲閑 階前虎心善 徒然萬慮多 澹爾太虛緬 一知與物平 自顧爲人淺 對君忽自得 浮念不煩遣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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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唐詩)의 문학적 가치와 고전적 향기는 오늘날에도 불후의 생명력을 발휘하며 전 세계 문학 애호가들을 매료한다. 시불(詩佛) 왕유는 시선(詩仙) 이백, 시성(詩聖) 두보와 함께 당시의 황금기를 이끈 대시인이다.
이백이 풍류 넘치는 삶을 살며 호방한 필치와 낭만적인 서정으로 시운을 만나지 못한 개인적 시름과 울분을 토로했다면, 두보는 우국 우민(憂國憂民)의 충정을 바탕으로 침울하면서도 사실적인 필치로 전란(戰亂)의 고통에 신음하는 사회 민생을 여실히 반영했다. 반면 불교에 심취했던 왕유는 역관역은(亦官亦隱)의 고뇌에 찬 삶을 살며 담박하면서도 고아한 필치로 세속적 번뇌에서 초탈하고 해탈한 정서를 묘사했다. 그 때문에 왕유의 시는 자연의 정취와 불가(佛家)적 선취(禪趣)가 넘치는 것으로 유명하며 이는 속세를 떠난 서정의 극치로 이어진다. 그러나 왕유의 시적 재능은 은일(隱逸)한 서정에만 머물지 않았다. 적극 진취적인 처세를 보인 전기에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정치적 이상을 표출하는가 하면, 현실 사회의 불합리를 풍자하기도 했다. 또한 생애 전반에 걸쳐 창작된 교유시(交遊詩)와 증별시(贈別詩), 그리고 일상생활의 다양한 감정을 담은 작품에서 묻어나는 은근하면서도 온후한 정감은 감탄을 자아낸다. 입신 현달(立身顯達)의 꿈을 품고 열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장안으로 가던 왕유는, 굳이 진시황릉을 찾아 애절한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흥망성쇠에 대한 깊은 감개를 토로할 정도로(1208쪽 「진시황릉을 찾아서」 참조) 어려서부터 이미 인생에 대한 통찰이 남달랐다. 그러므로 그는 가정적인 불행에 정치적 실의와 실절(失節)이 이어지는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결코 비관하거나 염세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적 생명 가치를 추구하며 정신적 해탈에 이를 수 있었다. 오늘날 치열한 생존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누구도 현실적인 고뇌와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소중한 일상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기는커녕 왕왕 상대적 빈곤과 열등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힘들어 한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몸소 밭을 갈며 인생의 참뜻을 깨닫고 희열의 노래를 부른 전원시인 도연명(陶淵明)보다는, 고통과 시련의 삶 속에서도 인생에 대한 통찰로 자신을 지켰던 왕유에게서 더욱 매력을 느낀다. 왕유의 시는 분명 고단한 현대인에게 초탈과 해탈의 지혜를 일깨워 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