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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nako Nishi,にし かなこ,西 加奈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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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하는 한, 내가 ‘입양아’라는 의식은 언제나 머릿속 어딘가에 있었다. 그걸 잊은 적은 없었다. 아이는 부모님과 전연 다른 자기 모습과 언제나 대치했고, 예민하게 자기 환경을 바라보았다. --- p.10
부모에게 무언가를 받을 때마다 ‘갖고 싶은 것을 갖지 못하는 아이들’을 생각하는 버릇은 없어지지 않았다. 해골처럼 말라서 배만 빵빵하게 나온 아이들. 연기가 피어오르는 쓰레기 산을 뒤지는 맨발의 아이들. 노상에 웅크려 자고, 어른에게서 금품을 훔치며 사는 아이들. 그들은 절대 성장하지 않았다. 아이의 속에서 언제까지나 어린아이로 있었다. 세계 불균형의 희생자인 아이들 모습 그대로. --- p.40 자신이 ‘너무 혜택받지 않은 것’, 아이에게는 그것이 중요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카타리나를 대할 때와 마찬가지로 아이는 수치심과 죄책감으로 짓눌리는 것 같았다. --- p.44 즐거움을 빼앗기고, 웃음을 빼앗기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을 빼앗긴 소녀들. 때로는 이유 없는 혐의를 뒤집어쓰고 목숨을 빼앗긴 소녀들. 그저 인간으로 꿋꿋하게 살아가고 싶다는, 그 바람조차도 이루지 못한 소녀들. --- p.153 “살아서 좋아하는 사람에게 사랑받는다는 건 기적이야. 자신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 p.171 아이는 자신을 용서하고 싶었다. 자신 이외의 누군가, 그것도 자신을 사랑하는 누군가가 아닌, 거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무관한 누군가에게 ‘그것’을 듣고 싶었다. --- p.173 아이는 지금 이곳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을 가볍게 껴안을 수 있었다. 이곳에 있어도 돼, 하는 소극적인 느낌이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순수하게 감동할 수 있었다. 사랑이란 이렇게도 강대한 힘을 가졌다. --- p.174 “우리는 모르지만, 모르기 때문에 비극으로 상상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깊어지는 것 같아. 그 시간을 잘 보내고 마주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생각해. 그것이 어떤 행동으로 이어져갈지는 모르겠지만.” “……응. 그러게.” “어느 쪽이든 그건 살아 있는 사람밖에 할 수 없어.” 살아 있는 사람밖에 할 수 없다. --- p.267 미나의 눈동자에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살아 있는 사람이 비쳤다. “나는 여기 있어.” --- p.279 |
예민한 자의식으로 비극적 세계와 맞서는 생의 기록
세계와 자기 존재의 매듭을 짓는 이야기 시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인 대니얼 와일드와 일본인 소다 아야코 부부에게 입양된 주인공 아이는 뉴욕과 도쿄에서 자랐다. 예민한 감수성과 섬세한 지성을 지닌 아이는 세계의 비극(빈곤, 인종차별과 학살, 테러, 대지진 등)을 접할 때마다 죄책감과 수치심을 느낀다(“‘살아남아버렸다’고, 날마다 생각했다. (…) 어째서 내가 아닌 건가”). 그리고 고등학교 수학 교사가 허수에 대해 던진 한마디 “이 세상에 아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를 곱씹으며 세계의 비극과 자기 존재의 의미에 천착해왔다. 그 말에 상처를 받았는지 어쨌는지는 아이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너무나 강렬하게 가슴에 맺혀서, 언젠가부터 그것은 아이에게 일그러진 주문(呪文) 같은 것이 됐다. “이 세상에 아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떤 장소에서든 그 말을 떠올리면 쓸쓸했지만, 왠지 마음이 놓였다. 33쪽 2001년 9·11 테러, 2004년 러시아 체첸 반군 테러, 2005년 수마트라섬 대지진, 런던 지하철 폭탄 테러, 파키스탄 북동부 지진, 2006년 이집트 페리 침몰, 필리핀 산사태, 인도네시아 대지진 같은 참혹한 세계의 뉴스를 접하면서 아이는 그런 사건의 희생자 수를 노트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어쩌면 자신이 “선택받은” 덕분에 빼앗은 것인지도 모를 누군가의 생명을 생각하며 적어도 자신만은 그들이 영위했어야 할 행복한 삶, 그리고 그것을 빼앗긴 고통에 대해 알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아이를 둘러싼 주위 세계는 그저 평온했다. ‘아이[愛]’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아이는 자기가 혜택받은 환경에 있을 정당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줄곧 들었다. 이곳에 있는 것은 나지만,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있어야 할 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은 ‘그 아이’의 권리를 부당하게 빼앗은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다. 아이는 언제나 자기 행복을, 그리고 존재를 주체하지 못했다. 45쪽 도쿄에서 대학원에 진학해 수학을 전공하며 여전히 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를 노트에 기록하던 아이는 2011년 대지진과 원전 사고를 직접 겪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절친한 유일한 친구 미나와 양부모는 아이에게 미국으로 오라고 설득하지만 아이는 도쿄에 남겠다고 고집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노트에 기록했던 사건 사고와 달리 실제로 자신의 몸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었다. 사건을 직접 보고 겪음으로써 비극에 대해 말할 권리를 얻고 싶었던 것이다(“생명의 위기를, 그 공포를 얘기할 권리를 얻고 싶었던 걸 거야”). 자신의 몸으로 느낀 그 밀어 올리는 듯한 충격, 건물이 흔들릴 때 온몸을 뒤덮던 공포를 아이는 맹목적으로 믿었다. 이것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다. 이것은 내게 일어난 일이다. 내게! 아이는 그 체험을 ‘중요한 것’으로 부둥켜안기로 했다. 내가 나라는 것의 증거로서 절대로 놓치지 않고 싶다고 생각했다. 132쪽 “상상이란 마음을, 생각을 보내는 일이야. 너는 내게 ‘진짜 나’를 주었어.” 상상의 힘으로 불러일으킨 사랑이 세계와 나의 존재 이유다 아이는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알고 싶었다. 줄곧 알고 싶었다. 누군가의 행복을 짓밟고 밀어젖히고까지 자신이 태어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몇 센티미터 되지 않는 생명의 시작이 내가 이 세상에 있다는 증표다. 나는 이 세상에 있어도 되는 것이다! 194쪽 원전 반대 시위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아이는 그와 결혼하고, 자신의 피를 나눈 아이를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유산으로 아기를 잃고 자신이 이 세계에 있어도 된다고 해줄 유일한 증거, 자신이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사라졌다는 고통을 끊임없이 곱씹는다. 그러나 아이에게 깊이 공감하고 변함없는 사랑을 보내는 진심 어린 미나의 편지, 뉴욕에서 귀국한 양어머니에게서 들은 따뜻한 말, 자신의 고통을 이해해주는 남편의 말 등으로, 아이는 “자신의 슬픔을 상상할 수 있는 타인의 존재.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어도 그것을 배려해서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상상의 힘”을 깨닫게 된다. “소용돌이 속에 있지 않아도 그 사람들을 생각하며 괴로워해도 좋다고 생각해. 그 괴로움이 퍼져서 몰랐던 누군가가 상상할 여지가 된다고 생각해. 소용돌이 속의 괴로움을. 그게 어떤 건지 상상밖에 할 수 없지만, 게다가 실제로 힘은 없을지도 모르지만, 상상한다는 것은 마음을, 생각을 보내는 일이야.” 255쪽 “내게 일어난 일도 그래. 내 몸속에서 아기가 죽었으니 그 슬픔은 내 것이지만, 그러나 그런 경험을 하지 못한 사람들도 그 슬픔을 상상할 수는 있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어도 그걸 걱정하고, 함께 괴로워해줄 수는 있어. 상상하는 그 힘만으로 죽은 아이가 돌아오진 않지만, 그렇지만…… 내 마음은 되찾을 수 있어.” 255~256쪽 사진작가인 남편 유는 세계의 재난을 찍는 보도 사진을 사명으로서 찍느냐, 흥밋거리로서 찍느냐를 가르는 잣대가 ‘사랑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아이에게는 세계의 비극을 찍을 권리가 있다고. 이제 아이는, 눈에 보이지 않더라도 상상력이 그 존재를 가능케 하는 사랑이 세상에 꽉 차 있는 것을, 그렇기에 자기 자신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해 세상 모든 생명의 탄생을 축복한다. |